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골끌이 작전(Operation Keelhaul)’은 얄타 회담에 기괴한 빛을 던진다. 얄타 회담이 끝나고 회담의 주역들이 떠난 뒤 한 달도 넘은 때에 비밀리에 맺어진 ‘추가조항(codicil)’이, 언뜻 보면 별문제가 없을 듯한 조항이, 실제로는 수백만의 무고한 목숨을 짓밟았다. 그런 참극에서 이익을 본 것은 온전히 공산주의 러시아와 사악한 독재자 스탈린이었다. 자유 세계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많이 잃었을 따름이다.
이런 사태를 불러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서 손에 피를 흥건히 묻힌 사람들이-유럽 연합군 최고사령관 아이젠하워 대장, 영국 외상 이든 및 지중해 사령부 주재 영국 공사 맥밀런이 - 몇 해 뒤엔 자유 세계의 중심인 미국과 영국을 이끈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용골끌이 작전’이 얄타 회담에 던지는 빛은 더욱 기괴해진다. (아이젠하워는 1953년부터 1961년까지 대통령을 지냈고, 이든은 1955년부터 1957년까지 수상을 지냈으며, 맥밀런은 이든으로부터 수상직을 물려받아 1963년까지 재임했다.)
이런 사정은 공산주의의 붉은 기운이 러시아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를 덮고 미국의 심장부까지 뻗쳤음을, 그래서 얄타 회담이 갑자기 나온 사건이 아니라 오래 이어진 거대한 흐름이 만들어낸 소용돌이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실제로 얄타 회담은 테헤란 회담을 이어받았고 포츠담 회담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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