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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중대재해처벌법, 왜 필요하고 무엇이 문제인가 

실효성 낮고 부작용 크다면 법 개정도 검토해야 

규제의 원인은 기업에 있어… 법 시행 과정 지켜보면서 개선책 필요
오너 경영인이 형사처벌 피하기 위해 편법 경영 성행하는 것은 문제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제정 촉구’ 기자 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새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한 노력으로 규제 개혁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새 정부의 이러한 경제 정책 기조에 따라 재계에서는 경제 성장에 장애가 되는 주요 규제들에 대해 한목소리로 철폐나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규제 중 하나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처벌법)이다.

지난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에 대한 형사 처벌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규제법이다. 이 법이 제정된 배경에는 그동안 산업 현장에서 지속된 근로자들의 사망 등 인명피해가 이어져 왔기 때문에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에 대한 책임 부담을 통해 이러한 사업 현장에서의 인명 피해를 막으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유예 기간 1년을 적용해 올 초부터 시행됐으며, 시행 이후에도 산업 현장의 안전 사고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면에서 안전 사고에 대한 기업들의 더욱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법 시행 전후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의 주요 안전 사고를 살펴보면 지난 2020년 4월 한익스프레스 이천물류센터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인데, 근로자 38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였다.

1월 초에는 광주 화정아이파크 신축 공사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6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법 시행 며칠 전 발생해 공사 책임을 맡은 현대산업개발은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1호 기업은 면했으나 이로 인해 기업의 존폐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리고 법 시행 이틀 후 양주 삼표산업 석재 채취장에서 토사가 붕괴해 노동자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삼표산업은 중대재해처벌법 1호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현장에서 노동자 3명이 사망했다. 4월에는 과천 지식산업센터 공사장에서 하청 노동자가 사망했고, 이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협력 업체 직원이 사망하는 등 여러 산업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는데도 여전히 산업 현장에서는 안전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법 시행에 앞서 유예 기간 1년을 적용했지만 기업들의 안전에 대한 대응은 아직 크게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산업 현장의 안전 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안전에 대한 예방과 관리 감독을 더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이 규제 탄생의 빌미 제공


결국 이러한 강한 규제법들이 만들어지게 된 근본 원인은 산업 현장에서 수많은 안전 사고가 발생하고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산업안전보건법을 시행해왔지만 사고 현장 책임자의 처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 사업자와 경영 책임자에게 사고에 대한 형사 책임을 부과하는 별도의 강화된 처벌법이 탄생했다.

규제는 피규제자들이 규제 탄생의 빌미를 제공한 책임이 있다. 기업들이 사업이나 사업장에서 안전 사고 예방 조치들을 자발적으로 강화해 사고를 예방했더라면 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기업들이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비용을 줄이는 방법에만 몰두해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한 비용 지출에 인색하게 되면 결국 더 큰 화를 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기업 스스로 크게 인식하고 안전 사고 예방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사업장에서의 재해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기업이나 경영자에게 안전 관리 의무 부여와 함께 위반 시 처벌하는 우리의 산업안전보건법과 유사한 법을 제정한 국가들은 많다. 그러나 한국처럼 산업안전보건법과 별개로 중대재해 발생에 대해 형사 책임을 묻는 국가는 영국, 호주, 캐나다 정도다. 다만 이들 국가에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 개인에게 징벌적 형사 처벌을 가하는 정도는 우리 법보다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대재해에 대해 형사 책임을 부과하는 국가들에서도 그 입법 배경에는 중대한 재해가 발생해 많은 인명 피해를 겪으면서 강한 규제 입법 도입의 필요성이 강조된 것이 공통점이다. 그러나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에 있어서 한국과 해외 사례의 차이는 경영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징역의 하한형으로 규정한 것이며, 이러한 차이 때문에 한국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세계적으로 가장 강한 징벌적 규제라는 논란이 따르고 있다.

모든 규제는 그 도입 배경과 목적을 가지고 탄생된다. 이번 중대재해처벌법도 중대재해로 인해 많은 인명 사고를 겪으면서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중대재해 예방이 미흡하다는 인식에서 제정된 것이다.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책임을 부과해 산업 현장에서의 안전 사고를 예방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규제의 문제는 얼마나 실효성이 있느냐다. 그리고 그 규제로 인해 경제적 손실 등 부작용이 얼마나 발생하는지가 문제로 대두해왔다. 따라서 모든 규제는 그 실효성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실효성이 낮다면 규제의 취지와 목적에 따라 실효성이 있도록 개정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실효성이 낮으면서 부작용이 크게 나타난다면 규제 개혁 차원에서 법 개정은 물론 존폐마저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규제에 따른 부작용은 최소화해야


▎지난 3월 2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경제 6단체장과의 오찬 회동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손 회장은 이 자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등을 요청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중대재해가 빈번히 발생해 사망 사고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재해 예방을 도모한다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배경과 목적은 충분히 국민적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실효성과 함께 부작용이 크게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도입으로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 대한 형사 처벌과 징벌적 손해 배상일 것이다. 기업들이 강력한 규제에 대응하는 데 있어 중대재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안전 조치 등 지속적 투자와 교육을 통해 안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면 규제의 성과가 큰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기업들이 형사 처벌을 피하는 데만 급급한다면 여러 편법 경영을 도입하는 등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소위 형사 처벌을 면하기 위해 사고 위험이 높은 사업장의 대표이사 자리를 회피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움직임이 성행하면서 위험 사업의 책임이 중소기업이나 경제적 약자에게 옮겨가는 현상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안전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 현장에서의 안전 사고는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의 사고에 대한 예방 의지가 필수적이다. 규제를 통해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한 책임경영을 하도록 하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규제는 그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한데, 실효성이 미흡한 데다 부작용마저 크다면 해당 규제는 개혁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제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지금 실효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따라서 법 시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려되는 문제들이 현실화하는지를 파악해 필요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만약 중대재해에 대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 대한 형사 처벌이라는 강력한 규제의 실효성은 높지 않으면서 부작용이 오히려 크게 나타난다면 이는 규제 개혁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기업들에 대한 징벌적 처벌이 강화되면 경영 책임자들은 사고 위험을 피하기 위해 산업 현장에 인력 대신 로봇을 투입하는 방안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 현장의 스마트화가 더 빠르게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결국 규제로 인해 비용이나 경영 위험이 증가하면 해당 규제를 피하기 위한 방편을 찾게 되고 그 결과가 일자리 감소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일자리 감소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소득을 위해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시간도 증가하는 상황에서 일자리가 부족해지면 결국 빈곤 문제가 더욱 크게 대두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2년이 넘는 장기 간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경기 불황과 빈부 격차, 사회적 양극화 현상 등이 심화했다. 이는 국가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게 해 재정 부담이 증가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안전 사고도 줄이면서 경제 위축과 같은 규제의 부작용도 줄일 수는 없을까. 가능하면 기업에 대해 징벌적 처벌 중심의 규제보다는 산업 현장의 안전에 대한 의무를 강화하고, 특히 되풀이되는 사고 기업에 대해서는 처벌하되 모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일자리 감소하는 역효과 발생할 수도

그동안 산업 현장에서의 사고 통계를 살펴보면 안전 사고 발생 경험이 있는 기업들에서 사고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안전 사고를 겪은 기업들이 다시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예방 조치를 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뜻이다. 이런 기업들에는 강력한 징벌적 조치가 필요하다. 일부 기업 때문에 사고 전력이 없고 예방 조치를 철저히 준수하는 기업들마저 경영이 위축되지 않도록 규제가 적용되게 하는 방인이 필요해 보인다.

가능하다면 새로운 규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시장이 실패하고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어쩔 수 없이 규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도입하는 규제에 뒤따르는 꼬리표가 실효성 논란과 그로 인한 부작용 우려라는 점이다. 그래서 정부는 규제를 만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규제개혁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그동안 규제 개혁의 성과가 기대보다 그리 크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시장과 산업 현장에서 피규제자들이 규제 도입의 필요성이 없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다. 규제를 도입하더라도 그 규제가 무색할 만큼 피규제자가 스스로 노력해서 문제 발생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맞아 단순히 형사 처벌을 피하는 데 중점을 둔 경영 자세를 가지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규제 당국은 입법 취지와 목적을 잘 살리면서도 경영 위축과 그로 인한 경제 위축이라는 부작용과 손실이 크게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법 시행 과정을 철저히 모니터링해 규제의 실효성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법을 평가하고, 필요하면 규제 개혁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junghlee@cau.ac.kr

202205호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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