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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북한통’ 김영수 교수가 말하는 ‘김정은 체제’ 10년 

“개인주의 확산·新경제세력 등장… 상류층은 '사랑의 불시착' 즐겨”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상업자본 ‘돈주’와 조폭 ‘꽃제비’ 늘었지만 그들도 체제 순응 세력
김정은 체제 안착돼 구조적으로 반란·집단봉기 생길 수 없는 사회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 및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 교수는 1월 3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상류층의 한국 문화 향유 현상과 자본을 바탕으로 한 신흥 세력의 성장이 있지만, 북한 사회의 변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김정은(38) 체제가 들어선 지 만 10년이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17일, 부친 김정일 사망 뒤 단숨에 북한 최고 권력을 움켜쥐었다. 김정은이 권좌에 올랐을 때만 해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권력 기반과 연륜 부족 등을 이유로 김일성-김정일만큼 장기 집권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견고했다. 10년 동안 철옹성을 쌓으면서 이변이 없는 한 김정은의 통치가 오래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북한 내부 사정은 좋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한국국방연구원이 발간한 [김정은 집권 10년 군사 정책 평가와 전망]을 보면 김정은 집권 이후 핵·미사일 고도화에 의존한 국방정책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를 초래하면서 경제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지난해 거시경제 지표가 김정은 집권 10년 중 최하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이에 북한은 내부 결속력 강화를 위해 최고 지도자 권한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당대회를 개최해 당규약을 변경했고, 내부 인물을 대폭 교체해 충성심을 강요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상 통제를 강화하고 통제 조직·기구의 규모도 점차 확대했다.

김정은 체제 10년을 평가하고 북한 사회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중앙일보·JTBC 최고경영자 과정인 ‘J포럼’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 및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 교수와 만났다. 개인주의의 확산, 부를 축적한 신흥 경제 세력의 등장, 남한 문화를 향유하는 북한 특권층 등 김정은 정권의 내부 단속에도 불구하고 여러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드라마 8부작 구입 비용, 평균 월급의 20배


▎평양 남북정상회담 첫 날인 2018년 9월 18일 오후 평양 시내에서 시민들이 일상을 보내고 있다. /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도 양력설, 음력설을 쇠는가?

“올해 북한 달력을 보니 1월 1일은 양력설, 2월 1일은 설 명절로 적혀 있었다. 김일성 주석 시절에는 음력설은 봉건 잔재라고 쇠지 않았다. 아울러 주체연호을 쓰면서 그런 경향이 더욱 강화됐으나 1989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수 전통을 계승하라고 지시하면서 음력설을 기념일로 지정했다. 이후 2003년에는 공휴일로 지정됐으며 매년 상황에 따라 최대 사흘 연휴를 보냈다. 2006년에 처음으로 음력설을 ‘설 명절’이라는 공식 용어로 바꿨다.”

새해맞이 행사 개최와 함께 추가 배급이나 선물 등이 지급되는가?

“12월 31일 밤 신년 경축 공연과 새해맞이 음악회 등이 열렸다. 다만 올해는 레이저쇼, 드론쇼 등이 없이 대거 간소화해 치렀다. 아울러 예전에는 설 명절에 선물이나 특별 공급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거의 없어졌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왕눈깔 사탕’을 500g 줬다는 뉴스도 있었는데 작년부터는 그런 뉴스를 볼 수 없다.”

작년부터 내부 단속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우니 경제적 불만이 점차 쌓여갔다. 그래서 작년부터 ‘사상을 뼈에 쪼아 박아라!’ 등 체제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경제 위기가 자칫 정치 위기로 번지는 위험을 차단하는 것이다.”

북한은 체제 강화를 목적으로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채택하고 2021년부터 시행했다. 국정원 분석에 따르면 남한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는 최대 징역 15년에 처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 등 남한 영상물이 북한 사회에서 인기를 끌고 있나?

“남조선 영상물을 볼 수 있는 계층은 상층부 사람 극소수에 그친다. 북한 계급 구조에서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만 ‘비싼’ 남한 드라마를 볼 수 있다.”

‘비싸다’는 건 어느 정도를 말하나?

“예를 들어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총 16부작인데 현재 북한에는 8부작밖에 없다. 그런데 이 8부작 드라마를 보려면 북한 돈으로 9만~10만원을 내야 한다. 북한 평균 월급이 5000원이니 북한 사회에서 남조선 영상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잘산다는 말이다.”

한국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면 ‘한류’를 의미하는 건가?

“한류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다. 남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북한의 최상층이기 때문에 북한 전체로 놓고 보면 아주 미미한 수에 불과하다. 하층민은 볼 수 없다.”

유통 과정이 궁금하다.

“[사랑의 불시착]을 예로 들겠다. 전체 16부작 중 남은 8부작을 ‘꽃제비’들이 인공위성을 이용해 다운로드받은 뒤 복사해서 팔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통은 판매자들이 단속을 피하기 위해 콧구멍에 SD카드(우표 크기의 플래시 메모리 카드)를 여러 개 넣어 운반하고 구매자에게 넘겨준다.”

‘꽃제비’는 누구인가?

“꽃제비의 어원을 두고 누군가는 집이 없는 고아들이 연탄불이나 석탄재를 뿌린 데서 자다 보면 얼굴은 까맣고 배만 하얀 제비처럼 보이는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고, 러시아 단어라는 추측도 있다. ‘고난의 행군’ 이후에 가정이 붕괴하면서 고아로 떠돌아다니는 불량소년들을 꽃제비라고 했다. 1990년대 중·후반에 많이 생겼는데 2020년이 되니 다들 성인이 됐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조폭’이 됐다.”

고난의 행군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후 나라의 경제사정이 극히 어려워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내놓은 당적 구호로서, 1996년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제시됐다. 당시 최소 수십 만의 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사회에서 조폭이 활동할 수 있나?

“고난의 행군 이후에 세력화된 꽃제비들이 이제는 노(老)제비가 됐다. 이들이 새로운 청(靑)제비를 찾아 계속 키우고 있다. 보통 노제비 한 명이 청제비 10~15명을 키우는데 꽃제비는 북한 보위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을 처리한다.”

그들이 북한 정권과 연결돼 있다는 소리인가?

“보위부에서 일명 ‘강타기’를 시켜 마약을 포함한 여러 물건을 밀수할 때 활용한다. 다른 기타 범죄 행위에도 이용된다. 지방마다 꽃제비가 있는데 이 그룹들은 체제를 유지하는 입장에서 이용 가능한 대상이다. 꽃제비는 반(反)체제 성향이 아니다. 특히 북한 전역에 2000여 개로 장마당이 늘어났는데, 그만큼 꽃제비가 얻어먹고 살 장터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조직화하고 제도화될 수 있었다.”

장마당에서 상인의 권력이 커지고 있다고 들었다.

“북한은 1958년부터 개인 상업을 금지했다. 다만 농민시장의 이름으로 농민이 곡식만 팔 수 있었다. 다만 생활필수품이 필요하니 암시장화돼갔다. 그러던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인 2002년 7·1 조치로 종합시장을 만들어준다. 부를 쌓기 시작한 상인들이 북한 당국의 금융시스템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자 북한 정권은 2009년 11월 화폐 개혁을 단행한다. 상인들의 부를 휴짓조각으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상인들은 미국 달러 등의 외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본격적으로 달러를 모으기 시작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들어선 2012년에는 다시 장마당을 활성화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고난의 행군 이후로 성장한 계층이 권력을 갖게 됐다.”

경제 권력을 의미하는가?

“그렇다. 북한은 개인에게 은행에서 대출해주는 시스템이 없다. 결국 북한 주민이 급히 돈이 필요하면 상인들에게 빌려야 한다. 즉, 물건만 파는 상인에서 돈을 파는 상인이 생긴 것이다. ‘돈주’라고 부르는데 원래는 재일교포나 화교가 이 역할을 담당했는데 다 사라졌고, 장마당이 커지면서 돈을 번 신흥 부자들이 고리대금업을 하는 ‘돈주’가 됐다.”

“상층부에서 당과 김정은 배반할 사람 없어”


▎회령시의 공개 처형장에 동원된 북한 주민들. 북한 사회에서 수령을 제거하고 영웅이 될 가능성은 0%다.
신흥 권력·세력은 그 사회 변화를 갈망하기도 하는데.

“프랑스 혁명 과정처럼 상업자본이 커지면 북한 체제가 붕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론적으로 아니었다. ‘돈주’ 역시 반체제 세력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당에서 ‘돈주’를 소집해 아파트 3개 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통상 돈을 뜯어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북한에서는 3개 동 중 하나를 돈주에게 준다. 돈주 입장에서는 분양권을 갖게 되니 투자다. 당 입장에서는 자금이 없어 아파트를 세울 수 없었는데 아무 돈을 들이지 않고 건물을 세우고 돈주 입장에서는 투자한 것이니 서로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돈주는 철저하게 당의 우산 속에서 먹고사는 것이다. 그 안에서 경제 권력을 유지해간다.”

체제 순응이 아닌 저항 세력은 존재하지 않나?

“많은 사람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없다. 군부 쿠데타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고 예측하는 사람도 있지만 발생할 수 없는 구조다. 북한 주민은 체제 저항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른다. 시위·데모라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울러 어릴 때부터 체제에 잘못하면 연대책임으로 온 가족이 수용소로 가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총대를 메는’ 심리가 없다. 북한 사회에서 수령을 제거하고 영웅이 될 가능성은 0%다.”

좀 자세히 설명해달라.

“저항하려면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뜻을 모으고 함께해야 하는데 규합할 수가 없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규합을 시도하면 바로 잡혀간다. 북한은 3개 기관이 휴대전화를 감청한다. 또한 결의문·선동문을 만들려고 해도 한 달 월급으로 A4 용지를 20장 정도밖에 못 산다. 돈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다.”

한국 드라마를 본 상류층이 문화 충격을 받고 변화를 갈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은 우리의 시각이다. 북한에서 상류층이라는 것은 이미 ‘여과된’ 사람들을 뜻한다. 예를 들어 50대가 된 어떤 상류층 남성이 당 구호를 외우고 당적 활동을 하는데 눈빛이 흔들린다면 제거 대상이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북한 사회의 피라미드 상층부에는 당을, 김정은을 배반할 사람이 없다.”

수많은 탈북민이 한국을 선택하지 않았나?

“지금까지 들어온 탈북민 3만5000여 명 중 고위층은 거의 없다. 평양 출신도 기껏해야 1~2% 정도로 북한 사회에서 소위 성분이 좋지 않아 힘들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극히 소수의 고위급 인물이 한국을 선택한 이유도 자식이 외국에서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들어갔다는 정보 때문에 왔다고 들었다. 북한 사회 내부의 저항세력과 관련해 정치·문화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가능성이 ‘크지 않다’가 아니라 ‘없다’고 본다. 저항·반란·집단봉기가 생길 수 없는 구조다.”

북한 사회에 개인주의는 없는가?

“북한 주민들은 공적 선호와 사적 선호의 두 가지 마음을 갖고 있다. 인식의 이중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고난의 행군 이후부터 조금씩 갖게 됐으며 이제는 생활화돼 있다. 개인주의 대신 ‘리기주의’, ‘리기주의를 자유주의한다’고 표현하는데 보통 ‘생활총화’라는 공적 장소에서는 공적 마음을 드러내고 행사가 끝나면 ‘당이고 수령이고 무슨 소용이 있나. 내 돈이 제일 중요하지’라는 마음을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통치 비용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예전 같으면 당에서 한 번 말하거나 지시하면 될 것을 이제는 두 번, 세 번은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처벌의 종류와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아울러 ‘리기주의’, 개인주의가 증가하면서 ‘뇌물’을 많이 주고받는다. 개인이 마음먹은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관철하려면 뇌물을 줘야 한다. 공적 루트로는 안 되니 뇌물을 주면서 나의 사적 선호를 취하는 것이다. 다만 이기주의는 분절화한 개인의 불만이나 욕구이기 때문에 이 욕구를 집단화할 수 없으므로 저항으로 이어질 수 없다.”

“우리 바람대로 북한 이해하려는 자세는 곤란”

우리 사회의 ‘MZ세대’처럼 북한에서도 세대를 구분하나?

“우리식의 세대 구분은 없다. 다만 문학 작품을 통해 북한 사회를 1세대, 2세대, 3세대, 4세대로 구분한다. 1세대는 김일성 수령의 세대, 2세대는 김정일 장군의 세대, 3세대는 김정은 세대라고는 하지 않지만 요즘 주류 세대를 뜻한다. 4세대가 ‘신세대’로 중학생, 고등학생을 뜻한다. 북한 드라마나 영화·문학 작품에서는 4세대를 자기 멋대로 하는 아이들로 그린다. 그러던 아이들이 혁명의 어려움, 당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었는지 배우게 되면서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북한에서는 이렇게 4개의 세대 구분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상대를 알아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다만 한국 사회는 상대를 보는 것보다 나의 바람, 꿈을 앞세워 북한을 이해하려고 한 측면이 있다. 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아울러 남북한의 만남이 너무 정형화돼 있다. 양측 정상의 만남 등 고위급 만남에 큰 비중을 두니 이산가족 등 일반인의 작은 만남은 늘 후순위였다. 이산가족이 이제 3만 명 남았다. 매달 350여 명씩 돌아가시는데 3년 후면 만날 사람이 사라진다. 통일을 해나가는 과정은 긴 호흡으로 하되 큰 만남과 함께 작은 만남에도 비중을 두고 ‘잦은 만남’이 일상화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 J포럼은 - 2009년 국내 언론사 중 중앙일보가 최초로 시작한 최고경영자과정이다. 시사와 미디어·경제·경영·역사·예술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강좌와 역사탐방, 문화예술 체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로 14년째를 맞이한 J포럼은 매년 두 차례(봄·가을) 원우를 선발하여 진행된다. 그동안 졸업생 1100여 명을 배출해 국내 최고의 오피니언 리더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학습과 소통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문의·접수: J포럼 사무국(02-2031-1018), http://ceo.joongang.co.kr

- 글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cho.kyuhee@joongang.co.kr / 사진 김경빈 선임기자 kgboy@joongang.co.kr

202202호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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