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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패트롤] 창립 50돌 현대중공업그룹의 비전 탐구 

닻 올린 정기선號, 첨단 기술 기업으로 거듭난다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정주영·정몽준 이어 3세 경영 본격화
새로운 50년 ‘미래 개척자’ 도약 목표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2’에서 선박 자율운항 등 현대중공업그룹의 첨단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대중공업그룹이 첨단 기술 기업으로 거듭난다. 현대중공업그룹 지주회사인 현대중공업지주는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명을 HD현대로 바꿨다. 사명에서 중공업을 떼어내면서 기존 제조업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지난 3월 23일 창립 50주년을 맞아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새로운 50년의 출발선에 서 있는 지금 ‘새로움’과 ‘변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며 “추진하고 있는 자율운항 시스템, 탈탄소 미래형 선박, 친환경 바이오 연료 등 다양한 기술 분야에서 그룹의 미래를 현실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정기선 HD현대 사장 중심의 3세 경영도 본격화한다. 고(故) 정주영 현대중공업 창업주의 손자이자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 사장은 올해 주총에서 HD현대와 그룹 조선 부문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 등기임원에 선임됐다. 지주사에서 권 회장과 각자 대표이사를 맡고 중간지주사에서도 가삼현 부회장과 각자 대표이사 역할을 수행하며 그룹 경영 전반을 이끌어가는 구조다.

이에 따라 정 사장이 주도해 온 그룹의 신사업에도 한층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은 1982년 생으로 연세대 경제학과,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에서 학위를 받은 뒤 2009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2018년 HD현대(옛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 현대중공업 선박·해양 영업본부 대표이사,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를 겸임하며 수소·인공지능(AI)·로봇 등의 신사업 발굴과 투자를 주도해 왔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2’에 처음 참가해 새로운 비전으로 ‘미래 개척자(Future Builder)’를 제시한 것도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정 사장의 목표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세계 1위 조선사를 넘어 미래 사업 분야의 신성장동력을 적극 발굴해 첨단 기술 중심 그룹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정 사장은 CES 2022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조선·해양과 에너지, 건설기계 등 3대 핵심 사업을 이끌어 나갈 첨단 기술인 자율운항 기술, 액화수소 운반·추진 시스템 기술, 지능형 로보틱스·솔루션 기술 등을 소개하며 그룹의 신사업 방안을 제시했다.

수소·AI 등 미래 신사업 발굴 박차


HD현대는 지난해 3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와 수소·암모니아 사업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진출했다. 정 사장은 이 자리에서 아흐마드 알 사디 아람코테크니컬 서비스 부문 수석부사장과 협약서에 서명했다. 양 사는 친환경 수소와 암모니아 등을 활용한 공동 사업 모델을 구체화하고 있다. 사업 협력을 위한 공동 연구·개발(R&D)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아람코에서 수입한 액화석유가스(LPG)를 바탕으로 블루수소를 생산해 탈황 설비에 활용하거나 차량·발전용 연료로 판매할 계획이다. 공정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CO₂)를 포집해 활용함으로써 탄소 제로 공정에 도전한다. 현대오일뱅크는 또한 아람코에서 블루 암모니아를 제공받아 오는 2024년 도입할 예정인 액화천연가스(LNG) 보일러의 연료로 일부 활용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한국조선해양은 세계 조선사 중 처음으로 LPG·CO₂ 겸용 운반선과 암모니아 운반·추진선 개발에 돌입하는 등 조선 사업에서 양 사 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정 사장은 지난해 9월 국내 최대 수소 산업 전시회인 ‘수소모빌리티+쇼’에 참석해 그룹의 수소 사업 비전인 ‘수소 드림 2030’의 플랜을 공개하기도 했다. 수소 드림 2030은 현대중공업그룹의 핵심 미래 성장 동력 중 하나인 수소 사업의 로드맵이다. 2030년까지 육상과 해상에서 친환경 수소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소의 생산부터 운송, 저장, 활용까지 각 그룹사의 강점과 인프라를 결집해 수소 밸류 체인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정 사장은 “유기적 밸류 체인 구축은 수소 생태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그룹의 인프라를 토대로 한국 기업들과 시너지를 발휘해 수소 경제 활성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춰 생산 현장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 사장은 지난 1월 CES 2022 현지에서 글로벌 최고 빅데이터 기업인 미국 팔란티어 알렉스 카프 대표와 조선·해양, 에너지, 건설기계 생산 현장에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대표적으로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그룹 조선 3사는 2030년까지 스마트 조선소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조선소의 미래(Future Of Shipyard·FOS)’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설계부터 생산에 이르는 조선소의 모든 공정을 실시간 연결해 스마트한 작업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 프로젝트에 팔란티어의 빅데이터 플랫폼을 도입할 계획이다. 현대오일뱅크도 충남 대산공장을 중심으로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2019년부터 팔란티어와 협력해 빅데이터 협업 플랫폼을 공동 개발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와 별도로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을 활용해 현장 업무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높이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현장에 설치된 5G 키오스크를 통해 대용량 3차원(3D) 도면을 수분 안에 다운로드 할 수 있다. 현장 안전 요원들은 360도 웨어러블 넥밴드를 활용해 작업 현장을 관리한다. 긴급 상황에는 통합관제센터를 통해 즉각적인 구조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친환경·자율운항 선박 ‘퍼스트 무버’


▎정기선(앞줄 오른쪽) HD현대 사장이 ‘CES 2022’ 현대중공업그룹 부스를 찾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 액화수소 운반선과 그룹의 선박 자율운항 기술 등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현대중공업그룹
현대중공업그룹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주력인 조선사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속도를 낸다. 한국조선해양은 그동안 축적해 온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선종 개발과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3월 기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총 89척의 LNG 추진선을 수주했다. 지난해 8월에는 친환경 연료인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건조 계약을 세계 최초로 체결했다. 차세대 선박 분야에서도 한발 앞선 독자 기술을 개발해 우위를 확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한국조선해양은 그 일환으로 액화수소 운반선 등 친환경 선박 원천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2025년까지 100㎿ 규모의 그린수소 생산 플랜트를 구축하고 2만㎥급 수소 운반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다는 목표다. 수소연료전지와 수소연료 공급 시스템 기술을 적용한 수소연료전지 추진선도 개발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 추진선은 기존 내연기관보다 에너지 효율이 40% 이상 높다. 황산화물이나 질소산화물 등 오염 물질도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선박 자율운항 분야에서도 ‘퍼스트 무버’로 거듭난다는 목표를 세웠다. 자율운항 기술은 해상 사고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것은 물론 해상 물류와 자원 개발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혁신 기술로 평가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자율운항 전문 자회사 ‘아비커스’는 지난해 6월 한국 최초로 12인승 크루즈 선박을 사람의 개입 없이 완전 자율운항하는 데 성공했다. 아비커스는 지난 1월 CES 2022 기간 미국선급협회(ABS)와 자율운항기술 단계별 기본 인증(AIP)과 실증 테스트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아비커스는 양해각서 체결을 계기로 자율운항 선박 기술 표준 개발을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올해 들어선 세계 최초의 대형 상선 대양 횡단과 자율운항 레저 보트 상용화를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그룹 미래 이끌 인재 확보에도 총력


▎현대중공업그룹이 개발하고 있는 액화수소 운반선 조감도. / 사진:현대중공업그룹
현대중공업그룹은 미래 가치 창출을 위해 필요한 인재 확보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그간 조선업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조선사 중 유일하게 2016년부터 매년 신입사원을 모집했다. 지난해까지 6년간 총 3000여 명을 채용하며 조선 산업 인재 발굴과 육성에 노력해 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글로벌 조선 업황 개선에 따른 수주 물량 증가와 함께 친환경·스마트 선박 분야의 R&D·엔지니어링 인력 확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올해 상반기에만 800여 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한다. 이는 조선업 불황이 시작된 2014년 이후 최대 규모다. 올 초에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이 각각 7년, 8년 만에 생산기술직 공개채용을 재개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또한 서울대와 손잡고 AI 기반의 핵심 인재 육성에 나서고 있다. 서울대 대학원에 석·박사 융합 과정인 ‘스마트 오션 모빌리티’ 과정을 개설해 조선해양공학에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융합시켜 산학 협력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한편 조선·해양 분야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 갈 미래 인재를 양성 중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올해 글로벌R&D센터(GRC) 건립을 맞아 R&D 인력 확보에 더욱 힘쓸 계획이다. 현대중공업그룹 GRC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총면적 약 17만5800㎡(약 5만3000평) 크기로 조성된다. 지하 5층, 지상 20층 규모로 2019년 착공해 올해 말 완공 예정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GRC에 5000여 명의 R&D 인력을 상주시켜 첨단기술 개발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GRC 완공을 앞두고 새로운 선종과 신기술 개발에 드라이브를 걸기로 했다. 스마트십과 LNG 추진선 분야의 기술력을 고도화하는 것은 물론 메탄올 추진선과 암모니아 운반·추진선 등 차세대 선박 분야에서도 기술 우위를 확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GRC는 그룹 R&D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며 “첨단 기술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청사진이 GRC에서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205호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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