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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복거일 소설 ‘이승만’ | 물로 씌여진 이름 (제1부 광복) 

제21장 얄타 (13) 

미국 정부 내 곳곳에 있는 친공산주의 인사들의 암약으로 중국 국민당 정부에 대한 미국의 군사원조는 번번이 좌절되곤 했다. 그 사이 소련은 중국 공산군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서 정부군을 능가할 정도의 전력을 갖추게 됐다. 황하와 양쯔강을 두고 대륙 전체를 넘보는 공산군 앞에서 정부군은 풍전등화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얄타 회담 1주년인 1946년 2월 11일에 ‘얄타 협정’의 협정문이 공개되었다. 이승만이 처음 폭로한 대로, 얄타 협정엔 아시아에 관한 비밀 협약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제정 러시아가 만주에서 차지했던 이권들을 소비에트 러시아가 물려받기로 되었다는 것이 드러나자, 중국 전역에서 분노한 중국 사람들이 일어섰다. 중경에선 학생들이 ‘만주에서의 중국 주권을 완전히 회복하라’ 외치면서 시위를 했다. 그들은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소련=독일+일본’과 ‘스탈린=히틀러+히로히토’와 같은 구호들이 쓰인 팻말들을 들고 ‘제국주의 타도’를 외쳤다.



실제로, 만주를 점령한 러시아군은 일본이 항복한 날부터 3개월 안에 철수하기로 한 합의를 무시하고 아직도 만주에 머물고 있었다. 러시아군이 만주의 주요 산업 시설들을 모두 뜯어서 러시아로 이송하고 있다는 보고가 잇달았다. 그러나 국민당 정부는 이런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만주의 일본 재산들이 러시아의 ‘전리품(war booty)’이라고 주장했고, 중국은 러시아의 주장은 국제법이 인정한 통상적 전리품의 범위를 크게 벗어난다고 반발해서, 두 나라 사이의 협상은 진전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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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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