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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떼’가 되면 약탈자 되는 식용 곤충 풀무치 

 

수백 마리 이상 집단 되면 공격성 커지고 검게 바뀌어
하루 100㎞ 이동 가능, 자기 몸무게만큼 농작물 먹어


▎식용곤충으로 인정받는 풀무치는 흩어져 살 때는 공격적이지 않다. 그러나 떼를 이루게 되면 보호색도 포기하고 ‘검은 무늬’을 띄게 되며 1㎢당 최대 8000만 마리를 이룬다. 풀무치 떼는 최대 수백㎢ 규모를 이루기도 한다. / 사진:getty images bank
"메뚜기보다 2배 큰 풀무치, 식용곤충 인정”이란 제목으로 2011년 9월 14일 자 일간지에 난 기사를 읽었다. “‘풀무치’ 국내 열 번째 식용곤충으로 평가받았다. 식품의 약품안전처와 농촌진흥청은 메뚜깃과 곤충 풀무치를 새로운 ‘식품 원료’로 인정했다고 13일 밝혔다. 풀무치는 단백질(70%)과 불포화지방산(7.7%)이 풍부해 식품 원료로 가치가 높고, 생산성도 뛰어나다. 앞서 식품 원료로 인정받은 곤충에는 백강잠, 식용누에(유충·번데기), 메뚜기, 갈색거저리(유충), 흰점박이꽃무지(유충), 장수풍뎅이(유충), 쌍별귀뚜라미(성충), 아메리카왕거저리(유충) 등이 있다. 식용곤충은 미래 식량으로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곤충 산업 시장은 2026년까지 15억 달러(약 1조 7,505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기준으로 곤충 사육 농가가 2873곳이 있으며, 판매액은 414억 원 규모이다.”

그러면 풀무치(Locusta migratoria )는 어떤 동물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풀무치는 메뚜기목, 메뚜깃과의 곤충으로 황충(蝗蟲)이라 하고, 중국어로 비황(飛蝗)이라 하며, 순우리 말은 ‘누리’다. 또 ‘풀에 묻힌 벌레’라 하여 ‘풀묻히’라고 부르다가 ‘풀무치’가 됐다는 어원 설명이 있다. 펄 벅의 소설 [대지(大地, The Good Earth)]에 나오는 메뚜기 떼가 바로 이 풀무치가 아닌가!?

몸길이 48∼65㎜로, 암컷이 수컷보다 좀 크며, 몸빛은 주로 녹색이지만 검거나 갈색인 것도 있다. 앞날개는 가늘고 길며, 전체가 갈색 무늬가 불규칙하며, 뒷날개는 노란색으로 투명하며 무늬가 없다.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아프리카에 널리 분포하고, 유럽에서도 드물게 발견되며, 분포 범위가 세계적으로 넓은 만큼 아종(亞種, subspecies)도 많이 존재한다. 풀무치는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외딴 산간벽지나 묘지 주변의 풀이 우거진 곳에 서식하고, 볏과 식물을 주된 먹이로 하며, 식성은 매우 좋은 편이다. 그리고 풀숲에 숨어 있으면 눈에 잘 띄지 않고, 도망칠 때는 높이 올라가 멀리까지 날아간다. 옛날에 메뚜기와 방아깨비는 먹었으나 풀무치는 잡기도 힘들뿐더러, ‘영장 메뚜기’라 하여 징그러워서 잡아먹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새롭게 식용곤충으로 쓰인다.

펄 벅의 소설 '대지'에 나오는 곤충

국내에 서식하는 메뚜기목 곤충 가운데서 덩치가 매우 큰 편이며, 격리된 도서 지방에서는 몸길이가 두 배 가까이 커진다. 또한 정말 잡기 힘든 곤충인데, 눈치가 매우 빠르고, 한번 날아갈 때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는지라 손으로 잡는 것은 물론이고 포충망으로도 쉽지 않다. 성충은 7월부터 11월까지 볼 수 있고, 암컷의 산란관(産卵管, ovipositor)은 삽 모양을 하고 있는데, 산란관과 꼬리털로 흙을 파고 배 끝을 땅속에 집어넣은 채 수십 개의 알이 들어 있는 알주머니를 산란한다. 산란 시간은 약 1시간이며, 알 상태로 겨울을 지낸다. 봄에 알에서 깨어난 유충은 여러 번 허물을 벗으며 자라고 9월 중순 무렵 어른벌레가 되며, 어른벌레가 된 후부터 짝짓기를 한다.

메뚜기 등의 곤충들은 대부분 주변 환경에 맞추어 몸 색깔을 바꾸므로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즉, 주변에 따라 보호색으로 몸 빛깔을 바꿔서 갈색이 되기도 하고 녹색이 되기도 한다. 풀무치는 전국에 분포하는 종이기는 하나 내륙에서 발견되는 것은 해안에서 발견되는 개체보다 몸집이 작은 경향이 있다. 그런데 농약이나 서식지 파괴 등으로 현재는 개체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풀무치의 특징은 다름 아닌 집단성과 이동성인데, Locusta migratoria란 학명 자체가 ‘이주하는 황충(migratory locust)’이라는 뜻이다. 한두 마리 정도로 풀밭에서 흩어져서 살 때는 그리 공격적이지 않고, 몸 색도 연갈색이나 녹색에 가깝다. 그러나 좁은 지역에 수백 마리 이상이 모이기 시작하면 공격성이 커지고, 보호색도 사라지며, 온통 검은 무늬로 뒤덮인다. 이렇게 무리 지은 풀무치들을 들판을 철새처럼 날아다니며 주변의 모든 풀이나 논밭의 곡식을 박살 내는 광경을 영화 등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밀도 상태에 놓인 풀무치 유충은 날개가 길어지고, 몸이 가늘어져 비행에 적합한 형태로 진화한다. 또 몸빛도 갈색이나 황색, 흑색 등으로 변하고, 활동적인 성향이 강해져 풀 냄새가 나는 쪽으로 집단 이동한다. 떼로 무리 지어 날아가 농작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데, 이 같은 행동은 기상 조건이나 천적에 의해 마릿수가 저절로 감소될 때까지 계속된다.

날개가 보통 풀무치보다 더 길게 발달해 다른 메뚜기가 멀리 날아도 10m 정도인데, 풀무치는 시속 20㎞/h 속도를 낼 수 있고, 한 번 도망갈 때 50m는 가볍게 날아가는 데다, 하루에 100㎞를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풀무치는 초록색이나 갈색을 띠는 무리를 짓지 않는 독거상(獨居狀, solitary phase)과 흑갈색, 검은색을 띠며 날개가 발달하는 군거상(群居狀, gregarious phase)으로 나뉜다.

군거상의 풀무치는 사막메뚜기(Schistocerca gregaria )와 함께 가장 큰 농작물 피해를 주는 메뚜깃과 곤충이다. 풀무치 성체 1마리가 하루에 제 몸무게(3~4g)만큼 풀이나 곡식을 먹고, 1㎢당 4000~8000만 마리의 밀도로 늘며, 크게는 수백㎢ 규모의 무리가 생기는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농약이나 살충제의 사용으로 발생 횟수가 감소하고 있다. 풀무치는 이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동서양의 여러 나라에서도 이미 식용곤충(edible insect)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곤충 산업은 무궁무진한 사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2112호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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