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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경제] 세계 경제 먹구름 드리우는 헝다 위기의 진상 

시진핑 눈 밖에 난 쉬자인, ‘삼도홍선(三道紅線)’을 범하다 

헝다, 중국 정부 고강도 부동산 규제로 자금경색 빠져 파산 가능성
시진핑 경쟁 그룹인 공청단·상하이방과의 친분이 위기 자초 시각도


▎중국 헝다 그룹의 파산 위기가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헝다 그룹의 부채는 우리 돈으로 360조원에 달한다. 상하이에 있는 헝다센터. / 사진:연합뉴스
중국 부동산 재벌인 헝다(恒大)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가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헝다 위기는 팬데믹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세계 경제 침체 국면에 설상가상으로 불거진 악재다. 일각에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이어졌던 미국발 리먼브라더스 쇼크 못지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헝다의 채무 총액은 1조9665억 위안, 우리 돈으로 360조원을 넘는 규모다. 역대 최대의 기업 파산 사례로 기록된 미국 통신회사 월드콤의 부채 총액과 비교하면 자릿수가 하나 더 보태진 것이다. 실제로 헝다 위기가 알려진 직후인 9월 하순 세계 각국의 주식시장은 일제히 큰 낙폭을 기록하며 전 세계 투자가를 긴장시켰다.

하지만 리먼 쇼크와는 달리 그 여파가 제한적일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첫째 근거는 헝다의 부채 규모가 방대하긴 하지만, 은행 등 금융기관에 대한 채무 비중이 작아 제어 불가능할 정도의 연쇄 금융위기로 비화할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근거는 중국 중앙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 최악의 사태는 막아줄 것이란 예측이다. 이는 중국 정부의 경제 운용 행태에 대한 오랜 관찰에서 얻게 된 경험적 기대인 동시에 최근 중국이 처한 정치적 상황을 토대로 한 분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헝다 위기의 종착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헝다는 9월 23일부터 10월 11일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채무 이자를 상환하지 못했다. 이자 상환을 못했다고 바로 디폴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 간 돈거래에서도 그렇듯이 일정한 유예 기간을 주기 때문이다. 채무 원리금 상환 기일 도래가 더 큰 문제다. 특히 액수가 큰 원금 만기일이 내년 3월과 4월에 집중돼 있다. 살얼음판이 계속 이어진다는 얘기다.

340조 공룡의 몰락, 세계 경제에 먹구름


▎헝다 그룹의 발원지인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시. 급속한 부동산 개발로 최근 23개월 연속 집값이 상승하며 중국 전역의 부동산 가격 폭등을 주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예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헝다의 채무불이행과 파산이 중국 부동산 거품을 일거에 폭발시키고 제2, 제3의 헝다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부동산 산업이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30%란 점을 고려하면 중국 경제 전반에 몰고 올 여파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고용 감소나 건설업, 자재 생산·유통 등 전후방 산업에 미칠 효과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은 자산 거품이 터져 소비 전체가 위축되는 후폭풍에 비하면 미미한 것일 수 있다. 세계 2위 중국 경제의 침체는 중국만의 일로 끝나지 않을 것이고,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높은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다. 헝다 위기의 향방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리스크 회피 등 대비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헝다는 자산 총액 3680억 달러(2021년 6월 대차대조표)의 초(超)거대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생소한 이름일 수 있다. 헝다의 영어 이름인 에버그란데(Evergrande) 역시 마찬가지다. 부동산 업종이 기본적으로 내수 산업인 까닭에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 중국의 빅테크들에 비하면 해외에서의 지명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 헝다가 급성장한 시기는 2010년대 이후 최근 10여 년 사이의 짧은 기간이란 점도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다만 한국의 축구 팬들은 헝다란 이름을 잘 기억할 것이다. 광저우를 본거지로 하는 프로팀 광저우 헝다(현 광저우 FC)는 아시아 클럽 대항 리그를 제패했던 중국 최강 프로팀인 데다 이장수 감독과 김영권, 조원희 등 한국인 감독·선수들도 헝다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헝다의 창업자 겸 회장인 쉬자인(許家印)은 1958년 중국 허난(河南)성에서 가난한 농민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첫돌을 맞기 전 어머니가 숨지는 바람에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20대 초반이 될 때까지 육체노동과 트랙터 운전, 시멘트 공장 등을 전전하다 1970년대 후반 우한(武漢) 강철학원(현재의 우한 과기대)에 입학했다. 졸업 후 우한철강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개혁개방의 도시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으로 옮겨 무역회사에 다녔다. 시범적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경제특구 선전은 그 시절 중국 전역에서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꿈과 야망을 펼치는 곳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고층 건물이 새로 생겨난다고 해서 ‘선전 속도’란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바꿔 말하면 선전은 중국 부동산 개발업이 시작된 원조 도시나 마찬가지였다. 쉬자인의 ‘선전 드림’도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1996년 선전에서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를 창업했다. 훗날 알리바바를 창업하게 되는 마윈(馬雲)이 영어 통역으로 미국 출장을 갔다가 인터넷을 처음 접한 바로 그해였다.

성장률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2000년대 중국의 고도성장기는 부동산 황금기이기도 했다. 헝다는 지방 정부로부터 농지나 공터의 사용권을 헐값에 사들인 뒤 주택과 아파트를 지어 공급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착실하게 성장을 거듭했다. 2009년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해 7억2200만 달러를 투자받고 중국 부동산 업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헝다 주식의 70% 지분을 소유한 쉬자인은 2017년에는 [포브스]가 매기는 부호 랭킹에서 중국 1위 부자로 공인받았다. 중국 부호 상위권에는 헝다를 비롯한 부동산 재벌들이 여러 명 자리를 차지하고 순위 변동도 해마다 일어난다. 쉬자인은 세계 부호 랭킹에서 53위에 올랐다. 헝다의 성공에 힘입어 사업 다각화에 나선 그는 전기자동차 업체를 인수하고 헬스케어 사업과 영상제작에도 뛰어들었다. 또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함께 양회(兩會)의 한 축인 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으로 선출돼 돈과 명예와 권위를 함께 누렸다.

쉬자인, 창업 10년 만에 중국 1등 부호 올라


▎중국 헝다 그룹 쉬자인(許家印) 회장.
쉬자인의 공격적 경영 스타일은 2010년 인수한 축구팀을 중국 최고의 팀으로 키운 과정에서 잘 드러났다. 그는 인수 직후부터 축구 선진국의 스타 선수와 지도자를 영입했다. 마치 부동산 입찰하듯 경쟁자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몸값을 지불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 결과 헝다는 2011년부터 중국 프로리그에서 7연패를 달성했고 2013년과 2015년에 아시아 클럽 대항전인 챔피언스 리그를 제패했다.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에 비해 월등히 높은 중국 리그의 인기는 헝다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데 기여했고 이는 곧 부동산 분양 사업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축구광으로 유명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헝다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간단한 경력만 나열하면 헝다와 쉬자인이 중국의 고도성장에 힘입어 손쉽게 성공한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국 부동산업체 간의 경쟁을 뚫고 성공하기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업계 선두를 달리는 기업들끼리도 치열한 경쟁과 암투를 펼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2017년 쉬자인이 [포브스] 부호 1위, 헝다가 업계 1위로 올라서기 전까지 부동산 업계의 왕좌는 완다(萬達) 그룹 차지였고, 부호 랭킹 1위는 완다 회장 왕젠린(王健林)의 몫이었다. 당시 [중앙일보] 중국 특파원으로 일했던 필자는 지방 도시로 출장을 갈 때마다 완다의 위력을 실감했다. 주요 도시의 번화가 중심부엔 어김없이 ‘완다 광장’이란 복합 쇼핑몰이 들어서 인파를 불러 모으고 있었다. 완다 역시 다롄(大蓮)을 본거지로 하는 축구단을 운영했다. 한때 안정환이 완다에서 뛰었다. 지금도 중국 프로 축구단의 70%는 부동산 기업 소속이다. 그래서 중국 슈퍼리그는 ‘부동산 리그’란 별명을 갖고 있다.

완다는 부동산 개발 외에 할리우드 영화 업체를 사들이고 중국 전역에서 영화관 체인을 운영했다. 중국 각지에다 테마파크를 지어 운영했다. 2014년 왕젠린의 개인 자산 증가액은 그해 아일랜드의 GDP보다 많았다. 완다의 성공 스토리는 2017년 갑작스레 막을 내린다. 방만한 해외 업체 인수가 중국 당국의 눈 밖에 났다. 외화 유출을 우려한 중국 정부가 완다에 대한 융자를 제한하라는 엄명을 금융기관에 내린 것이다. 왕젠린은 해외에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출국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돈줄이 막힌 완다는 삽시간에 2000억 위안의 부채 더미에 앉았다. 호텔 76채, 테마파크 13곳 등 수년간 문어발처럼 벌여놓은 자산을 팔아 부채를 갚았다. 당시 왕젠린 회장이 동종 업체인 룽촹(融創)의 쑨훙빈 회장을 찾아가 자산의 일부라도 매입해달라고 부탁했다.

고강도 부동산 규제에 기준 미달한 게 자금 경색 원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1년 7월 1일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마오쩌둥과 같은 중산복을 입고 등장했다. 시 주석이 내년에 열리는 당대회에서 3연임을 시도할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 사진:ABC News (Australia) 유튜브 캡처
듣고 있던 쑨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다 사줄 테니 헝다에는 부탁하지 말라.” 지금은 룽촹이 헝다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2016년까지 1위이던 완다는 지금 30위권 밖으로 내려가 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압도적 1위의 초(超)거대 기업에서 재계 순위 30위권 밖의 중견기업으로 내려선 느낌이다. 물론 다른 나라의 부동산 업체에 비하면 여전히 규모가 큰 업체이긴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누리던 영화를 생각하면 왕젠린의 입에서 “아 옛날이여”란 탄식이 절로 나올 만한 상황이다.

실패를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가던 헝다가 어떻게 하다 파산 위기에 빠지게 된 것일까. 도대체 헝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020년 8월 중국 정부는 전국의 부동산 기업들에 엄격한 지시문을 내려보냈다. 이른바 삼도홍선(三道紅線), 즉 세 가지 레드라인(Red Line)을 넘지 말고 정부 방침을 준수하라는 엄명이었다. 내용은 이러하다.

①총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70%를 넘지 말 것. ②자기자본대비 순부채비율(Net DER)은 100% 이하로 할 것. ③단기 차입금 대비 현금 보유액은 1배 이상으로 할 것. 이 세 가지 레드라인을 어기는 업체에 대해서는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하루아침에 초강도 규제가 부동산 업체들에 내려진 것이다. 중국 정부가 규제에 나선 것은 부동산 거품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2014년 무렵부터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결과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거품을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삼도홍선은 규제를 통해 인위적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억제하고 과열 시장을 안정시키려 한 조처였다. 문제는 어지간한 업체는 레드라인을 지키지 못할 만큼 규제 강도가 셌다는 점에 있다. 세 가지 레드라인을 모두 충족시키는 중국의 부동산 업체는 전체의 6.3%에 불과하다는 S&P의 분석이 나올 정도다.

헝다는 오래전부터 과다 채무 상태에서 공격적 경영을 펼쳤다. 정부 규제가 없었을 때는 이런 경영이 통했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헝다는 세 가지 레드라인 가운데 어느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은행의 신규 대출이 차단됐고 급격하게 자금 순환이 악화됐다. 삼도홍선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의 초강력 규제는 단순한 경제정책으로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시진핑 주석의 통치 철학과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집은 살기 위해 사는 것이다. 투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귀에도 익은 말이다. 2019년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이 “아파트는 사는 곳이지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과 비슷한 이 발언은 2017년 시진핑이 한 말이다. 투기 억제를 위해 강력한 규제를 동원하고 돈줄을 막은 것은 중국의 시진핑 정부나 한국의 문재인 정부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중국의 규제가 부동산 업체를 향한 것이란 점에서 수요자를 향한 한국의 규제와는 다른 면이 있다.

투기를 억제하려는 중국 정부의 방침은 시진핑이 제창한 ‘공동부유론’과 연결된다. 부동산 가격의 과도한 상승에 따른 계층 간 자산 격차가 확대되는 것은 공동부유론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부동산 호경기가 내리막길을 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헝다가 삼도홍선의 첫 타깃이 되고 디폴트 위기에 빠졌을까. 그것은 다른 누구의 책임도 아닌 헝다 자신의 책임이다. 헝다의 부채 의존 체질이 가장 큰 원인이란 얘기다. 사실은 헝다 외에도 중국의 부동산 업체 다수가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다. 제2, 제3의 헝다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전국에서 하루에 한 개꼴로 부동산 업체가 쓰러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중 헝다가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끼칠 만큼 규모가 큰 초거대 기업이기 때문에 위기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의 숙적 공청단·상하이방 견제용?

일각에서는 헝다 위기의 배경에 중국 권부의 권력투쟁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헝다가 광둥성을 본거지로 삼고 있고, 현재 서열 4위인 정협 주석 왕양(汪洋)이 광둥성 서기로 있을 때 급성장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 중국의 부동산 개발은 태생적으로 지방 정부와 손을 잡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중국에서는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다. 부동산 개발업체는 지방 정부가 보유하는 땅의 사용권을 구입해 아파트와 건물을 지어 분양해서 차익을 남긴다. 따라서 부동산 기업이 지방 정부의 비호를 받고 그 대신 경제적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공생관계 내지 유착관계가 맺어질 개연성이 충분하다. 헝다 역시 광둥성은 물론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 중국 각지의 지방 정부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성장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광둥성 서기를 지낸 왕양은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함께 공청단 파벌로 분류된다. 정치적으로 시진핑과는 대립 혹은 경쟁하는 파벌이다. 왕양의 후임자였던 후춘화(胡春華) 역시 공청단 출신이다. 중국 경제를 선도하는 광둥이 한때 공청단의 아성으로 불린 이유다. 시진핑은 2017년 자신의 측근 리시(李希)를 광둥 서기로 내려보내 공청단의 맥을 끊었다.

그뿐 아니다. 헝다 그룹이 아직도 지방에 세력이 많이 남아 있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계열의 상하이방(邦)과 깊은 관계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헝다는 광둥에서만 부동산 개발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집권 과정에서 한 때 상하이방의 후원을 받은 적이 있으나 지금은 관계가 좋다고 할 수 없다. 헝다 위기를 중국의 계파 간 권력투쟁과 연관 짓는 해석이 나오는 건 이런 정치적 맥락에서다. 하지만 이런 얽히고설킨 정치 인맥만으로 헝다 위기의 전모를 설명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물론 시진핑과 헝다 회장 쉬자인의 관계가 각별했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혹은 위기 발생 후에도 원만한 수습을 위해 중국 정부가 적극 나서 도움을 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부터 공청단 또는 상하이방과 관계가 깊은 쉬자인을 치기 위해 위기를 만들어냈다는 식의 해석은 근거가 희박한 음모론에 가깝다.

현재의 중국 정치 상황을 보면 그런 해석에 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진핑의 입장에서 볼 때 헝다 위기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권위를 해치는 일이 될 수 있다. 시진핑은 내년 가을에 열릴 20차 공산당 대회에서 3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이 유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해치는 악재가 불거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삼도홍선을 범한 헝다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구제하지는 않겠지만, 헝다 위기가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튀고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중국 정부가 적절한 수준으로 개입해 헝다 위기를 수습하고 연착륙을 유도할 것이란 예상을 조심스럽게 하게 되는 이유다.

- 예영준 중앙일보 논설위원(전 베이징 총국장) yyjune@joongang.co.kr

202111호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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