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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취재] 부실시공 알고도 눈감는 LH·극동건설 왜? 

규격 외 자재 사용하고도 “계약서상, 안전상 문제없다” 주장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극동건설 “구조적 문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문가 해석 받았다” 해명
업계 “원가절감 목적 있었던 것으로 의심… 관리·감독 미비 지적돼야”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극동건설 아파트 건설 현장. / 사진:연합뉴스
서민의 주거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대규모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임대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규격 외 자재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시공사는 발주처와의 계약서대로 공사를 진행한 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공사의 주장과 다른 사실이 밝혀졌다. 월간중앙 취재 결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하고 극동건설㈜이 세종특별자치시에 짓고 있는 공공임대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규격 외 자재가 사용됐다. 현장명은 ‘행정중심복합도시4-1M4BL 아파트건설공사 13공구’이며 해당 지역은 반곡동 62-9번지 일대다. 총 6개 동 아파트가 건설되는 가운데 지하층 벽면 시공에 규격 외 제품이 사용됐다.

문제의 자재는 ‘와이어 메시(블록 보강용 철망)’인데, 통상 벽면 보강재로 사용된다. 지하층 벽면을 만들 때 벽돌 블록을 쌓고 그 사이에 철근을 심는다. 이 상태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할 경우 벽돌과 철근의 부착력이 부족해 벽면에 크랙(갈라짐·깨짐 현상)이 발생하거나 벽 자체의 구조 강도가 약해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벽돌과 철근 사이에 와이어 메시를 집어넣어 높은 인장강도를 유지하고 부착력을 강화함으로써 벽 자체의 견고성을 유지한다.

해당 공사 현장에서 사용된 ‘와이어 메시’를 월간중앙이 입수해 확인한 결과 두께가 2㎜를 조금 넘었다. 국토교통부가 발간한 [국가건설기준 건축공사 표준시방서]의 ‘블록공사 표준시방서’에 따르면, 블록 보강용 철망(와이어 메시)은 최소 ‘#10 철선’을 사용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와이어 메시는 #8(4.0㎜)~#10(3.2㎜)의 철선을 가스압점 또는 용접한 것을 사용하고 그 형상·치수·기타는 도면 또는 공사시방서에 따른다고 명시돼 있다.

시공사, 건설기준 최저 규격에도 못 미치는 철선 사용


▎월간중앙이 입수한, 공사 현장에 쌓여 있는 와이어 메시와 실측 사진. / 사진:조규희 기자
특히 공사시방서에서 정한 바가 없을 때는 #10(3.2㎜) 철선을 사용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다시 말해 벽의 높이와 두께에 따라 와이어 메시에 사용될 철선의 두께도 결정되지만 아무리 얇아도 3.2㎜를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건축공사 표준시방서는 건축 현장의 지침서다. 예를 들어 바닥면에 콘크리트 타설 시 단열재 두께, 방수 방법부터 바람이 거센 지역에서 지붕 경사도에 따른 시공 방법 등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영역에 걸쳐 상세하게 기준을 제시한다. 건축 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최저 기준인 셈이다.

하지만 해당 공사 현장에서는 규격에 없는 약 2㎜ 철선을 사용했다. 건설기준 최소 규격인 3.2㎜보다도 1㎜가량 얇다. 모 건설사 아파트 건설 현장관리소장은 월간중앙 전화 통화에서 “블록 보강용으로 사용하는 와이어 메시 철선의 두께가 1.0㎜만 차이나도 그 역할이 달라진다”며 “벽돌·철근과 함께 콘크리트 타설 시 와이어 메시가 구조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3.2㎜보다 얇은 철선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취재 결과 해당 현장에서는 비규격 와이어 메시가 지난해 11월께부터 올해 2월께까지 3만5000여 장 정도 사용됐다.

시공사인 극동건설 측은 구조적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극동건설 관계자는 월간중앙에 “해당 자재 사용에 관한 문제를 발견한 이후 구조기술사에게 ‘비보강 블록조와 보강 블록조에 대한 내력 검토’에 관한 현장 시공 상태를 질의했다”며 “횡력과 수평력 등 구조적 해석을 통해서 구조적 안정성에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구조기술사가) 해당 벽면의 현재와 같은 컨디션(상황)에서 구조적 안정성과 관련해서는 수직 철근만 해당하지 수평 상태의 와이어 메시는 해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극동건설 측에 따르면 문제가 된 해당 벽면은 아파트 ‘피트 구간’과 주차장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었다. 피트 구간이란 아파트 지하층에 비어 있는 공간을 뜻하며 이 부분은 비가 오거나 바닥에서 물이 올라올 경우 일시적으로 물을 저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문제의 벽면은 일종의 ‘물 저장소’와 주차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따라서 “해당 벽면은 아파트 전체 하중을 견디거나 특정 영역의 무게를 버텨내야 하는 ‘내력 구조’ 벽면이 아니기 때문에 아파트 전체 안정성과는 무관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특히 원청인 LH와 계약 당시 시방서·시공계획서, 승인받은 도면에 와이어 메시에 대한 규격을 명시하지 않았던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극동건설 측이 와이어 메시 논란과 관련해 LH 측에 다시 문의한 결과 동일한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LH와 극동건설 측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 취재 과정에서 확인됐다. 사실, 문제의 지하 벽면 시공은 극동건설의 A하청업체가 도맡았다. 대형 건설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청(LH)-하청(극동건설)-재하청(A업체) 구조다. A업체 관계자는 2㎜가량인 와이어 메시 사용과 관련해 월간중앙 전화 통화에서 “도면상에 와이어 메시 두께가 적혀 있지만 극동건설 측에 (우리가 사용한) 해당 자재 관련 승인서를 넣었다. (도면상의) 두께가 안 맞지만…”이라고 말했다. 도면상 와이어 메시 관련 내용이 없었다는 극동건설 측의 해명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이 관계자는 또 “와이어 메시는 부자재라서 LH 기준에 나와 있지 않고 (우리가 사용한 자재는 규격보다) 얇지만 강도가 더 좋다”고 주장했다.

하청업체 “도면에 적힌 수치와 다른 자재 넣었다”


▎국토교통부의 [국가건설기준 건축공사 표준시방서](왼쪽)에 따르면 와이어 메시에 사용하는 철선의 최소 두께는 3.2㎜다. / 사진:조규희 기자
월간중앙은 하청업체 관계자가 언급한 LH 자체 기준을 찾아봤다. [LH표준시공상세도]의 ‘콘크리트 블록’ 부분을 보면 와이어 메시 대신 보강재 역할로 두 개의 벽돌이 흔들리지 않게 접합부에 고정 집게 역할을 하는 ‘블록 앵커’ 철물을 사용하도록 돼 있다. 극동건설 측 주장대로 와이어 메시 관련 LH 기준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다만 LH 자체 기준인 ‘블록 앵커’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국토교통부 기준을 적용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서는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익명을 원한 베테랑 건축설계사는 극동건설과 LH의 태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설계사는 “공공임대 주택을 발주하는 LH의 특성상 설계도면부터 자재 규격까지 세세하게 확인하는데, 블록 보강용 공사의 기본인 와이어 메시 규격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설사 설계도면에 자재 규격을 명시하지 않더라도 건축표준일람에는 넣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와이어 메시에 관한 LH 내부 규정이 없다면 국토교통부의 건축공사 표준시방서가 기준이 돼야 한다”며 “다시 말해 와이어 메시는 2.0㎜보다 두꺼운 철선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간중앙의 취재에 응한 대다수 건설업계 관계자는 “규격 외 자재 사용은 업체가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관리·감독 과정에서 해당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주체들도 책임 소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비인가 자재 사용 이외에도 해당 건설 현장에서는 부당해고 정황과 근로계약서 작성 과정에서의 위법 행위도 포착됐다. A업체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한 B씨는 정당한 사유 없이 해고됐다고 주장했다. B씨는 월간중앙과 만나 “한 달여 근무하던 중 하루 일당과 관련해 구두 계약 때 들었던 액수보다 적은 보수를 준다고 알려와 항의했다”며 “이 과정에서 A업체 관계자가 ‘나에게 피해를 준다’며 더는 나오지 말라고 해고를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A업체 관계자는 B씨 주장과 관련해 서로 합의하지 못한 일당 관련 문제가 있었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B씨의 행동이 나에게 피해를 줬다. 그래서 일을 같이 못한다고 (전화로) 이야기했다”고 답변했다.


▎LH 기준에는 와이어 메시가 아닌 다른 보강재 사용 방법이 적시돼 있다. / 사진:조규희 기자
이와 관련, 기세환 노무사(현 태광노무법인 대표)는 “A하청업체와 B씨가 주장하는 하루 일당은 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근로기준법상 해고는 서면으로 통보해야 하며 이를 어길 시 근로기준법 27조 위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기 노무사는 “특히 해고의 정당한 사유는 사업주가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B씨는 해고 이후 임금도 제때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5일부터 12월 22일까지 두 달 남짓 일했는데, 해고는 전화상으로 지난해 12월 20일께 통보받았다. B씨의 11월 급여는 12월 28일에 지급됐으나, 12월 급여는 1월 말께야 받을 수 있었다. 기 노무사는 “퇴사 이후 월급 정산은 14일 이내에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근로기준법·형사소송법 위반 정황도 포착돼


▎규격 외 자재가 사용된 공사 현장의 한 하청업체가 근로자의 동의 없이 서명한 근로계약서 원본. / 사진:조규희 기자
더 큰 문제는 B씨가 자신의 근로계약서에 직접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해고 이후 B씨가 A업체에 요구해서 받아본 근로계약서 서명란에는 정체불명의 사인이 적혀 있었다. B씨는 “내가 사인한 적도 없는데 서명란에 내 이름(성)이 적혀 있더라”고 말했다.

월간중앙이 A업체에 해당 사실을 확인하자 “그거 맞다(B씨가 사인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근로자에게 임금을 주려면 ‘LH노임닷컴’에 근로계약서 등의 서류를 올려야 한다”며 “당장 B씨 월급도 줘야 하니 다급하게 본사에서 (누군가 임의로) 사인한 것”이라고 시인했다. 이에 대해 기 노무사는 “타인의 명의로 그 사람이 한 것처럼 노동부·근로복지공단 등에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면 형사법에 저촉될 수 있는 건설사의 범법행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중형 건설사 간부는 “모든 건설 현장에는 원가절감 등의 유혹이 많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작은 것을 좇다가 큰 것을 놓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cho.kyuhee@joongang.co.kr

202205호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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