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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뇌과학자 김학진이 말하는 공정(公正)의 신경학적 기제 

“공정에 집착하는 이유…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욕구 때문”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갈등, 각자의 공정성과 타인의 동기가 충돌해 발생”
공정·불공정 인식은 감정·이성 아닌 직관·분석의 영역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3월 28일 인터뷰에서 “관계에서의 갈등은 각자가 추구하는 공정성과 타인의 동기가 충돌하면서 생겨난다”고 말했다.
새 정부에 ‘공정(公正)’을 바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월간중앙이 남녀 1003명을 상대로 ‘윤석열 정부에 바라는 정책’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부패 척결과 공정 확립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월간중앙 4월호 [창간 54년 기념 특별 여론조사]). 대한상공회의소가 MZ세대 3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4월 3일 발표한 조사에서 ‘기업의 바람직한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투명윤리경영 실천’이 51.3%로 조사됐다. 공정·정의를 중시하는 MZ세대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공정에 매달리는 걸까. 우리 뇌는 공정·불공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신경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뇌과학자다. 그는 오랜 기간 공정성 판단과 이타적 선택의 신경학적 기제를 밝히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월간중앙은 3월 28일 김 교수와 ‘뇌과학과 심리학으로 보는 공정 대한민국’을 주제로 인터뷰를 가졌다.

“불공정함은 신체 항상성 불균형 발생 신호”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의 저자인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오랜 기간 공정성 판단과 이타적 선택의 신경학적 기제를 밝히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인간은 왜 공정성을 추구하나?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 목표는 생존을 위한 신체 항상성의 균형점 유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뇌는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을 예측하고, 방지하기 위해 수많은 이차적 보상들을 학습하게 된다. 그중 인정욕구는 우리가 갓난아이일 때부터 생존을 위해 학습하는 가장 강력한 이차적 보상이다. 갓난아이는 배고픔·고통과 같은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을 엄마라는 타인의 관심·보살핌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정욕구를 학습한다. 이런 발달 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에 인정욕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많은 감정의 근원에 자리 잡게 되고, 이는 사회적 행동의 동기가 된다. 공정성 추구나 내집단 구성원들을 향한 이타성, 외집단을 향한 혐오·공격성이 우리가 하는 사회적 행동들이다. 결국 공정성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동기가 사회적 규범에 부합하도록 포장된 표현 양식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공정성은 상대적인 건가?

“공정성은 고정된 하나의 상태로 규정될 수 없다. 그래서 관계에서의 갈등은 각자가 추구하는 공정성과 타인의 동기가 충돌하면서 생겨난다.”

개인의 공정·불공정성 인지와 관련해 연구한 사례는?

“‘최후통첩 게임’을 사용한 뇌영상 실험 연구가 2003년에 발표됐다. 실험자가 제안자에게 돈을 주면서 실험을 시작하는데, 제안자가 받은 돈 일부를 반응자에게 나눠줬을 때 반응자가 이 제안을 수락하는지 혹은 거절하는지를 보는 실험이다. 반응자가 거절하면 제안자·반응자 모두 돈을 갖지 못한다. 예를 들어 제안자가 받은 1만원 가운데 5000원을 반응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면 반응자는 이를 수락할 것이고 실험은 무사히 종료된다. 그런데 만약 제안자가 8000원을 갖고 2000원만 반응자에게 주면 반응자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거절할 수도 있다. 과거 경제학자들은 반응자에게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2000원이라도 받는 게 반응자 입장에서는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험 결과 수많은 반응자들이 불공정한 제안을 거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절하면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걸 알고 있음에도 반응자가 불공정한 제안을 거절하는 행동의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뇌 영상 연구가 이뤄졌다.”

뇌의 어느 부분이 공정·불공정성을 인지하나?

“불공정한 제안을 받을 때 뇌섬엽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뇌섬엽은 고통·통증 내지는 불쾌한 자극에 반응하는 부위다. 불공정을 인식하는 건 불쾌한 통증을 느끼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공정한 제안을 받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복내측 전전두피질로 관찰됐다. 음식이나 돈, 칭찬 같은 다양한 종류의 보상에 반응하는 뇌 부위다. 불공정함은 신체 항상성에 불균형이 발생했음을 알리는 신호, 공정함은 불균형이 회복됐음을 알리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뇌의 다른 부분이 활성화하는 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지.

“공정한 상황은 직관적인 가치 판단으로 충분하지만, 불공정한 상황은 가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분석적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불공정한 제안을 받을 때 뇌섬엽이 활동하는 건 이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분석적 사고가 활성화됨을 의미한다. 반대로 공정한 제안을 받았을 때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반응하는 건 ‘이 상태가 충분히 만족스럽기 때문에 그대로 안주해도 좋다’는 것을 뇌가 감지했다는 뜻이다.”

1995년 출간된 의학전문학술지에는 흥미로운 사례가 소개된 바 있다. 신발에 대못이 박히는 사고로 응급실로 실려 온 공사장 인부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지만, 진료 결과 실제로 상처를 입지 않았던 사건이다. 김 교수는 “우리 뇌는 실제 세상을 그대로 표상하는 것이 아닌 과거 경험을 재료로 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재구성된 세상을 인식한다”고 말했다.

공정·불공정성을 인식하는 것도 같은 메커니즘인가?

“그렇다. 만약 과거 누군가의 불공정한 행위로 내 자존감에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면, 동일·유사한 상황에 대해 내 뇌는 이를 위협으로 감지한다. 더군다나 그 피해가 심각했다면 동일한 상황에서 나는 상대방의 행위를 확대·과장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하나의 상황에 대해 각자가 공정·불공정성을 다르게 인식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MZ세대가 공정에 민감한 이유 “집단주의에 대한 저항”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역설적이게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신체 항상성 균형을 위해 이기적 행위에 최선을 다했을 때 공정한 대한민국으로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은 어떤 상태일 때 공정성에 집착하는지.

“자존감의 불균형 상태가 심해졌을 때다. 성공·실패의 경험 모두 너무 여러번 반복되면 자존감의 균형상태를 깨뜨린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타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를 왜곡시켜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향성을 보일 수 있다. 우울증이나 자기비하, 분노조절 장애는 불균형 상태의 장기화가 초래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자존감 불균형의 원인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은 흔히 그 원인을 외부, 즉 타인으로 돌려 해결하려고 한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는 이전 세대와 비교해 공정·불공정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행동인지적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위계적 사회구조와 집단주의 문화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라고 본다. 집단주의 속에서 구성원 개인의 욕구·안전은 무시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하지만 MZ세대는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희생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 존중되기를 바라는 세대다. 그리고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SNS)과 같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응집할 수 있는 도구를 통해 집단의 방향성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얻게 됐다. 당연히 집단의 가치를 우선시해온 문화에서 자란 기성세대는 이런 변화를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김 교수는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책에서 “뇌과학이 보여주는 이타성이란 이기적인 나의 어두운 욕구를 억제하는 절대선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내가 갖고 태어난 내적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다듬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또 다른 형태의 욕구”라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젠더·세대 갈등이 극렬히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반응은 공감과 연관이 깊다고 볼 수 있다. 공감 역시 내가 지금까지 누적해온 감정의 경험을 토대로 타인의 감정을 시뮬레이션하는 활동이다. 재료가 다르면 분명 결과물도 달라야 함에도 사람은 타인과 나의 감정이 똑같을 거라고 착각한다. 공감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자기중심적 감정이다. 세대·젠더 갈등은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내가 재구성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견해 차이가 아닌가 싶다.”

공정·불공정성을 자주 언급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정치권이다. 정치권이 두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사견을 전제로 말하겠다. 정치란 많은 사람의 욕구가 가장 극단적인 수준에서 서로 부딪히는 집단적 인정욕구의 최전선이다. 하지만 인정욕구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내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 그래서 정치권이 사회적으로 쉽게 용납될 수 있는 공정함과 이타성으로 자신들의 인정욕구를 포장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공정성과 이타성의 기저에는 인정욕구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개인이 이기적일수록 이타적 사회가 된다는 역설

공정한 대한민국을 실현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일부 정치인의 주장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나?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욕구들이 서로 부딪히며 발생하는 갈등들을 해소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법이라는 매뉴얼이다. 비유해서 얘기하면, 우리 뇌가 매 순간 변화하는 신체 상태에 귀 기울여 만들어낸 감정 매뉴얼과 같다. 이 매뉴얼을 얼마나 정교하고 섬세하게 만드느냐에 따라 우리 뇌가 신체를 잘 관리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된다. 따라서 법 역시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수정되는 유연성을 갖춰야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해진다고 생각한다.”

화합하는 ‘공정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개인의 심리적 불균형은 사회적 불균형을 초래하고, 이런 사회적 불균형은 다시 개인의 심리적 불균형을 가속하는 순환고리를 이룬다. 세포가 우리 몸을 구성하듯 구성원 개개인이 사회를 이룬다는 측면에서 신체적·심리적·사회적 균형은 서로 연결돼 있다. 그러니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에 집중하며 우리 사회에 완벽한 공정함이 존재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쩌면 공정함이란 나의 행동·생각·감정들 뒤에 숨겨진 이기적 욕구들을 빠짐없이 찾아내 인식하고 이 욕구들이 나의 궁극적 삶의 목표에 부합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는 과정일 수 있다. 이 과정은 나의 신체 항상성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극단적인 이기적 노력과도 다르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신체 항상성 균형을 위해 나를 진정 이롭게 하는 이기적 행위에 최선을 다했을 때 공정한 대한민국으로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글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eon.minkyu@joongang.co.kr

202205호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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