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업

Home>월간중앙>경제.기업

[재계이슈] 에너지 전환 시대 주목받는 ‘수소 경제’ 

새 정부도 적극 지원… 투자로 화답하는 기업들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SK, 세계 1위 수소 기업 목표로 사업 박차
포스코, 탄소 프리 ‘수소환원제철’ 개발 속도


▎수소기업협의체 설립 논의를 위해 지난해 6월 10일 경기 화성의 현대차·기아 기술연구소에 모인 정의선(왼쪽부터)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현대차 수소전기트럭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수소 산업 활성화에 대한 재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발의 후 국회에 계류 중인 수소법 개정안 처리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수소 의무 구매제’ 등 수소 생태계 확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새 정부는 수소 기술 분야를 원자력·배터리·태양광 기술과 함께 세계 3위권 이내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집중 육성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SK·포스코·효성 등이 주축이 된 수소기업협의체는 2030년까지 43조4000억원을 투자해 친환경 수소 산업의 판을 키운다.

SK그룹은 세계 1위 수소 기업을 목표로 18조5000억원을 투자해 생산·공급·유통에 이르는 수소산업 전반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잠재적 최대 수요처가 될 수도권에 수소를 연간 3만t 공급하기 위한 액화수소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액화수소 3만t은 수소 승용차인 현대자동차 넥쏘 7만5000대가 동시에 지구 한 바퀴(약 4만6520㎞)를 도는 데 필요한 양이다. 나무 1200만 그루를 심는 것과 동일한 탄소 저감 효과로 수도권 대기질 개선 등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는 게 SK의 설명이다.

SK는 또한 글로벌 수소 사업 파트너인 미국 플러그파워와 최근 인천에 수소연료전지와 그린수소 생산에 필요한 수전해 장비 생산 합작 공장을 건설하기로 협의했다. SK그룹 지주회사인 SK(주)와 SK E&S는 지난해 초 1조6000억원을 공동 투자해 플러그파워의 지분 9.9%를 확보하며 최대주주가 됐다.

모건 스탠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국제 유가 급등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글로벌 에너지 안보 이슈가 부상하며 수소로의 에너지 전환이 빨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수소 에너지 분야가 각국 정부 지원 등에 힘입어 더욱 빠르게 성장할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그린수소 생산 목표를 당초 목표의 4배인 연 2000만t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그린수소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서 나온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한 수소를 뜻한다. 미국도 수소를 차세대 핵심 에너지원으로 꼽고 있다. 관련해 SK(주)가 투자한 미국의 청록수소 생산 기업 모놀리스는 지난해 말 미국 정부에서 10억400만 달러의 청정 에너지 대출 승인을 획득하기도 했다. 이는 수소 분야 단일 기업 대상 대출 금액 중 최대 규모다.

SK의 수소 사업 추진 전략은 크게 ▷수소 대량 생산 체제 구축을 통한 국내 수소 시장 진출 ▷수소 생산·유통·공급에 이르는 밸류 체인 통합 운영 ▷수소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회사 투자 및 파트너십을 통한 글로벌 시장 공략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SK의 국내 수소 생태계 조성 전략은 액화수소를 생산·공급하는 1단계와 수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을 바탕으로 제거해 블루수소를 생산·공급하는 2단계로 진행된다. SK E&S는 우선 액화수소 연 3만t 생산 체제 달성을 위해 약 5000억원을 들여 액화수소생산 플랜트를 건설하고 있다. SK인천석유화학단지 내 약 4만3000㎡(약 1만3000평) 부지에 들어설 수소 액화 플랜트는 내년 완공과 양산을 목표로 한다.

SK, 청록수소·고체탄소 시장 진출도 검토

SK 관계자는 “기체 형태의 수소는 부피가 커 많은 양을 운반하기 어렵고 수소차 충전 시에도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이동하는 기체의 특성상 수소 탱크가 고기압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액화 플랜트를 통해 수소를 액체 형태로 가공함으로써 운송·충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을 개선하고 안정성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SK는 또한 2단계로 오는 2025년 블루수소의 대량 생산 체제를 가동한다는 목표다. SK E&S는 연 300만t 이상의 액화천연가스(LNG)를 직수입하는 한국 최대 민간 LNG 사업자다. SK는 SK E&S가 확보한 천연가스를 활용해 보령LNG터미널 인근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한 연 25만t 규모의 수소를 추가 생산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에서만 수소를 연간 총 28만t을 생산·공급하는 글로벌 1위 수소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전략이다. 그린수소 생산 사업도 장기적으로 추진한다. 이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수소의 대량 공급 체계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SK는 수소의 생산·유통·공급에 이르는 밸류체인을 통합 운영함으로써 사업의 안정성도 강화해나갈 예정이다. SK에너지의 주유소와 화물 운송 트럭 휴게소 등을 그린 에너지 서비스 허브로 활용하는 한편, 연료전지 발전소 등의 대규모 발전용 수요도 개발할 계획이다. 지게차 등 작업용 차량을 비롯해 산업 현장에서 수요가 늘고 있는 드론 등으로 수소 생태계를 확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SK는 수소 사업 핵심 기술 확보를 통한 글로벌 시장 공략도 병행한다. 원천 기술을 보유한 해외 기업에 대한 투자와 파트너십 등을 통해 사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중국·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에 진출한다는 방침이다. SK는 미국 플러그파워의 최대주주로, SK E&S는 지난 1월 플러그파워와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이 법인은 최근 공장 건설부지를 인천으로 낙점하고 그린수소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천에 수소연료전지와 수전해 설비를 생산하는 ‘기가 팩토리 & R&D센터’를 세우고 2024년부터 양산을 시작한다는 목표다. 수전해 설비는 자연 상태의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설비다. 수소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등의 환경 오염 물질이 전혀 발생하지 않아 친환경 수소 생산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합작법인은 수전해 설비와 수소연료전지의 단가를 플러그파워의 기술력을 활용해 획기적으로 낮춰 국내외에 공급할 계획이다. 125㎿ 수준인 아·태 지역 수전해 설비 시장은 2040년 490GW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SK㈜는 또한 지난해 세계 최초로 청록수소 생산 체제를 구축한 미국 모놀리스에 투자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청정수소 생산 옵션과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청록수소는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를 고온의 반응기에 주입해 수소와 고체탄소로 분해해 생산하는 수소다.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아 친환경 수소로 분류된다. 청록수소는 블루수소 생산에 필요한 CCUS 공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그린수소에 비해 적은 전력량으로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블루수소에서 그린수소로 넘어가는 전환 과정의 전략적 대안으로 그 가치가 크다. 모놀리스는 청록수소 생성 과정에서 타이어의 주성분인 카본블랙과 제철용 코크스, 전기차 배터리용 인조 흑연 등으로 가공할 수 있는 친환경 고체탄소도 생산하고 있다.

SK 관계자는 “모놀리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청록수소·고체탄소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탈탄소를 추진 중인 글로벌 타이어·철강업계뿐만 아니라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등을 중심으로 친환경 고체탄소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향후 높은 시장 성장과 수익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포스코, 10조원 들여 철강 생산 공식 바꾸기로


▎효성은 전국 20곳에 수소충전소를 만든 국내 수소충전소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다. 사진은 효성중공업이 지은 울산 경동 수소충전소. / 사진:효성그룹
포스코그룹은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관련해 총 1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포스코는 우선 한국형 수소환원제철을 개발하기 위해 정부와 철강업계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1조원 규모의 국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4년부터 100만t 규모 수소환원제철 실용 데모 플랜트의 EPC(설계·조달·시공)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2028년 데모 플랜트 설치를 완료하고 시험 생산에 돌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포스코는 또한 중기적으로 2030년까지 수소환원제철의 상용화 가능성을 검증한다는 계획이다. 2040년대 최적화를 거쳐 2050년까지 현재의 제철소 고로(용광로)를 단계적으로 포스코형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하이렉스’ 기반의 설비로 교체해나간다는 목표다. 포스코 관계자는 “수소환원제철은 기존 일관제철소의 제선·제강 기술을 뒤엎는 완전히 새로운 공법인 만큼 상당한 기간의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소환원제철은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해 쇳물을 생산하는 공법이다. 현재 고로 기반의 쇳물 생산 방식은 철광석과 석탄을 고로에 함께 넣고 열풍을 주입해 석탄이 연소되면서 철광석의 환원 반응을 일으키는 원리를 따른다. 석탄이 연소할 때 발생하는 일산화탄소가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시켜 순수한 철을 생성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슬래그 등의 부산물이 남게 된다. 반면 수소환원제철은 수소가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시키는 환원제 역할을 한다. 기존 고로 방식과 달리 순수한 물만 남는 것이 특징이다.

포스코는 관련해 수소환원제철 기술과 근접한 ‘파이넥스’ 기술을 자체 보유 중이다. 파이넥스 공정에서 25%의 수소를 사용하는 유동환원로 설비를 활용하고 있다. 파이넥스는 가루 형태의 철광석을 유동환원로에 넣어 순수한 철인 ‘직접환원철’을 만들고 이를 용융로에 넣어 쇳물을 생산한 뒤 다시 전로에 넣고 정제해 최종 쇳물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포스코는 포항에서 상용 가동 중인 연 150만t·200만t급 유동환원로 2기의 수소 농도를 단계적으로 높여가며 수소환원 기술 개발을 이어갈 계획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파이넥스를 기반으로 수소환원제철에 필요한 몇 가지 핵심적 요소 기술을 확보하면 기존에 쌓아왔던 개발, 설비 운영, 조업 경험들과 결합해 보다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할 수 있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효성그룹도 수소 에너지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기 위해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효성은 지난 2020년 4월 산업용 가스 전문 화학기업인 독일 린데그룹과 함께 2023년까지 액화수소 생산, 운송, 충전 시설 등을 망라하는 밸류체인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효성과 린데의 생산 합작법인인 린데수소에너지는 효성화학 용연공장 부지에 연산 1만3000t 규모로 액화수소 플랜트를 짓고 있다. 내년 5월 가동을 목표로 한다. 이 플랜트에서는 효성화학 용연공장에서 생산한 부생수소를 액화수소로 가공한다. 양사의 판매 합작법인인 효성하이드로젠은 액화수소플랜트 완공 시점에 맞춰 전국 30여 곳에 대형 액화수소충전소를 건립할 계획이다.

효성, 수소 연료 탱크 핵심 ‘탄소섬유’ 확대

효성은 최근 전남도와 손잡고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을 위해 1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남 해상의 풍력발전으로 만들어진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 방식이다.

효성은 수소 연료 탱크의 핵심 소재인 탄소섬유 사업에도 힘을 주고 있다. 탄소섬유는 평균 기압의 최고 900배를 견디는 수소 연료 탱크의 핵심 소재다. 효성첨단소재는 2011년 독자 기술로 한국 최초의 탄소섬유를 개발했다. 2013년부터 전북 전주에서 탄소섬유를 생산하고 있다.

효성은 효성첨단소재 전주 탄소섬유 공장에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1조원을 투자해 탄소섬유를 연 2만4000t 생산한다는 목표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수소는 기존 탄소 중심의 경제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친환경 에너지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효성의 수소 사업 핵심은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수소를 저장하고 운송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205호 (2022.04.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