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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와 목민관 대담] 이용섭 광주광역시장과 조환익 전 한국전력 사장의 ‘AI 허브론’ 

이용섭: “인공지능 산업 디딤돌 삼아 글로벌도시 비상”
조환익: “GGM(광주글로벌모터스)의 출범은 AI 자동차 시대 여는 주춧돌”  

■ “4차 산업혁명 물결 타고 ‘정치 1번지’가 ‘경제 1번지’로”
■ “세계양궁대회 추진… 놀이와 스포츠로 MZ세대 부른다”
■ “광주-대구 고속철도는 1800만 명 규모 새 시장 창출해”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오른쪽)과 조환익 전 한국전력 사장이 9월 2일 광주광역시청 앞 광장에서 시정(市政) 관련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세계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창업주 일론 머스크는 지난 8월 19일 열린 테슬라 ‘AI 데이’ 행사에서 슈퍼컴퓨터를 만들어 테슬라에 탑재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의 완전 자율주행을 뒷받침할 인공지능(AI)기술을 전기차인 테슬라에 적용하겠다는 말이다. 그는 “우리의 차량은 어느 정도 지각이 있는(semi-sentient), 바퀴 달린 로봇”이라고 했고, 이는 테슬라가 AI를 활용한 로봇 사업에 뛰어드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이렇듯 자동차와 AI 기술의 결합은 첨단과학이 창출할 미지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는 ‘AI’와 ‘자동차’라는 아이템 조합을 통해 차세대 먹을거리 산업을 개척하는 지자체가 있다. 바로 ‘AI 수도’를 지향하는 광주광역시가 주인공이다. ‘인공지능 중심도시’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광주광역시는 시내 첨단 3지구에 국내 유일의 국가 인공지능 산업융합 집적단지를 조성 중에 있다. 또 사회 대타협을 통한 일명 ‘광주형 일자리’로도 불리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 자동차공장이 9월 들어 신차를 출시하는 등 발진 채비를 완료했다. 이용섭 광주광역 시장은 “우리는 ‘광주형 일자리’와 인공지능 산업을 양 날개 삼아 글로벌 선도도시로 도약 중”이라며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든 와서 성공할 수 있으니 광주 AI 창업 생태계로 오라”고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문자 메시지 앱 서비스업체인 닷지볼의 공동 창업자 데니스 크롤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중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만들면 된다”고 했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실행하라는 말이다. 이용섭 시장도 ‘정치 1번지’ 광주를 ‘경제 1번지’로 거듭나게 하는 상징으로, 전에 없던 AI 산업을 건설하는 중이다. 산업부 차관과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등 공공 영역을 두루 섭렵한 조환익 전 한국전력 사장을 광주 AI 뉴딜 추진 공동위원장으로 영입했다. 9월 2일 광주광역시청 시장 접견실에서 개최한 대담에서 이 시장과 조환익 광주 AI 뉴딜 추진 공동위원장은 AI와 자동차 산업이 빚어낼 경제 도시 광주의 기회요인과 위험 요인을 함께 진단했다.

“상상하던 일이 2년 만에 현실로 나타나다”


광주의 미래는 AI의 미래와 동행하는 듯 보인다. 먼저 광주와 AI의 접점을 찾아간 과정이 궁금하다.

이용섭 광주광역시장_ 광주는 정의로운 도시라는 이유로 차별과 소외를 당했고, 경제적으로도 낙후를 면치 못했다. 시장 취임 후 광주가 앞서가는 도시들을 앞질러 글로벌 선도 도시로 우뚝 서게 하는 방안을 늘 고민했다. 산업사회에서 앞선 도시를 따라잡자면 차선을 바꿔 추월하는 길밖에 없는데 산업사회의 차선이라는 게 거의 1차선 아니었나. 그래서 추월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정보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기존의 가치와 시스템을 완전히 리셋하는 경쟁 구조가 도래하면서 광주는 인공지능이라는 돌파구를 찾게 됐다. 타이밍도 절묘했다. 2018년 11월 정부가 국가균형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광역자치단체에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을 신청토록 했다. 다른 지자체들이 관행에 따라 SOC사업 등 하드웨어에 치중할 때 광주는 유일하게 R&D 사업인 인공지능 집적단지 조성을 신청해 2019년 1월 국가사업으로 확정됐다. 정부가 밀어주고 광주시가 앞장서니 국가 AI 데이터센터 구축, AI 실증사업, 인재 양성과 기업 유치, 인공지능 생태계 조성 등 AI 집적화 정책에 불이 붙었다. 2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 중심도시 광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지만 지금은 현실이 되고 있다.

조환익 위원장_ 2017년 12월 한국전력 사장직을 내려놓고 떠난 내가 광주로 돌아오게 된 건 순전히 AI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이용섭 시장의 의지 때문이었다. 다시 와서 AI 허브 광주를 건설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기에 처음엔 깜짝 놀랐다. 광주가 어떤 곳이었나. 사상·문화·예술을 주된 화제에 올리며 천년 역사, 청년 문화 등 좀 심하게 말하자면 ‘천년 타령’을 하던 곳이다. 그런데 이제 AI, 빅데이터 등 ‘천분의 1초’에 눈길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AI 허브 광주 선언은 역사적으로 일대 사건이다. 광주 나아가 호남인들의 기본적인 사고의 틀을 바꿔놓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한전 사장 재임 시 언론 매체에 출연할 때마다 ‘세상은 분, 초 단위로 휙휙 변해가는데 이렇게 계속 천년 타령을 해서 뭐가 바뀌겠는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디지털의 기본 단위는 비트이고, 비트는 천분의 1초 단위의 정보를 다루는 매개 수단이다. 나는 광주시민들의 시선이 천년에서 천분의 1초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움을 느낀다. AI 사업은 광주에 역사적 분수령이 될 것이다.

각종 인공지능 기술 중 광주가 강점을 갖게 될 분야를 짚는다면?

조 위원장_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잘나가는 기업이 누군가. 애플, 아마존, MS 등이 대표적이지 않나. 이들이 다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통해 고부가가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지배하는 세상이다. 데이터를 유통하고 거기서 초과 이익을 취한다. 한국은 아직 클라우드형 데이터센터를 갖춘 기관이 없다. 광주에 드디어 데이터의 저수지라 할 데이터센터가 들어선다니 고무적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자체적으로 저장하는 정보는 15% 안팎이고 나머지 80% 이상은 다 외국 업체의 데이터 클라우드를 이용한다. 이러다가는 한국이 데이터 식민지로도 전락할 수 있다. 광주가 AI 허브로서 클라우드형 데이터센터를 조성한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시장_ 인공지능 중심도시 광주가 성공하자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클라우드 플랫폼 조성, 인재 공급, 창업 생태계 조성이 그것이다. 광주시는 지난 2년 동안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추는 데 골몰해왔다. 조 위원장 말대로 산업사회 발전의 핵심동력이 ‘전기’였다면 인공지능 시대의 전기는 바로 ‘데이터’다. 먼저 슈퍼컴퓨팅 시스템을 갖춘 AI 데이터센터가 9월 착공을 앞두고 있다. 이 센터에 모이는 각종 데이터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도록 완전히 개방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데이터센터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퓨터 누리온인데, 이론상 성능이 25.7페타플롭스(PFlops)에 이른다. 1페타플롭은 1초당 천조 번 수학 연산능력을 말한다. 광주에 들어서는 슈퍼컴퓨터는 누리온의 세 배가 넘는 88.7페타플롭스 용량을 자랑한다. 이는 한국 최고일 뿐 아니라 세계 10위권에 드는 연산 능력이다. 게다가 광주는 기업들에 바로 혜택이 돌아가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방식의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운용되기에 기업 유치에도 유리하다. 이와 함께 기업, 연구기관, 대학들이 직접 개발한 기술과 상품, 서비스의 성능과 효과를 테스트하는 실증센터도 함께 조성된다.

조 위원장_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AI 클라우드 플랫폼 조성을 공공부문에서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아마 광주가 세계 최초 아닐까 생각한다. 지자체가 이런 사업을 결심한 것이나, 정부가 4000억원이라는 예산을 밀어주는 것이나 모두 이례적이다. 여기에 100개 이상의 기업이 합류해 산업생태계를 꾸린다? 이는 한국의 데이터 자주권을 되찾는 데 중대한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까지가 기초 인프라를 놓는 과정이라면 이제는 이를 실용화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과제를 두고 있다. 기업이 많이 와야 일이 되는 법이다. 이를 고려하면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경제를 잘 아는 이 시장과 시청 공직자들, 그리고 기업들이 합심해 대박 작품을 한번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AI 허브 광주’가 성공하지 못하면 광주의 도약은 장기간 미뤄질 수 있다는 비상한 각오로 이 시장과 산·학·연 모두가 이 사업에 전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데이터 자주권 확보의 이정표”


이 시장_ 공감한다. 인공지능은 인재 경쟁에서 성패가 갈린다. 여기 조환익 위원장 같은 능력 있는 인재를 많이 모시고자 한다. 조 위원장은 코트라(KOTRA) 사장도 하면서 대외 통상 부문의 강점이 있어 광주 AI 산업의 글로벌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이와 함께 지난 1년여 동안 111개 기업·기관과 MOU를 체결했고, 70여 개 기업이 광주에 법인과 연구소를 개설했다. 이들 기업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수도권에 있어도 AI 인재 확보가 어려운데 광주에 내려가면 인재 확보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이 인공지능 대학원을 설립해 석·박사급 인재를 양성하는 한편, 전남대는 인공지능 융합대학, 조선대와 호남대는 인공지능학과를 개설했다. 이들 인력이 사회로 진출하는 데는 4~5년이 걸린다. 당장 현장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공급하고자 실리콘밸리, 판교 테크노밸리 등과 협력해 지난해부터 인재를 직접 양성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운영하는 인공지능사관학교가 그것이다. 6개월 단위로 운용되는 이 과정은 지난해 실무형 인재 155명(1기 교육생)을 배출했고, 현재 2기생 교육이 한창이다. 자기완결적인 선순환 구조를 다져간다고 자신한다.

조 위원장_ 시대적 환경은 광주에 우호적이다. 사실 대한민국 전역에 메타버스, AI 열풍이 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주역이 될 MZ세대(2030세대)는 즐거움, 유희, 창의력을 추구하는 세대다. 앞으로의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전면적으로 바뀔 것이다. 문화의 도시 광주는 도시 특유의 창작력을 발판으로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 시대를 선도적이고 담대하게 주도하리라 예상된다.

이 시장_ 이제 어떠한 산업도, 사업도, 서비스도 AI와 결합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광주는 주력산업인 자동차, 에너지, 헬스케어, 문화콘텐트 분야를 인공지능과 융합해 광주만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AI 중심의 글로벌 선도도시로 비상할 것이다. 광주의 미래 50년, 100년 먹을거리는 AI 산업이 책임진다. 광주가 인공지능을 선택한 것은 감히 ‘신의 한 수’라고 자부한다.

정부는 주요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인공지능 거점을 전국으로 분산하는 구상을 가진 듯하다.

이 시장_ 정부 일각에서 ‘인공지능 전국 거점화’ 구상을 논했던 것은 큰 유감이다. 인프라는 광주 등 호남에 깔고, 연구개발은 충청권, 데이터 활용은 강원권, 민간 주도 글로벌화는 수도권으로 쪼개 AI 산업을 전국으로 분산한다는 것인데, 이는 광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구상이자 국가적으로도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AI 정책을 분산화로 가져가면 결국 인공지능 산업마저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지역균형발전에도 역행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8월 초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만나 이 같은 뜻을 전했고, 임 장관도 광주 인공지능 산업융합집적단지 조성을 적극 뒷받침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내친김에 하나 더 붙이자면 광주시는 AI 관련 기본법 제정을 중앙정부와 국회에 요청해놓은 상태인데, 관련 법령을 정비하는 작업도 서둘러줬으면 한다.

“인공지능 거점 분산은 국가적으로 위험한 발상”


▎지난 2월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투자 협약식에서 발언 중인 이용섭 광주광역시장. / 사진:연합뉴스
9월 들어 광주광역시와 현대차의 합작 법인인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만든 경형 SUV ‘캐스퍼(Casper)’의 외장 디자인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9월 중순에는 첫 출시를 앞두고 있던데.

조 위원장_ 이제 자동차는 수송 수단을 넘어 에너지 저장 수단, 휴식과 유희의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메타버스 세계에서 MZ세대가 현대차를 만나게 되는 시대다. 가상세계에서 자동차를 즐기는 데도 AI 기술이 필요하다. 광주형 일자리는 임시직이 아닌 정규직 상시적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데서도 갖는 의의가 크다. 더구나 근로자의 요구와 고충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수렴하는 등 일자리 창출 과정이 상당히 고귀하고 독특한 모델이다. 노동계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조건을 감수하고, 광주시도 노사 이해관계와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 조정한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다른 지역에서도 벤치마킹할 것이다. GGM의 출범은 인공지능 자동차 시대를 여는 주춧돌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 시장_ 이 분야에서도 광주는 한국 경제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고 확신한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지자체 주도의 사회 대타협 및 노사 상생을 통해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성사시켰고, 완성차를 생산하는 자동차 공장이 23년 만에 국내에서 건설되는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번에 만들어진 신차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면서 경차다. 국내에서 SUV 경차는 GGM이 처음 선보인 셈이다. GGM 공장을 본격 가동하면 직접 일자리 1000개, 간접일자리 1만 개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한다. 임금과 노사갈등으로 국내 투자를 꺼리던 기업들의 발길을 국내로 돌리고 해외에 나간 제조업이 국내로 돌아오는 리쇼어링 효과도 기대된다.

조 위원장_요즘 기후변화 등의 여파로 내연기관보다는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 차량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투자도 그쪽으로 쏠린다. 현재의 가솔린차 중심의 생산라인이 조속히 전기차나 수소차 형태로 발전해가도록 현대차나 광주시에서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기술 변화에 따른 마찰적 고용 조정을 매끄럽게 조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시장_ GGM은 연산 10만 대 규모를 갖췄고, 향후 20만 대까지 증설 가능하다. 지금은 수익성과 대중성을 고려해서 내연 SUV(1000cc급)를 생산하고 있으나 향후 자동차 시장 변화 추이를 보면서 친환경 자동차 생산 공장으로 전환할 것이다. 현재의 생산라인에서 전기차와 수소차를 생산할 수 있는 최첨단 유연생산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광주는 2045년까지 탄소 중립 에너지 자립 도시가 되는 걸 목표로 한다.

“친환경 대중교통 30분 이동 시대 열린다”


▎광주광역시 빛그린산단 소재 광주글로벌모터스 (GGM) 차체 생산라인에 들어선 로봇 설비. GGM은 9월 양산체제에 돌입했다.
도시철도 2호선은 16년 동안 갈등과 대립을 반복하다 시민 공론화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곡절이 많은 도시철도 2호선은 광주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이 시장_ 2019년 9월 착공에 들어간 2호선은 2023년 1단계가 완성될 예정이다. 노선이 순차적으로 완공되면 광주 어느 곳이든 대중교통으로 30분 안에 이동 가능한 친환경 교통수단 시대가 열리고, 시민의 이동권도 한층 강화될 것이다. 찬반이 맞서 지역 내 뜨거운 감자였던 도시철도 2호선 착공 비결도 결국 혁신과 협치에 있었다. 혁신은 늘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기득권자들 때문에 저항과 갈등에 직면한다. 갈등 관리, 저항 관리가 혁신 행정의 기본이다. 시장이 되고 나서 오랜 갈등과 대립으로 장기 표류하거나 정책 결정이 쉽지 않은 핵심 현안을 민관 협치로 해결하는 데 만전을 기했다. 조선 시대 명의 허준은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고 했다. 기와 혈이 통하면 아프지 아니하고, 기와 혈이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뜻이다. 행정도 같은 이치라서 소통하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교훈을 거듭 되새기게 된다.

조 위원장_ 서로 생각이 달라 오랜 기간 갈등을 빚은 현안을 시민사회의 역량으로 잘 해소하고 공사가 순항하고 있는 점을 평가하고 싶다. 순환선으로 건설되는 2호선은 1호선이나 육상 대중교통과의 연계를 통해 도시의 소통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다만, 저심도, 저비용으로 건설되는 터라 혹이 야기될 수도 있는 침수와 안전문제도 잘 챙겨야 할 것이다. 이에 더해 철도에 디자인을 입히는 과정에서 ‘문화 수도’ 광주, AI 허브 광주에 걸맞은 고장의 개성을 충분히 반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주는 신생아 수가 매월 증가세에 있다. 인구 감소 시대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 눈길이 더 간다.

이 시장_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광주는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매달 출생아 수가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우리 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총 4142명이며 전년 동기 대비 10%나 증가했다. 이는 우연이거나 반짝 효과가 아니다.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펼쳐온 정책들이 현장에 녹아들면서 가시적 성과를 낳은 결과다. 만남·결혼·임신·출산·보육, 일·가정 양립까지 6단계 생애 주기별로 맞춤형 정책을 추진한 것이 드디어 효과를 거두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광주시는 아이가 태어나면 출생 축하금 100만원, 출생 후 2년간 매달 20만원씩 지급하고 24시간 긴급아이돌봄센터, 입원아동돌봄서비스, 산후관리 공공서비스, 난임 부부 시술 지원 등 다양한 정책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광주-전남 행정통합은 자립경제의 기반”


▎지난 8월 ‘2025 세계양궁선수권대회 유치위원회 출범식’에서 이용섭 광주광역시장과 도쿄올림픽 3관왕 안산 선수 등이 유치 성공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조 위원장_ 그 같은 파격적인 출산, 육아 지원책에 더해 젊은 부부들이 광주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다면 금상첨화다. 청년 일자리 공급이 관건이다. 광주가 헬스케어, AI 부문의 선도적 스마트 시티로 자리매김한다면 출생률 증가는 물론이고 타 지역에서도 출산과 조리를 위해 찾아오는 광주가 될 것이다.

이 시장_ 우리가 이미 경험하듯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국가균형발전이 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더라. 공공기관 이전은 균형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의 하나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지방 스스로 자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규모와 기반을 갖추어야 하고 정부가 이를 적극 뒷받침하는 쪽으로 말이다. 지자체 간 통합 논의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광주와 전남 또한 행정통합을 통해 자치단체 간 소지역주의에서 벗어나 불필요한 경쟁이나 중복투자를 해소하고 자생력과 자립경제가 가능한 규모의 경제권을 창출할 수 있다. 광주의 AI와 그린 기술이 자립경제가 요구하는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영·호남을 하나로 잇는 광주-대구 달빛고속철도도 숙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광주, 전남(담양), 전북(순창·남원·장수), 경남(함양·거창·합천), 경북(고령), 대구 등 6개 시·도 10개 지자체를 경유하는 철도를 놓는 대역사다. 이들 거점을 연결하면서 동서가 하나로 묶이면 인구 1800만 명의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진다. 지금은 각 지역마다 고유함과 독특함을 살려 지역이 균형 있게 발전해야 국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도시 간 경쟁 시대’이며 다핵 분산 체제의 시대다.

조 위원장_ 요즘은 정보통신이 발달하면서 지방 분권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지자체가 초광역화를 통해 자립경제권을 형성하는 건 바람직한 추세다. 행정통합의 필요성은 산업 구조의 변화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곡물, 과일의 주산지도 이동하고 있고 유통 시스템도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과거와 같은 전통산업에 매달리거나 지역 간 경쟁에 매몰되면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AI 기술을 육성한 광주가 먼저 경제 통합 추진위 같은 기구를 만들어 시범사업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광주-대구 달빛고속철도는 지역 간 소통과 물류를 왕성하게 이끌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마음의 고속도로’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도 해본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즈음 대구의 환자들이 광주의 병원에 와서 치료받고 돌아가서 감사의 편지를 보내는 등 대구와 광주 시민들이 이미 마음속에 우정의 철도를 놓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 선수를 광주광역시 명예홍보대사로 위촉했다. 2025 세계양궁선수권대회 광주 유치 노력의 일환인가?

이 시장_ 우리가 심혈을 기울이는 AI 허브만으로 살기 좋은 도시가 완성되는 건 아니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들이 균형을 이룰 때 시민이 행복한 도시가 된다. 알다시피 광주는 문화·예술의 고장이다. 문화에는 체육도 포함된다. 광주는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 이어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등 두 차례의 국제 스포츠 대회를 저비용, 고효율로 성공적으로 치러낸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지역이다. 최근에는 기존 프로야구단, 프로축구단에 더해 광주를 연고로 하는 여자프로배구단을 창단했다. 바로 페퍼저축은행여자프로배구단이다. ‘광주 AI 페퍼스’라고, AI 허브 광주의 정체성을 구단 명칭에 담아냈다. 안산 선수가 도쿄올림픽에서 올림픽 양궁 역사상 첫 3관왕을 달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시는 1984년 LA올림픽 서향순 선수를 시작으로 장용호·주현정·기보배·최미선 선수, 그리고 안산 선수까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총 6명을 배출했다. 2025 세계양궁선수권대회가 광주에서 열리면 세계 각국에 광주만의 역사, 아름다움과 전통 그리고 그동안 광주가 이뤄낸 많은 성과와 함께 광주만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산 선수는 기보배 선수와 함께 2025 세계양궁선수권대회 광주 유치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떠나는 광주’에서 ‘돌아오는 광주’로, ‘정치 1번지 광주’에서 ‘경제 1번지 광주’로 만드는 게 단체장으로서 제게 주어진 책무라고 여긴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들의 균형 추구”


▎이용섭 광주광역시장과 조환익 전 한전 사장은 광주 AI 산업의 성패가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진로와 직결된다고 강조한다.
이 시장_ 요즘 기업 경영에 필요한 덕목으로 ESG가 부각되고 있다. 친환경(Environment), 사회적 책임경영(Social), 지배구조 개선(Governance)을 뜻하는데, 지자체에도 다른 의미의 ESG가 필요하다. 바로 오락(Entertainment), 스포츠(Sports), 게임(Game)이다. 이와 같이 시민을 즐겁게 해주고 재미를 안겨주는 요소들이 통합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나라가 온통 붉은 악마의 응원으로 하나가 되던 시절을 떠올려보라. 인간은 본능적으로 유희와 재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스포츠도 그 일환이며, 구성원들을 하나로 결속하며 때로는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새 기술이나 오락이 인기를 얻으면 새 산업이 등장하고 새로운 형태의 여가 활동이 가능해진다는 분석도 있다. AI의 최종 목적지는 메타버스(3차원 가상현실)로 귀착될 공산이 크다. 광주가 AI 기술을 활용해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메타버스를 실용화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날을 고대해본다.

대담은 이렇게 매듭을 지었다. 이용섭 시장이 이끄는 광주는 AI 허브에 도시의 미래를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 다음의 미래 기술로 거론되는 양자컴퓨터의 대가 후루사와 아키라 일본 도쿄대 교수는 저서 [빛의 양자컴퓨터(동아시아 발행)]에서 일본인과 미국인의 일하는 방식을 이렇게 비교한 적이 있다.

“일본인은 너무 견실하다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스스로 한계를 정해버리기 일쑤다. 정해진 것은 지키려고 하지만 그로 인해 작은 우물에 갇히기 쉽다. 미국인은 유연성이나 천진난만한 점이 있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일본인이 번트로 확실하게 점수를 따려고 하는 것에 비해, 미국인은 언제나 천진난만하게 풀스윙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로 인해 때때로 엄청난 홈런을 치고는 하는 것이다.” 후루사와 교수의 핵심 메시지는 “번트의 자세에서는 홈런이 결코 나올 수 없다”는 말에 녹아 있다. 광주의 AI 허브 선택도 ‘번트’라기보다는 ‘풀스윙’에 더 가까워 보인다. 광주의 새로운 도전에 국민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 글 박성현 지역발전연구소 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장정필 객원기자

202110호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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