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남성욱의 평양리포트] 미사일 도발 나선 북한의 노림수 

안으로는 일치단결 바깥에는 ‘존재감’ 과시 목적 

전원회의서 ‘국방력 강화’ 천명한 뒤 극초음속미사일 연달아 발사
문재인 정부, 종전선언 집착 버리고 정책 실패 냉정하게 분석해야


▎북한이 새해 들어 두 차례에 걸쳐 극초음속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1월 5일과 11일에 발사한 극초음속미사일은 각각 마하 6과 마하 10 속도로 날아가 700~1000㎞ 바깥의 목표물을 명중했다.
임인년 새해를 자축이라도 하듯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연말에 개최한 전원회의가 밋밋해서였을까. 북한은 1월 5일 극초음속미사일을 동해상으로 쐈다. 새해 들어 첫 무력시위다. 지난해 10월 1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잠수함에서 시험 발사한 이후 78일 만이다. 미사일 발사 ‘3개월 주기설’로 평가하면 대략 ‘쏠 때 쏘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다만 주변 상황이 녹록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다소 발사 시기가 빨랐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미사일 발사에 가장 경악한 당사자는 베이징과 서울일 것이다. 중국은 2월 4일 개막하는 동계올림픽을 한 달 앞두고 코로나 방역으로 노심초사하는데 주변 돌발 변수는 악재다.

동계올림픽 개최와 탄도미사일 발사는 상극이다. 평화와 화합, 중국의 대국굴기를 상징하는 동계올림픽에 미사일 발사의 굉음은 잔치에 재를 뿌리는 격이다.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화상정상회담이라도 한번 해보겠다고 평양을 조르던 청와대에는 절교의 편지를 보낸 격이다. 청와대는 떠나가는 연인을 붙들고 ‘2018 평창’ 어게인의 비전을 담은 친서를 수십 장 물밑으로 보냈지만, 평양은 마치 유통기한 지난 식자재 폐기하듯 강경 자세다. 코로나 비상방역 등으로 사면초가인 평양 입장에서는 마이웨이를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신무기 개발 공언하자마자 미사일 발사


북한의 군사 도발 복안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자신들의 로드맵과 설계도대로 국방력 강화에 올인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당·정·군은 연말 전원회의에서 날로 불안정해지는 군사적 환경과 국제정세 흐름이 국가 방위력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군수공업의 성과 확대, 현대전에 맞는 무기 개발·생산을 통해 방위력의 질적 제고를 결정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월 8차 당대회에서 순항 미사일, 전술핵무기, 핵추진 잠수함, 극초음속미사일, 다탄두·고체 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정찰 위성, 신형 무인기 등 신무기 개발을 공언했다. 전원회의에서 재차 김정은이 결정한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을 계속 진행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요컨대 ‘국방력 강화는 잠시도 늦출 수 없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새해 벽두 미사일은 지난해 9월 28일 발사한 극초음속미사일 ‘화성-8형(마하 3, 사거리 200㎞)’보다 비행 거리가 크게 늘었고 비행 속도도 2배 빨라진 마하 6이며, 지그재그식 변칙 기동으로 한·미의 첨단 요격망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북한은 이번 극초음속미사일이 120㎞를 측면 기동했으며 사거리가 700㎞라고 밝혔다. 변칙 기동은 탐지를 무력화하며 요격 불능으로 이어진다. 발사체를 교체하면 3000㎞까지 사거리를 충분히 늘릴 수 있다. 한반도 전역을 넘어 오키나와 주일미군 기지, 미국 영토인 괌까지 타격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한반도 유사시 미 증원 전력을 지원하는 미·일 후방기지까지 무력화된다. SLBM이나 방사포와 섞어 쏘거나 전술핵을 탑재하면 그야말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북한이 러시아·중국·미국에 이어 세계 4번째 극초음속 미사일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했다.

하지만 북한의 발표 이후 서울에는 이상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청와대와 국방부의 평가절하 움직임이다. 출입기자들의 거듭된 설명 요청에도 불구하고 미사일의 정확한 제원도 즉각 발표하지 않던 국방부는 이례적으로 1월 7일 “극초음속 비행체 기술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미사일 사거리, 측면 기동 등의 성능이 과장됐다”는 입장이다. “극초음속은 ‘북한 그들만의 표현’”이라고도 폄하했다. 보통 마하 5 이상을 극초음속미사일로 보는데 이번에 군이 측정한 북한 미사일은 마하 6.0 수준이다.

국제사회가 북한 미사일에 일제히 우려를 표하고 한국군 요격망이 무력화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군은 왜 뒤늦게 미사일 성능을 평가절하했을까? 6일 북한의 공식 발표 후 언론에서 분석 요청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군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침묵하던 군이 브리핑까지 자처하며 북한 주장을 반박한 건 청와대가 긴급하게 나섰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지시 이후 국방부는 신속하게 자료를 작성했다. 군은 부랴부랴 뒤늦은 브리핑을 열고 설명 자료를 배포하며 적극적으로 북 주장을 반박했다. 북한 미사일이 최고 속도 마하 6이었지만 저고도 종말 단계를 포함해 전체 비행거리의 상당 구간을 마하 5 이상 속도를 유지하면서 상하좌우로 변칙 기동(활공)해야 하는 극초음속활공체(HGV)의 성능과 기술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게 군의 기술적인 설명이다. 군은 북한 미사일이 원추형 탄두부에 보조날개가 붙어 있는 형태라 HGV의 특징인 글라이더 모양의 탄두부와도 형상이 다르다고도 했다. 결론적으로 북한 미사일이 신형 기동식재진입체(MARV)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이라고 결론지었다. 기술적인 반박을 위해 구체적인 그래픽까지 제시하는 이유는 북한의 첨단무기가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북한의 의도까지 친절히 해석했다. 북한이 극초음속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의도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위한 내부적인 메시지”라는 입장이다.

언제부터 우리 군이 기술적인 설명 외에 정무적인 해석까지 내놓는지 청와대의 구체적인 지시 없이는 전후 맥락이 이해되지 않는다. 과거 2012년부터 북한의 열병식에 등장한 장거리 미사일을 두고 ‘모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으나 2017년 11월 ICBM이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북한의 군사력 증강은 청와대로서는 피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 됐다.

극초음속 달성했는데 ‘성능 과장’이라는 국방부


▎2021년 12월 27일 개막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국방력 강화와 농업 생산량 증대를 주요 과제로 강조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들어 군은 항상 서울에 폭탄이 실제로 투하되기 전까지는 어떤 무기도 위협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되풀이해왔다. 2018년 9·19 군사합의로 사실상 북한군의 공격을 사전에 감지할 안테나는 무력화됐다. 군사합의로 남북 군사분계선에서 1㎞ 이내의 GP를 각각 11개(총 22개)씩 시범적으로 철거하고 해당 GP 병력과 화기를 모두 철수했고, GP를 스스로 폭파했다. 북측 현장 검증단이 남측 철거 상태를 현장에서 검증까지 했다. 정초 22사단 강원도 지역 월북 사건도 군사합의의 부작용이다. 월북자가 지나간 해당 감시초소는 남북 간 합의에 따라 병력이 철수한 곳이다. 군 관계자는 “GP는 보존 GP였다”며 “사람은 상주하지 않고 경계감시장비만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철수 후 남아 있는 감시초소는 200개 안팎으로 추정되는데 향후 존치 여부가 불확실하다. 9·19 군사합의가 차기 정부에도 이어진다면 200개 감시초소 운명도 미지수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탱크로 중무장한 북한군이 38도선을 넘어 진격해왔어도 주말인 전날 용산 육군본부 낙성식에서 대취한 군 수뇌부가 새벽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역사의 치욕은 72년이 지나도 생생하다. 군은 문재인 정부 동안 1929년 독일 작가 레마르크(Remarque)의 소설 제목대로 무조건 ‘서부 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라는 자세였다. 정부의 향북(向北) 정책이 임기 5년 내내 고착화돼 군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여지가 사라졌다. 청와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위협적이라면 궁극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실패했다는 증거인 만큼 이를 축소 및 왜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야당 관계자는 “군의 발표와 북한의 발표 중 하나는 거짓이라는 것 아니냐”며 “군의 이번 분석 발표에 기술적 측면 외에 다른 정치적 고려가 있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고 마감 이후 북한은 첫 미사일을 발사한 지 엿새 만인 1월 11일 오전 동해상으로 두 번째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행했다. 합참에 따르면 이날 발사한 미사일 최대 속도는 마하 10 내외로 앞서 발사한 미사일보다 진전된 것으로 평가됐다. - 편집자 주)

다음은 국제사회에 대한 무언의 메시지 전달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정당한 국방력 강화를 위한 미사일 발사만 ‘도발’이나 ‘위협’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중 잣대’라고 주장해왔다. 평양은 유엔 결의로 금지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문제 삼지 말라는 요구를 정초에 미사일로 워싱턴에 전달했다. 주기적인 무력시위로 ‘이중 잣대 철회’를 관철하려는 복안이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결의 위반에 대해 후속 조치를 논의했다. 다만 지난해 10월 미사일 발사 당시처럼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결의 등 구체적인 조치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중·러는 북한의 군사 도발에 대해 긴급하게 논의할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코로나 방역하에서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역시 명분에서는 중·러를 압박할 수 있지만, 코로나 확산으로 전선을 확대할 여력이 부족하다. 북한을 ‘관리’하는 구두 코멘트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는 이번 발사체를 탄도미사일로 규정했지만 당장 미국의 인력이나 영토, 동맹에 직접 위험은 되지 않는다고 평가하고 북한의 대화 참여를 촉구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기시다 일본 총리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우려를 표명했지만, 워싱턴의 입장에 동조할 것이다. 북한 미사일보다 코로나 방역 등 각국의 민생 문제가 더 시급한 상황이다.

대외 과시, 내부 결속… 북한의 이중 셈법


▎1월 1일에 월북사건이 발생한 강원도 최전방의 감시초소(GP).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병력을 철수한 ‘보존GP’다. / 사진:1월 1일에 월북사건이 발생한 강원도 최전방의 감시초소(GP).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병력을 철수한 ‘보존GP’다.
마지막으로 내부 결속용이다. 경제난으로 사면초가인 평양은 미사일 발사로 내부 결속을 도모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비상방역을 위한 국경 봉쇄 등으로 외부 물자를 들여오지 못해 경제난이 심각하다. 코로나 이후 북한의 무역액은 10분의 1로 축소됐다. 1400㎞인 북·중 국경이 봉쇄되니 인민들의 경제 활동은 마비 수준이다. 단둥, 연변 등지에서 원·부자재가 들어와야 경제가 돌아간다.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한 임가공 제품을 중국에 팔아야 돈이 도는데 2년 동안 먹고사는 활동이 중지됐다.

당국이라고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불만을 외부로 돌릴 수밖에 없다. 미사일 발사를 통해 외부의 적을 상기시켜 주민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전술이다. 새해 3일부터 평양 광장에서는 영하의 날씨에도 전원회의가 결의한 내용을 완수하자는 군중집회가 기관별, 계층별로 연이어 개최되고 있다. 인민들의 불만이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대중동원(mass mobilization) 전략’을 구사한다. 통제사회에서는 긴장의 일상화가 필요하다. 유일 수령 사상 체제에서 평화는 금물이며 끊임없이 미국에 의해 핍박을 받고 있다는 ‘포위의식(siege mentality)’이 필요하다.

임기 말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대화 재개 노력’이다. 문 대통령은 당일 오전 8시 10분 미사일이 발사됐지만, 헬기를 타고 강원도 고성군 제진역에서 열린 동해선 강릉~제진 철도건설 착공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철도 건설 사업에 대해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이 최우선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한 동해선과 경의선 연결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음을 밝혔다. 역사의 기억으로 사라진 판문점 선언에 대한 짝사랑이 새해에도 지속된 것이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를 열고,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정세 안정이 매우 긴요한 시기에 이루어진 발사”라며 NSC 상임위원들에게 “현재의 남북관계 경색과 긴장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2차 대전 히틀러의 침공에 대응하는 영국 챔벌레인 내각의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과 비유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한 1938년 뮌헨회담을 둘러싼 막전막후 상황은 1월 22일 넷플릭스에서 개봉된 영화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Munich: The Edge of War)]에 잘 나타나 있다. 외교 안보 부처들 역시 ‘결의 위반’, ‘도발’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유화적인 단어를 구사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해 9월 자신들의 무기 개발에 대해 ‘도발이라는 막돼먹은 평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 이후에는 정부 발표에서 ‘도발’이란 용어가 사라졌다.

정부의 북한 중심 대외전략은 동맹국과의 관계에도 이상기류를 만들었다. 북한의 극초음속미사일 발사 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과 6, 7일 이틀 연달아 전화 회담을 열어 북한에 대한 향후 대응과 상황 관리 문제를 논의했지만, 한국은 포함되지 못했다. 미국과 일본은 1월 6일 화상으로 열린 외교·국방장관안보협의체 회담(2+2)에서 북한의 극초음속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의무를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고 미 국무부가 밝혔다. 또 양국은 북한의 극초음속미사일 등에 대처하기 위한 기술 및 장비 등을 공동 개발하기 위한 연구 협정에 서명하기로 했다. 이들은 또 “향후 (북·중 등의) 극초음속미사일 기술에 대항해 양국은 협력해 공동 분석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당사자인 한국을 배제하고 미·일 간에 대응책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미·일 대북 군사 협력 확대에 한국 빠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11월 19일 조선인민군 수산사업소와 통천물고기가공사업소를 둘러보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이후 중국과 교역이 막히면서 식량 부족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3년째 육성 신년사를 생략하고 연말 최장 닷새 동안 미니 당대회를 개최했다. 당·정·군의 고위 간부인 당중앙위원 전원(200여 명)과 각급 지도기관과 공장 기업소 간부들까지 1000여 명이 평양 노동당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 모여 김 위원장 사회로 총 6개 의정을 상정하고 논의했다. 6개 의제는 ①’21년 집행 정형 총화 및 ’22년 사업계획 ②’21년 국가 예산 집행 정형 및 ’22년 국가 예산안 ③사회주의 농촌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당면과업 ④당규약 수정 ⑤당 중앙지도기관 성원들의 ’21년 하반기 당조직 사상 생활 정형 ⑥조직문제 등이었다. 김정은은 12월 27~28일 1, 2일 차에 참석해 총괄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마지막 날에 ‘당 제8차 대회가 제시한 5개년 계획의 2022년도 과업을 철저히 관철할 데 대하여’, ‘우리식 사회주의 농촌건설의 위대한 투쟁 강령을 철저히 관철할 데 대하여’ 등 2개 결정서를 채택했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이목을 끈 대목은 3번째 의제인 농촌 문제, 즉 먹는 문제였다. 전원회의 보도문에서 김정은은 농업과 농촌이라는 단어를 143회 언급했다. 지난 2012년 집권하면서 다시는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여전히 연 100만t가량 곡물이 부족하다. 지난해에는 날씨가 양호해 평년작을 넘는다고 하지만, 남한의 농촌진흥청은 북한 생산량이 470만t에 그쳤다고 추산했다. 부족분을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수입해야 하나 외화도 없고 코로나 비상방역으로 여의치가 않다. 자체 증산을 독려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전원회의에서는 당면 농촌 발전 중심 과업으로 ▷농업근로자의 정치의식 제고 ▷식량 문제 완전 해결 ▷농촌주민들의 생활환경 획기적 개선 등을 목표로 제시했다. 3대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으로 ▷농업 근로자 정치의식 제고 관련 ‘3대 혁명’(사상·기술·문화) 중요성 강조 ▷과학농사·종자혁명 및 재해성 이상 기후 대처 ▷벼·밀 농사 중점 ▷저수확지 개량 ▷축산·과수 증산 등을 강조했다. 과거와 다른 대책은 농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 확대 이외에 ‘농장 대부 면제’라는 특혜를 언급했다. 당국에서 받은 영농물자의 상환 부담 경감을 통한 농민 근로의욕 고취 차원으로 평가된다.

사실 증산의 핵심은 저가 농자재 공급 증대다. 질소, 인산, 칼리 화학비료 1t을 뿌리면 작물이 1.2t 증가한다는 사실은 농사의 기본이다. 비료, 농약, 종자 등 농자재 공급이 신통치 않고 협동농장의 생산량 중에서 60% 이상을 각종 명목으로 중앙에서 가져가니 농장원들 입장에서 영농 의욕이 생길 수 없다. 당국에서 농민 부담을 줄인다고 하니 주목할 필요는 있다. 당근과 채찍으로 동시에 농민들을 닦달해야 효과가 있다는 점을 노리고 있다. 북한의 식량 부족은 공화국이 해결해야 할 숙원사항이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북한 올림픽 불참 선언에 문 대통령만 머쓱


▎북한이 극초음속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1월 5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은 강원도 고성군 제진역에서 열린 동해선 ‘강릉-제진 철도건설 착공식’에 참석해 대화 재개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밝혔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전원회의에서 특이한 부분은 기존 9개 분과 이외에 대남·대외 분과를 추가했음에도 구체적 언급을 비공개한 점이다. 1만 8400자 분량 보도문에서 ‘다사 다변한 국제정치 정세와 주변 환경에 대처해 북남관계와 대외사업의 원칙적 문제와 일련의 전술적 방향들을 제시’했다고 짧게 언급했다. 애매한 표현으로 내부 논의 사항을 언급할 경우 남한을 비롯한 주변국의 자의적 해석이 오히려 손해라고 판단한 듯하다. 2022년 남한의 대선, 미국과 중국 및 러시아와의 충돌 등 유동적 국제 정세 아래에서 상황에 따른 대처 방침을 논의했으나 비공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북한은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최종 불참한다. 북한 참가를 위한 중국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설득안도 결국 무산됐다. [노동신문]은 1월 7일 북한 올림픽위원회와 체육성이 중국 올림픽위원회와 올림픽 조직위원회, 국가체육총국 앞으로 편지를 보내 “올림픽에 불참하지만, 중국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5일 리룡남 주중 대사를 통해 전달한 편지에서 북한은 “적대세력들의 책동과 세계적인 대유행전염병(코로나19) 상황으로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면서도 “우리는 성대하고 훌륭한 올림픽 축제를 마련하려는 중국 동지들의 모든 사업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참 사유로 ‘적대세력들의 책동’을 든 것이 눈에 띈다. 사실상 도쿄 하계올림픽에 이어 동계올림픽 불참은 코로나 비상방역과 경제난 때문이지만, 이를 밝히기보다는 미국의 대북제재 등에 책임을 돌린 것이다. 또한 IOC가 2020년 도쿄 올림픽 불참을 이유로 올해 말까지 북한올림픽위원회(NOC)의 자격을 정지한 징계도 의미한다. 북한의 이번 발표로 북한의 우방인 중국을 지렛대로 종전선언을 끌어내려던 문 대통령의 최후 구상도 틀어졌다. 그간 미국과 서방세계의 잇따른 외교적 보이콧 움직임에 거리를 둬온 문 대통령 역시 올림픽에 직접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문 대통령은 대신 1월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종전선언은 종 칠 때가 됐다. 북한의 올림픽 불참 선언으로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과속 주행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이 각각 3차례 진행됐으나 북한의 비핵화는 전혀 진전이 없었고, 되레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고도화만 허용했다. 이제 무산된 종전선언 등 ‘가짜 평화 쇼’를 접고 정권 변동기를 맞아 차분히 공과를 분석하는 백서를 발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동안 ‘기승전 종전선언’의 부작용은 필설로 다 할 수 없다. 외교력이 제한적인 한국 입장에서 모든 힘을 종전선언에 올인함에 따라 경제적 이득 양보가 불가피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29일 브리핑에서 새해 최우선 외교 목표로 국민 보호와 함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를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북핵의 불가역적 폐기를 언급해야 하는데 잘못된 대북정책의 불가역성을 강조했다.

안보에는 무임승차가 없고 외교에는 공짜가 없다(Diplomacy is not free). 프랑스 상원이 정월 초 종전선언을 지지해줄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고 하는데, 정말 아무 대가 없이 이루어졌다고 이해하는 인사는 아직 외교의 복잡한 이면을 모른다고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 상원은 종전선언은 중국과 북한에 선물을 안기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임기 후반기에 실익이 없는 사안에 외교력을 집중하는 것은 국력 낭비다.

새해는 경제안보 전쟁의 시대다. 우크라이나 국경에는 전운이 감돌면서 유럽으로 연결되는 러시아의 가스관이 잠겼다. 한겨울에 가스 가격이 34% 폭등했다. 카자흐스탄은 LPG 가격 상승으로 시민 폭동이 발생했다. 인도네시아는 자국의 에너지 확보를 이유로 1월 한 달간 석탄 수출을 중지했다. 인도네시아에서 20% 석탄을 수입하는 한국은 요소수 사태가 재연되지 않을까 한 치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는 지난 연말 4500억 달러의 외화 보유고를 이유로 종료됐다. 일본은 달러 보유고가 부족해서 미·일 통화 스와프를 연장한 것이 아니다. 경제안보동맹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실체가 없이 유령처럼 청와대 인근을 떠도는 종전선언은 임진왜란 당시 맹목적으로 이순신 장군을 의심했던 선조의 무지와 무능함에 비유하지 않을 수 없다.

문 정부, 5년간 평양이라는 허상만 바라본 꼴

종전선언에 대한 집착은 핵심보다는 지엽적인 시각에 머물고, 일의 우선순위를 간파하지 못했으며, 평양의 의도를 왜곡하고, 21세기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위상과 능력을 가늠하지 못한 결과다. 대통령이 외국 순방에서 특급 대우를 받는 데 감격해 국민에게 한국의 국력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훈시하는 것은 사안의 본질에 대한 곡해다. 반도체와 배터리를 수출해서 먹고 살 만해졌다고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남한 사회의 빈부 격차와 양극화는 위험 수준이다. 우리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고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평균적인 삶을 만드는 데 청와대의 존재 의의가 있다. 철 지난 민족주의에 집착해 5년간 평양이라는 허상만 바라보고 국정을 낭비한 데 대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

서울과 평양은 가는 길이 다르다. 김정은 집권 10년 동안 4차례 핵실험과 63차례 미사일을 발사했다. 5년 단임제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제왕적 권한을 행사한다. 지도자의 선택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탈원전에 부동산가격 폭등으로 국민의 삶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60%에 달한다.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정책이 대북정책이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물거품이 된 대북정책을 유일한 레거시(legacy, 유산)로 삼고 싶지만 이제 정책 실패에 대해 냉정하게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 냉정한 검토 보고서를 내놓아야 차기 정부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202호 (2022.0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