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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국내 최초’ 중입자 치료기 도입하는 연세암병원 

‘최고 위한 최초의 노력’으로 암 완전정복 큰 걸음 내딛다 

통증과 후유증 없고 난치 암 완치율 획기적 향상, 2023년 치료 시작
국내 첫 방사선 치료 도입 100주년 맞아 암 치료 새로운 전기 마련


▎연세암병원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로봇수술기 다빈치를 이용해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 사진:연세암병원
9월 7일 오후.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동의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뒤편에서는 건물 신축공사가 한창이었다. 지상 7층에 지하 5층짜리 규모의 단단한 건물 외벽이 어느 정도 모습을 갖췄다. 연세암병원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중입자 치료센터가 들어설 건물이다. 회전 갠트리 치료실 2곳과 고정 치료실 1곳 등 3개 치료실을 갖추고 올해 건물이 완공될 예정이다. 본격적으로 장비를 설치해 시험 가동을 거치면 2023년부터 정식 운영에 들어간다. 연세암병원 관계자는 “중입자 치료센터가 문을 열면 암 정복의 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입자 치료기는 ‘꿈의 암 치료기’로 불린다. 기존 의료기술로 완치하기 어려운 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한다. 현존하는 암 치료기 중 가장 효과가 좋다. 연세암병원에 따르면 중입자 치료기를 사용할 경우 5년 생존율이 30% 이하인 3대 난치암(폐암·간암·췌장암)의 생존율을 2배 이상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치료가 어려운 재발성 직장암·골육종·척삭종이나 악성뇌종양·두경부암·악성흑색종 등에도 치료 효과가 탁월하다. 혈액암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암의 초기부터 중증, 말기까지 치료가 가능하다. 수술을 하지 않아 흉터가 남지 않고, 치료 과정에서 통증과 부작용, 후유증이 거의 없다.

원리는 현재 국내에 국립암센터와 삼성서울병원이 운영중인 양성자치료기와 비슷하다. 원통형 가속장치(싱크로트론, synchrotron)에서 빛의 속도에 가깝게 중입자를 가속한 뒤 에너지빔을 암세포에 쏘아 파괴하는 원리다. 미리 계산된 목표지점에 도달한 입자가 폭발적인 에너지를 방출하면서(일명 브래그피크, Bragg peak) 암세포를 파괴한다. 중입자는 양성자보다 질량이 12배 정도 무거워 파괴력도 그만큼 크다.

완치율 높고 부작용 없는 ‘꿈의 암 치료기’ 도입


▎올해 말 완공 예정인 연세중입자치료센터는 지상 7층, 지하 5층에 연면적 3만2736㎡ 규모로 지어진다. 갠트리룸 등 중입자 치료실 3개가 들어선다. / 사진:연세암병원
양성자치료기가 기존 엑스레이 방사선 치료보다 3~4배 치료 효과를 갖는다고 볼 때 중입자 치료기는 엑스레이 방사선 치료의 10~12배 치료 효과를 보인다. 연세암병원 관계자는 “예를 들어 양성자치료기가 승용차로 암세포를 들이 받는 거라면, 중입자 치료기는 덤프트럭으로 들이받는 것만큼 충격의 강도가 다르다”고 말했다. 암세포를 타깃으로 에너지가 폭발하기 때문에 주변 조직에 거의 피해를 주지 않는다. 암 종류에 따라 6개월에서 2년에 걸쳐 30~40차례 받아야 하는 방사선치료와 달리 중입자 치료는 한 달 안팎으로 10차례 이내여서 기간과 횟수가 크게 단축된다. 치료시간도 상담과 준비시간을 포함해 고작 30분 이내에 불과하다.

중입자 치료기를 운용하는 나라는 일본과 독일이 자체 기술을 확보해 가장 앞서 있다. 스위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가 각각 센터를 둔 정도다. 중입자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은 세계에서 10여 곳에 불과하다. 다소 방식은 다르지만, 가격이 비싼 데다 유지비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중입자 치료기를 도입하는 건 연세암병원이 처음이다. 연세암병원도 처음에는 비용 부담이 너무 커서 중입자 치료기를 망설였다고 한다. 2013년 입자선 치료기 도입 추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양성자치료기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국내에 있는 양성자치료기를 뒤따라 들여오기보다 국내 최초인 중성자치료기를 도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중입자 치료기 도입 프로젝트에는 건물 신축과 장비 도입에만 3000억원을 들였다.

좋은 장비를 갖춰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중입자 치료기 운용 노하우를 쌓은 해외 기관들과 협력을 위한 네트워크도 갖췄다. 중입자 치료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곳은 일본 양자과학기술연구개발기구(QST)와 일본 방사선의학연구소(NIRS)다. 이들은 1994년에 세계 최초로 중입자 치료를 시작해 치료 환자 수 1만1000명(2019년 4월 기준)이 넘는 풍부한 데이터와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다. 연세암병원은 이들 기관과 업무 협약을 맺고 의료·기술진 교류를 시작했다.

연세중입자치료센터 개원은 국내 난치암환자들에게 단비와 같은 희소식이다. 그동안에는 중입자 치료를 받기 위해 1억~2억원 비용을 들여 외국으로 원정치료를 떠나야 했다. 연세중입자치료센터가 개원하면 이 비용이 크게 낮아질 전망이다. 연세암병원 측은 외국인보다 국내 환자를 우선으로 치료하겠다는 방침이다.

연세중입자치료센터를 개원하는 2022년은 연세의료원으로서도 의미가 각별하다. 연세의료원이 국내 최초로 방사선치료를 시행한 지 100년째 되는 해다.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면서 국내 암 치료의 새 지평을 여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금기창 연세암병원장은 “암 치료에 있어서 4차 의료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연세암병원이 지향하는 목표는 ‘4차 의료기관’이다. 대학병원과 대형 사립병원 등 3차 의료기관에서조차 치료하기 어려워 돌려보내는 중증·고난도 환자를 마다치 않는다. 속된 말로 ‘돈 되는 환자’와 ‘돈 안 되는 환자’로 구별하는 세속적 상업주의를 멀리한다. 의료선교의 일환으로 1885년 미국인 선교 의사 알렌 박사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서양식 근대 병원인 ‘제중원(광혜원)’으로 출발한 세브란스병원의 DNA가 연세암병원에도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연세암병원은 개원 당시부터 다학제 진료와 고난도 수술팀을 운영하며 4차 병원의 역할을 준비해왔다. 중증·고난도 암 환자 치료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다학제 진료는 4개 이상 임상과 교수들이 함께 환자의 병력을 검토하고 진단과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고난도 수술팀은 2개 이상의 수술팀이 결합해 여러 부위로 퍼진 암 치료를 효과적으로 진행한다.

중증·고난도 암 환자 위한 ‘4차 병원’ 자리매김


▎연세암병원 의료진들이 암 환자 치료를 위해 토의하고 있다. 연세암병원은 난치성 암 전문 4차 병원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여러 임상학과 의료진이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 사진:연세암병원
이는 1969년에 연세암센터로 개원한 이래 ‘최고를 위한 최초의 노력’으로 암 치료를 선도해온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문헌 기록상 1922년 세브란스병원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암 질환자를 방사선으로 치료한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국내에서 가장 앞선 치료 기술을 선도해왔다. 연세암병원이 설립된 뒤에도 1972년 국내 최초로 선형가속기를 도입했고, 1981년 혈액암 환자 골수이식을 시행했다. 1985년 뇌종양치료팀을 조직해 악성뇌종양의 항암약물치료 프로토콜을 마련했다. 1994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3D 입체조형 방사선치료를 시행하고, 2019년에는 세계 최초 로봇수술 2만 사례를 돌파했다.

특히 로봇수술은 연세암병원의 최대 강점 분야다. 2005년에 처음으로 로봇수술기 ‘다빈치’를 도입해 전용 수술실 3개를 갖췄다. 지난해에는 4세대 장비를 도입해 암조직과 정상조직을 구분하는 정밀도를 높였다. 연세암병원이 체득한 위암·갑상샘암·두경부암 로봇 수술법은 현재 세계적으로도 표준수술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그동안의 노하우에 중입자 치료가 더해지면 국내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의학·물리·생물 등 연세의료원과 의과대학이 가진 관련 인프라를 활용해 중입자 치료 연구 활동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연세의과대학은 일본 야마가타 의대, 가나가와암센터, 군마대학중입자선의학연구센터 등과 MOU를 체결하고 중입자 치료기와 관련한 다양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나날이 발전하는 의료기술에서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9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도로 추진하고 있는 암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에 참여해 헬스케어 분야에서 10대 암종별 임상데이터를 융합해 암의 진단, 치료 의사결정과 항암 치료제 연구개발을 위한 플랫폼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CONNECT(Clinical Oncology Network for uNifying Electronic mediCal daTa)’로 명명된 암 빅데이터 플랫폼은 연세암병원과 국립암센터를 비롯한 10개 센터가 생산한 표준화된 암 임상데이터를 이용해 암 치료를 위한 정보뿐만 아니라 국내 암 치료기관 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함으로써 의료진의 의사결정과 치료성과에 도움을 줄 전망이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연세암병원은 2020년 5월 세계적 과학학술지 [네이처(Nature)]가 선정한 2020년 암 연구분야 국내 암병원 연구실적 1위에 올랐다.

특히 암 환자와 가족들을 배려한 병원 운영 방식은 연세암병원의 강점 중 하나다. 연세암병원의 슬로건인 ‘3저(低) 3고(高) 병원’에 이런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3저’는 환자들이 겪는 ‘통증, 대기시간, 불안감’을 낮춘다는 의미다. 통증은 암 환자의 투병 의지를 약화하고 일상생활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암의 특성과 치료 과정상 통증이 수반되는 게 불가피하지만, 연세암병원은 ‘암성 통증에 관한 환자 권리장전’을 제정해 전문의료진으로 구성된 통증관리팀과 완화의료센터를 두고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또 환자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환자와 보호자에게 담당 주치의와 각 병동 입원 전담 주치의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의 안정과 결정권을 돕는다.

‘3고’는 ‘최고 수준의 의료진 확충과 정확한 설명, 새로운 환자 경험 선사’를 목표로 삼고 있다. 환자 스스로 자신의 병을 잘 알고 최적의 식단과 생활습관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 치료에서도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병원에 ‘암지식정보센터’를 두고 암 관련 정보와 도움 되는 식단, 운동법 등의 정보를 다양한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또 환자의 숙면권을 보장하기 위해 채혈 등 여러 검사를 이른 시간을 피하고, 주치의 회진시간을 미리 알림으로써 환자 편의를 높였다.

연세암병원에 새겨진 후원자들의 DNA 밑거름

연세암병원의 눈부신 성장에는 기부자들의 조건 없는 후원과 격려가 있었다. 연세암병원의 모(母)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이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의 동업자였던 루이스 헨리 세버런스(Louis Henry Severance, 1838-1913)의 조건 없는 기부를 통해 세워졌듯이, 연세암병원을 설립하는 과정에서도 의료진과 환자, 수많은 독지가의 기부가 밑거름이 됐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새병원 건축기금 460억원이 각계에서 모였다. 환자와 가족들도 기부에 동참해 의미가 더욱 깊다. 후원자 2000여 명 중 600여 명이 연세암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와 보호자다.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빛의 기둥 프로젝트’에만 1400여 명이 참여해 100억원 넘는 후원금을 쾌척했다. 연세대 동문은 물론 암으로 세상을 떠난 환자의 가족 등 다양한 사연이 켜켜이 모여 지금의 연세암병원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여 년 동안 연세암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 환자의 자녀들이 의료진의 정성에 보답하려고 기부금을 내는가 하면, 시한부 판정을 받고 암 치료를 받던 아내의 소원을 이뤄주려고 소아암 환자를 위한 기부금을 낸 부부, 암투병 하던 아들을 떠나보낸 뒤 고인의 시신을 기증하고 기부금을 낸 부모 등이 연세암병원의 오늘을 있게 만든 힘의 원천이다. 금기창 연세암병원장은 “고마운 후원자들께 우리 병원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감사는 후원자들의 뜻이 늘 살아 있고 함께 성장하며 길이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후원자들의 더 큰 자랑이 되도록 병원 구성원 모두가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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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호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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