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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미(美)의 원점, 예(藝)의 기원, 술(術)의 원조를 찾아서’(7)] 인류 최고(最古)의 고전 ‘길가메시 서사시’ (下) 

죽음에 맞선 탐험가, 불사(不死) 꿈꾼 최초의 롤모델 

미지의 공포에 대항해 나홀로 위험한 여행, 스스로 운명 개척
삶의 방향타 제시… 발 묶인 코로나 시대, 이동 통한 자극 절실


▎여행은 인간의 본능이자 숙명이다. 여행을 통해 운명을 개척하고 삶의 본질을 찾는다. 이러한 여행의 본질은 길가메시 서사시가 인류에게 전하는 가장 큰 교훈이다. 호주 칼굴리 해변의 거대한 조형물.
길가메시 대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는 기원전 2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한 인류 최초의 장편 고전문학이다. 폭정을 일삼던 왕 길가메시가 친구 엔키두를 통해 선왕(善王)으로 변해가고, 전대미문의 모험과 도전을 거쳐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길가메시는 무궁무진한 메타포(Metaphor)와 교훈을 품은 21세기 인간 삶의 나침반이될 수 있다. 읽고 또 읽으면서 4000년 전 고대인의 세계관과 지혜를 재음미해본다. [편집자 주]

'롤모델(Role Model) 부재(不在)’

2021년 한국, 아니 한반도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일상은 이렇게 요약된다. 배우고 따르면서, 언젠가 그 이상의 역할과 의미로 남고 싶은 대상이 없다. 어린 시절 미래의 좌표로 삼았던 큰 바위 얼굴들이 사라졌다. 21세기 한국 어린이에게 누가 롤모델인지 물어보자. 십중팔구 ‘백만장자, 연예인, 유튜버’부터 언급할 것이다. 아파트 평수 자랑에 혈안인 벼락부자에다, ‘우린 행복해요’를 연발하는 아이돌, 수십 수백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터넷 스타가 어린이들이 원하는 현재와 미래의 꿈이다.

그 집 부모의 거울이 어린이다. 부모들도 화려하고 풍족하며 박수를 받는 이들을 양육의 롤모델로 삼는다. 필자가 보기에 한여름 밤 폭죽 같은 존재들이다. 불꽃이 사그라들고 나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삶이다. 어린이부터 20대까지는 어울릴 수 있겠지만, 100세 시대까지 버틸지 의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롤모델을 찾아 거기에 맞춰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10~20대 익힌 라이프 스타일이 30대부터 달라질 가능성은 극히 드물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이전에 이미 나타난 상황이지만, 외국 여행에 나서려는 미국 젊은이들의 수가 급감했다고 한다. NGO 등을 통해 외국에 나가 활동하려는 학생들도 대폭 감소했다. 한국의 방콕족이나 일본의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처럼, 혼자 생활하면서 바깥과 차단된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피자도 즐기고 콜로세움을 보러 이탈리아에 가고 싶지만, 돈 들이면서 땀 흘리고 무거운 가방과 함께 갈 정도로 절실하지는 않다. 언젠가, 나중에 갈 곳으로 미뤄둔다. 당장엔 모바일에 펼쳐지는, 실제보다 더 사실적인 콜로세움 영상을 지켜보는 것에 족한다. 다시 말해 책상머리 디지털 체험만으로도 만족한다는 의미다.

무리해서 외국에 나갔다 해도 현장체험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 필자는 주기적으로 기숙사형 호텔을 이용했다. 돈도 싸지만, 음식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략 4명에서 6명이 이용하기 때문에 호텔 안에 오래 머물기 어렵다. 아침 6시쯤 일어나 7시부터 곧바로 현지 여행에 나설 수 있다. 불편해도 기숙사 호텔에 머물 경우 일반 호텔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여행 중인 세계 곳곳의 젊은이와의 만남은 기숙사 호텔의 최대 장점이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그들의 문화나 관심사를 통해 시대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해가 갈수록 희미하게 사라져간다. 대략 10여 년 전부터 감지했지만, 일단 여행 온 청년들이 호텔 밖으로 안 나간다. 돈 들여 외국까지 왔는데도 모바일 하나만 끼고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이 많다. 말을 걸려 해도 이어폰을 낀 채 타인과의 접촉 자체를 거부한다. 호텔 식당에 가도 대화가 거의 없다. 혼자 앉아 양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SNS 대화에 몰두하는 사람들뿐이다. 좋게 말해 SNS로 연결된 하나의 세상이지만, 여행까지 와서 모바일 세계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여행은 SNS용 자랑거리에 불과하다. 콜로세움이 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역사와 비극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얘기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다. 위키피디아에 들어가면 전부 알 수 있기에 굳이 머리에 채우려는 의욕도 없다. 거창하지만, 여행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의 시간인 동시에 일상에 머물면서 나태해지기 쉬운 삶의 자극이자 청량제다. 필자가 목격한 최근 청년세대의 여행 스타일은 정반대로 느껴진다. 내가 아니라 남에게 나를 알려 ‘좋아요’를 많이 받으려는 디지털 경연장으로서의 여행이다. 디지털의 속성이 그러하듯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이 증거이자 가치다. 결국 인간 본능 속에 드리워진 호기심과 여행을 통한 자극조차 디지털 세계관에 굴복한다.

노(老) 철학가를 친일파로 몰고, 곡기를 끊으라고 저주해도 SNS 팔로워 수만 올라간다면 만사형통인 시대다. 그런 상황에서 ‘따르고 배우고 흠모하는’ 롤모델이 통할 리 없다. 부자, 아이돌, 백만 유튜버가 모바일 시대의 진리이자 정의인 듯하다. 그러나 모바일 시대의 세태는 인류의 영원한 가치로 자리 잡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에서 퍼지고 있는 탈(脱) SNS 바람에서 보듯, 근본적으로 인류 DNA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세상을 전부 바꿀 듯하지만, 반대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싫어하고 무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성형으로 창조한 아름다움이 유행을 좇는 사이비에 불과한 것처럼 롤모델도 결국은 인류 DNA에 내재한 심미안을 통해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체험하는 여행, 흠모하는 롤모델 실종 시대


▎16세기부터 본격화한 유럽의 대항해 시대는 여행의 개념을 개인이 아닌 국가적 차원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된다. 개인의 통찰을 얻기 위한 길가메시의 여행은 대항해 시대에 이어 20세기 우주여행으로 지평을 넓혀왔다. / 사진:유민호
인류 DNA에 내재한 본능이자 법칙에 따라 인간은 롤모델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다.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외치면서 살아가는 천재들로 넘치는 듯한 시대지만, 결국은 삶을 지탱할 나침반이 필요하다. 부모일 수도 있고, 예수나 부처가 될 수도 있다. 동굴에서 벗어나 사회적 동물로 환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인생의 방향타는 필요하다. 사라진 듯 보이지만, 역사와 더불어 영원히 이어질 존재가 바로 롤모델이다.

인류 최초의 롤모델은 누구일까? 고대인이 따르고 배우고 흠모한 영웅이자 큰 바위 얼굴, 그리고 미래의 자화상은 누구였을까?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는 4000년 전 탄생한 인류 최초의 서사시 주인공이 초유의 롤모델이라 확신한다. 5500년 전 탄생한 문자를 통해 점토판 위에 기록된 주인공, 길가메시다. 길가메시는 문자로 쓰인 작품이 전무했던 시대에 등장했기에 대하는 사람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입혔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희귀한 기록문화 시대라 해도 한계는 있다. 문학작품 등장인물 전부가 당대 사람들의 롤모델이 되진 않는다. 15세기 등장한 한국 최초의 단편 소설인 금오신화를 보자. 5편으로 나눠진 얘기를 읽으면서 재미있고 신비롭게 느낄 사람은 많은 것이다. 그러나 따르고 배우고 흠모할 롤모델로 삼을만한 인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길가메시는 역사상 실재 인물인 동시에 가공의 세계를 살아간 캐릭터다. 읽는 즉시 빠져들면서 환상적이라 느끼는 동시에, 주인공 길가메시의 삶을 동경하게 된다. 따분하고 뻔한 일상이 아닌, 흥미진진한 변화와 도전이 있기 때문이다. 우연을 넘어선 필연일 듯하지만, 인류 최초의 장편 문학작품은 후대의 인간이 따를 모범적인 롤모델을 창조해낸다.

죽음을 ‘능동적 주관적’으로 받아들인 길가메시


▎뱀의 몸과 여성의 모습을 한 메소포타미아의 샤마란(Shamaran)은 길가메시의 불로초를 먹고 죽음을 초월한 뱀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인들은 푸른 눈의 힘으로 악령을 제압할 수 있다고 믿어 여행을 떠날 때 호신용 장식물을 지참했다. 이슬람권에선 ‘나잘(Nazar)’, 그리스에선 ‘마티(Mati)’라고 부른다. / 사진:유민호
4000년 전 대서사시를 보면서 당대는 물론 후대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 감동하면서 삶의 좌표로 삼았을까? 고고학자나 문화인류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영역이 후대의 나침반으로 자리 잡았을 것으로 본다. 바로 죽음과 여행이다. 길가메시를 읽은 사람이라면 인간의 숙명인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삶의 중요한 일부분으로서의 여행에 대한 의미와 가치도 알게 된다. 길가메시처럼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여행을 삶의 구성요소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길가메시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아예 생각도 못 하고 스쳐 지나갈 문제이지만, 대서사시를 읽은 사람이라면 죽음과 여행을 삶의 키워드로 받아들이게 된다.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 부르던 시절, 미군부대 주변에서 소금이 담긴 유리병을 주운 적이 있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볼 수 있는 10㎝정도 크기에 은색 철제 뚜껑이 있는 유리병이다. 아마 보관 기간이 끝나서 버린 소금이었을 거다. 반세기 전 한국의 미군부대 주변은 버려진 식료품을 주우려는 아이들로 문전성시였다. 물자가 귀할 당시, 미제 소금 유리병은 필자의 보물 1호였다. 앙증맞은 크기의 소금 유리병을 통해 풍요롭고 아름답다는 선진국의 풍경을 가슴에 새겼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론 피부로 느낀 최초의 미국이 바로 소금 유리병이었다. 작은 유리병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대문으로서 반세기 전 국민학교 학생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길가메시도 마찬가지다. 길가메시를 대한 고대인이라면 곧바로 새로운 삶의 대문에 다가설 수 있었을 것이다. 공포이자 영원한 숙제로 남은 죽음, 전혀 다른 세계로 향하는 여행의 의미를 길가메시라는 캐릭터를 통해 재음미, 체험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수년 전 길가메시를 처음 접했을 때 죽음이 핵심 키워드란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미 4000년 전 탄생한 장편 문학의 주된 소재와 주제가 바로 죽음이라니. 현대인치고 죽음을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고령이거나 병자 주변에서 죽음을 목격한 사람 외에는 멀리하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게 죽음이다. 그러나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동일체다. 거울로 서로 비추면 일란성 쌍둥이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죽음을 엄숙한 문제로 다룬다는 것은 삶을 신중하게 대한다는 의미가 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면 삶도 그만큼 열심히 살게 된다. 지구 전체를 준다 해도 자기 목숨과 바꾸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지구 전체 이상의 가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길가메시 이야기에 등장하는 죽음은 아름다운 삶의 거울에 비견될 수 있다.

길가메시는 죽음을 ‘능동적, 주관적’으로 받아들인다. 신의 뜻에 따라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길가메시 당대의 사람들은 ‘수동적, 객관적’ 차원의 죽음을 당연시했다. 곳곳에 죽음이 넘쳤다. 길가메시 탄생 후 2000년이나 지난 로마시대 상황을 보자. 신생아 10명 중 5명은 출생 직후나 1년 이내에 죽었다. 임산부 10명 중 1명도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죽었다. 병, 전쟁, 기아가 만연하면서 10살을 넘기는 사람은 10명 중 7명에 불과했다. 로마 남성의 평균 수명은 24살 정도였다. 예수 어머니 마리아가 13살 정도에 결혼한 것도 당대 기준으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도처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은 운명이나 신의 결정이 근본 원인이라 믿게 된다. 그리스 신화나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저주는 극적인 장면에 등장하는 고정 레퍼토리다. 보통 ‘신이여, 저자와 그의 가족에 천벌을 내리소서’라는 식으로 던져진다. 자신의 증오심을 신에게 의탁해 발산하는 식이다. 저주를 들은 대상과 주변 인물들은 놀라 비명을 지른다. 기독교 유럽과 이슬람 중동·아프리카 문화의 특징 중 하나로, 신을 통한 저주는 진짜로 나타날 수 있다고 그들은 믿는다. 과거만이 아니라 21세기 현재도 그런 믿음이 남아있다.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것보다, 신의 이름을 빌린 저주 한마디가 더 무섭다. 길가메시 스토리에 나오는 친구 엔키두(Enkido)도 여신 이시타(Ishitar: 로마명 비너스)의 저주로 목숨을 잃는다.

불로장생을 꿈꾼 길가메시와 진시황의 차이


▎진시황은 부하들을 동원해 영생을 주는 불로초를 백방으로 찾아 나선다. 불로초를 찾는 데 결국 실패했지만, 그의 무덤에서 발견된 병마용은 영원한 생명과 권력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했는지 보여준다.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죽음을 보면서 불안에 사로잡힌다. 엔키두는 죽기 전 무려 12일간 어둠의 세상에 관한 악몽을 꾼다. 옆에서 간호하던 길가메시는 어둠의 세상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엔키두로부터 듣는다. 길가메시 스토리 탄생 당시에는 지옥이란 개념이 없었다. 불에 타고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지옥의 이미지는 16세기 가톨릭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14세기 출간된 단테의 [신곡(The Divine Comedy)]은 문자로 표현한 지옥 개념의 원조에 해당된다.

엔키두가 묘사한 어둠의 세상은 죽은 사람들로 가득한, 어둡고 꽉 막힌 감옥 같은 곳이다. 불기둥 형벌을 받는 곳은 아니지만, 돌을 먹고 살아야만 하고 먼지로 인해 숨이 꽉 막히는 어두운 세상이다. 길가메시가 죽음을 능동적·주관적으로 대하는 증거는 엔키두가 죽은 뒤 나타난 행적에 있다. 신이 내릴 죽음을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불사신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멀리 떠난다.

구약성경 ‘노아의 홍수’ 원조인 우트나피시팀(Utnapish tim)이 길가메시가 만나려는 사람이다. 신의 도움으로 홍수를 피하고 불사신에 오른 유일한 인간이 우트나피시팀이다. 태양의 신전과 어둠의 터널을 지나 마침내 불사신을 만날 수 있는 죽음의 강에 도달한다. 뱃사공이 시키는 대로 300개 나무에서 1000개 노를 하루 만에 만들어 강을 건넌 뒤 불사신과 만난다. 6박 7일간 안자면 불사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패한다. 이후 길가메시는 불사신이 아닌 불로초를 찾아 다시 여행에 나선다. 바다 깊이 들어가 불로초를 발견해 내지만, 오아시스에서 수영하던 중 잃어버린다. 뱀 허물은 오아시스 근처에 발견된 유일한 흔적이다.

한국인이라면 불로초란 단어에서 진시황부터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진시황과 길가메시의 접근법은 전혀 다르다. 길가메시는 엔키두가 죽은 뒤 일주일 동안 ‘마치 여자처럼 울면서’ 슬퍼했다. 분신처럼 대했던 친구의 죽음을 통해 어두운 저 세상을 알게 된다. 곧이어 죽음에 맞서 불사신과 불로초로 이어지는 ‘혼자 직접 행하는 여행’에 나서게 된다. 진시황은 어떨까? 진시황은 현세에 가진 욕망(欲望)을 보전, 확장하려는 과정에서 불로초에 주목한다. 권력·돈·명예·여자로 이어지는 속세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불로초라 할 수 있다.

길가메시의 불사신과 불로초에 대한 집념은 진시황 스타일의 세속적 가치와 무관하다. 죽음을 이기고 죽은 친구를 다시금 떠올릴 수 있는 부활과 창조, 나아가 목적으로서의 불로초다. 반면 수단으로서의 불로초에 집착한 진시황은 자신이 직접 찾아 나서지 않고 부하에게 명한다. 현실과 괴리된 구중심처(九重深處)에 틀어박힌 동양 군주적 발상이다. 수많은 사람이 불로초를 찾으러 전 세계로 흩어졌지만, 돌아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추측건대 불로초를 갖고 온다 해도 약효가 없으면 처형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예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진짜 불로초를 발견했다면 본인이 그 자리에서 먹었으면 먹었지 진시황에게 바칠 리 만무하다.

여행은 역마살, 동양엔 부정적 세계관 지배


▎길가메시의 여행은 후세 인류에게 모험심을 자극하는 영감의 원천이 됐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주인공 오디세우스도 길가메시처럼 10년에 걸친 여행을 통해 죽음의 난관을 극복한 영웅으로 묘사된다.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의 1891년 작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사이렌들].
길가메시는 그런 중간 다리를 전부 생략하고 본인이 직접 탐사에 나선다. 길가메시는 신 3분의 2, 인간 3분의 1로 이뤄진 신과 인간의 하이브리드다. 신 3분의 2는 어머니이자 여신 ‘닌순(Ninsun)’의 유전자다. 동양적 사고방식이라면 불사신이나 불로초를 찾으러 갈 때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길가메시는 여신이자 어머니인 닌순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 안 한다. 자기 죽음에 관한 한, 어머니이자 여신도 제삼자에 그칠 뿐이다. 여행은 길가메시 스토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인류의 나침반 중 하나다. 인간의 여행욕은 본능에 속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손발이 묶였다. 물리적으로 이동해 얻을 체험과 자극이 절실하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동양에는 여행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여행이라고 하면 어디 볼일 보러 갔다가 곧바로 돌아오는 것에 그쳤다. 혼자가 아닌 집단이 기본이다. 도중에 산적을 만나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식중독도 많았다.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집단 비즈니스 트립인 셈이다. 특별한 목적 없이 다른 곳에 쉬면서 풍물과 음식을 즐기는 식의 세계관이 동양에는 아예 없었다. 국가가 이동을 철저히 통제하기 때문에 허락 없이 외지에 나선다는 발상 자체가 불법시 됐다. 혼자 몰래 어디로 간다 해도 현지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없었다. 낯선 사람이 올 경우 곧바로 신고돼 처형될 뿐이었다. 출생지 주변 수십 킬로미터 반경에서 살다가 죽어야만 하는 것이 19세기 중반까지의 조선이자 동양 대부분의 상황이었다.

관광(観光)은 그런 상황에서 탄생한 서양 신문명의 상징이다. 19세기 중엽 일본에서 탄생한 서양식 개념의 여행을 압축한 말이다. 중국 역경(易経)에 나온 말을 응용한 단어지만, 서양인들처럼 특별한 목적 없이 혼자 여기저기 오가는 여행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혀 다른 환경의 땅에 간 이상, 뭔가 새로운 것을 보고 익힌 뒤 자기는 물론 국가 발전에 도움을 주자는 것이 일본발 관광의 원어적 의미다. 19세기 말 메이지천황(明治天皇)은 일본 방방곡곡을 순시하는 국토순례를 단행한다. 사진사와 수많은 학자가 천황의 국토순례에 동행했다. 도쿠가와(徳川) 막부시대의 법에 따르면 허락 없이 고향을 벗어나는 순간 가족 전원 처형이다. 그런 인습을 직접 타파한 인물이 천황이다. 일본 관광의 기원이자 롤모델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서양 신문명으로서의 관광이 마침내 조선에 나타난다. 육당 최남선은 국토순례 기록을 남긴다. 필자 판단이지만, 육당은 한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 최초로 등장한, 관광 나아가 자주적 여행의 기원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육당 이전의 한국 역사를 보면 서양식 기준의 여행을 즐긴 인물이 아예 없다. 국가의 통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행을 역마살로 보면서 반사회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본 세계관이 배경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예수로 이어지는 여행자의 숙명

길가메시는 고독하고 위험한 ‘단독 여행’의 상징이다. 동양보다 무려 3900년 앞서 나타난 행적이다. 이단이나 반사회적 인물이 아닌, 왕이 직접 모델로 나서 미지의 땅을 개척해 나간다. 수많은 부하의 보호를 받으며 등장하는 행차가 아니다. 혼자서, 그것도 아무도 간 적 없는 위험한 땅으로 돌진한다. 불사신을 만나러 가는 도중 길가메시는 태양의 신전을 지나가게 된다. 일출과 일몰을 주관하던 스콜피온 두 마리는 길가메시가 불사신을 만나러 간다고 하자 크게 웃는다. 가서 만나도 소용없지만, 죽음의 강으로 인해 아예 만나지도 못할 것이라 경고한다. 여행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한다. 길가메시는 스콜피온의 비웃음과 충고를 전부 무시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땅에 대한 도전이자 모험을 결코 마다치 않는다. 4000년 전, 아니 불과 200여 년 전인 19세기까지만 해도 외지로 가는 것은 목숨을 건 행위였다. 당시에는 호텔도 없고, 산 하나를 넘으려 해도 무법천지 도적들이 출현했다. 곳곳에 도사리는 질병과 사고의 위협, 숙식을 생각하면 밖으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길가메시는 이런 기존의 공포와 불안을 타파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는 혼자서 10년간 바다를 떠돌며 여행을 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에서 비롯됐지만, 그리스 이타카(Ithaca) 집에 무사히 돌아온 오디세우스를 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막 재회한 부인 페넬로페에게 다시 여행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기 때문이다. 포세이돈의 저주 탓으로 돌렸지만, 오디세우스 자신도 10년간의 여행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 포세이돈이 아니더라도 오디세우스의 의지로 길고 긴 혼자 여행에 나섰을 것이다. 오디세우스에게 ‘인생은 곧 여행’이다. 오디세우스보다 800년 뒤에 나타난 예수도 마찬가지다. 집도 절도 없이 광야에서 돌베개 하나로 살아간 인물이 예수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태복음 8장 20절). 여행으로 살아간 길가메시의 흔적이 오디세우스와 예수의 삶에 드리워진 듯하다.

길가메시는 한물간 무성영화시대 전설이자 신화로 비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무려 2000년간 애독된 고전이다. 바이블조차 넘어선, 인류 최고, 최대의 롱런 베스트셀러로 꼽을 만하다. 고대인의 판단은 머리가 아닌 ‘오감, 육감, 직감’에 의존했다. 위험하고 예상하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자신의 오감과 육감, 직감에 더 의지했다. 안전과 생존에 관한 개인의 판단능력은 21세기보다 한층 정확하고 단호했다. 길가메시는 그런 환경에서 탄생한 대서사시 문학이다. 죽음과 여행만이 아니라, 수많은 모델과 교훈이 길가메시 스토리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언제나 그렇듯, 불후의 고전을 통할 경우 어제만이 아니라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이해할 수 있다. 인류의 영원한 롤모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유민호 - 유민호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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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호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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