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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나라 경제 살릴 수 있을까? 이재명·윤석열 경제공약 집중점검 

이재명은 오른쪽으로, 윤석열은 왼쪽으로…, 닮아가는 포퓰리즘 정책에 현안은 뒷전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지지층 의식해 ‘정의론’에 무게 둔 이재명표 기본 시리즈, ‘JM노믹스’로 친시장 강조
‘작은 정부’에 관료와 전문가 중용 강조하는 윤석열, ‘중산층·이대남’ 표심 구애 총력


▎이재명(왼쪽) 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당락은 경제 콘텐트에서 갈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시대를 건너는 정부의 역할을 놓고 둘은 대립과 모방을 거듭하고 있다.
중도층과 2030세대는 2022년 3월 대선의 명운을 쥔 스윙보터다. 이들은 특정 정당을 향한 충성심보다 이해관계에 입각해 투표하는 성향을 지닌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치솟아도 이들의 당선 가능성이 여전히 높게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갤럽에서 발표하는 주간 여론조사 추이를 살펴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정권 유지’보다 ‘정권 교체’ 여론이 일관되게 우세하다. 다수 국민이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고 싶어 하는 배경에는 부동산, 일자리 등 민생경제 정책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다. 그러나 정작 여야 후보 지지율은 그 갭을 거의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숱한 도덕성 논란에 포위돼 있음에도, 중도 표심이 윤석열 후보에게 선뜻 달려가기를 망설이는 정황이다.

제20대 대선은 ‘왜 뽑지 말아야 하는가’를 다투는 최악의 네거티브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유권자들이 이 프레임에서 탈피해 ‘왜 투표해야 하는지’를 비교하려면, 경제 정책을 검증하는 것이 첩경이다. 후보들이 제시하는 번영의 밑그림이 공약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는 2021년 12월 7일 서울대 강연에서 기본금융(기본대출)의 정당성에 관해 설파했다. “가난한 사람이 이자를 많이 내고 부자는 원하는 만큼 낮은 이자로 장기간 빌릴 수 있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이 후보는 이를 건강보험료에 빗댔다. “돈 많이 벌고 재산 많은 사람은 잘 먹고 잘 살아 병에 잘 안 걸린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보험료를 많이 낸다. 의료 지출이 많은 사람은 가난하고 병에 많이 걸리는데 그 사람들은 보험료를 적게 낸다. 이는 공정하지 않다. 그러나 정의롭다.”

강의에 참석한 한 서울대생이 반론을 제기했다. “이 후보가 연체율을 0.1~0.2%로 계산해 (모든 국민에게 1000만원 범위에서 1%대의 저금리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해도) 재정 부담이 얼마 들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는 고신용자의 시중은행 연체율을 의미한다.” 실제 서민금융상품인 햇살론의 연체율은 10%에 달한다. 이 후보의 경제관은 “신용도에 기초해 대출을 심사하지 않으면, 은행이 부실화할 수 있다”는 금융 상식과 배치된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공정과 정의가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많이 가진 사람이 많이 부담하는 게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게 작동 안 하는 부분이 금융”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재명표 경제 공약은 전부 ‘정의’라는 뿌리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2021년 12월 21일 이 후보가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하다는 착각]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온라인 대담을 진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저마다의 출발선이 상이한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절차의 공정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주는 정의가 우선’이라는 것이 이 후보의 철학인 셈이다. 여기에서 정의를 재단하는 주체는 국가다. 그리고 국가는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이 후보는 유튜브 [삼프로TV]에 출연해 “정치는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맡고, 그 기준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고 규정했다. “포퓰리즘 아닌가?”라는 물음이 나오자 “엘리트주의보다는 낫지 않은가?”라고 맞받았다.

이재명의 ‘정의’ vs 윤석열의 ‘효율’


▎2022년 1월 11일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경제 비전’을 발표했다. 핵심은 정부 예산 투입이다. / 사진:2022년 1월 11일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경제 비전’을 발표했다. 핵심은 정부 예산 투입이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실물경제에 밝다’는 이미지를 얻은 이 후보와 반대로 윤석열 후보의 [삼프로TV] 출연은 지지율에 악재로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맞는 말만 하는 윤석열”이라는 혹평에서 알 수 있듯 원론적 답변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이다. “월급 받으면 은행에 넣어놓고 썼다”가 재테크의 전부였던 윤 후보는 정책의 디테일보다 메시지의 선명성을 강조하는 화법을 택했다. 그가 반복해서 꺼내 든 키워드는 ‘효율’, ‘실력’이었다. “실력 있는 정부는 개입해도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할 테니 개입을 많이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고, 실력 없는 정부는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니 잘 모르면 끼어들지 말아야”, “정부가 하는 일에 비해서 돈을 덜 쓰는 아주 효율적인 정부가 돼야 하는 것” 등의 발언에 그의 경제관이 압축돼 있다.

윤 후보는 경제를 강(江)에 비유했다. 강은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상징한다. 실제 2022년 1월 11일 발표한 ‘집권 플랜’에서 윤 후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위기’를 부각하며 “잠재성장률이 2%에서 4%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국 사태’를 겪으며 공정의 표상으로 떠오른 윤 후보는 경제관념에서도 ‘공정이 곧 정의’라는 신념을 짙게 드러낸다. 공정과 정의를 분리하는 이 후보와 결정적 차이다. 윤 후보의 공정은 실질적 러닝메이트라 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가치관인 ‘공정한 경쟁’과 교집합을 갖는다. 다만 윤 후보는 표에 불리한 ‘경쟁’보다 표에 유리한 ‘공정한’을 앞세운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선 기초적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러면 ‘정부 주도 재정 정책을 중시하는 이 후보와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시장경제 체제와 양립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고 답했을 뿐이다.

李의 ‘명확행’ 공약 vs 尹의 ‘책임 있는 변화’


▎2022년 1월 11일 성수동 할아버지공장 카페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국가운영 비전’을 발표했다. 부모급여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이 후보는 2022년 하나의 변화를 줬다. 7년간 써왔던 ‘이재명은 합니다’ 대신 ‘나를 위해 이재명’으로 캠페인 문구를 바꾼 것이다. 선대위 관계자는 “앞으로 ‘이재명이 뭘 해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마의 40% 지지율을 돌파하려면 2030세대와 여성·중도층으로의 확장이 절실하다. 그 필연성에서 파생된 결과물이 ‘명확행(이재명+소확행)’ 공약 릴레이다. 1월 13일까지 45개 ‘틈새 공약’이 나왔다. 1호 공약인 가상자산 과세 1년 유예를 시작으로 ▷휴대폰 안심 데이터 무료 제공 ▷상병수당 도입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전세 사기 강력 대응 ▷타투 시술 합법화 등이 이어졌다.

특히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 공약’은 파장이 컸다. 이 후보는 “신체의 완전성이라는 측면에서 건보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재명은 뽑는 것이 아닙니다. 심는 것입니다”라며 ‘1000만 탈모인’에게 구애하는 동영상까지 찍었다. 이후 민주당은 노인층을 겨냥해 임플란트 건보 적용 확대 검토까지 흘렸다. “건보 재정이 파탄 날 것”이라는 반론이 즉각 나왔고, 포퓰리즘 논쟁이 가열됐다.

윤 후보는 1월 11일 서울 성동구의 폐공장을 리모델링한 카페에서 국정운영 비전을 발표했다. ▷위기의 코로나 상황을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회로(필수 의료 국가책임제 등 도입) ▷국가가 적극 나서 자영업자 구하기(임대료 나눔제) ▷저성장·저출생·양극화의 악순환 극복(아이가 태어나면 1년간 매월 100만원 주는 부모급여) ▷망가진 시장의 가격 기능 회복(청년 원가주택 30만 호, 역세권 주택 20만 호) ▷미래세대를 위한 실효성 있는 에너지 전환 등 5대 목표를 제시했다.

“민주 투사인 듯 살아온 집단이 문재인 정권에서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는 발언(2021년 12월 29일 경북 안동 연설)은 현 정부를 바라보는 윤 후보의 시선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5년을 ‘롤백’(이전으로 원상복구)하는 것이야말로 ‘윤석열 정부’의 소명이라는 맥락이다. 실제 윤 후보는 “현 정부의 방역 정책은 과학적 분석이나 역학 자료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있다”며 방역패스 철회, 9시 영업제한 철회, 아동·청소년 강제적 백신접종 반대 등을 공약했다. 문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부동산에 관해서는 “공급 확대 및 주택담보대출비율(LTV) 80% 완화”를 약속했다. 또 “원자력발전소를 더욱 안전하게 짓겠다”며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도 선명하게 반대했다. 나라의 미래를 갉아먹는 저성장·저출생·양극화 역시 민주당 정부에서 심화했음을 부각했다.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의 경제 정책 노선이 엇갈리는 이면에는 문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자리한다. 먼저 이 후보의 브랜드 정책이라 할 ‘기본 시리즈’(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대출)는 소득주도성장의 시즌 2, 확장 버전에 해당한다. ‘이재명의 경제 책사’로 통하는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2021년 10월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소득주도성장의 필연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일자리가 핵심이다. 그 출구는 산업 재편인데, 우리는 못 만들어냈다. 일자리 양극화는 소득 양극화로 나타난다. 중산층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내수가 취약해진다.” 그러나 ‘서민층, 저소득층의 구매력을 높인다 → 내수 경기를 끌어올린다 →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 체질을 바꾸려’했던 문 정부의 시도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았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문 정부의 방향성 자체가 틀렸다는 쪽은 아니다. 다만 혁신과 성장이 결핍된 방식이 문제였다고 본다. 이 후보는 ‘대전환’과 ‘개혁’을 탑재하면, 경제 성장과 기본 시리즈가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극단적 견해차

이 후보가 국토보유세(토지이익배당금제) 도입, 전 국민재난지원금 지급을 단념하지 않는 배경이다. 전 국민에게 연 100만원(최종적으로 월 50만원)을 지급하고, 역세권에 10억원 정도의 30평대 아파트를 월세 60만원으로 평생 원하는 만큼 거주할 수 있도록 해주며, 마이너스 통장 형태로 1000만원까지 대출을 제공하겠다는 발상은 ‘분수효과’(저소득층의 소비 증대가 생산·투자 활성화로 이어져 경기를 부양하는)를 기대한다. 이 후보와 측근 그룹이 기재부와 한국은행을 향해 강성 발언을 내놓는 맥락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재정 정책이든 통화 정책이든 돈을 풀어야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데, 기재부와 한국은행 엘리트 관료들이 소극적이라는 시각이다.

반면 윤 후보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족보도 없는 이론”, “선후가 뒤바뀐 엉터리 경제이론”이라고 일축했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시장경제의 역동성이 훼손됐다”고 확신하는 쪽이다. 소득주도성장에 내재된 최대 위험성은 (하이퍼)인플레이션 유발과 양극화 심화 가능성이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대비해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돈을 회수하는 데 집중할 것이 예견되는 환경에서는 더욱 위태롭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처럼 ‘현대통화이론’ (MMT, 필요한 만큼 화폐를 발행하는 무제한 재정 정책으로 고용을 증가할 수 있다)에 입각한 정책을 구사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이 후보와 그의 경제 브레인들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범위에서 확보할 수 있는 돈을 필요한 곳(고용 안정)에 쓰도록 하자”며 물가 안정보다 고용 증가에 방점을 찍는다. 이는 이론적으로는 성립하지만, 현실에서 그 최적균형을 잡아내기란 난망하다.

익명을 요청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 후보의 부동산시장 안정화 목표와 기본 시리즈가 양립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돈을 저렇게 풀어대면서 보유주택 숫자로 과세 차별을 두면, (똘똘한 한 채로 수요가 쏠려) 상급지 집값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재명 정부’는 국토보유세 등 세금을 강화할 것이다. 이는 강남 등 서울 요지에는 ‘그 세금을 감당할 수 있는 계급만이 거주한다’는 진정한 양극화 시대의 도래를 뜻한다.”

사례가 적절하지 못한 탓에 사과해야 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한 윤 후보의 ‘전두환 발언’ 진의는 ‘돌팔이 경제이론으로 일관한 문재인, 이재명과 달리 전문가·관료를 중용해 정책을 짜겠다’는 의지 표현에 있었다. 윤 후보는 1월 13일 한국행정학회·한국정책학회와 [중앙일보]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슬림한 청와대”를 다짐하며 “국무회의가 공론과 권위 있는 정책 결정의 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1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재명 신경제비전’을 발표했다. 이른바 JM노믹스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처럼 회색 재킷 안에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무선 헤드셋 마이크를 착용한 채 무대에 오른 이 후보는 ▷과학기술대전환 ▷산업 대전환 ▷교육 대전환 ▷국토 대전환을 망라한 ‘4대 대전환’과 공공개혁·금융개혁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재명식 성장 정책을 통해 ‘코스피지수 5000, 국민소득 5만 달러, G5(세계 5강)’의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포부다. 그는 “불투명성·불공정성·저성장성을 해결해 산업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겠다”며 그 엔진으로 “정부의 과감한 대투자”를 강조했다.

李의 ‘코스피 5000시대’ vs 尹의 ‘부동산 햇볕 정책’


▎2022년 1월 3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본관 앞에서 열린 ‘증시 대동제’에 이재명, 윤석열 후보가 참석했다. 이 후보는 코스피 5000시대를, 윤 후보는 주식 거래세 폐지와 양도세 완화를 공약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경제 공약에서 이 후보가 막아야 할 방패가 부동산이라면, 내세워야 할 창은 임기 내 코스피 5000 시나리오다. 꿈의 코스피 5000을 달성할 방편으로 그는 “MSCI(모건스탠리인터내셔널) 선진국 지수 편입 추진”과 “주가 조작에 대한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을 꺼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환부=불투명한 자본시장 탓’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환경을 정화하고, 외환 관리의 어려움을 각오하며 MSCI에 편입해 외국인 투자 수요를 올리고,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현재 15%)을 더 키우면 능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치부인 부동산 정책에 대해 이 후보는 보수 정당의 공약과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우회전하고 있다. 당초 그는 ▷임기 내 250만 호 공급 중 기본주택 100만 호 ▷공공임대비율 상향 ▷실효세율 향상 ▷주택도시부·부동산감독원 설치 ▷고위공직자 부동산 백지신탁 등 ‘매운맛 문재인’ 공약에 치중했다. 그러다 2021년 12월 12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1년 유예 추진 발언을 시작으로 태세 전환했다. 1월 13일에는 “재개발·재건축을 금기시하지 말고 국민의 주거 상향 욕구도 존중해야 한다”며 재건축 안전진단·용적률·층수 규제 완화까지 거론했다. “윤 후보의 부동산 정책을 카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정책이라는 것은 계획이기 때문에 선거 막바지에 가면 다 비슷해진다. 윤 후보도 내 정책이 좋으면 그냥 갖다 쓰시라”고 반응했다.

윤 후보도 이 후보처럼 임기 내 250만 호 공급을 내세웠지만, 그 내용은 딴판이다. 원가 주택 30만 호와 역세권 첫 집 20만 호를 제외하면, 민간 주도 공급이 200만 호에 달한다. 신규 물량 공급 정책 외에 ▷종부세 폐지 검토 ▷1주택자 양도세·보유세 완화 ▷실수요자 대출 규제 완화 ▷다주택자 양도세 한시적 감면 등 기존 물량이 시장에 나오도록 유도하는 ‘공급 폭탄’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복안이다.

또 주식시장의 개미투자자를 겨냥해 2021년 12월 27일 ‘자본시장 선진화 공약’을 발표했다. 기업이 신사업을 분할해 별도 회사를 상장하는 물적분할을 하는 경우, 기존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 외에 2023년 도입 예정인 주식 양도세에 대한 반발을 달래려고 내놓은 증권거래세 폐지를 비롯해 ▷대주주 및 경영진 등 내부자의 무제한 지분 매도 제한 ▷공매도 제도 개선 ▷회계 공시 투명성 제고와 미공개 정보 이용 및 증권 범죄 수사·처벌 강화 등을 담았다. 윤 후보는 “보유 기간과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적용하게 돼 있는 주식 양도세율을 장기투자자에 대해서는 우대 세율을 적용해 낮추겠다”고 덧붙였다.

윤 후보는 이 후보의 ‘명확행 공약’에 대응하는 생활밀착형 공약도 강화하고 있다. 1월 12일 ▷확률형 게임 아이템 정보의 완전 공개 의무화 ▷온라인 부동산 등기부 등본 열람 및 발급 수수료 무료화 ▷헬스장 등 실내 체육 시설 이용료에 대해 연간 100만원 소득공제 적용 ▷공영방송의 경우 사극 제작과 국제뉴스 30% 이상 편성 의무화 등을 약속했다.

대선이 치열해질수록 두 후보의 경제 정책은 닮아가고 있다. 이름을 떼고 보면 누구의 공약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갈수록 이 후보의 부동산 정책, 기업 정책은 친시장적인 색채를 더해가고 있다. 이 후보는 1월 12일 10대 그룹 경영진을 만난 자리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100% 대안이라고 할 수 없다”며 “(법 적용은) 입증이 쉽지 않아 실제 적용이 거의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발언도 했다.

갈수록 서로 닮아가는 경제 공약

이 후보의 선거전은 30% 중후반대에 달하는 문재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반문 정서의 유권자를 끌어들여야 하는, 외줄타기의 연속이다. 부동산 정책에 관해 선 문 정부와 ‘거리두기’를 하되, 경제 전반에서 전문성을 어필해 ‘윤석열 후보보다 경제 내공이 우월하다’는 이미지를 꾀한다. 이 후보의 핵심 공약 중 다수가 현실성 면에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어쨌든 이슈 선점이 우선이라는 스탠스다.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가 붙는 것은 윤 후보의 공약도 마찬가지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3개 노선 신설, 병사 봉급 월 200만원, 부모급여 월 100만원, 자영업자 50조원 지원, 청년 원가주택 등의 재원 마련 방책은 미지수다. 미국이 긴축을 예고한 시국에 돈을 더 풀겠다는 ‘역주행 정책’을 남발하는 점에서 윤 후보도 ‘표가 급하니 지르고 본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윤 후보의 지향점이 김종인 전 선대위 총괄위원장이 중시하는 독일식 사민주의인지, 김병준 전 선대위 상임위원장이 가치를 두는 미국식 자유주의인지도 뚜렷하지 못하다.

국가의 역할이 커질수록 증세는 불가피하건만, 어느 후보도 세금을 더 걷겠다는 역린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 연금개혁, 노동개혁 같은 인기 없는 정책은 거의 금기가 됐다. 국가채무가 1100조원에 육박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0% 대에 진입했다. 자칫 국가 신용등급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들리지만, 인내를 설득하는 정책은 사실상 실종 상태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202호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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