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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오세훈-시민단체 ‘적폐 청산’ 갈등 점입가경 

연말 서울시 ‘준예산 편성 체제’ 우려 커져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오세훈 시장 “10년간 흘러간 돈만 1조원, 시민단체 배 채워”
시민단체 “전임 박원순 시장 성과 지우려는 악의적 프레임”


▎오세훈 서울시장이 9월 16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바로 세우기 가로막는 대못’ 입장문을 발표한 뒤 민간위탁·보조금 지원현황 자료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적폐 청산 서울시 버전’이라고 할만한 ‘서울시 바로 세우기’ 카드를 꺼내들었다. 오 시장은 9월 13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작심한 듯 시민사회단체를 향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서울시의 곳간은 시민단체 전용 ATM기로 전락해갔다…일부 시민단체를 위한 중간지원조직이라는 ‘중개소’를 만들어냈다. 이것이야말로 시민단체의 피라미드, 시민단체형 다단계라고 할 만한 것 아닌가?”(9월 13일)

“전임 시장이 박아놓은 ‘대못’ 때문에 당장 시정 조치가 쉽지 않다…행정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각종 비정상 규정이 ‘대못’처럼 박혀 있다.”(9월 16일).

오 시장은 ‘비정상화의 정상화’에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민간위탁·보조금 사업들이 꼭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한 사업인지 점검하고, 지원받는 단체들이 시민을 위해 제대로 사용하는지 옥석을 가려내 예산 누수를 막겠다는 것이다. 오 시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시민단체 등에 지원된 예산 규모는 1조원에 육박한다. 서울시가 민간위탁·보조금 명목으로 지난 10년간 지원한 총액이다.

‘박원순 서울시’ 10년간 9000여 단체에 4305억 보조


▎11월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시민참여와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해 행동하는 전국 시민단체 지역·시민단체들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민단체들에 대한 폄훼’와 ‘근거 없는 시민단체 예산 삭감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오 시장의 주장이 과장된 것은 아니다. 월간중앙이 서울시에서 입수한 복수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2년부터 2021년까지 민간보조 12개 분야(기후환경·노동·도시공원·도시재생·마을·사회적경제·에너지·주거·주민자치·청년·협치·기타)에서 총 9016개 단체에 약 4305억원이, 같은 기간 민간위탁은 9개 분야(기후환경·노동·도시재생·마을·사회적경제·주민자치·청년·협치·기타)에서 총 911개 단체에 약 5917억원이 지원됐다. 민간위탁과 보조금을 합하면 약 1조222억원에 달한다. 민간보조금은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이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사업에 대해 개인 또는 단체 등에 지원하는 재정상의 원조다. 민간위탁금은 지자체가 법령 및 조례에 따라 민간인에게 위탁 관리시키는 용역에 대한 일종의 대가다.

오 시장은 시민단체에 지원되는 금액이 1조원이나 되는 것은 과도하다며 내년 예산에서 민간으로 가는 재정 규모를 확 줄였다. 11월 1일 서울시는 민간위탁·보조금 사업에 대한 예산 1788억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832억원(47%)을 삭감하는 내년도 서울시 예산안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 사업을 직영화하거나 수탁기관을 바꿔 거품을 빼겠다는 거다. 오 시장은 “흐트러진 재정을 좀 더 정교하게 ‘시민 삶의 질’ 위주로 바로잡는 것과 서울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밝혔다.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김소양 국민의힘 시의원은 “민간위탁·보조금 사업 예산을 삭감한 것도 있지만, 대체로 이번 예산 기조가 긴축”이라며 “이곳저곳에서 예산을 아껴 소상공인처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을 지원하는데 더 많은 예산을 집중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오 시장의 재정 지원 축소로 박원순 전 시장의 대표 사업 중 하나로 꼽혔던 마을공동체 사업은 당장 대수술이 불가피해졌다. 2022년 서울시 예산안에 따르면 마을공동체 사업 관련 예산 규모는 민간위탁 분야에서 66.8%, 민간보조 분야에서 100% 삭감한 상태다. 앞서 10월 14일 서울시는 마을공동체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공정과 특혜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서울시 조사 결과 시민단체 ‘마을’이 지난 10년간 서울시에서 약 600억원의 사업을 독점적으로 위탁받았다는 것이다. 이 기간 마을공동체 사업에 종사하던 일부 민간인은 사업을 관리·감독하는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돼 사업의 범위와 규모를 늘리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게 서울시의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월간중앙은 서울시 감사위원회가 작성한 ‘마을공동체 사업 운영실태 점검 결과 보고서’를 입수했다. 지난 8월 작성돼 9월 ‘서울시 바로 세우기’ 선포 등 후속 조치의 근거가 된 자료다. 감사위가 7월 5일부터 같은 달 20일까지 12일간 ▷마을활력소 조성·운영 ▷마을생태계 조성사업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서마종)를 점검한 결과를 담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민 커뮤니티 공간 조성을 목적으로 2015년부터 서울 전역에 61개가 조성된 ‘마을활력소’에 총 636억원(시비 90%)이 투입됐다. ‘마을생태계’ 사업에는 최근 4년간(2018년부터 2021년까지) 320억원(연평균 80억원)을, ‘서마종’에는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총 407억원(연평균 53억원)을 지원했다.

감사위는 이들 세 분야의 운영실태를 점검한 결과 다수의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보고서에 기술했다. 이미 조성된 마을활력소에 대한 성과분석, 추가수요 진단 등을 검토하지 않고 인접 지역에 추가로 같은 성격의 마을활력소를 조성해 예산을 낭비했다는 것. 일례로 한 자치구는 이미 운영 중인 마을활력소 이용률이 높지 않은데도 인접지에 15억원을 투입해 마을활력소를 하나 더 지었다. 이 외에도 21개 마을활력소 중 2곳은 설립 취지가 무색하게 ‘관리 곤란’ 등을 이유로 지역주민에게 대관(공간 대여)하지 않았고, 4곳은 방문자 수 데이터조차 없었다(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기준).

마을생태계 예산 절반 이상이 인건비와 운영비로 사용됐다. 2020년 총 집행액 83억원 중 중간지원조직 인건비·운영비가 44억원(53%)을 차지했다. 사업비는 39억원(47%)에 그쳤다. 사업비 중에서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주민공모사업 예산 비중은 고작 16억원(전체 예산 대비 19%)에 불과했다.

지원받은 사업 중 태양광 등 부실한 사례 드러나


▎서울시 감사위원회가 작성한 ‘마을공동체 사업 운영실태 점검 결과 보고서’. 감사위는 ‘마을공동체 사업’을 점검한 결과 다수의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사진:최현목
주민공모사업의 질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8개 자치구에서 시행한 ‘2020년 시비 지원 공모사업’ 280건을 확인한 결과, 일회성 친목·동호회 활동을 지원한 사례가 확인됐다. 일례로 한 자치구는 서울시에서 사업비 197만원을 지원받아 20명 남짓한 친목 당구모임을 대상으로 당구대회를 한 차례 연 뒤 사업을 끝냈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립한 중간지원조직 서마종 역시 인건비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마종 인건비 비중은 2016년 40%에서 2021년 63%로 늘었다.

지난 10년간 서마종 운영 주체였던 사단법인 ‘마을’은 “서마종의 업무는 마을공동체 활성화가 목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대부분”이라며 “서울시 사회복지시설종사자 기준 처우실태조사와 연구에 따르면 보조금 지원액 중 인건비 비중이 83.2% 달하는 경우에 견줘봐도 서마종의 인건비 비율은 낮은 수준이다. 직무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건비 비중이 높고 계약직 인사관리가 부적정하다는 지적은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마을공동체 사업 외에도 태양광 보급, 사회주택, 청년활력 공간 등 박 전 시장의 치적으로 꼽히는 사업들도 도마에 올랐다. 감사위가 11월 중순 정식 감사를 벌인 뒤 내놓은 1차 결과 보고서(A4 용지 21쪽 분량)에는 서울시 민관 협치기구에 참여한 민간 위원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자신이 임원으로 있는 협동조합의 사업 준비에 활용했다는 의혹도 들어 있다. 태양광 보급사업에 대해 서울시는 “시작부터 사후관리까지 진행 과정, 공정성, 효율성, 지속가능성 등 측면에서 총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주택도시공사(SH) 임대아파트에 베란다형 태양광 설비를 주민 동의 없이 설치한 정황도 포착했다고 밝혔다.

공공지원형 민간임대주택인 사회주택의 성과도 부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주택은 청년 위주 1인 가구의 주거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시작한 셰어하우스 형태의 민관협력형 임대주택이다. 오래된 고시원과 같은 소형 주택을 리모델링해 저렴하게 임대하는 방식이다. 2015년부터 7년간 예산 2103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현재 입주할 수 있거나 올해 말까지 입주가 확정된 물량은 목표 물량(올해 말 기준 7000호)의 24.5%에 불과한 1712호뿐이다. 한 호당 세금 1억2000여만원이 들어간 셈이다. 박 전 시장 시절 서울시 청년정책의 대표 사업인 청년활력공간은 민간위탁기관 선정 과정에서 특정 인사가 반복해 참여하는 등 절차 규정 위반이 의심되는 사례가 다수 포착되기도 했다. 또 최근 6년간 서울시 청년부서에 채용된 임기제 공무원 절반이 특정 단체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위는 이번 감사를 통해 위법 사항이 확인된 만큼 업체 고발, 과태료 부과 요구 등 강력한 후속 조치를 예고했다.

이를 두고 일부 민간위탁 사업에서 부실한 사례가 발견되긴 했지만 시민단체에 위탁한 사업 모두가 문제가 드러난 것은 아니라는 게 시민단체의 입장이다. 여기에 서울시의회 다수당인 민주당도 가세하면서 오 시장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송명화 시의회 민주당 대변인은 “명확한 근거나 공정한 조사·검토 없이 무분별한 비판으로 전임 시장 성과 지우기와 프레임 씌우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이 쇄도한다”며 “시의회 민주당은 시대를 퇴행하는 관치행정, 시민과 언론을 향한 권위주의 망령의 칼춤을 당장 멈출 것을 서울시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서울시 구청장 24명(서초구 제외)도 11월 4일 기자회견을 열어 내년도 서울시 예산안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성 서울시구청장협의회 회장(구로구청장)은 “서울시가 내년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민관 협치 운영 예산을 전방위로 삭감하고 자치구 예산 분담 비율을 일방적으로 상향한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을 가로막는 심각한 행위”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장악한 시의회도 “악의적 프레임” 반발


▎11월 8일 오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에서 서울시도시재생지원센터협의회와 서울 도시재생기업 대표단 주최로 ‘서울시 도시재생사업 정상화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민단체들은 11월 2일 1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퇴행적인 오세훈 서울시정 정상화를 위한 시민행동(시민행동)’을 조직하고 릴레이 기자회견을 여는가 하면, 11월 4일에는 전국 1170개 시민·지역사회단체가 오 시장의 발언을 ‘시민단체 폄훼’로 규정하고 집회와 시장 면담 요구 등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비롯한 ‘시민 참여와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해 행동하는 전국 시민·지역사회단체’는 11월 4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 시장은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폄훼와 근거 없는 예산삭감을 중단하고, 언론의 자유로운 시정 보도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은 월간중앙과의 전화통화에서 “오 시장이 1조원 발언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공개하라는 게 핵심”이라며 “만약 서울시에서 1조원의 근거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대응 수위를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시민사회 진영은 오 시장의 1조원 발언이 다분히 악의적인 왜곡이라고 보고 있다. 이원재 시민행동 준비위원회 공동운영위원장은 “오 시장이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프레임을 던진 것”이라며 “1조원으로 산출한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마치 시민단체의 비리·부패 문제가 드러난 것처럼 쟁점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내년 예산 심의할 본회의 법정시한 넘길 가능성


▎오세훈 서울시장이 11월 1일 오후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03회 정례회 1차 본회의 개회식에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참석하고 있다. 오 시장은 민간위탁·보조금 삭감과 관련해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 위원장은 10년 동안 민간위탁·보조금으로 나간 예산은 1조원이 아닌 17조 350억원이라고 주장한다. 즉 ‘전임시장 지우기’ 차원에서 박 전 시장의 핵심사업과 관련한 민간위탁·보조금만 한정해 침소봉대했다는 비판이다. 많은 민간보조 분야 중 12개로만 특정해 민간보조금 규모를 산출한 점에서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장은 과정의 선후(先後)도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오 시장이 서울시 바로 세우기를 발표하기 전 기존 사업에 대한 감사부터 먼저 충분히 진행한 후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토론하는 순으로 진행했어야 옳다.”

이 위원장은 시민사회 진영이 뭉쳐 오 시장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11월 30일에 발족하는 시민행동에는 2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원장은 “오 시장의 ‘반시민주의’ 정책이 얼마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정책적 흐름을 퇴행시키고 있는지 알릴 것”이라며 “예산을 일방적으로 절반 이상 삭감해 일자리를 없애고 결과적으로 시민 삶의 질을 퇴행시킨 것에 대해 공익감사 청구, 소송 등의 방법으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갈등에 서울시의 내년도 예산안 심의는 파행으로 치달을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의회에서 민주당이 가진 의석은 110석 중 99석이다. 예산안 통과 여부가 전적으로 민주당에 달려 있다. 민주당은 예산 심의권을 쥐고 오 시장을 압박할 계획이다. 11월 22일부터 상임위별로 본격적인 예산안 심의에 들어간다. 정해진 일정대로라면 각 상임위를 통과한 예산안은 12월 16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을 거친다. 하지만 서울시가 편성한 예산안대로 시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소속 시 의원은 “현재 시의회 민주당 측 여론을 이끄는 사람들은 모두 중진이다. 이들은 오 시장이 과거 무상급식으로 시의회와 갈등을 벌였을 당시 초선으로 오 시장과 대립각을 세웠던 사람들이다. 결코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예산안 처리가 제때 이뤄지지 않고 해를 넘기면 ‘준예산’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준예산 체제가 되면 그해 예산을 기준으로 이듬해 예산을 편성하기 때문에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올해 4월 보궐선거를 통해 취임한 오 시장으로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서 준예산 체제는 결코 달갑지 않은 악재다. 올해 마지막 서울시의회 본회의는 12월 22일이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202112호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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