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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토종 위스키 생산에 도전하는 ‘쓰리소사이어티스’ 

한국의 향 머금은 오크통에 국산 위스키의 꿈 익어가네 

전민규 기자
미국교포 사업가와 스코틀랜드 위스키 장인 만나 증류소 설립
장비와 도구 등 정통 제조방식 따르며 한국의 향 입혀 차별화


▎3월 10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에서 ‘마스터 디스틸러’인 앤드루 샌드가 증류를 마친 기계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알싸하게 매운맛으로 시작하는데 신기하게 과일과 꽃향기가 입안을 채우네요.”

2월 26일 증류소 투어를 위해 경기도 남양주 ‘쓰리소사이어티스’를 찾은 한 참가자가 오크통에서 막 꺼낸 위스키를 시음하며 말했다. 이 회사는 2020년 6월 우리나라 최초의 크래프트 싱글 몰트 위스키 생산에 도전장을 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대한 물방울 모양의 증류기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스코틀랜드의 증류기 제작업체 ‘포사이스’에 의뢰해 들여왔다. 사람 키의 두 배가 넘는 큰 덩치 때문에 산자락에 위치한 증류소까지 크레인과 지게차를 동원해 겨우 옮겼다. 몰트를 발효해 만든 알코올을 이 증류기에 끓여 위스키의 바탕이 되는 68~74도의 증류주를 만든다.

증류소를 창립한 도정한 대표는 재미교포 출신으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최연소 임원을 지낸 뒤 회사를 나와 크래프트 맥주 회사 ‘핸드앤몰트’를 창업해 성공을 맛봤다. 그는 ‘한국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본고장 스코틀랜드에서 마스터 디스틸러인 앤드루 샌드를 영입했다. 샌드는 18살에 글렌리벳 증류소에서 시작해 43년째 위스키를 만들어온 장인이다. 한국인 직원을 비롯해 미국, 스코틀랜드 각각 개성이 다른 세 사회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한국 최초의 위스키’를 만들려고 의기투합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쓰리소사이어티스’다.


▎오크통은 술 원액에 맛과 색을 입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쓰리소사이어티스 직원이 세계 각지에서 새로 들여온 200 여 개의 오크통을 정리하고 있다.
좋은 위스키를 만들기 위한 세 가지 요소는 고품질의 몰트와 깨끗한 물, 그리고 효모다. 이 회사는 스코틀랜드 ‘크리스프(crisp)’사의 몰트를 쓴다. 몰트를 당화하는 과정을 거치면 7~9도의 알코올이 나오는데 와인과 같은 발효주다. 이렇게 생산한 알코올을 증류기에 넣고 끓이면 초류, 본류, 후류가 나온다. 초류는 메탄올 등의 독성이 있을 수 있어 사용하지 않고, 하류는 알코올 도수가 낮은 탓에 위스키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68~74도 사이의 알코올인 본류만 선별해 사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피릿’을 오크통에 담아 일정 기간 숙성시켜 만든 것이 위스키다. 오크통은 헤븐힐, 짐빔, 와일드 터키 등의 증류소에서 들여온다. 마스터 디스틸러 샌드는 “오크통에서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면서 알코올에 향과 색이 더해지는데 한국은 큰 일교차로 인해 다른 국가보다 2~3배 빠르게 숙성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9월 처음 출시한 싱글몰트 위스키 ‘기원’은 단 1년가량 숙성을 거쳤는데도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혼술족이 늘면서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날 투어에 참가한 이들도 20~30대가 주를 이뤘다. 증류소 곳곳을 돌며 한국의 개성을 담은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약주나 과실주 등을 만드는 술도가에 오크통을 빌려준 뒤 다른 향이 밴 통을 이용해 위스키를 만드는 실험이 그것이다. 김유빈 쓰리소사이어티스 홍보 담당자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위스키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코로나가 심각해져 증류소 투어는 잠시 멈췄다가 5월부터 다시 시작할 계획이지만, 고객과의 소통은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빈 과장이 위스키 저장고에서 투어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위스키를 꺼내고 있다.



▎이 증류소에서는 한 달에 약 40톤의 몰트를 사용해 위스키를 만들고 있다.



▎증류기의 최종 결과물인 알콜 원액 ‘스피릿’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원액은 오크통에 담겨 숙성돼 위스키로 다시 태어난다.



▎쓰리소사이어티스가 숙성중인 위스키.



▎오크통을 수리하거나 위스키 샘플링을 위한 도구들.



▎몰트를 당화해 만든 발효액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사진·글 전민규 기자 jeonmk@joongang.co.kr

202204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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