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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리포트] 대화의 문 여는 김정은의 양면 전략 노림수 

한 손에 미사일 쥔 김정은, ‘한반도 운전대’마저 노리나 

신형 미사일 군비증강 박차 가하며 한·미에 회유·압박 양공
정상회담 필요하지만 ‘선남후미(先南後美)’ 전술 경계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월 10일 당 창건 76주년 기념일을 맞아 연설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최근 각종 공식 연설에서 남북관계를 우선 풀고 북·미 대화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으며 수확을 기다린다. 요즘 북한은 수확을 앞둔 농부처럼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평양발 뉴스를 매일 챙겨야 하는 전문가조차 숨이 가쁘다. 평양 주석궁의 대미·대남 관계에 대한 메시지는 패턴이 있어 의도 파악에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신 무기를 과시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무기 전문가들조차 제형이나 위력 등을 북한 발표나 사진만 보고 파악해야 하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수준이다. 그렇다고 예전 기록을 대조해가며 북한이 신무기 개발에 주력하는 팩트체크를 게을리할 수는 없다.

첨단 장거리미사일 개발과 관련해서는 항공우주공학 전문가인 장영근 항공대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최첨단 신종 군비증강을 시사했다. 주권국가의 최우선적 권리인 국가방위력을 끊임없이 강화하겠다며 핵무기 소형화와 전술무기화, 초대형 핵탄두 생산, 극초음속활공비행전투부 개발 도입, 고체엔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등 지난 1월 제8차 당 대회에서 제시한 국방공업발전 전략목표 관철을 주문했을 때만 해도 용어조차 생소해서 선군정치 체제의 협박 정도로 평가했다.

하지만 9월 들어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9월 13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1일과 12일 양일간 사전에 설계된 타원 및 8자형 비행궤적에 따라 신형 순항미사일이 약 7580초(약 126분)간 비행해 약 1500㎞ 계선(경계를 나타내는 선)에 설치된 표적을 명중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그간 개발해온 순항미사일 중에서 가장 먼 거리를 날아간 셈이다. 또 거리상 일본 전역이 이번 순항미사일의 타격권 안이다.

골칫거리 1, 한·미·일 예상 못한 ‘신형 순항미사일’

지난 1월 22일 북한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이틀 만에 서해에서 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했고, 3월 25일에 단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이후 6개월 만의 군사도발이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 보도와 관련해 “한·미 정보당국 간 긴밀한 공조하에 정밀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북한이 순항미사일 발사라고 발표하기 전까지 실체 파악이 되지 않은 셈이다. 군은 “순항미사일의 고도가 워낙 낮아 포착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면서 “갑자기 이동하는 지상 이동식 발사차량(TEL)도 사전에 포착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군이 북한의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를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의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 소식에 미국의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이런 활동(북한의 시험 발사)은 북한이 군사 프로그램을 계속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음을 강조한다”면서 “주변국과 국제사회에 위협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순항미사일도 과거 탄도미사일과 마찬가지로 동북아 주변국에 상당한 위험이 된다는 의미다. 일본 역시 긴장하며 정밀 분석하고 있다. 일본 방위성 간부는 이날 NHK방송에 “현재 상세한 내용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일본 정부 관계자는 “현재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며 “일본 방향으로 비행하지 않았는지를 포함해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1500㎞를 ‘항행(비행)’하는 미사일 발사가 사실이라면 일본을 둘러싼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연 순항미사일은 어떤 무기이기에 일본이 긴장하는 걸까? 순항(cruise)미사일은 정밀 유도장치에 의해 지상의 장애물을 피해서 가며 초저고도로 비행해 레이더에 의한 탐지가 어려우며 명중률도 매우 높다. 발사지점 파악이 어렵고, 수면 위 1∼2㎞ 높이에서 비행하기 때문에 지구 곡률(曲率)에 따른 음영 구역이 생겨 레이더나 군사위성으로는 식별이 거의 불가능하다. 지상 레이더의 경우 지구 곡률상 미사일이 최소한 500m 이상은 상승해야 탐지·추적이 가능하다. 사거리 1500㎞ 장거리 순항미사일은 평균 비행 고도가 100여m에 불과해 지구 곡률을 고려하면 장거리 추적탐지 레이더로는 잡아내기가 어렵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이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미 연합자산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탐지했다”면서도 “초기 분석을 하고 있다”고 답변하는 데 그쳤다. 북한 순항미사일 기술이 진일보한 만큼 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현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대상에는 탄도미사일 관련 사항만 규정돼 있다. 새로운 골칫거리 ‘1’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더니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6일에는 “철도기동미사일 연대는 15일 새벽 중부산악지대로 기동해 800㎞ 계선의 표적지역을 타격할 데 대한 임무를 받고 훈련에 참가했다”며 “철도기동미사일 연대는 철도기동미사일체계 운영규범과 행동 순차에 따라 신속기동 및 전개를 끝내고 화력 임무에 따라 조선 동해상 800㎞ 수역에 설정된 표적을 정확히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미사일 발사의 플랫폼을 다양화하다 보니 열차까지 등장했다. 북한은 그간 궤도형, 차륜형 이동식 발사대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전날 평안남도 양덕 일대에서 쏜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 2발은 열차에서 발사했다. 옛 소련에서 이용한 발사 방식을 모방한 것이다. 탄도미사일은 열차뿐 아니라 선박에 탑재한 수직발사대에서도 발사할 수 있다. 모든 이동 수단이 미사일 발사 장치로 활용된다.

골칫거리 2, ‘철도기동미사일 연대’ 창설


▎북한은 최근 신형 미사일을 잇달아 공개하면서 한·미 당국 압박에 나섰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탄두 중량을 개량한 전술유도탄, 사거리를 늘린 신형 순항미사일, 철로를 따라 이동 발사가 가능한 철도기동미사일, ‘게임 체인저’라고 불리는 극초음속 미사일. / 사진:연합뉴스, 중앙포토
북한 매체는 올해 철도기동미사일 연대를 창설했고, 앞으로 이를 여단급 부대로 확대 개편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북한의 철도기동미사일체계는 옛 소련에서 개발해 운용했던 체계를 차용한 것이다. 북한의 체계는 소련이 철도 기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운용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서 동시다발적 미사일 공격 능력을 확충하겠다는 의미다. 무거운 탄도미사일을 여러 발 운반할 수 있고, 터널 엄폐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 군으로서는 미사일 기지와 이동식 미사일발사대(TEL)에 이어 열차 발사까지 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늘어났다. 다만 철로만 파괴하면 작전이 불가능하고 발사 지점이 사전에 예측되는 등 단점도 많다.

북한의 철도 노후화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효용성은 떨어진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필자는 과거 2000년대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신의주를 차량으로 이동하며 철도를 관찰했다. 평균 주행 속도가 40~50㎞라고 동행했던 안내 참사가 설명했다. 박정천 당비서는 “당 제8차 대회가 제시한 군대 현대화 노선과 방침에 따라 철도기동미사일체계를 실전 도입한 것은 나라의 전쟁 억제력 강화에서 매우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철도기동미사일체계는 전국 각지에서 분산적인 화력 임무 수행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위협 세력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응 타격 수단”이라며 지형과 실정에 맞는 전법을 완성하라고 주문했다. 새로운 골칫거리 ‘2’가 등장했다.

북한이 16일 새로 편성된 ‘철도기동미사일 연대’의 탄도미사일 발사 사실을 발표한 건 우리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맞서 새로운 부대 능력을 과시하려는 맞대응 성격이 담겨 있다. 또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이번 발사를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 년 계획’에 따른 것이라며 향후 군사적 도발 수위를 높일 수 있음을 암시해 미국에 대한 압박 수위도 높였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에 철도를 활용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대북제재 위반 우려에도 추진해온 남북한 철도연결 협력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28일에는 요상한(?) 미사일을 선보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9일 국방과학원이 28일 오전 자강도 용림군 도양리에서 화성-8형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으며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소개했다. 극초음속은 마하 5(시속 약 6125㎞) 이상의 속도로 비행하는 미사일을 뜻한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오징어와 비슷한 모양의 탄두부가 달린 검은색 탄도미사일이 날아오르고 있다. 미국 미들버리국제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 비확산연구센터 소장은 “발사체는 화성-12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화성-12형은 최대 사거리 5000㎞인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다.

새로운 골칫거리 3, ‘극초음속 탄도미사일’ 개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말했다. / 사진:연합뉴스
극초음속 활공체는 지구상 어느 곳이든 1~2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속도를 내면서 불규칙한 비행까지 가능해 탐지와 요격이 쉽지 않다. 기존 미사일방어 체계로는 막기가 불가능하다. 미국·중국·러시아가 이를 ‘게임 체인저’로 간주해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국방부의 설명으로 북한 신무기 체계를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용이하지 않다. 하지만 북한이 지난 1월에 공언한 대로 신무기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상당 부분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결국 새로운 골칫거리 ‘3’이 나타났다.

향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 가능성이 제기된다. 10월 21일로 예정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발사를 빌미로 군사력에서 강 대 강 국면을 연출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9월 한 달 신형 미사일 시험 발사를 4번이나 실시하며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하는 모양새다. 미사일 발사 현장에는 출현하지 않고 한동안 내치에 집중하면서 대외 메시지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에게 맡겼던 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대남·대미 관계 구상을 밝혔다. [노동신문]은 9월의 마지막 날 “김 위원장이 전날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 이틀째 회의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당면 투쟁방향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시정연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우선 남북관계를 풀고 북·미 대화는 뒤로 미루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선남후미(先南後美) 전략으로 남한을 상대해 미국을 움직이겠다는 의도다. 우선 남북관계는 남측에 북한 도발에 대한 위기의식과 피해의식을 버릴 것을 요구하면서 향후 남북관계 전망은 남측 당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군사도발이 남한을 겨냥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적대감을 갖지 말고 동시에 한·미 연합훈련도 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다만 남북관계 회복과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일단 10월 초부터 단절된 남북 통신연락선을 다시 복원하도록 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남측에 불만이 있고, 이후 남북관계를 더 진전시킬지는 남측 태도에 달렸지만 먼저 통 큰 결단을 취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을 향해서는 “더 교활해지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비난했다. 우선 공을 남측으로 넘기고 서울보고 워싱턴에 가서 대북제재 등 북한의 현안을 해결하라고 던져준 모양새다. 지난 2018년 3월 평창올림픽 직후 김정은이 정의용 등 남측 특사단을 접견하고 트럼프와의 정상회담 성사를 중개해줄 것을 넌지시 요청했던 구도를 재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오매불망 평양과 다시 만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9월 21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매년 단골 메뉴인 종전선언으로 긍정적인 사인을 보냈고 10월 1일 73주년 국군의 날에 맞지 않는 종전선언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에 북한은 기선을 제압하며 화답했다. 10월 들어서는 9월에 미사일 발사로 화전 전술을 전개하더니 남북 통신선 복원으로 선남후미(先南後美) 전술을 구체화했다. 10·4 남북정상회담(2007년) 선언 날짜에 맞춰 이른 아침 7시를 기해 55일 만에 통신선을 복원했다. 김여정이 아닌 김정은이 전면에 나서면서 멈춰 선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중대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김정은은 4차 정상회담에 몸이 단 문재인 정부에게 통신선 복원 카드를 던지며 워싱턴을 압박해 대북제재를 해제토록 하라는 과제를 던졌다. 청와대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통신연락선 복원 후 암초들이 많았지만,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통신선 복원을 말한 이상 불가역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한반도 평화로 가는 강을 건너기 위한 흔들리지 않고 튼튼한 징검다리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대북제재 완화 요구에 미국은 쓴소리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허버트 맥매스터(사진)는 자서전 [전장]에서 남북 대화 재개 의지를 보이는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미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김정은은 바이든 행정부의 ‘조건 없는 대화’ 정책을 ‘적대행위를 가리기 위한 허울’로 비난하고 대미 전략적 구상 집행을 위한 전술적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전술적 대책에는 남측을 움직여 워싱턴을 압박하는 구상이 포함된다. 워싱턴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첫해에 어설픈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지지율이 30%대로 하락했다. 북한과 회담을 추진할 여건은 찾아보기 힘들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북·미 대화를 주도했던 미국 CIA ‘코리아미션센터’가 4년 만에 문을 닫았다. ‘차이나미션센터(China Mission Center)’를 설립해 대중국 첩보 업무를 강화하면서 내부 조직을 강화한다는 취지이지만,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 중국, 대만에 우선순위가 밀린 북한 업무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북·미 대화가 트럼프 행정부 시절처럼 톱다운 방식으로 재개되는 것은 어려워졌다.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미·중 갈등 대응에 총력을 기하면서 북핵문제가 외교 현안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을 북한도 인식했다. 워싱턴에 대한 정면 돌파는 도저히 단기간에 결실을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자, ‘꿩 대신 닭’이라는 치대신계(雉代身鷄) 전술로 서울을 흔들기 시작했다.

우선 평양의 전술은 서울에 미끼를 던져 워싱턴을 압박하도록 하는 ‘스리쿠션 전술’이다. 문 대통령이 높은 점수를 받았던 지난 5월 21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선언문은 슬슬 휴지 조각이 되기 시작했다. 우회전 신호를 약속해놓고 청와대는 북측을, 외교부 장관은 베이징을 두둔하고 배려하며 미국의 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키는 데 올인하고 있다. 하지만 평양의 전략은 제재 완화 등 양보를 얻어내기 전까지 대화를 거부하고 대미 압박을 높이려는 것이다. 문 정부의 평양 사모곡 전술은 미국의 협조 없이는 한계가 있다.

정의용 장관이 중국 대변인 역할을 하며 총대를 메고 대북제재 완화를 주장하면서 한·미 관계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그는 9월 22일 뉴욕의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CFR) 초청 대담에서 “우리는 북한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에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며 ‘스냅백(위반 시 제재 복원)’을 전제로 한 대북제재 완화를 주장했다. 또 같은 달 30일 자로 공개된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도 “현 상태가 계속되면 북한의 미사일 능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북한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대화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은 없다’는 입장을 비롯해 ‘조건 없는 대화’, ‘대북제재 유지’라는 큰 원칙을 세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과는 궤가 크게 다르다.

2017~2018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허버트 맥매스터는 10월 4일 “미친 행동의 정의는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최근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하고 남북대화 재개 의지를 보이는 등 한국 정부의 대북 행보에 대한 의견을 묻자 “아인슈타인이 말했다고 알려졌지만 아닐 수도 있는, ‘미친 행동(Insanity)의 정의’를 인용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해 펴낸 회고록 [전장: 자유세계를 수호하기 위한 싸움(Battlegrounds: The Fight to Defend the Free World)]에서도 북한 문제를 다룬 12장의 제목을 ‘미친 행동의 정의’로 붙였다.

통신선 복원했지만 남북 기대하는 것 달라 ‘동상이몽’


▎북한은 대화의 선결조건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 등 ‘중대과제’ 해결을 내걸었다. 한·미 군 장병들이 지하 벙커에서 연합훈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 사진:미 공군
향후 한반도 워치의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청와대의 열망인 화상 정상회담을 거쳐 베이징 동계올림픽 현장에서 대면 정상회담 개최다. 올해가 가기 전에 화상 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어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자화자찬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불가역적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차기에 여당은 물론 야당이 집권하더라도 4·27 합의는 물론 평양공동선언 및 9·19 남북 군사합의가 지속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불가역적인(irreversible)’이란 용어는 북한 비핵화를 상징하는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nuclearization·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상징하는데, 문 대통령이 사용한 문장은 번지수가 다르다. 한마디로 대못을 박겠다는 의미다. 180석을 활용해 국회에서 법제화를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다.

다음은 한·미 동맹의 균열과 한·중 밀착 여부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귀국길에 기내에서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한·미 동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간 종전선언이 체결된 후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나설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김여정은 지난 8월 10일 담화에서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다”라며 사실상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이 사실상 ‘용도 폐기’됐던 종전선언의 개념을 다시 화두로 꺼낸 것은 다분히 북한을 향한 메시지로 평가된다. 남북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을 명분 삼아 국제사회를 움직여보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현실에서는 북한의 한·미 동맹 갈라치기 전술로 구사되고 있다. 북한의 선전매체는 “북남관계 개선은 그 누구의 승인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북제재 해제를 달성하면 남북정상회담 테이블에 착석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이다. 종전선언은 귀납적으로 북한 위협에 대비하는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의 존재 근거를 약화시킨다.

남북이 55일 만에 통신연락선을 복원했지만 향후 남북관계 방향에 대해선 ‘동상이몽’이다. 통신연락선 복원을 계기로 남북대화를 조속히 재개해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를 논의하자고 화답한 남측과 달리, 북측은 여전히 적대정책 철회 등의 ‘중대과제’를 남측이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한동안 끊겼던 남북 채널이 김정은의 의지에 따라 재가동되면서 관계 복원의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지만, 남북이 서로 다른 지점에 좌표를 찍고 있는 만큼 향후 갈 길이 녹록지는 않을 것이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한반도 정세 안정과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토대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 간 통신연락선의 안정적 운영을 통해 조속히 대화를 재개해 남북 합의 이행 등 남북관계 회복 문제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실질적 논의를 시작하고 이를 진전시켜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은 남측을 향해 “통신연락선 재가동의 의미를 깊이 새기고 북남관계를 수습하며 앞으로의 밝은 전도를 열어나가는 데 선결돼야 할 중대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대 과제’란 최근 김정은과 김여정이 반복적으로 강조한 ‘이중 기준’ 철회 등 대북 적대정책 폐기다. 북한은 자신들의 탄도미사일 발사만 도발로 규정하는 것은 ‘이중 기준’으로 부당하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으로 연락선을 일방적으로 끊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른바 ‘중대과제’에 대해 남측이 성의를 보일 것을 압박하면서 여의치 않으면 다시 끊길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사실 분단 70년 동안 통신선이 복원되건 차단되건 큰 차이는 없다. 남한 정부가 남북관계를 발전시켰다는 정치공학적 선전에 활용될 뿐이다. 북한의 군사도발은 통신선 가동과 상관없이 진행돼왔다.)

내년 2월 남북정상회담 관건은 ‘서울-평양 물밑거래’

이런 사항들은 남측이 수용하기 쉽지 않다. 정의용 장관도 지난 1일 국정감사에서 김여정 부부장이 대북 적대정책 철회 등을 요구한 데 대해 일방적 주장으로, 한·미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가을이 깊어가지만, 남북관계가 당장 급물살을 타기는 쉽지 않다. 한동안 조용하던 북한이 다시 남측과의 소통 채널을 연 것은 정세의 국면 전환을 염두에 둔 행보다. 북한이 대북제재 장기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등으로 경제와 민생이 악화한 상황의 반전을 꾀하고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우선 남북관계 개선에 나선 것이다. 침묵을 깨고 공세적으로 나아가는 북한의 만조(滿潮) 전략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지 북한은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군사도발을 병행하는 간조(干潮) 전략으로 후퇴할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도쿄올림픽 불참 제재로 북한이 내년 2월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하기 어렵다는 관측은 중국의 국력을 무시한 판단이다. 국제스포츠 행사의 생리를 모르는 주장이다. 백신을 관할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중국 우한 기원설에 접근조차 못하는 현실은 보조금을 지원하는 중국의 경제력에서 비롯된다. 중국이 대북 페널티를 보상하는데, 흥행몰이에 주력하는 IOC가 북한 참가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남북 정상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국제적인 여건은 이상무다. 단지 서울 평양 간 내부 거래가 관건이 될 것이다.

내년 2월 베이징올림픽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는 서울과 평양 정보당국 간의 물밑 기 싸움에서 결정될 것이며, 북측에서 찬 바람이 불어오면 윤곽이 잡힐 것이다. 결정적인 한 방은 ‘금전적 대가’다. 현금 보상 없는 정상회담은 없다. 1차 6·15 정상회담은 대가로 4억5000만 달러의 현금이 지급돼 박지원 국정원장을 비롯해 정몽헌 전 회장 등 여러 사람이 곤욕을 치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출발부터 대가 없는 정상회담은 없다는 관행이 정립됐다. 2차 10·4 정상회담은 차기 MB정부가 대북 지원 약속을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3차례의 정상회담은 대가 여부가 미지수다. 영원히 내막이 가려질지 비트코인 제공 등 현금 보상 여부가 향후 드러날지는 세월이 답을 줄 것이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무리하게 추진되는 동상이몽의 정상회담은 남북 양측에 심각한 후유증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상회담 스토리는 내년 2월 동계올림픽까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 필자는 계속 지켜보고 있다. 구체적인 물증이 잡히는 세부적인 스토리를 추적할 예정이다.

-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111호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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