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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의 돈이 보이는 경제 (1)] 돈·돈·돈, 돈은 무엇인가 

중앙은행이 공급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는 고무줄 같은 ‘괴물’ 

예금통화는 신기루… 금융시스템 자체가 태생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모든 나라 원자재 가격 상승, 코로나19 등 복합적 이유로 물가 급등


▎세상에 돈만큼 중요한 것도 별로 없지만, 알고 보면 돈만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별로 없다. 귀하면서도 알고 보면 볼수록 실망스러운 존재가 돈이다. 서울 강남구 한국은행 발권국에서 현금 운송 관계자들이 시중은행에 공급될 추석 자금 방출 작업을 하고 있다.
돈은 물건을 사거나 팔 때 대가로 제시하는 사물이다. 한 사람이 제시할 때 상대방이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한다. 학술용어로 교환의 수단이라는 말이다. 교환의 수단에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법으로 ‘반드시’ 통용돼야만 하는 법정 교환수단(이를 법화[法貨]라고 한다)과 법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사실상의 교환수단(비법화·非法貨)이 그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지폐는 모두 법정 교환수단이다.

전자화폐의 경우에는 그 전자화폐와 전자통신 방법으로 연결된 화폐 금액을 바탕으로 교환이 일어나므로 법정 교환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그것으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으니까 교환의 수단이기는 해도 법화는 아니다. 비트코인으로 하는 결제를 거부해도 상관없다. 아무런 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다. 또한 비법화로 교환·거래를 해도 아무런 법의 제약이 없다. 비법화로 결제하는 것도 자유고 안 하는 것도 자유다.

하지만 법화의 경우에는 거래를 거부하면 법 위반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어떤 사물, 즉 종이에다 강제적으로 통용력을 줘 법화로 삼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이유, 즉 그것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자는 목적 때문이다. 돈의 가치가 불안정할수록 사회적으로 부작용이 커지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가 법화 발행을 독점하고 공급량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법화 발행을 독점하면 법화가 발생하면서 생기는 이득을 국가가 가져간다는 부수적인 이점이 발생한다. 여기에서 이득이란 법화의 액면 가치와 실제 법화 발생에 들어가는 종잇값 등과 같은 비용의 차이가 그 이득이다. 예컨대 1만원짜리 지폐에서 그것을 발행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제한 금액이 이익이다. 이를 ‘시뇨리지(seigniorage)’라고 부른다.

이 시뇨리지는 그 법화를 발행하는 기관이 가져가고 그 법화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 소지하는 동안만 그 비용을 ‘부담’한다. 만약 법화가 오로지 그 나라 안에서만 통용되면 법화 발행의 이득과 부담이 나라 안에서 서로 상쇄돼 없어진다.

화폐는 중앙은행 마음대로 발행한다

그러나 만약 그 법화가 미국 달러와 같이 전 세계 시민들이 보유하는 법화라면 법화 발행의 이득은 미국이 가져가는 반면, 부담은 달러 보유자가 지게 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패권 국가들이 자국의 통화가 세계 전체에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기축통화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사실은 이 시뇨리지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다.

법화는 국가, 더 정확히는 중앙은행이 공급을 결정한다. 모든 나라가 법으로 중앙은행이 법화를 발행하는 원칙과 규칙을 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물가를 안정되게 할 목적으로 법화를 발행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한국은행법과 관련해 여러 규정에 따라서 법화의 발행량을 결정한다. 한국은행법 제1조(목적) 1항에 보면 ‘한국은행은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돼 있다. 물론 2항에 금융 안정도 유의해야 한다고 했지만, 물가 안정이 더 중요한 목적이다.

물가 안정 목표가 법으로 규정돼 있어도 법화의 발행은 중앙은행과 정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임의로 공급된다. 한국은행법 제6조 1항에 ‘한국은행은 정부와 협의하여 물가 안정 목표를 정한다’고 돼 있다. 또 3항에서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70여 년의 한국은행 통화정책을 들여다보면 물가 안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사례가 너무 많다. 물가 안정이 이루어진 경우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물가 안정이라는 법으로 규정한 목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그때 정치적인 이유 혹은 금융상의 상황으로 인해서 법화가 무분별하고 과도하게 발행된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만약 중앙은행이 발행한 지폐 형태가 아니고 금이라든지 은과 같은 실물이 법화라면, 중앙은행이 연금술을 통해서 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돈을 마음대로 찍어내지 못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일부 학자는 지금과 같은 무분별한 지폐 형태보다는 금 혹은 다른 귀금속을 화폐로 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금과 같은 실물자산을 화폐로 사용하면 중앙은행이 무분별하게 화폐를 발행하지 못하는 장점은 있지만, 경제 침체기나 혹은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경기를 활성화하거나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통화 금융정책을 효과적으로 쓸 수 없다는 심각한 단점도 있다.

어떻든 우리가 기억해둘 것은 아무리 물가 안정이라는 법이 있고 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법화, 즉 돈은 중앙은행이 멋대로 공급을 늘릴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는 고무줄 같은 성격을 가진 괴물이라는 점이다.

환류(還流)된 예금, 몇 갑절 더 큰 금액으로


▎3월 2일 서울 서초구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여태껏 돈이라고 하지 않고 다소 어려운 ‘법화’라는 단어를 고집한 이유가 있다. 경제학에서는 돈을 법정화폐, 즉 법화(화폐)뿐만 아니라 신용통화도 돈으로 보고 있다. 신용통화란 은행에 예치된 예금을 말한다. 예금은 사실 돈이 아니지만 언제라도 인출해서 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돈과 같다고 본다. 경제학에서는 법화와 신용통화를 합쳐서 돈이라고 규정한다.

법화는 한국은행이 발행하지만, 예금은 은행이 만들어낸다. 중요한 사실은 법화가 은행으로 들어오면서 법화보다도 몇 갑절 더 큰 예금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예금이 은행으로 들어오면 은행은 그 돈을 대출하게 되고 대출된 돈은 곧 사용되면서 다시 은행으로 환류(還流)된다. 이 환류된 예금은 또다시 대출되고 환류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애초의 예금보다 몇 갑절 더 큰 금액의 예금이 누적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 과정을 신용 창조 과정이라고 한다.

2021년 말 현재 화폐발행액은 170조원이지만 신용통화, 즉 예금은 3450조원이다. 신용통화가 화폐 발행액의 스무 배쯤 된다. 경제학에서는 예금통화와 현금통화의 비율을 개략적으로 통화 승수라고 부른다. 요점은 통화량은 한국은행만이 공급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은행과 예금은행이 합작해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중에서도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법화 혹은 화폐보다 은행이 만들어내는 예금통화가 스무 배 정도 더 크다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 하면 통화량은 전적으로 한국은행이 공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 더 크게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개인투자자는 소외… 화폐 공급 과정은 불공평

그런데 신용(예금)통화는 예금주가 원하는 바에 따라서 늘어나기도 하고 또 줄어들기도 한다. 예컨대 예금이자율이 떨어지면 예금은 줄어든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처럼 모든 사람이 은행이 불안하다고 느끼면서 예금주가 예금을 인출하면 신용(예금) 통화는 줄어든다. 법화가 신용 창조 과정을 통해 스무 배 정도의 예금을 만들어낸다면 거꾸로 예금주가 연쇄적으로 예금을 인출하는 경우 스무 배 정도의 예금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심하면 은행이 지불 능력이 없어서 잠시나마 지불 불능 사태에 빠질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돈이라는 것은 법화보다도 예금통화 규모가 훨씬 크고, 예금통화는 예금주들의 행태에 따라서 단기간에 인출되면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는 마치 신기루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바로 이 신기루라는 성질 때문에 금융시스템 자체가 태생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 대출로 말미암아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는 것이 과도한 대출 때문인 경우가 많고 또 역으로 과도한 대출을 억제하는 과정에서 거꾸로 연쇄적인 주가 폭락이나 주택가격 폭락이 따라오는 경우도 많다.

법화는 한국은행이 만들어낸다고 했다. 예컨대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한국은행이 법화를 찍어내는 경우처럼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은행은 수시로 법화 공급을 늘린다. 그런데 그 늘리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매우 불공정하다. 한국은행이 법화 공급을 늘릴 때는 시중에 있는 국채 혹은 통화안정 증권을 ‘경쟁매입’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금융기관은 일부 대형 증권회사나 금융기관으로 제한돼 있다.

따라서 한국은행의 통화 공급은 가장 먼저 대형 금융기관에 돌아간다는 점이다. 마치 논에 물을 댈 때 저수지 수원(水源)에 가장 가까운 논에 먼저 물이 공급되는 것과 같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통화 공급의 증가 효과가 더 많은 금융기관과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퍼져 나가겠지만, 일차적인 통화 증가 효과는 대형 금융기관이 먼저 경험하게 돼 불공평하다는 말이다.

통화 공급 과정이 보다 더 공평하려면 대형 금융기관이 아닌 중소형 금융기관이나 개인들도 한국은행의 국채 매입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입찰 과정의 번잡성과 신속 처리 곤란과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개인투자자를 위해 국채 매입의 일정량을 할당하는 방법 등으로 한국은행의 통화 공급 과정에서 대형 금융기관이 아닌 개인 혹은 중소 금융기관의 참여 범위를 넓혀주는 것은 매우 시급하고 바람직하다.

돈은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돈이 많아지면 물가가 오르고 반대로 돈의 양이 줄어들면 물가가 내려간다. 돈의 양이 예컨대 두 배로 많아지면 물가가 얼마나 오르는지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 전통적인 고전 경제학자들은 돈이 두 배로 늘면 물가도 두 배로 뛴다고 봤다. 가장 널리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론이다.

그러나 케인즈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돈이 두 배로 늘어나도 물가가 전혀 오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들은 돈이 두 배로 늘어나는 동안 생산량이 두 배로 늘어나주면 물가는 전혀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장의 가동률이 현저히 낮아서 현재의 생산량이 최대 생산 가능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경우에는 생산량이 두 배로 늘어나도 물가가 전혀 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30년대 대공황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점차 대두되는 글로벌 인플레의 그림자

돈의 양이 두 배로 늘어나면 물가가 정확히 두 배로 뛸 것이라는 고전학자와 경제 침체기에는 물가가 전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케인즈 학파 사이에 누가 더 옳은가 하는 문제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로 귀착됐다. 경제가 활황이고 거의 완전 고용 상태라면 고전학파처럼 통화량의 증가가 같은 비율의 물가 상승으로 나타날 것이고 반대로 경제가 침체됐다면 케인즈 학파처럼 통화량이 늘어나더라도 상당 기간 물가는 안정적일 수도 있다는 절충적인 해석에 도달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돈이 늘어나면 단기적으로는 케인즈 학파처럼 물가가 오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고전학파 말대로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와 이 양대 이론을 뒤흔드는 상황이 발생했다. 경제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에서 통화량도 천문학적으로 팽창됐음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2008년 8000억 달러이던 본원통화는 2021년 6조5000억 달러로 여덟 배나 늘어났지만, 그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98.7에서 124.3으로 26% 증가에 그쳤다.

즉, 2008년 금융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통화량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물가가 안정된 사실에 대해 학자들은 당혹할 수밖에 없었지만, 정책 당국자나 일반 시민들은 유례 없이 이어지는 호황과 물가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봤다.

2010년대 이후 10여 년 동안 통화량이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물가가 안정된 원인에 대해 학자들은 크게 세 가지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글로벌 아웃소싱에 따라 값싼 이머징(emerging) 국가들의 상품들이 수입됐고, 또 인구 구조가 고령화되면서 소비 수요가 크게 감퇴했으며 끝으로 생산성의 발전으로 생산단가가 크게 떨어졌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이런 저물가 시대가 이제 저물고 있다. 모든 나라가 공급망 교란, 원자재 가격 상승, 코로나19 팬데믹, 조기 은퇴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해서 물가가 급등하고 있다. 그동안 폭발적으로 늘어난 통화량이 글로벌 인플레에 기름을 붓듯이 물가를 자극할지 아닐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미국과 우리나라 모두 통화 공급을 줄일 태세지만 인플레를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쌓여가고 있다.

※ 신세돈 - 미국 UCLA에서 경제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은행 조사부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1989년부터 숙명여대에서 33년째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세종대왕의 통치 업적을 분석한 [외천본민]을 저술했으며, 중국 고대 역사서 〈자치통감〉을 깊이 연구하고 있다.

202204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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