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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화제] 연상호 '지옥', 글로벌 인기 얻은 까닭 

'오징어 게임' 후광효과에 ‘디스토피아’ 메시지 통했다 

[지옥], 크리처물 틀 가져와 적나라한 인간 군상 시연
대중적 장르물에 신과 인간에 대한 종교적 메시지까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TV시리즈 [지옥]은 괴생명체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이를 해석하는 인간의 광기를 절묘하게 담아내 외신의 호평을 받고 있다. / 사진: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옥]까지,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적으로 K드라마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런데 글로벌 시장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K드라마들을 들여다보면 일관된 한 가지가 눈에 띈다. 바로 사회비판 메시지를 담은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무려 한 달 넘게 넷플릭스 순위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를 빠져들게 한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난 11월 19일 공개된 [지옥] 역시 서비스되자마자 폭발적인 글로벌 반향을 불러왔다. 공개 1일 만에 넷플릭스 순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서 전 세계 1위 TV 시리즈로 떠오른 것이다. 1위가 [지옥], 2위가 [오징어 게임]으로 채워지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물론 이런 결과는 [오징어 게임]이 만든 후광효과가 분명했다. 알고리즘과 개인화 시스템으로 콘텐트를 전 세계 구독자들 앞에 펼쳐놓는 넷플릭스는 그 특성상 [오징어 게임]의 연관 콘텐트를 주목시킬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한국드라마들은 보다 전면에 배치되었고 [오징어 게임]으로 기대치도 높아졌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의 후광효과는 같은 시기에 넷플릭스에 방영된 [갯마을 차차차]나 [연모] 같은 작품이 플릭스 패트롤 TV시리즈 톱10에 꽤 오래도록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즉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열풍으로 K콘텐트 전반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과 기대가 커졌고, 마침 그 시점에 라인업되어 있던 [지옥]은 그 수혜를 고스란히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옥]이 넷플릭스 순위 1위에 오른 것이 단지 [오징어 게임]의 후광효과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옥]은 넷플릭스에서도 올 하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꼽혔던 작품이다. 특히 [부산행]으로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연상호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 중요한 기대 포인트 중 하나였다.

콘텐트의 승부는 초반 5분 동안 관객의 시선을 얼마나 몰입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했던가. [지옥]은 5분이 아니라 단 3분 만에 시선을 압도시켰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어느 날, 그것도 대낮 도심 한가운데의 어느 카페에 갑자기 출몰한 괴생명체들(사람들이 ‘지옥의 사자’라 부르는)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행해지는 폭력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는 있지만, 인간이라 할 수 없는 형체의 그 존재들은 사내에게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린치를 가하고, 도망치는 그를 끝까지 뒤쫓아 불태워 뼈만 남은 형체의 재로 만들어버린다. 엽기적인 사건이지만, ‘살인사건’으로 수사할 수밖에 없는 형사 경훈(양익준 분)의 시점을 따라가는 [지옥]은 드라마 초반 마치 [스위트홈] 같은 크리처물에 형사물을 섞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지옥]은 괴생명체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찾아내려 애쓰고 그들과 사투를 벌이며 이겨나가는 영웅 서사를 그리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괴생명체에 대한 궁금증도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지옥]은 이렇게 죽을 날을 갑자기 통보받고(지옥행을 고지받고) 갑자기 재난처럼 벌어지는 죽음(지옥행이 시연되는) 앞에서 보여주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신의 존재를 몰랐던 선사시대에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으로 누군가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던 원시인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연상호 감독은 이러한 재난을 갑자기 출몰한 ‘지옥의 사자’들로 캐릭터화해 그려낸다. 그러자 여러 인간 군상이 탄생한다. 정진수(유아인 분)는 그 무의미함을 받아들일 수 없어 의미를 부여한다. 아무렇게나 벌어지는 재난적 상황이지만, 그것이 인간을 보다 정의롭게 만들기 위한 ‘신의 의도’라 말한다. 그의 말은 고지받은 자가 시연당하는 장면을 ‘새진리회’가 생중계하면서 더 힘을 얻는다. 공포에 질린 대중은 점점 이 신흥종교에 빠져들고, ‘화살촉’ 같은 광신도들의 조직까지 생겨난다. 하지만 정진수가 말하는 ‘신의 의도’는 거짓으로 밝혀진다. 메시아처럼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 그 역시 10년 전 고지를 받은 자였던 것.

“이런 기괴한 일이 벌어지는데 아무런 이유가 없으면 사람들이 버틸 수 있을까요? 아마 엄청난 폭동과 정신적인 공황이 찾아올 거예요. 이유가 있어야 돼요. 이런 기괴한 일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벌어지고 있다….”([지옥]의 캐릭터 정진수 대사 중)

결국 [지옥]은 전형적인 크리처물의 장르적 틀을 가져오긴 했지만, 그 이야기에서 벗어나 불가항력 앞에 놓인 인간들을 통해, 신의 탄생이나 정의의 문제 등을 묻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공포에 질린 인간 군상은 어떤 폭력성과 광기에 빠져들고 그 안에서 선악으로 구분되는 정의는 과연 제대로 작동하는가, 애초에 신이라는 건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째서 이런 선악과는 상관없이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내버려둘까. 크리처물 같은 장르에서는 좀체 던져지지 않았던 질문들이 [지옥]에는 가득 채워져 있다.

K콘텐트에 묻어나는 디스토피아의 그림자


▎[지옥]은 재난처럼 벌어지는 죽음 앞에서 보여주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 사진:넷플릭스
[지옥]이 가진 인간 군상의 폭력성과 광기에 대한 관심은 사실 연상호 감독이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해서 다뤘던 사안들이다. 즉 그는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지옥(2002)], [지옥:두 개의 삶(2006)]을 그린 바 있고 [사이비] 같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사이비 종교에 빠진 인간들이 보여주는 광기를 담아낸 바 있다. 그의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린 천만 영화 [부산행]도 사실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인간 군상의 집단적 광기를 좀비 장르로 표현해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산행]은 물론 좀비 장르의 긴박감 넘치는 액션 서사가 주는 재미가 가득 채워진 대중영화였지만, 그 안에 담긴 여러 장면은 우리네 한국사회의 단상들을 은유하거나 풍자함으로써 블랙코미디적인 재미 또한 적지 않았던 작품이다. 군복 입은 좀비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광경이나, 무엇보다 ‘부산행 KTX’라는 공간과 그 안의 인간 군상들 자체가 ‘압축성장’을 이룬 한국사회의 축소판처럼 그려진 점이 그랬다. 이 밖에도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 [서울역(2016)], 영화 [반도(2020)]에서도 갑자기 발생한 특정 상황에 놓인 인간들의 광기에 대한 관심을 이어왔다. [지옥]은 이 흐름 안에서 탄생한 연상호 감독의 역작인 셈이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 이은 [지옥]의 성공 속에서 호평을 쏟아내는 외신들이 일관되게 쓰는 표현이 눈에 띈다. 그것은 ‘디스토피아’다. [지옥]은 물론 무의미하게 재난처럼 사건들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아무런 이유가 없을 때 사람들은 버텨낼 수 없다는 신과 인간, 나아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래서 만들어지는 광기의 디스토피아가 그려진다. ‘새진리회’의 사이비 교주들이 ‘시연’을 의례화함으로써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공포로 세력을 넓혀나가는 모습이나, 집단적 광기에 매몰되어 지옥행 ‘고지’를 받은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하는 화살촉 같은 집단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개발시대, 민주화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왔어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심지어 SNS상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집단적인 폭력들을 극화해낸다.

[오징어 게임]이 담아낸 것 역시 ‘경쟁사회’의 디스토피아다. 서구에서 몇백 년을 걸쳐 만들어낸 경제적 성장과 민주화 같은 과정들을 단 30여 년 안에 압축해서 이뤄낸 한국사회의 가장 큰 동력은 다름 아닌 경쟁이었다는 걸 [오징어 게임]은 가상의 데스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은유하고 풍자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계보화될 정도로 많은 데스 서바이벌 장르의 콘텐트가 나왔지만, [오징어 게임]만큼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건 바로 경쟁사회의 현실을 이 작품만큼 절절하게 담아내지 못해서였다. 즉 저들의 데스 서바이벌이 생존하기 위해 ‘미션’을 풀어내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을 때, [오징어 게임]은 미션 자체가 아니라 이들이 왜 이 지옥 같은 게임에 빠져 있는가에 집중한다. 바깥이 더 지옥이라 자발적으로 게임에 참여한 이들은 저마다 자신들만의 디스토피아를 게임 속에서 보여준다. 사채업자에 쫓기는 채무자, 브로커에게 속은 탈북자, 일한 대가를 받지 못한 외국인 근로자 등등. 경쟁사회가 ‘루저’로 만들어낸 이들의 치열한 사투는 그래서 그저 황당한 게임이 아닌 보는 이들에게 ‘현실감’마저 느끼게 한다.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전체 순위 1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고 반색하는 우리네 대중의 모습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경쟁적인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징어 게임]은 경쟁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작품이 아닌가. 작품을 보며 느끼는 카타르시스와 ‘전 세계 1등’이라는 순위에 반색하는 양가적 감정. [오징어 게임] 현상은 그래서 경쟁사회를 비판하면서도 그 경쟁을 이미 내재화한 우리를 다시금 발견하게 한 면이 있다.


▎[지옥]이 서비스 1일 만에 넷플릭스 순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서 전 세계 1위 TV시리즈로 떠올랐다. 2위는 [오징어 게임](11월 20일 기준). / 사진:플릭스 패트롤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이 놀라운 건 두 작품이 모두 대중적인 장르물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징어 게임]은 [헝거게임], [배틀로얄] 같은 데스 서바이벌 장르였고, [지옥]은 [스위트홈] 같은 크리처물 혹은 할리우드의 [인디펜던스데이]나 [딥 임팩트] 같은 흔한 재난물의 외형을 가졌다. 장르라는 건 기본적으로 국가나 언어를 초월해 영상을 이해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통하는 일종의 ‘대중적인 문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장르물을 차용한 두 작품은 모두 글로벌하게 통용되는 대중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대중적인 장르물에 신과 인간에 대한 종교적 메시지나 인간 군상의 디스토피아를 담고, 경쟁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까지 더해져 있는 건 흔한 일도 아니고 쉬운 일도 아니다.

재미와 의미 모두 요구해온 관객 만족시켜


▎계급구조를 공간으로 구현해낸 영화 [기생충], 경쟁사회의 디스토피아를 담아낸 [오징어 게임] 등 K콘텐트는 장르물의 형식에 사회비판 메시지를 넣어 재미와 의미를 모두 요구하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사진:CJ 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
이 관점에서 보면 최근 해외에서 주목받은 K콘텐트가 가진 유사한 특징 중 하나가 보인다. 그것은 장르물이면서도 날카로운 사회비판의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다른 말로 하면 대중적으로 재미있으면서도 동시에 예술성이나 작품성이 있다는 뜻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져 역시 화제가 됐던 [킹덤] 같은 작품이 독특했던 건, 대중적인 좀비 장르를 조선시대라는 차별적인 시공간에 담아내서만이 아니다. 그 시공간에 드리워진 양반과 천민으로 나뉘는 계급의식과 그 대결이, 좀비라는 캐릭터를 통해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킹덤]은 그래서 특이하게도 두 부류의 좀비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 하나는 배고픔으로 인해 좀비가 된 민초들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과 핏줄에 대한 갈증으로 좀비가 된 권력자들이다. [킹덤]은 이 계급의식으로 나뉜 좀비들을 통해 보다 정치적이고 계급적인 이야기들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K콘텐트가 이처럼 대중적인 장르물이면서도 사회비판 같은 메시지를 담는 예술성과 작품성을 추구하게 된 이유는 뭘까. 그건 재미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의미를 찾는 독특한 우리네 대중의 취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때 ‘영화제 영화’나 ‘예술영화’에 대한 반감들이 생겨나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이 대중적으로는 실패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적이 있다.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전문가의 비평이 아닌 실제 관객의 평점이 극장을 찾는 기준으로 등장하면서 이런 풍조는 가속화됐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대중은 재미만 추구하는 상업적인 작품에 대한 반감도 드러냈다. 대표적인 게 이른바 ‘천만 영화’에 대한 양가적 반응이다. 재미있다는 반응과 더불어 ‘남는 게 없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재미와 의미. 대중성과 예술성.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지만, 이것을 실질적으로 구현해낸 인물이 바로 봉준호 감독이다. 괴수물의 형식을 가져왔지만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단면들을 풍자적으로 담은 [괴물]이나, 한국사회의 모성신화를 스릴러 장르로 풀어낸 [마더], 자본주의의 계급시스템을 SF 장르로 구현해낸 [설국열차]는 단적인 사례다.

K콘텐트가 장르물의 형식을 주로 가져와 그 안에 사회비판 메시지를 담게 된 건 재미와 의미를 모두 요구해온 독특한 대중에 의해 생겨난 일이다. 봉준호 감독이 블랙코미디 장르에 자본주의의 계급구조를 지하, 반지하, 지상이라는 공간으로 날카롭게 구현해낸 [기생충] 같은 작품으로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 같은 K콘텐트가 글로벌한 인기를 끄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건 그저 탄생한 게 아니고, 남다른 학구열로 인해 넘쳐나는 엘리트 대중의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요구들 속에서 치열한 저마다의 ‘오징어 게임’을 통해 살아남은 것이니 말이다.

- 정덕현 문화평론가 thekian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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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호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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