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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인터뷰] 양선길 쌍방울그룹 회장, 바이오와 신재생에너지에서 길을 찾다 

“계열사 시너지로 국민기업 쌍방울의 위상 굳힐 것” 

■ 나노스, 독점기술 보유한 독일 바이오기업 코든파마의 아시아 생산기지로 유력
■ 광림, 수소에너지 특장차 개발… 풍력·태양광 발전 사업 모델 구축해 ESG 동참
■ 아이오케이, 중국시장 공략할 엔터 회사 인수… 1000억원 대작 [고구려] 제작
■ 쌍방울, 40대 김세호 대표 영입 후 마스크로 대박… 해마다 사회공헌 기부 늘려


▎양선길 쌍방울그룹 회장은 바이오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친환경과 사회공헌은 그룹의 정체성이자 비전이 됐다.
양선길(59) 쌍방울그룹 회장은 코로나19 백신 얘기부터 꺼냈다. “아마 내가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백신 접종을 꽤 일찍 한 편에 속할 것이다. 미국, 독일 등 해외 바이오 회사들을 찾아다니기 위해서 필요했다.” 미국에서 3개월 이상 체류하며 MD앤더슨 암 센터,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솔크연구소 등을 찾았다. 독일에서는 바이오 전문기업 코든파마와의 전략적 제휴를 궤도에 올렸다. 코든파마는 코로나19 mRNA 백신을 개발한 미국 모더나와의 협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 회사는 mRNA 백신 항체가 온전하게 인체에 침투하도록 보호해주는 필수적 전달 기술인 LNP(Lipid Nano Particle, 지질나노입자)를 개발했다.

쌍방울은 토종 속옷 브랜드로 전 국민에게 각인돼왔다. 그 기원은 1963년 쌍녕섬유공업사 설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인 이봉녕·이창녕 형제의 이름에 ‘방울 령(鈴)’ 자가 겹치는 것에 착안해 쌍방울이라는 사명이 유래했다. 이후 1987년 출시된 TRY 브랜드로 큰 성공을 거뒀다. 배우 이덕화가 손바닥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치는 TRY 광고는 숱한 패러디를 양산했다. 1990년에는 전북 전주를 연고지로 삼는 쌍방울 레이더스 프로야구단까지 창단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로 그룹은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경영권이 바뀌었고, 2014년 특수장비차량 제조업체 광림에 인수된 뒤 쌍방울그룹의 8개 계열사 중 하나로 존속하고 있다.

목재회사로 출발한 핀란드 노키아가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사이자 통신 회사로 진화했던 것처럼, 속옷 회사로 시작한 쌍방울그룹은 양선길 회장 체제에서 바이오기업, 재생에너지기업으로 체질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속옷 회사가 바이오를?’이라는 세상의 괴리감을 어떻게 메울 생각일까라는 궁금증을 품고 9월 9일 서울 용산구 쌍방울그룹 회장실로 들어갔다. 양 회장의 어조는 조용했지만, 메시지는 단호했다. 신사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을 어떻게든 해내는 남자를 일컫는다. 그를 만나보니, 회사 경영도 마찬가지 이치라는 느낌이 들었다.

“바이오 시설 투자 여력 얼마든지 있다”

2021년 6월 25일 쌍방울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어떤 마음으로 수락했나?

“추대 형식이었지만, 내 의지도 있었다. 2020년 비비안, 미래산업, 인피니티엔티, 디모아, 아이오케이(IOK)가 쌍방울그룹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계열사 각각의 특성이 있겠지만, 시너지를 내야 할 시기가 왔다. 신성장사업을 위한 그림을 그리려면 회장을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쌍방울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는 컨설팅회사 칼라스홀딩스가 자리한다. 쌍방울그룹은 순환출자 구조에서 핵심에 위치한 광림을 중심으로 나노스, 쌍방울, 비비안, IOK 등의 지배구조가 형성돼 있는데 광림의 최대주주가 칼라스홀딩스다. 그리고 양 회장은 칼라스홀딩스의 대주주 가운데 한 명이다.

나노스에서 바이오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언뜻 본업(광학필터, 홀센서 제조)과 바이오의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데.

“캐시 카우(cash cow, 현금창출원)를 찾아야 했고, (결론은) 바이오사업이었다. 나노스가 바이오로 가는 이유는 이 회사가 우리 그룹 전체 시가총액의 절반(9월 15일 시점에 8932억원)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원래 나노스의 핵심 업무인 휴대폰 광학필터 사업은 진입장벽이 높으니 그대로 유지하면서 2018년부터 준비한 바이오도 가시화할 것이다.” (양 회장은 나노스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있나?

“우리는 초기 연구 분야에 집중한다. 이제 와서 (암과 알츠하이머 등의 질병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시스템을 갖출 순 없으니까 미국의 MD앤더슨 암 센터, 솔크연구소 등과 협력할 수 있다. (2018년 5월 양선길 나노스 대표이사는 솔크연구소에 150만 달러를 투자 기부한 바 있다.) 이미 바이오 분야 전문가를 영입했고, 향후 조인트벤처(합작법인)나 투자를 통해서 미국 증시에 상장되기 전의 회사를 발굴해 가치를 키울 수도 있다.”

또 다른 트랙에서는 독일 코든파마와의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모더나와 화이자가 개발한 mRNA 방식 코로나19 백신은(주사를 맞아도 항체가 인체에 침투할 때) 쉽게 깨지는 문제가 있었다. (쉽게 설명하면, mRNA라는 특효 성분을 변질 시키지 않고 인간 몸속으로 집어넣을 수 있는 전달 기술이 LNP다. 이 기술이 없으면 mRNA 백신은 무력화된다.) 코든파마와의 전략적 기술 제휴를 통해 CDMO(의약품위탁개발생산) 사업 진출을 꾀하고 있다. 위탁생산을 위한 시설 구축, 인력 구성, 합작법인 설립 등 다각도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다. (나노스는 코든파마가 생산하는 LNP의 국내 독점 공급권을 보유하고 있다.) 2021년 하반기 혹은 2022년 초에는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속도를 높이고 있다.”

쌍방울그룹은 비밀유지 조항 등을 이유로 협상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다만 코든파마의 LNP 기술을 활용한 의약품 위탁생산과 유통에 관한 협의가 이뤄지는 과정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 코든파마는 아시아 지역 생산거점으로 한국의 나노스를 가장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휴대폰 부품 사업 제조 설비를 베트남으로 옮긴 뒤 나노스의 경기도 화성 공장은 유휴부지로 남아 있다. 협상이 타결되면 화성 공장의 클린룸은 위탁생산 기지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코든파마 측은 7월 말 이곳을 방문했다. 양 회장도 “시설 투자 여력은 우리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광림의 사업 목적에 신재생에너지 추가할 것”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나노스 본사 전경. 쌍방울그룹 바이오 사업의 핵심기지로의 변신이 유력하다. / 사진:나노스
나노스가 바이오에 도전한다면, 광림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뛰어든다.

“(2021년 8월 31일) 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미래산업의 당연한 책무처럼 되고 있다. (1979년 설립된) 광림은 40년 넘는 기업으로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를 할 수 있는 capacity(능력)가 된다. 광림의 사업 목적에 태양광·풍력·수소 등 신재생에너지를 추가하고, ESG(환경·사회공헌·지배구조) 경영에 앞장설 방침이다.” (광림은 9월 17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었다. 그룹 관계자는 ‘친환경에너지 사업을 구체화하는 첫발’이라고 밝혔다.)

테슬라의 존재감에서 증명된 것처럼 글로벌 트렌드는 수소차보다 전기차 쪽이 우세하다. 다만 특장차 같은 대형 차량은 수소에너지가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는데.

“전기차는 배터리를 얼마나 빨리 충전하고 가볍게 하는가가 관건이다. (전기차는 구조적으로) 배터리만큼 이노베이션(혁신)되는 아이템이 없다. (수소가스의 강한 화력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수소차는 화물 수송에 좋다. 현대차는 전기차 외에 수소차도 하고 있다. 우리도 투 트랙을 다 보고 있다.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특장차를 개발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 있다. 갈 길은 멀지만, 우리 몸집에 맞게 가겠다.”

양 회장은 인터뷰 하루 전인 9월 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수소동맹’에 관심을 표시했다.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 창립총회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부사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구동휘 E1 대표,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 이규호 코오롱글로벌 부사장,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허정석 일진그룹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2050년 수소가 글로벌 에너지 수요의 18%를 담당하고, 수소경제 시장 규모는 연 2조5000억 달러(3000조원)로 성장하며, 누적 일자리 3000만 개 이상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광림은 수소에너지 외에 풍력에너지 사업도 부각하고 있다.

“광림은 RE100(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의미) 에너지로 충전된 전기특장차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한 에너지원의 하나로 풍력을 검토하고 있다. 광림의 해상크레인을 해상풍력발전 사업에 투입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탑재한 바지선을 동원해서 육지로 수송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산업자원부에 제안했다. 또 300만 달러를 투자해 (육지 이동시) ESS 탑재 트럭의 화재나 고장 등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플랫폼을 미국 라이드셀과 공동 개발할 계획이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가 나오기 힘든 분야다.

“가장 접근성이 좋은 태양광과 풍력을 택했다. 타당성 평가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전기 특장차에 충전 시스템을 갖추려면 4년에서 6년은 소요된다. 전문가 대표이사의 준비 아래 광림은 장기적 플랜을 세우고 추진해나갈 계획이다.”(광림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성석경 쌍방울그룹 부회장은 텍사스 A&M 대학교 전기공학 박사 출신이며 텍사스주 우주항공 전기연구소 연구원을 거쳤다.)

“이스타항공은 단독 인수만 생각하고 있다”


▎광림에서 제조한 고소작업차량. 장기적으로 수소에너지 기반 차량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 사진:광림
광림 컨소시엄의 이스타항공 인수는 멈춤 상태다. 성정그룹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일각에서는 쌍방울그룹이 지분 투자를 해서라도 참여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돈다.

“항공사업은 패션, 엔터테인먼트 사업과의 연계성이 크다. 우리는 후순위 협상자로서 스탠바이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에는 중국 노선이 많은데 광림, 나노스, 비비안 등 법인이 중국 베이징, 상하이, 선양 등에 5개 있다. 개인적으로 중국 정법대에서 겸임교수로 있었다. 중국은 항상 우리가 봐야 할 시장이다. (이스타항공 인수와 관련해서도) 다시 기회가 온다면 적극 검토할 의향이 있다. 다만 단독으로 인수를 추진하는 방안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성정과의) 지분 투자 참여는 논의된 바 없다.”

건축학도(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 출신인 양 회장은 건설업에서 일하다가 쌍방울그룹으로 왔다. 2011년 쌍방울그룹과 인연을 맺었고, 2013년 10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쌍방울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018년 5월 나노스 대표이사로 이동했고, 2021년 쌍방울그룹 회장을 겸하고 있다.

그룹의 규모가 커지고, 계열사의 사업이 다각화될수록 컨트롤타워로 기능할 조직이 필요할 것 같다.

“쌍방울, 광림, 나노스 대표를 맡아봤다. 각자 시스템적으로 가도 문제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그룹 계열사가 늘어나면서 전략실, 비서실, 감사실 등 (컨트롤타워)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각 계열사가 ERP(전사적자원관리)를 구축하고 있다. 저마다 고유 업무를 갖고 있는 계열사에 ‘너희가 알아서’ 하도록 자생력과 책임감을 줄 것이다. 매주 금요일에 계열사 확대회의를 연다. 8개 계열사 중에는 부회장이 4~5명 있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아침에는 부회장들과 회의를 한다.”

쌍방울이라는 브랜드로 변화하는 그룹의 이미지를 포괄할 수 있을까?

“그룹의 명칭은 중요하다. 이름을 바꿀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우리 기업은 1963년 설립된 쌍방울에서 태동했다. 굉장히 국민적인 브랜드다. 올드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나이키도 오래됐다. 이스타항공 인수를 추진할 때도 광림·미래산업·IOK 컨소시엄이었는데 (여론에서는) 쌍방울로 알려졌다.” (실제 주식시장에서도 쌍방울 주식이 가장 강하게 반응했다.)

양 회장은 그룹의 미래를 강조하지만, 현실적으로 단기실적에 대한 압박은 최고경영자의 숙명이다.

“기업이란 건 계속 움직여간다. 연속성 속에서 이익을 창출하고, 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 점점 시장의 관리는 강화되고 있고, 경쟁은 과다해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첫째는 그룹의 내실이다. 지난해 그룹 매출이 6000억원(비상장사 디모아 포함)을 넘겼고, 올해 전반기도 (연매출 7000억원을 바라볼 정도로) 양호하다. 회의할 때, 잘되는 곳보다 빨간불 켜진 데로 눈길이 가게 돼 있다. 매일 모니터링한다. 하루하루가 힘들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복 받았다고 생각하고,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해외까지 합치면 우리 회사 스태프가 2500명가량 된다. 어려운 여건에서 잘 따라와주고 있다.”

“달라지지 않으면 다른 삶을 살 수 없어”


▎쌍방울그룹은 8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커졌다. 양선길 그룹 회장은 이 회사들의 실적을 관리하며 시너지를 내야 하는 책임감을 늘 체감하고 있다.
그룹의 사업 규모가 확장될수록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필연성이 커질 듯한데.

“쌍방울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회장이 있다. 지휘계통이 확실하니까 속도가 장점이다. 경영의 효율성 강화와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지주회사 전환도 고려 중이다. 다만 지주회사 전환 시 발생하는 대규모 자금 문제와 복잡한 의사결정 프로세스 등의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시간을 두고 장기적으로 논의하겠다.”

‘김성태 전 회장이 쌍방울그룹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우려 섞인 시선을 완화하는 것도 양 회장의 책무 중 하나로 여겨진다.

“김성태 전 회장은 나의 오랜 사업 파트너였다. 김 전 회장의 추진력으로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룹의 커진 볼륨을 더욱 견고하게 다져야 할 시점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내가 그룹 수장의 최대 적임자라는 주주들의 의견이 있었다. 이제 쌍방울그룹을 이끌어가는 리더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공적으로는 선을 긋겠지만) 김 전 회장과의 사적 관계는 특별한 변화가 없을 것이다.”

양 회장의 커리어패스를 보면 건설업에서 시작했지만 전혀 다른 사업 영역에서도 최고경영자로서 롱런했다. 어떤 마인드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나?

“기업은 숫자, 회계, M&A(인수·합병) 이런 게 중요하지 않나. 그렇지만 엔지니어는 대개 ‘1+1=2’ 같은 생각만 하고 산다. 엔지니어로서 건설회사에서 25년간 일하며 사원부터 임원까지 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힘들었다. 건설소장을 했을 때는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항상 사망사고가 도사리고 있었으니까. 건설 쪽에서 마지막에 건설 영업을 했다. SOC(사회간접자본)나 해상 풍력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다양한 경험은 이쪽 분야와 무관하지 않았다. 가령 광림은 기계를 다루고, 미래산업은 반도체 장비업이다. 또 건설에 몸담으며 멘털 쪽으로 많이 배웠다. 건설업에서 종사했던 시간은 우리 그룹을 끌고 가는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다. 바이오, IoT(사물인터넷), 엔터테인먼트…, 항상 배우는 자세로 일한다.”

경영자로서 일해보니 사람을 다룬다는 것의 요체는 무엇이던가? 어떻게 인재를 선별해낼 수 있으며, 모티베이션을 끌어낼 수 있을까?

“상선약수(上善若水, 지극히 착한 것은 물과 같다는 뜻), 물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무리수를 두지 말고 순리대로 가야 한다. 나에게는 건설 기질 같은 게 있어서 때에 따라서는 불도저처럼 돌파하지만 (긴급 상황이 아닌 한) 많이 들으려고 한다. 내 주변에 부회장단이나 전문가, 학자가 많이 포진해 있다. 그룹의 방향에 있어서 많이 듣고 판단하려고 한다. 요즘에는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많이 받으려 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낯선 영역에 도전할 때마다 ‘내 오판 하나로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할 것 같다.

“달라지지 않으면 다른 삶을 살 수 없다. ‘난관은 자기 안에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 한다.”

사원들에게 어떤 분위기의 회사를 만들어주고 싶은가?

“우리 그룹의 경영 방침은 ‘공(功)은 사원에게, 과(過)는 나에게’다. 장수기업이자 국민기업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혼을 넣어 일하는 직원을 인정하고 대우해주고 싶다.”

계열사들의 사업 스펙트럼이 워낙 넓어서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만도 쉽지 않을 텐데.

“기업 운용에 필요한 구체적인 인포메이션은 각 사 대표나 부회장 등 스태프들에게 얻는다. 관련 이슈에 관한 책도 읽는다.”

코로나19 시국에 해외 사업장은 어떻게 챙기고 있나?

“올해 미국과 독일을 다녀왔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정신없이 나갔을 텐데…. 나노스만 해도 필리핀, 베트남, 중국 톈진에 해외 법인이 있다. (나노스 대표로서) 코로나19 이전에 베트남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땅을 사고, 설계하고, 시공하고, 운용까지 전부 관여했다. 공장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30분 거리에 있다. 삼성전자 공장 근처다. 약 1만4000평인데 지금 풀가동하고 있다. 해외 법인과는 동영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글로벌 마케팅 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김세호·손영섭·장진우… 젊은 CEO 파격 발탁


▎김세호 쌍방울 대표이사는 그룹 세대교체의 아이콘 같은 존재다. 초고속 승진을 한 김 대표는 ‘샐러리맨 신화’를 쓰며 유재석이 진행하는 예능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쌍방울그룹 계열사 면면을 보면 김세호(43) 쌍방울 대표, 손영섭(54) 비비안 대표, 장진우(43) IOK 대표 등 젊은 CEO를 발탁하고 있다.

“김세호 쌍방울 대표는 굉장히 액티브하고, 영업 마인드도 달랐다. 쌍방울이 중국에 많이 투자했는데 (THAAD 배치에 따른 중국의 한한령 보복 탓에) 빠져나오게 되면서 굉장히 어려웠었다. 이후 내가 신선하게 바꿔보자는 차원에서 (2019년 3월) 쌍방울 사내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내가 쌍방울의 총괄 경영부사장이 된다면?’이라는 공모를 열었다. 그때 심사를 통해서 당시 지점장이던 그를 (일약 임원으로) 발탁했다. 이 친구가 수영·사이클·마라톤 등 트라이애슬론 전문가다. 육체와 정신력이 강하다. 손영섭 대표도 바바라 브랜드를 직접 만든 비비안 맨이다. 그래서 비비안 인수 후 대표로 발탁했다. 언론사 기자 출신인 장진우 IOK 대표는 엔터테인먼트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과감하게 선택했다. 기업은 오래돼도 생각은 젊어야 한다. 적극적 소통, 과감한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공격적 마케팅으로 직원들에게도 활기를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갈수록 속옷 시장의 환경은 엄혹해지고 있다. 유니클로 등 SPA(제조·유통 일괄 의류 브랜드)의 공세로 레드오션이 됐다. 적자가 누적됐고, 2020년 코로나19까지 터졌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김세호 대표 체제의 쌍방울은 민첩(agile)하게 도전에 응했다. 미세먼지 대응 차원에서 2019년 7월부터 마스크 사업을 시작한 덕분에 가능했다. 중국 지린성 훈춘의 트라이 방직 유한공사 속옷 생산라인에서 마스크를 제작했다. 이때부터 생산한 ‘트라이 KF94’ 마스크는 미세먼지뿐만 아니라 세균 침투까지 차단하는 효과가 있었다. 코로나19가 퍼지자 이 마스크는 수요가 폭발했다. 방역 마스크로만 800억원 이상의 물량을 수주했다. 쌍방울의 2020년 매출액이 972억3596억으로 집계됐으니까 마스크의 비중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고현정, 조인성, 장윤정 등이 소속된 엔터테인먼트 회사 IOK를 인수했다.

“우리 그룹 계열사들의 색깔이 다 다르다. 이는 시너지 효과가 많이 날 수 있음을 뜻한다. 예전부터 홍보적인 측면에서나 중국 관련 사업을 위해서 엔터테인먼트 회사 인수를 생각했다. 미디어·콘텐트 사업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했고, 글로벌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IOK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국민의 행복 추구에 쌍방울그룹이 기여할 것”

IOK는 김진명 작가의 [고구려]를 드라마로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했다.

“2021년 6월 IOK는 김진명 작가의 역사소설 [고구려]와 관련한 판권 계약을 체결하고 드라마 제작을 준비 중이다. 투입 제작비만 약 1000억원에 달할 것이다. IOK는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영화·드라마 제작과 투자 등 콘텐트 사업 부문 강화로 나아갈 것이다. [고구려]는 그 시작이다.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쌍방울그룹은 ‘풍요로운 생활 문화를 창조하는 일류기업을 지향한다’고 정체성을 규정했다. 기업은 현재의 실적과 미래의 꿈을 먹고 자란다.

“기업이란 선(善)한 것이다. 기업이 연속성 있게 이익을 창출해야 사회에 환원하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 쌍방울은 국민기업이다. 쌍방울 대표로서 외국에 나가고 청와대도 가보고, 영광스럽다. 국민의 행복 추구에 우리가 기여하려고 한다.”

양 회장은 “마스크를 판 것보다 기부한 게 더 많은 것 같다”고 웃었다. 쌍방울은 설, 추석,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에 맞춰 정기적으로 기부를 해오고 있다. 이와 별도로 연말에는 유락종합사회복지관, 아름다운가게 등에 전달한다. 쌍방울의 기부 액수만 최근 2년간 연평균 10억원 수준에 달한다. 비비안도 한 부모 가정, 독거노인, 유방암 환우 등을 위해 매년 1억5000만원 상당의 겨울 내의를 분기별로 기부하고 있다. 2021년에는 저소득층 소녀를 위해 4000만원 상당의 생리대를 기부했다.

쌍방울그룹은 외부에 일일이 알리지 않고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양 회장은 “더 많이 못 줘서 한(恨)”이라고 말했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 녹취 정리 손준영 월간중앙 인턴기자

202110호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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