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정밀취재] 환경부와 생분해 플라스틱 업계 갈등 내막 

환경부 “자연 분해 잘 안 돼 친환경 인증 제외”… ,업계 “현실적 대안 없어 환경 파괴 심해질 것”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11월부터 슈퍼마켓·편의점에서 쓰레기 종량제 비닐봉지·종이봉투만 취급
업계 “시장 성장 가능성 높은데, 정책 변경으로 업계 동력 상실 우려” 주장


▎세븐일레븐·CU· GS25 등 편의점 업계는 지난해부터 생분해 플라스틱 원료로 만든 친환경 비닐봉지를 도입해 매장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가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을 친환경 인증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오는 11월부터 친환경 인증 기간 만료에 의해 생분해 플라스틱 비닐봉지 사용이 중단될 예정이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정책을 바꾸는 것은 국민을 위한 행정이기도 하지만 관련 업계는 몸살을 앓기도 한다. 최근 환경부(장관 한정애) 고시(告示) 개정으로 울상인 업계가 있다. 바로 생분해 플라스틱 가공 업계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1회용품, 앞으로 환경표지 인증 못 받는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핵심은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을 포함한 1회용품을 친환경 인증에서 제외하는 ‘환경표지대상제품 및 인증기준’ 고시 개정안을 11월 5일부터 21일간 행정예고한다는 내용이었다.

환경부 홈페이지를 기준으로 ‘환경표지대상제품 및 인증기준’에 대한 행정예고는 지금까지 세 차례 이뤄졌다. 그 가운데 1회용품을 친환경 인증에서 제외하는 11월 5일 자 행정예고에는 이례적으로 27개 의견이 게시돼 눈길을 끈다. 이는 환경부 행정예고 총 495건 가운데 13번째로 의견이 많이 달린 행정예고다(2월 17일 기준). 더욱 눈길이 가는 건 이 행정예고에 대한 찬반 비율이다. 전체 27개 의견 중 행정예고를 찬성한다는 의견은 없다(반대 21건, 기타 6건). 그만큼 반발이 심하다는 얘기다. 환경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주요 의견은 다음과 같다.

“전통시장, 지역행사, 배달업체, 캠핑장, 장례식장 등 아직도 사회 전반에는 필수 불가결한 이유로 1회용품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모든 1회용품을 규제할 경우 사회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2021년 11월 22일 문모씨), “친환경 제품에 대한 재활용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한 뒤에 1회용품 규제에 대한 강한 행정입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2021년 11월 25일 신모씨), “법률을 개정하고 싶으면 관련 업계와 단가·유통·생산·품질성 등을 협의한 뒤에 진행해야 옳다.”(2021년 11월 26일 박모씨)

환경부 “각계 의견 충분히 듣고 결정”


▎생분해 플라스틱 업계는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을 친환경 인증 대상에서 제외하면 생분해 기능이 없으면서 미세플라스틱을 발생시키는 유사제품이 많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사진:녹색연합
환경부는 고시 개정을 이미 끝마친 상태다. 지난해 8~10월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지난해 11월 행정예고를 거쳐 지난 1월 고시 최종안을 공포했다. 이로써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은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오는 11월 24일부터는 편의점과 슈퍼마켓 등 소매점에서 생분해 플라스틱 봉지 대신 쓰레기 종량제 비닐봉지와 종이봉투만 취급될 예정이다.

환경부의 정책 변경에 업계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생분해 플라스틱 가공업체 관계자 A씨는 월간중앙과의 전화 통화에서 “환경부가 갑작스레 의견수렴 기한을 알려와 부랴부랴 의견서를 작성해서 냈지만 결국 업계의 의견이 행정예고에 반영되지 않았다. 의견수렴에 대한 결과 통보도 전혀 없었다. 환경부가 업계 의견을 듣지 않고 고시 개정을 밀어붙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환경부는 “고시 개정과 관련해 소비자단체, 환경 전문가 등과 심도 있게 논의했다”며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는 입장이다. 월간중앙이 2월 3일 입수한 ‘환경부 고시 개정 전 이해관계자 의견청취 내용’을 보면 한국석유화학협회·한국바이오협회 등 생분해 플라스틱 업계에서는 별도 수거 체계 및 퇴비화 시설을 갖출 경우 환경적 이점이 있으므로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친환경 인증을 유지해야 한다고 환경부에 건의했다. 반면, 소비자단체 등에서는 친환경 인증에 1회용품이 포함되면 인증에 대한 신뢰도를 훼손할 수 있어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을 친환경 인증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을 환경부에 전달했다.

취재 결과, 환경부가 업계 대신 소비자단체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이라도 1회용품에 친환경 인증을 부여할 경우 1회용품이 친환경 제품이라고 오인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점 ▷매립이 어려운 국내 여건상 대부분의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이 소각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 전문 퇴비화 시설이 없어 대부분 일반쓰레기처럼 소각되거나 매립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은 180일 동안 58℃가 유지될 경우 90% 이상 생분해가 가능하다. 즉 환경부는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이 한국의 자연조건에서는 생분해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 친환경 인증에서 제외한 것이다.

하지만 업계의 의견은 다르다. 생분해 플라스틱 업체 관계자 B씨는 “환경부가 고시 개정으로 비닐봉지 등 1회용품 포장재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을 친환경 인증 대상에서 제외하면 생분해 기능이 없으면서 미세플라스틱을 발생시키는 유사제품이나 여러 가짜 제품이 판칠 것”이라며 “그러면 일반 플라스틱이나 종이 재질의 1회용품 사용량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는 환경부가 대안으로 내세운 종이 재질의 1회용품, 즉 오는 11월 편의점 등에서 생분해 플라스틱 비닐봉지 대신 사용 될 종이봉투도 절대 친환경 제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생분해 업계 관계자 A씨는 “종이봉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접착제나 표백제 사용이 늘어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했을 때보다 환경을 더 오염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C씨는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이 매립되지 않고 소각되고 있다는 환경부 주장에 대해 “소각을 하려면 수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렇다면 산과 바다 등 야외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제품은 어떻게 수거할 것인가. 결국 효율이 낮더라도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어 수거가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어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은 소재마다 분해 조건이 다르다. 또 앞으로 기술 개발과 인프라 구축으로 충분히 자연조건에서의 생분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계 “취지엔 동의하지만 영세한 업계 상황 고려해야”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은 2018년 3조5000억원에서 2023년 7조1000억원 규모로 연평균 약 15.1% 성장할 전망이다.
월간중앙 취재에 응한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1회용품을 줄이자는 환경부의 취지에는 적극 동의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고시 개정에 따른 정책 변경으로 업계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업계의 상황을 고려한 점진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B씨는 “국내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 생산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하다”며 “환경부에서 친환경 인증을 안 해주겠다고 하면 앞으로 누가 값비싼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을 구매하겠느냐”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생분해 플라스틱 비닐봉지는 일반 플라스틱으로 만든 비닐봉지에 비해 3배가량 가격이 높다. 그런데도 편의점과 기업에서 생분해 플라스틱 비닐봉지 등을 널리 사용한 이유는 친환경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폐기물 부담금 면제라는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다. 또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공감대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 사용이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A씨는 “하지만 환경부에서 발표가 있고 난 뒤부터 성사 단계에 있던 기업과의 계약이 엎어지거나 보류된 상태”라며 “만약 지금과 같은 상태가 장기화하면 회사 경영이 힘들어질까봐 걱정”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일자 환경부는 1월 7일 이례적으로 추가 설명 자료를 배포했다. 자료에서 환경부는 “정부만 믿고 투자해온 업체들이 판로를 잃게 됐다”는 지적에 대해 “생분해 플라스틱 업체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환경성 제고를 유도하기 위한 지원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설명 자료에 따르면 환경부는 현재 환경표지 인증의 유효기간(3년)을 인정해 투자한 업체들의 투자자금 회수 기간을 담보했다. 또 환경표지 대상에서 모든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을 제외하지 않고 농업용 필름, 수의용품 등 회수가 곤란한 제품은 친환경 인증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어 환경부는 “추가적인 환경성 개선을 위해 인증기준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생분해 플라스틱 업체가 바이오매스 다회용품 생산업체 등으로 전환할 시 초저리 정책융자 및 국고보조 지원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환경부가 내놓은 대책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언제 또 정부 정책이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감돈다. 정부가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장려하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경부는 2003년부터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친환경 인증 기준을 발표했고, 이에 많은 업체가 해당 사업에 뛰어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2020년 12월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 산업 육성 계획을 발표하고, 올해까지 울산시에 바이오화학 소재 공인인증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화이트바이오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친환경 소재 유망 중소·벤처기업 사업화에 3년간 최대 30억원을 지원한다는 약속도 했다. 성윤모 산업부장관은 당시 “화이트바이오 산업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탄소 저감,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등에 있어 유용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화이트바이오는 옥수수·콩·목재류 등 재생 가능한 식물자원을 원료로 화학제품 또는 바이오연료 등을 생산하는 기술이다.

정부의 장려 방침에 자치단체들도 호응했다. 울산광역시는 지난해 11월 5일 ‘생분해 바이오플라스틱 제품 시연회’를 연 뒤 참석자들과 생분해 바이오플라스틱 사용 활성화 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갖기로 했다. 바이오플라스틱은 미생물에 의해 쉽게 분해되는 생분해 플라스틱과 식물성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만드는 플라스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당시 송철호 울산시장은 “친환경 기술이 적용된 생분해 바이오플라스틱 시연을 시작으로 바이오화학 기업들이 울산에서 자리매김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이번 사업에서 최적의 생분해 장소를 제공하고, 소비자의 의견수렴을 위해 시민과의 소통 창구도 마련하겠다. 아울러 울산시는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이 널리 사용되기 위한 조례제정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 생분해 제품 시장, 연평균 15% 성장 전망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일상화하면서 음식 배달, 온라인 쇼핑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는 플라스틱 사용량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정부가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장려해놓고 이제 와서 친환경 인증에서 제외하는 불이익을 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 측 주장이다. 생분해 플라스틱 친환경 인증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모양새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바이오플라스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기 때문이다. 진인주 한국바이오플라스틱협회 회장은 1월 19일 열린 ‘2022 친환경 플라스틱 산업 콘퍼런스’에서 “바이오플라스틱 시장은 아직 규모가 작지만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고 그 잠재력도 크다”며 “생분해 플라스틱은 비분해성 플라스틱에 의한 환경부담을 저감할 수 있고 바이오매스 플라스틱은 식물 유래자원에 의한 저탄소 및 리사이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2050년 탄소중립 도달을 위해 많이 활용해야 할 물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전 세계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은 2018년 3조5000억원에서 2023년 7조1000억원 규모로 연평균 약 15.1%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대기업들도 해외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 기술 개발 및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2월 14일 석유화학 기반의 생분해 플라스틱 소재인 PHA 생산 기술 개발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PHA는 생분해 플라스틱 소재 가운데 하나로 포장재, 의료용 제품 등에 쓰인다. 일반 플라스틱 소재보다 생산 과정에서 탄소저감 효과가 뛰어난 친환경 고부가 소재로 꼽힌다. LG화학은 지난해 8월부터 폐식용유 등 식물성 바이오 원료를 적용한 고흡수성수지(SAP)를 중동 고객사에 납품하기 시작했으며, 곡물 기업인 미국 ADM사와 손을 잡고 2025년까지 미국에 7만5000t 규모의 PLA(생분해 바이오 플라스틱)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2050년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량은 340억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 플라스틱 의존도를 기폭시켰다. ‘2022 교보지식포럼’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플라스틱 사용량은 2019년 대비 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역시 비대면에 의한 음식 배달, 온라인 쇼핑 등의 활성화로 플라스틱 사용량이 증가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마스크에도 1장당 플라스틱 약 4g이 들어간다. 전 세계에서 매달 버려지는 마스크는 1290억 장 정도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플라스틱 제품 줄이기는 거스를 수 없는 전 세계적 흐름이 됐다. 다만 플라스틱 사용을 원천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적 상황인 만큼 생분해 플라스틱 개발을 꾸준히 이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한 자원순환 관련 연구기관 인사는 월간중앙과의 전화 통화에서 “현재 생산되는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은 보완할 점이 많기 때문에 환경부의 결정을 십분 이해한다”면서도 “다만 생분해 플라스틱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세계적으로 시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번 정책 변화로 자칫 업계가 성장 동력을 상실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202203호 (2022.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