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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 (37)] 중국 2부팀 맡은 첫해에 승격 이끈 서정원 청두 감독 

“‘넌 아마추어야’라는 말 프로에게 가장 심한 욕” 

술·담배·프림커피 안 먹는 ‘자기관리 달인’ … 39세까지 유럽서 뛰어
“슬럼프 탈출 방법은 땀방울 뿐, 은퇴 하는 날까지도 부족함 고민해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포토스튜디오에 나타난 서정원 감독은 언제나처럼 깔끔한 옷차림, 서글서글하게 웃는 모습 그대로였다. / 사진:전민규 기자
서정원(52) 감독은 ‘자기관리의 달인’이다. 나는 20여 년 동안 몇 년 간격으로 그와 인터뷰를 했는데 만날 때마다 늘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늘 단정했고, 잘 웃었으며, 어떤 일에도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2005년 12월 1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홍명보장학재단 자선 축구대회. 이날 기록적인 폭설이 내려 경기장이 눈밭으로 변했다. 하얀 축구공이 잘 보이지 않아 급히 빨강 매직으로 칠을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체감 기온 영하 20도의 강추위와 엉망이 된 그라운드에서 가장 열심히 뛰고 돋보인 선수는 35세 노장 서정원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핌 베어벡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가 “서정원을 다시 대표팀에 뽑아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수원 삼성 사령탑에서 내려온 뒤 잠시 시야에서 사라졌던 서정원 감독이 중국에서 ‘축구 지도자 한류’ 열풍에 불을 댕겼다. 중국 2부리그 클럽 청두 룽청을 맡은 첫 해 1부(슈퍼리그) 승격을 이끌어 낸 것이다.

중국서 ‘축구 지도자 한류’ 열풍 일으켜


▎중국 프로축구 2부리그 청두 룽청에 부임한 첫해 슈퍼리그(프로 1부리그) 승격을 이끈 서정원 감독. / 사진:청두 룽청 홈페이지
서 감독이 이끄는 청두는 지난 1월 12일, 2021시즌 중국 프로축구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다롄 프로를 1-0으로 꺾었다. 앞선 1차전을 1-1로 비긴 청두는 2차전 전적을 묶어 2-1로 앞서 1부 승격의 기쁨을 맛봤다. 청두가 1부리그 무대를 밟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로 돌아와 자가 격리를 마친 뒤 짧은 휴가를 보낸 서 감독은 그 와중에도 올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수원 삼성에서 사제의 인연을 맺었던 미드필더 김민우를 영입하는 등 전력 강화에도 공을 들였다.

중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서 감독을 만났다. 그는 여전히 깔끔하고 온화했다. 그러나 ‘프로다움’에 대해 얘기할 때는 한 치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승격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청두는 어떤 팀인가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슈퍼리그에서 강팀이었고 열성적인 서포터로 유명했죠. 그러다가 계속 하부리그로 강등 당해 4부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싱청그룹이 축구단을 인수했습니다. 그 이후 차근차근 상위리그로 밟아 올라가 드디어 슈퍼리그에 재입성하게 된 거죠.”

중국 프로축구에는 거품 낀 팀들이 많은데 그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거죠?

“맞습니다. 차근차근 인프라를 준비해 온 팀입니다. 사실 중국에서 처음 오퍼를 받은 팀은 슈퍼리그(1부) 소속이었어요. 그런데 협상을 위해 중국에 건너가서 처음 만난 팀이 청두였습니다. 팀의 전체적 재정, 비전, 목표가 워낙 확고했고 계획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2부부터 도전해 보자’고 마음먹고 바로 계약을 했죠. 청두는 축구장 17개를 갖춘 트레이닝 센터와 클럽하우스, 의료 시스템과 호텔을 갖춘 초대형 시설을 짓고 있습니다. 중국 대표팀의 트레이닝 센터로 활용한다는 계획도 있더라고요.”

아무리 모그룹의 지원과 철학이 좋아도 결국은 2부리그 소속의 중국 선수를 데리고 팀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 아니었나요?

“좋은 환경에서 시작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힘든 데서 만들어 가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선택했어요. 역시 쉬운 건 아니더라고요. 중국 선수들은 우리나라나 유럽과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제 나이에 맞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부분도 있다 보니 성인이 되면 체력과 멘탈면에서 많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 부분들을 만져가면서 조금씩 습관을 고쳐주다 보니 선수들의 모습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마지막에 좋은 결과도 얻은 것 같습니다.”

피 말리는 승강 플레이오프(PO)를 치렀는데요.

“우리는 먼저 승강 PO에 진출해 1부에서 내려오는 상대팀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장외룡 감독님께는 죄송한데 사실 장 감독님 팀(충칭 량장)이 내려왔으면 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선수들을 워낙 잘 가르치시고 팀을 잘 만들어서 예상치 못한 다롄이 내려온 겁니다. 그 팀에는 중국 국가대표 4명, 스웨덴 대표도 2명이 포진해 있어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K리그에서 뛰었던 호물로가결승골을 터뜨려 힘겹게 이겼지요.”

싱청그룹 회장님이 개선하는 선수단을 맞으러 공항까지 나오셨다면서요?

“맞습니다. 공항 입국장을 가득 메운 수백 명의 축구팬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시다가 저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싱청그룹이 지난해 목표가 두 개 있었는데, 하나가 세계 500대 그룹으로 발돋움하는 것이고, 또 하나가 축구단의 슈퍼리그 승격이었답니다. 그 두 가지가 다 이뤄졌으니 그야말로 겹경사를 맞은 거죠. 회장님은 자주 경기장에 오셔서 선수단을 격려해 주셨고, ‘선수들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고쳐서 진정한 프로팀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시면서 필요한 것을 다 들어주시고 든든하게 후원해 주셨죠.”

모친상 당했지만 코로나 탓에 장례식 못 가


▎승격 확정 직후 헹가래를 받는 서정원 감독. 그는 “선수들의 나쁜 습관을 고쳐주는 데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 사진:청두 룽청 홈페이지
다롄과의 2차전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승격이 확정됐을 때 서 감독은 먼저 하늘을 쳐다봤다. ‘어머니, 보고 계시죠?’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서 감독은 지난해 8월 사랑하는 어머니(故 석춘옥 씨·향년 95세)를 떠나보냈다. 원정경기를 치르기 위해 숙소에 도착한 직후,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다.

급히 귀국 일정을 알아봤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만류했다. 코로나19팬데믹 상황 속에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항공편이 줄어 장례식 기간 내 건너갈 방법이 없었다.

어머니 가시는 길을 지키지 못했는데요.

“당시에는 정말 난감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중요한 3라운드 원정경기를 앞두고 있었지만 당연히 한국에 가야 하는 건 맞는데 코로나 때문에 비행기 표가 1주일 뒤에나 나온다는 겁니다. 가족들도 ‘이런 상황에 온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다. 어머니도 충분히 이해하실 거다’고 했지만 1주일 동안은 혼자 밤에 힘들어하고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뭔가를 꼭 만들어야 되겠다’는 결심을 다졌죠. 마지막 경기 나가기 전에도 부모님 생각을 했는데 저한테 많은 힘을 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끝난 뒤에 하늘을 올려다봤죠(서 감독은 이 말을 하면서 또다시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뭔가요?

“제가 9남매 막내로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랐어요. 운동 하느라 중학교 때부터 떨어져 있긴 했지만요, 어머니는 제 체격이 왜소한 걸 늘 걱정하시면서 분유를 물에 타서 주시곤 했어요. 지금도 그 컵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6·25 때 이북에서 내려오신 분인데 정신적·육체적으로 매우 강하셨어요. 부모님의 좋은 정신과 체력을 물려받은 게 저로서는 가장 큰 선물이죠.”

중국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베트남에게 1-3으로 지면서 본선 진출이 좌절됐죠. 크게 흔들리고 있는 중국 축구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뭡니까?

“중국 프로축구나 국가대표팀이나 거품이 빠지고 있는 건 사실이고, 바뀌어야 하는 시점임은 분명합니다. 지금 중국에서 가장 큰 이슈가 축구입니다. 다른 스포츠나 경제 등 여러 면에서 세계 강국이지만 축구만큼은 중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기고 있잖아요. 안타까운 건 제가 국가대표로 뛸 때만 해도 중국이 아시아에서 강팀이었거든요. 제가 가서 느낀 건, 선수들 자질은 떨어지지 않지만 어릴 때 습관이나 잘못 배운 것 때문에 성인이 되면 체력이나 템포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런 부분들을 건드려주면 중국은 예전의 축구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나쁜 습관을 바꿔야 하는데,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페셔널 정신이 필요하고 좋은 지도자가 체계적인 시스템 아래 유소년 선수들부터 잘 지도해야 합니다.”

선수는 몸·마음에 나쁜 짓 안 하는 습관 가져야


▎1994년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종료 직전 절묘한 인사이드 킥으로 2-2 동점골을 터뜨린 서정원이 환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청두 팀이 갖고 있는 ‘기본부터 만들어간다’는 철학이 중국 축구의 리모델링에 좋은 시사점이 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제가 수원 삼성 감독으로 있을 때도 다운사이징 과정을 고통스럽게 겪었거든요. 축구단 운영 주체가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뀌면서 돈 쓰는 단위가 달라졌죠.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그 속에서 어린 선수들을 육성했고, 지금은 그 선수들이 팀의 주축이 됐잖아요. 이런 과정을 중국도 겪어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중국 전 지역에서 그렇게 하는 곳이 많긴 하지만 그걸 어떻게 체계적으로 묶어내느냐가 관건이죠.”

“한국인 감독을 모셔 와야 한다”는 얘기도 들리던데요.

“나라마다 문화가 다 다르지만, 축구는 공통적입니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을 통해서 선진 축구의 시스템과 트렌드가 드러나죠. 그러면 그 연장 선상에서 기술, 전술, 훈련 프로그램 등은 전 세계가 거의 비슷하게 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유럽과 아시아 선수는 분명한 격차가 있고, 체력이나 체격도 다릅니다. 선수가 스몰 사이즈를 입는데 엑스라지(XL) 유니폼 갖다 주고 입으라고 하면 됩니까?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동남아에 많이 나가 있는 건 그런 맥락에서 선진 축구를 잘 흡수해서 그 나라 문화와 신체적 특성에 맞게끔 가르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지요. 중국이 세계적인 명장들을 데리고 와도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중국 선수의 사고방식과 멘탈을 이해하고 어떻게 맞춰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겁니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서정원은 거제고와 고려대를 거치면서 ‘날쌘돌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발이 빠르고 테크닉이 좋은 윙 포워드로 명성을 쌓았다. 고려대 3학년이던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예비 엔트리로 뽑혔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는 1-2로 끌려가던 후반,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냈다. ‘도쿄대첩’이라고 불리는 1997년 9월 일본과의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에서도 1-1 동점골을 터뜨렸다. A매치 88경기에 출전해 16골을 기록한 그는 ‘극적인 골을 가장 많이 넣은 선수’로도 유명하다.


▎1997년 9월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일본과의 경기에서 헤딩으로 1-1 동점골을 터뜨린 서정원.
체격 열세를 극복하고 월드컵 3회 연속 출전(1990 이탈리아, 1994 미국, 1998 프랑스)을 하게 된 비결이 뭔가요?

“90년 이탈리아 대회 때 예비 엔트리로 뽑혀 벤치와 라커룸에서 월드컵을 경험했잖아요. ‘아, 이게 월드컵이구나. 이게 세계에서 가장 큰 대회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오면서 정말 뛰고 싶은 열망이 끓어올랐어요.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 거죠. 월드컵에 출전해서 골을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보니 답이 나오더라고요. 축구 선수로서 해야 할 것을 반드시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 몸과 마음에 나쁜 것은 하지 않는 것이죠. 너무나 당연한데 지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몸에 안 좋은 것 안 하고, 좋은 것만 먹고 하는 게 습관이 돼 버렸어요. 저는 그 습관의 힘을 증명한 사람입니다. 크게 다치기도 했는데 회복이 너무 빨랐어요. 저처럼 체격이 작고 빠른 선수는 단명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저는 지구력도 갖고 있었고 39살까지 유럽에서 현역으로 뛰었어요. 저는 후배나 제자들에게 떳떳하고 당당하게 제 얘기를 해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커피나 탄산음료를 안 드시나요?

“술·담배·탄산음료는 안 하지만 커피는 자주 마십니다. 커피는 운동선수의 지구력 향상에 도움을 주거든요. 다만 프림(커피크림)이 들어간 건 절대 먹지 않습니다. 운동선수에게는 슬럼프라는 게 있습니다. 슬럼프를 어떻게 탈출해야 하느냐에 대한 얘기가 많지만 저는 명확합니다. 슬럼프 빠져나오는 방법? 훈련뿐입니다. ‘슬럼프 왔어. 나 어떡해’ 하면서 스트레스받고 걱정만 할 게 아니라 더 많은 땀을 흘리고 한 발짝 더 뛰어야 합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늘 얘기합니다. ‘시합장 나오면 떨리고 자신 없고 하는 건 훈련 부족이다. 땀을 덜 흘려서 불안한 거다. 준비만 잘 되면 운동장 나가면 자신감 생긴다’라고요.”

94년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 동점골의 느낌을 지금도 기억하시나요?

“당연하죠. 당시 발의 느낌까지 생생합니다. 저는 슈팅할 때 골키퍼가 나오면 니어 포스트(키커와 가까운 쪽 골포스트) 쪽으로 인사이드 슈팅으로 탁 갖다 대는 습관이 있어요. 물론 그렇게 해서 골을 못 넣은 적도 있고, ‘그냥 반대편으로 강하게 때려야지 왜 그렇게 갖다 대느냐’며 뭐라고 하는 선배들도 있었죠. 당시 (홍)명보 형이 기가 막힌 패스를 찔러줬고 그걸 원터치를 잘 잡아놨어요. 제가 오른쪽 골대 앞에 있었는데 평소 인사이드로 툭 차서 넣던 그 상황이 딱 나온 겁니다. 전 너무나 확고했죠. 보통은 반대편 골대 쪽으로 강하게 차니까 골키퍼도 그쪽으로 무게중심이 가 있었던 것 같아요. 골키퍼가 ‘어’ 하면서 멈칫하는 사이에 골이 들어간 겁니다.”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 동점골이 인생골


▎수원 삼성 시절 등번호 14번을 달고 활약하던 서정원. 그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등 큰 경기에서 인상적인 골을 많이 넣었다.
그게 자신의 인생골인가요?

“여러 골들이 기억에 남지만 아무래도 월드컵에서 넣은 골이라 가장 강하게 남아 있죠. 도쿄대첩 동점 헤딩골도 좋았죠. 저는 전문 골잡이나 스트라이커가 아니고 측면 공격수인데도 골을 많이 넣은 편입니다. 그리고 연령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등 큰 경기에서 꼭 골을 넣었어요. 운이 좋았죠.”

서정원은 1992년 고려대 졸업 후 K리그 안양 LG(현 FC서울)에 입단한다. 98년 스트라스부르(프랑스)에서 1년을 뛰고 복귀하면서 친정 팀 안양이 아니라 라이벌 수원 삼성을 선택한다. 이른바 ‘유다 신드롬’이 K리그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유다 신드롬은 예수를 배신한 제자 가롯 유다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스타 선수가 라이벌 팀으로 이적하는 것을 말한다.

격분한 안양 팬들은 서정원 유니폼 화형식을 했고, 구단은 서정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 삼성과 LG, 수원과 안양이라는 라이벌 구도, 김호(수원)-조광래(안양) 감독의 불편한 관계까지 맞물려 ‘슈퍼 매치’(수원 삼성과 FC 서울의 맞대결)라는 히트 상품이 탄생했다.

오래 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1999년에 복귀하면서 왜 수원으로 갔나요?

“98년에 스트라스부르에 가서 몸이 워낙 좋았는데 감독이 바뀌면서 저더러 다른 팀으로 가라고 하고, LG에서는 들어오라고 하니 미칠 지경이었어요. 그즈음에 수원에서 ‘1년 뒤에 다시 유럽으로 보내 주겠다’고 해서 방향을 틀었죠. 다시 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프랑스에서 펄펄 날아다녔는데 9월에 십자인대가 끊어졌어요. 절망하고 있는데 수원에서 5년짜리 계약서를 다시 만들어 왔습니다. 1년 가까이 쉬어야 하는 저를 믿고 기다려 주는 마음이 고마워 뼈를 묻어야겠다고 생각했죠.”

K리그 유턴 이승우, 잠시 주춤한 상태일 뿐


▎2018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수원 삼성이 울산 현대를 상대로 골을 터뜨리자 수원 서정원 감독이 환호하고 있다.
곧 K리그가 개막하는데요. 가장 기대하면서 지켜보는 팀은 어딘가요?

“당연히 친정인 수원 삼성이죠. 제자들이 선수와 코칭스태프로 있고, 또 다른 제자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참 기분이 좋아요. 특히 어려운 시절에 씨를 뿌렸던 매탄고(수원 삼성 산하 유스팀) 출신들이 ‘매탄소년단’으로 잘 자라줬고, 그중에서도 정상빈(20)이 역대 최연소 빅 리거가 됐다는 게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아직 어리다고들 하는데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닙니다. 일찍 큰 무대로 나가서 기량을 업그레이드한다면 한국 축구에도 큰 도움이 되겠죠.”

반대로 이승우(24·수원FC) 선수는 K리그로 유턴했는데요.

“이승우 선수는 백승호(전북)와 함께 어린 나이에 빅 클럽 FC 바르셀로나로 갔다가 K리그로 복귀했는데요. 승우에게 응원의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수원 삼성 감독으로 있을 때 승우를 데려오려고 얘기도 많이 했어요. 너무 안타까워서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촉망받던 선수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세계 최고 명문 구단에 갔는데 거기서 성장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어요. 승우는 잠시 주춤한 상태일 뿐이지 충분한 자질을 가진 선수입니다. 조바심 갖지 말고,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몸을 만들고 K리그에서 다시 발돋움하면 충분히 이름에 걸맞은 위치에 올라갈 거라고 믿습니다.”

자신이 맡은 팀의 선수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서정원 감독이 수원 삼성을 지휘하던 시절 키워낸 정상빈은 국내 선수 최연소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울버햄프턴으로 진출했다.
“더 부지런해져야 하고 나쁜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1시간 반 훈련하면서 패스 하나하나 트래핑 하나하나 집중해야 하는데 100% 집중하는 선수가 많지 않아요. 선수는 은퇴하는 날까지 부족하다고 느껴야 합니다. 저는 골 넣고 이긴 날도 90분 경기 상황을 복기하면서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 ‘다음에 이 정도 못하면 어떡하지’ 고민했습니다.”

서 감독은 “넌 아마추어야”라는 말이 가장 큰 욕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 말의 의미를 물었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말 그대로 천지 차이입니다. 아마추어는 실수를 많이 해도 용서가 되지만 프로는 용납이 안 됩니다. 그래서 프로에게 ‘넌 아마추어야’라는 게 가장 심한 욕이라는 겁니다. 프로페셔널이라면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모든 일에 임해야 합니다. 이 말이 쉽게 들린다면 큰 착오를 하고 있는 겁니다. 축구나 운동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 어떤 업종에서도 이건 통하는 얘기일 겁니다.”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튜브 방송국인 중앙UCN의 부사장을 겸하고 있다.

202203호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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