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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목민관열전] ‘직접 민주주의 실험’ 나선 서철모 경기 화성시장 

‘화성형 시민 자치’로 분권의 새 역사 연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시민회의’ ‘정책자문단’ 통해 시민의 정책 결정권 현실화
권역별 특성 살린 맞춤 개발로 동·서부 균형 발전 밑그림


▎화성시는 시민지역회의, 정책자문단 등 시민이 직접 정책 결정에 참여하도록 해 참여 민주주의의 새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서철모 화성시장의 직접 민주주의 실험의 일환이다.
경기도 화성시는 전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다. 시민의 평균 연령은 37.8세다. 전국 평균(43.6세)보다 월등히 낮다. 도시 확장 속도가 빨라 인구 증가세도 가파르다. 2년 뒤에는 100만 명을 넘어 특례시 기준을 충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성시는 단체장이 ‘일할 맛 나는’ 지자체다. 재정이 탄탄한 데다 땅이 넓고 신도시와 농·어촌의 다양한 환경이 공존해 새로운 정책의 테스트 베드(test bed)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역대 시장들은 주로 치적으로 남길 만한 건설 프로젝트를 선호했다. 그런데 2018년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행정가의 길에 들어선 서철모 시장은 달랐다. 서 시장이 야심 차게 기획한 프로젝트는 ‘직접 민주주의 실험’이다. 문재인 정부가 도입했던 ‘숙의 민주주의’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며 얻은 경험과 분권자치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3월 11일 화성시청에서 만난 서 시장은 시종일관 ‘자치 속의 자치’를 강조했다. 직접 민주주의 실험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현실화할 가능성을 찾고 싶어 하는 듯했다.

기자도 화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이따금 올 때마다 변화의 속도에 놀라곤 한다. 화성시가 가진 다양성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시장으로서 고민이 크겠단 생각이 든다.

“가장 큰 고민은 화성을 하나로 보는 게 과연 합리적 인가란 문제다. 기존에는 화성이란 틀에서 계획을 짜고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화성은 지역마다 색깔이 전혀 다르다. 며칠 전 대통령선거에서 향남은 민주당이 20% 앞섰고, 송산에서는 20% 뒤졌다. 같은 화성인데도 성향과 생각이 다르다는 방증이다. 읍면별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곳이 없다. 다름을 인정하고 획일적이었던 도시 설계도 달라져야 한다.”

지역마다 주민 연령대나 생활 패턴의 차이가 반영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교통 인프라의 경우가 특히 그럴 것 같다.

“동탄신도시의 경우 젊은 세대가 많이 이용할 수 있는 트램이나 자전거, PM(Personal Mobility; 1인용 이동수단)에 적합한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반면 농촌지역인 송산면에 PM보다 대중교통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래서 지역별로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송산그린시티 시범도시인 새솔동은 자율주행 시범지구로 정했다. 동탄은 인구가 너무 많아서 위험하니 대신 PM과 자전거 위주다. 노인층 비율이 많은 서부(우정읍·장안면)는 ‘백원 택시’나 마을버스 위주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식이다.”

관내 특성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지역별 시범사업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지자체가 아닐까 싶다.

“시범사업도 기계적 균형을 맞춰서 똑같이 배분하거나 획일적으로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100원을 열 개 마을에 10원씩 나눠주는 식으로 한다. 이렇게 하면 열 군데 다 실패한다. 우리는 한 곳에서 100원을 써서 사업을 해보고 괜찮으면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켜 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동부와 서부의 개발 방향을 보더라도 지역 특성을 반영한 게 두드러진다.

“화성시는 도농복합도시다. 개발이 더딘 서부지역은 국제테마파크를 2026년 1차 개장한다는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 여의도에서 송산-남양-향남을 잇는 신안산선 연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국토부의 타당성 검증이 진행 중이다. 서부지역 접근성이 개선되면 테마파크, 서해안 해양·생태 관광벨트와 함께 체류형 관광지로 발전을 꾀할 수 있다. 도시화한 동부권은 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3개 노선을 반영했고, GTX-A(2024년 개통 예정), GTX-C 노선 연장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 동탄 트램을 통해 대중교통 중심 교통체계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시민정책자문단 3만여 명이 온라인으로 의사 결정


▎화성시는 시민 3만1000여 명이 참여하는 정책자문단을 통해 시민 생활과 밀접한 주요 사안을 시민이 직접 결정하도록 한다. 화성시 온라인 정책자문단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신청하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 사진:화성시 홈페이지
정책의 이면에는 다름에 대한 존중의 철학이 배어 있는 걸로 이해된다.

“예컨대 지자체마다 마스코트를 정해서 지역 전체에 똑같은 모습으로 도배한다. 과연 그게 맞을까? 화성시 캐릭터는 전곡항 공룡 유적지를 상징하는 ‘코리요’다. 그런데 동탄 주민에게 코리요가 친숙할까. 실제로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동탄 8동의 경우 반딧불이를 자체 마스코트로 삼았다. 시장이 내키지 않는다고 해도 주민의 요구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자치 속의 자치다.”

대개 흩어진 걸 모으고 뭉쳐서 규모를 키우려 하지 않나?

“대한민국 인구가 5000만 명인데 지자체가 226개다. 스위스는 800여만 명인데 지자체가 1000개가 넘는다. 독일도 우리보다 훨씬 작게 쪼개져 있다. 시장이 구석구석 살필 수 있는 수준으로 더 쪼개져야 한다. 내가 법을 바꿀 수 없으니 주민자치를 통해 실질적인 자치를 구현하는 거다. 이른바 ‘화성형 주민자치 모델’이다.”

주민자치는 전국 모든 지자체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화성형 모델은 어떻게 다른가?

“외형적으로는 같을 수 있다. 다만 주민자치회를 인정하고 힘을 실어주느냐 안 실어주느냐의 차이다. 화성시 주민자치회의 총회 투표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제도는 똑같아도 실질에서 다르다.”

시장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뒤집어진다면 무용지물 아닌가?

“그건 어쩔 수 없다. 대통령이 바뀌면 정책 방향이 싹 바뀌듯 말이다. 그건 시민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다만 시민에게 힘을 주면 줄수록 새로운 사람이 와도 못 바꾼다. 무엇이 더 나은지를 판단하는 건 시민의 몫이다. 시민에게 더 많은 권한이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다. 시민 참여 직접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이유다.”

4년간의 고민이 어떻게 결실을 맺고 있나?

“자발적으로 시민정책자문단에 참여한 시민이 3만1000여 명에 이른다. 만 14세 이상 화성시 거주자나 직장인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모바일 투표로 쉽게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지금까지 9차례 조사 결과를 정책에 반영했다. 일례로 사거리에 그늘막을 설치할 때 적당한 위치를 가장 잘 아는 건 주민들이다. 공무원이 우선 100개 위치를 정한 뒤 시민들에게 투표를 붙였더니 60%가 옮기자고 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시민들은 눈에 보이는 변화에서 자치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화성시민 지역회의’도 참여 민주주의의 모델로 주목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취임 첫해 말 동탄권역부터 시작했다. 지역회의 위원은 제한을 두지 않는다. 선정 방식도 제비뽑기다. 진정한 의미의 참여 민주주의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중단돼 아쉽다. 대신 온라인 시민정책자문단을 최대 5만 명까지 늘려 양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반려동물 정책 패러다임 바꿀 ‘반려가족과’ 신설 추진


▎2018년 12월 20일 화성시 동탄신도시 다원이음터 대강당에서 열린 동탄권역 화성시민 지역회의 첫 회의에서 서철모 시장이 지역회의 위원 3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지역회의 운영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화성시
서 시장의 실험은 그가 세계여행 중 스위스에서 목도(目睹)한 실증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스위스의 독특한 직접 민주주의 제도인 ‘란트슈게마인데’가 그 모델이다. 란트슈게마인데는 주민들이 1년에 한 번 광장에 모여 거수로 사안을 결정하는 제도다. 서 시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토론과’를 설치하겠다고도 했다. 지금까지 4년의 실험이 버전 1.0이었다면, 토론과를 통해 2.0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셈이다.

토론을 행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발상이 꽤 참신하다.

“민주주의는 토론을 바탕으로 한 다수결의 원칙으로 구현된다. 소수가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과정은 공개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토론을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투표한다. 그러니 갈등이 커진다. 지금 짓고 있는 반월도서관의 경우 공정은 다소 더디지만, 시민위원회가 디자인부터 내부 구성까지 토론해서 정한다. 다 짓고 나면 그 과정을 자세히 기록할 거다. 참여와 책임의 소중함을 누구나 느낄 수 있게끔 말이다.”

토론문화에 대한 생소함이 있는 게 현실이다. 행정력 낭비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해보자. 우리 사회의 갈등비용이 적게는 50조, 많게는 130조원이다. 기피시설 하나 지으려면 온갖 반대에 부딪히는데 이게 다 돈이다. 스위스에는 토론청이 있다. 우리에게도 토론부가 있다면 사회적 갈등이 이렇게까지 심각하진 않을 거다. 이번 대선에서 불거진 ‘이대남’, ‘이대녀’ 갈등도 토론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갈라지지 않았을 거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국회가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지 않나?

“체계적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고 보나? 국회의원이 자기 의견 관철하려고 친한 교수 불러서 하는 거 아닌가. 국회가 토론 기능을 제대로 했다면 민주당이 밀어붙인 부동산 정책이 이토록 엄청난 국민의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 거다. 아쉬운 대목이다.”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화성시의 대표적인 현안으로 군공항 이전에 관한 논쟁이 있다. 어떻게 논의되고 있나?

“워낙 민감한 사안이어서 시민들이 충분히 이해할 만큼 토론이 필요하다는 건 변함없다. 2017년 2월에 예비이전 후보지를 발표할 때 화성시와 시민 의견이 무시된, ‘첫 단추부터 잘못된 사업’이다. 군공항 이전 특별법에 의하면 이전의 조건은 적극적인 환영 의사가 있어야 한다. 유치를 검토하는 지자체가 있으니 지역 공모로 정하는 게 순리고 현실적이다. 또 밀실에서 협상하고 결과만 꺼내놓는 예전 방식을 버리고 합리적이고 공개적인 결정 과정도 필요하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토론과도 그렇고, ‘반려가족과’를 만들겠다는 발상도 독특하다.

“호불호를 떠나 상당히 많은 시민이 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보고 있다. 전국적으로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인구가 약 1500만 명이라고 한다. 화성시도 반려동물 등록 수가 4만6000마리, 반려인이 12만 명(화성시 인구의 12%)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반려동물 정책은 유기동물 처리 위주였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정하고 종합적인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당장에 대단한 정책을 내놓으려는 게 아니라 5년, 10년 뒤에 닥칠 더 큰 문제를 대비하는 차원에서다.”

“시민이 주권자라고 느끼게 할 방법 여전히 고민”


▎경기도 화성시 동탄역 인근 여울공원에 전시된 광역급행철도(GTX-A) 차량 실물 모형. 파주 운정과 동탄신도시를 잇는 GTX-A 노선은 2024년 개통 예정이다.
다른 지역에서 정책을 벤치마킹하려는 관심이 클 것 같다.

“오히려 우리가 하는 일 대부분이 다른 도시에서 벤치마킹한 거다. 비서실에서 다른 지역 정책을 수집해 벤치마킹을 전담하고 있다. 만 65세 이상 어르신과 23세 이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무상교통 사업도 수도권에서는 우리가 최초로 시행하지만, 전남 신안군 사업을 벤치마킹한 거다. 다른 곳에서 베껴오더라도 좋은 정책으로 구현하면 된다. 시민이 행복하면 되지 어디가 원조인지 따지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꽤 실용적이다. 그 철학은 어떻게 체득했는지 궁금하다.

“과거 제가 4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세계 일주했다. 다양한 나라를 보며 일이십 년 후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했다. 경제적 풍요는 어느 정도 이뤘지만, 시민이 존중받고 있을까. 북유럽은 우리보다 훨씬 잘 살지 않아도 왜 만족감이 높을까. 그렇게 경험과 고민을 쌓으면서 새로움을 추구해왔다. 시장이 된 뒤에는 31개 시·군 공약을 다 검토하면서 우리가 다음에 할 만한 게 있는지 찾고 있다. 다만 참여 민주주의는 우리나라에 없는 모델이니 우리가 최초인 건 맞다.”

만약 4년의 시간이 또 주어진다면 어떤 슬로건을 내놓고 싶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어떻게 하면 시민이 주권자라고 느낄 수 있을지 방법을 찾는 것이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사례 슬로건), ‘시민이 주인입니다’, 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시민이 정말 주인이라고 느꼈나? 시장이 얘기하면 뭐하나, 시민이 느껴야지. 레토릭에 그치면 안 된다. 이런 고민을 담을 적절한 단어를 찾는 중이다.”

※ 서철모 화성시장
- 공군사관학교 졸업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기획위원
- 문재인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 민선 7기 화성시장(현)
- 더불어민주당 기초단체장협의회 사무총장
-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추진
- 지방정부협의회장(현)
- 참여민주주의지방정부협의회장(현)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202204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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