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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취재] 판 커지는 ‘구독경제’ 사용 설명서 

영화·자동차·집까지 구독경제… 모바일 친화적 환경 타고 급성장 

이민준 월간중앙 인턴기자
모바일 결합으로 편리성 극대화해 산업 전방위로 확산
어려운 서비스 해지, 선택 강제, 비용 인상 등 주의해야


▎구독 서비스는 모바일과 결합하며 편리함을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운다. 사진은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지난해 11월 4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미디어 오픈 토크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30대 스타트업 재직자 구독중씨는 24시간을 구독 서비스로 채우는 가상의 인물이다. 구씨의 아침 일과는 집 앞에 도착한 샐러드를 챙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 6일 샐러드 배송 서비스를 구독하는 구씨는 매주 두 번 3일분의 신선한 샐러드를 배송받는다. 8주 분량의 샐러드를 한 번에 주문할 경우 지불해야 하는 가격은 34만원 내외. 한 끼당 7200원꼴이다. 매번 구독을 갱신할 때마다 ‘조금 비싼 것 아닌가’ 싶지만, 스마트폰을 몇 번 터치하는 것만으로 집 앞까지 배송되는 편리함이 포함된 가격이라면 괜찮은 수준이다.

샐러드로 아침 식사를 마친 구씨는 스튜디오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유튜브로 주식 투자 관련 콘텐트를 시청한다. 인파가 몰려 통신에 과부하가 걸리더라도 구씨의 스마트폰에서는 영상이 끊김 없이 재생된다.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에 가입한 덕이다. 매일 저녁, 다음 날 출근길에 시청할 영상을 미리 고른 뒤 스마트폰에 저장한다. 매달 1만원가량을 내야 하지만 구씨가 느끼는 만족도는 그 이상이다.

사무실에 도착한 구씨는 빠르게 업무를 시작한다. 구씨가 업무에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제공하는 ‘MS오피스’ 프로그램인데, 대다수 직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소프트웨어다. 직원 5명의 작은 스타트업인 만큼, 구씨의 직장에서는 MS 365 패밀리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다. MS 365 패밀리 서비스는 오피스 프로그램 이외에도 온라인 클라우드 저장소 6TB와 협업 프로그램인 MS Teams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 구독료는 연 11만9000원이다. PC 1대당 17만9000원씩 지불해야 하는 기존 오피스 프로그램보다 훨씬 효율적인 셈이다.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구씨, 퇴근길을 채우는 구독 서비스는 넷플릭스다. 지하철에 타 있는 40분 동안 구씨는 지난 2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트 [소년심판]을 시청한다. 편당 길이가 1시간 내외여서 지하철 탑승 시간보다 길지만,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을 합치면 재생 시간이 딱 맞아떨어진다.

구씨가 하루 동안 이용한 구독 서비스 4종은 구독경제를 선도하는 대표 서비스들이다. 샐러드를 비롯한 신선식품은 새벽배송 형태로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있다. 무료 제공이 원칙이던 유튜브는 2015년 10월 광고 제거, 오프라인 저장 등 부가 서비스를 포함한 구독 요금제인 유튜브 레드를 출시했다. 2018년 6월 유튜브 프리미엄으로 개편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MS는 2011년 자사의 오피스 프로그램을 구독형 서비스로 출시한 뒤, 2022년 기준으로 지속적인 업데이트 제공을 약속하며 소비자를 모으고 있다. 넷플릭스는 명실상부한 OTT(Over The Top,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 선도 기업이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3월 한 달간 우리나라에서 넷플릭스를 이용한 회원 수는 1239만8771명에 달한다.

넷플릭스 등 OTT의 약진으로 화두가 된 구독경제는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는 아니다. 과거부터 계속돼온 새벽 우유 배달, 신문 구독 등도 전통적 형태의 구독경제 중 하나다.

빈집 문제를 겨냥한 주거구독 서비스도 출시


▎일본에서는 집을 구독할 수 있는 주거구독 서비스가 운영 중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ADDress’는 빈집을 비롯한 유휴 주택을 구매한 뒤 리노베이션을 거쳐 고객에게 주거 서비스를 제공한다. 월 4만 엔(한화 약 43만원)을 낼 경우 원하는 집을 옮겨가며 생활할 수 있다. / 사진:ADDress 홈페이지 캡처
전문가들은 전통적 구독경제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구독 서비스의 가장 큰 차이로 ‘모바일과의 결합’을 꼽는다. 구독 서비스 가입과 이용이 편리해지면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은 월간중앙에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모바일로 즐길 수 있는 서비스의 종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점이 큰 메리트”라고 설명했다. 전 센터장은 “뉴스의 경우 매일 새벽 신문을 받아보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모바일 환경에서 바로 찾아볼 수 있지 않나”라며 “모바일과 구독 형태 서비스가 결합하면서 급성장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소비자가 구독 서비스를 선호하는 것은 기존 소비 형태보다 편리해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소비 활동의 80%가 스마트폰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김 교수는 “기존엔 기업 활동의 3요소가 토지·노동·자본이었다면, 2022년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모바일 친화적 환경”이라며 “구독 서비스가 전방위적 산업 영역에서 성장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도 한층 다양해지고 있다. 모바일을 넘어 자동차와 집도 구독 형태의 멤버십 서비스가 출시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20년 10월 자사의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활용한 구독 서비스 ‘제네시스 스펙트럼’을 출시했다. 월 단위 구독 서비스로 차종에 따라 구독료를 지불해 제네시스 브랜드의 차량을 골라 탈 수 있는 서비스다. 정식 출시 당시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차량용 반도체 대란에 따른 출고 지연 문제가 겹치면서 지난 2월 누적 가입자 수 8000명을 돌파했다.

일본에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빈집을 겨냥한 주거구독 서비스도 출시됐다. 주거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ADDress’는 일본 각지의 빈집과 유휴 주택 등을 리노베이션한 뒤 지방으로 이주를 계획하거나 단기 거주를 희망하는 고객에게 빌려준다. ADDress 역시 월 구독료를 지불하는 형태이며, 매달 4만 엔(한화 약 43만원)을 내면 일본 각지에 있는 집에서 살 수 있다. 보증금과 중개수수료가 없는 것은 덤이다.

전 센터장은 “우리나라도 이미 ‘○○○ 한 달 살기’ 형태로 주거구독 서비스가 시작되고 있다”며 “지금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무형인 소프트웨어 서비스 위주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물리적인 제품을 제공하는 서비스도 구독경제의 망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가격 인상, 선택권 부재, 해지 어려움 등 문제 있어


▎메르세데스-벤츠는 자사 차량 EQS 시리즈의 옵션인 후륜 조향을 구독 형태로 제공한다. 매년 575달러를 내고 서비스를 신청할 경우 10도까지 회전하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 4.5도만 이용할 수 있다. / 사진: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캡처
구독 서비스가 성장하면서 소비자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불만은 기존 구독 서비스의 가격 인상이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11월 요금 인상을 발표했다. 국내 기준으로 멤버십 종류에 따라 1500~2500원 올렸다. 인상폭은 약 20% 안팎이다. 넷플릭스 측은 자사 홈페이지에 “현지 세금 변경, 인플레이션 등 현지 시장 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소비자들은 아쉽다는 반응이다. 3년째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박모(23)씨는 “친구들과 함께 4인 그룹을 만들어 구독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요금이 오른다고 해 당혹스러웠다”며 “큰 액수는 아니지만 구독 해지를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구독 서비스를 늘리려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높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해 8월 출시한 EQS 시리즈의 옵션인 후륜 조향을 구독 형태로 제공한다. 연 575달러를 지불해야 후륜 조향을 10도까지 이용할 수 있으며, 이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4.5도만 쓸 수 있다. 이에 10도까지 조향이 되는 부품의 성능을 일부러 막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구독 서비스 해지 절차가 어렵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 3월 소비자원에 따르면 구독형 소프트웨어 서비스 관련 소비자 상담 268건 중 계약 해지 관련 불만이 50.4%로 절반을 넘었다. 소비자원이 정기 결제 방식인 30개 앱을 조사한 결과 93%에 달하는 28개 앱이 계약 해지 관련 정보 제공에 소홀했다.

전문가들은 출혈 경쟁이 끝난 뒤 이어지는 조정기가 왔다고 분석한다. 김 교수는 “초기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저가로 공급하다가 어느 정도 매출이 확보됐다는 판단하에 가격을 올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 센터장도 “신성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가격 인상으로 탈출구를 찾는 것”이라며 “서비스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구독 결제를 강제하는 행태에 대해 전 센터장은 “사실상 강매”라고 지적했다. 전 센터장은 “소비자에게 선택 권한을 뺏는 것은 시장 교란 행위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구독 해지가 어렵다는 불만에 대해 김 교수는 “한 명의 소비자로서 해지가 어렵다는 것에 깊이 공감한다”며 “가입 절차와 동일한 수준으로 편리하게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업의 책임”이라고 조언했다.

- 이민준 월간중앙 인턴기자 19g2970@naver.com

202205호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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