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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 산책] 우리가 몰랐던 프랑스에 관한 100가지 이야기 

에펠탑 뒤에 있는 진짜 프랑스의 모든 것 

불어학자 이상빈, 40여 년에 걸쳐 탐구한 프랑스 문화 총망라
한국에 낯선 프랑스 지방 문화와 축제에 관한 후속편도 준비


한문학용어사전은 ‘패러디’에 대해 설명하면서 ‘액자 기울여서 걸기’를 예로 든다. 기왕에 있던 액자를 비스듬히 기울여 거는 일탈 행위를 통해 이전 액자의 의미를 살리면서,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것이 ‘패러디’라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생활이 대체로 이 패러디 설명에 동원된 액자와 같은 기왕의 언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어쩌면 우리가 내놓는 대부분의 언어 표현은 패러디의 일종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아가서 우리의 삶 전반 또한 패러디의 반복이라고 강변해도 아주 억지는 아닐 것도 같다.

[나의 프랑스]라는 책 제목을 듣고 우선 떠올린 것은 이 독특한 표제가 전제하고 있는 패러디의 액자라고 할 기왕의 유명 저작들이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히틀러의 [나의 투쟁], 그리고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등이 그것이다. 저자 스스로 책의 표제가 이들을 패러디한 것이라 한 적이 없고, 또 700쪽이 훌쩍 넘는 이 책 어느 곳에도 이와 관련한 언급이 없으니 그저 나만의 생각일 뿐이겠지만 ‘나의’로 시작하는 도발적인 제목은 이들 여러 유명 전작과 의도를 공유하는 바가 없지 않으리라는 심증을 놓지 못하게 한다.

‘나의 OOO’이라는 표제는 대개 ‘나’의 성취와 그것의 독보적 개성을 강조하고 싶은 자부심, 그리고 대상과의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 보이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나의 그 각별한 애정 상대 ‘OOO’에 대한 설명이 객관적 밋밋함을 넘어 개성 넘치는 ‘주관적 보편’의 경지를 담보하고 있음을 강변하는 것이기도 하리라. “한 평범한 개인이 보고 듣고 느끼며 체험한 프랑스라는 대상에 대한 성실한 기록”(5쪽)을 자임하는 [나의 프랑스] 역시 이런 ‘나의 OOO’ 전작들의 의지와 강변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스스로 이 “오만하고도 시건방진 제목”(7쪽)의 선택을 “자존심의 발로”라고 하면서 그 분량과 깊이에서 “당분간 한국에서 출간되기 어려울 것”(6쪽)이라고 강변한다.

[나의 프랑스]는 프랑스와 관련한 여러 주제에 대한 저자의 다양한 경험과 분석과 주장을 담았다. ‘100개의 테마로 이야기하는 프랑스 문화’라는 부제에서 혹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프랑스판쯤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박제된 문화유산을 해설하는 박람형 교양서는 아니다. 저자가 열정을 다해 온몸으로 체득한 정보를 전하고, 그 의미를 분석하고 주장하는 뜨거운 책이다. 책이 담고 있는 100가지 주제는 각각 2~12개로 배분해 14가지 소주제로 재배열되어 있다.

프랑스인보다 프랑스를 더 잘 알게 된 저자의 집념


14가지 소주제 분류의 기준은 짐작하기 쉽지 않다. 문화일반과 사회, 역사라는 거대 범주와 문학, 미술, 무용, 영화와 같은 예술 장르, 그리고 장소, 미디어, 식도락, 축제 등 독자 영역이 그 주제별 상관성을 넘어 어색하게 병렬되어 있는 모습이다. 더구나 일부 주제는 그 상위 소주제와의 연관성이 어색해 보이거나, 아예 다른 소주제에 더 어울려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이 미리 완성본을 그려놓은 기획의 산물이기보다 개별 주제에 대한 글을 쓴 후 이를 재분류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소주제별 편수와 분량이 들쭉날쭉하고, 비교문화적 해설과 제언의 깊이와 수위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런 말끔하지 못한 어색함이 오히려 각 주제에 대한 저자의 열정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렇게 전방위에 걸친 프랑스에 대한 이해를 열정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저자의 내공은 어디서 비롯하는 걸까. 저자는 4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프랑스를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718쪽) 프랑스와 인연의 시작은 10대로 거슬러가지만, 본격적으로 프랑스와 관계를 맺은 것은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이후다. 학부와 대학원 석사 과정, 그리고 유학생활을 거쳤고 귀국 이후에도 연구와 강의, 그리고 출판을 통해 프랑스와 인연을 이어왔다. 특히 “프랑스 문화를 삶과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총체”(721쪽)로 파악하려 애쓰며 폭넓은 공부를 이어온 유학 시절이 그를 전방위로 지적 호기심을 뻗치는 프랑스 마니아로 만든 것 같다. 사실 이 책의 곳곳에서 저자의 프랑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유학 시절의 생생한 체험에 근거를 둔 것임을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누구나 짐작하고 또 많은 사람이 경험하듯이 유학은 여간 힘든 과정이 아니다. 학업과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학생들은 대개 목표를 최소화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 생활의 범위와 규모를 최소한으로 줄이며 버틴다. 귀국 후의 삶을 생각하며 최대한 효율적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학생들은 대체로 ‘전공 바보’의 틀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러나 [나의 프랑스]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유학 시절 삶은 그런 ‘전공 바보’의 길과 사뭇 다르다. “특파원보다 더 신문을 많이 읽고”(343쪽), “14종 이상의 정기간행물을 구독”(198쪽)하고, “프랑스 친구보다 프랑스 사회를 더 많이 알게 된”(343쪽) 삶을 살았다는 것인데, 그런 방만한(?) 생활을 하면서 박사 학위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이 신통하다.

하지만 이러한 전방위 호기심이 만들어준 이 책의 성과에 저자는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스스로 “야심만만한 제목과 달리 경험치 일부만을 전달”(8쪽)하고 있을 따름이고 욕심은 부분적으로만 달성하였다고 고백한다. 그리하여 이 책에 이어 “프랑스 지방 문화를 다룬 책을 출간할 것이고, 프랑스 축제 전체를 정리한 책을 저술할 것이며, 프랑스라는 단위를 채우고 있는 다양한 주제를 다룬 책을 번역할 것”(722쪽)이라고 밝힌다. 그가 경험했지만 전달하지 못해 아쉬운 것이 프랑스의 지방 문화와 축제에 대한 정리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나의 프랑스]에서 전달하지 않은 일부에 대한 작은 아쉬움을 전하면 우선 프랑스의 정치문화를 주제로 한 서술이 빠져 있는 점(저자 스스로 “정치는 증오”(515쪽)한다고 했지만), 그리고 유럽인의 일상의 중요 주제라고 할 스포츠, 특히 축구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나의 프랑스]후속 작업을 이어가는 저자의 열정과 용기에 응원을 보낸다.

- 이영석 경상국립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202111호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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