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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경제 소방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조언 

“민간 중심으로 경제 운영하고 규제 완화 적극 추진하라”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文 정부의 반시장·반기업 정책으로 일자리 줄고 소득 분배 악화해”
“부동산 해법? 서울 도심 자투리땅에 고층 아파트 짓게 규제 풀어야”
“저출산 문제 해결 위해 인구 정책의 대전환 필요, 이민 정책이 해법”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 29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전반을 평가하고 새 정부 운영 방안 등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윤증현(76) 윤경제연구소장은 MB 정부 시절이던 2009년 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가 장관에 임명되던 2009년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다. 전문가들의 의견과 지표를 통해 예상한 결과 도저히 플러스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정부는 정직을 바탕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고, 근거 없는 장밋빛 경제 전망으로 국민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평소 신념이었다.

윤 전 장관은 플러스 성장이 어렵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알리고 정면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2009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에서 -3%로 수정하겠다고 직접 보고했다.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 “시국이 어렵지만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하지 않겠냐”는 이 전 대통령의 설득에 1%p를 양보해 성장률 전망치 -2%를 공식 발표했다.

윤 전 장관은 이어 사상 최대인 28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다. 2009년 0.3%를 기록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이듬해 6.2%로 급반등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금융위기를 가장 빠른 속도로 극복해 ‘교과서적 경기회복’이라는 외신의 찬사를 받았다.

“새 정부, 경험하지 못한 경제 위기 봉착”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0년 11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성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정치권과 재계에서 ‘경제 소방수’로 불리는 윤 전 장관을 지난 4월 29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에서 만났다. 집무실에는 원칙주의자로 통하는 그의 성격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작은 물건 하나 흐트러진 게 없었다. 윤 전 장관은 인터뷰 내내 격앙돼 있었다. 그는 한국 경제에 대해 “총체적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 원인에 대해선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 탓”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의 국내외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 경제는 우선 장기적 경기 침체(스태그네이션) 국면에 돌입할 소지가 있다. 일부 전문가는 경제 불황 속에서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한다. 대내외적으로 사상 초유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해 3년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공급망에 차질이 생겼다. 글로벌 원자재·식량 수급 문제가 심각하다. 우크라이나는 밀과 옥수수 등의 곡물을 세계 각국에 30%가량 공급하는 큰 곡창이다. 글로벌 경제가 더욱 어려워진 요인이다. 한국은 더군다나 물가 상승과 일자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국내외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 경제가 실제 스태그네이션 국면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과거 MB 정부 초기와 현재의 한국 경제 상황이 비슷하다는 분석도 있다.

“MB 정부 초기 광우병 사태로 난리가 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의 글로벌 투자은행(IB)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적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각국 정부가 신용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유동성을 확대했다. 그런 면에서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확대된 현 상황과 비슷하다. 과잉 유동성을 축소하기 위해 미국은 물론 한국도 올해 기준금리를 몇 차례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금리가 오르면 새로운 문제가 야기될 수 있는 만큼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5년간 경제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평가할 가치도 없다. 죄다 반시장·반기업 정책이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됐나. 공무원 수만 잔뜩 늘었다. 기업 일자리는 줄었다. 물가는 오르고 소득 분배는 악화했다. 민간이 아닌 정부 중심의 경제 정책을 폈던 게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 특히 무분별한 코로나19 지원금, 즉 현금을 살포하면서 국민 의식을 크게 추락시켰다. 국민 사이에 공짜 의식이 만연해 정부에 손을 벌리도록 만들어버렸다. 지난 5년간 추락한 국민 의식을 되돌려야 한다. 건전하게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야 한다. 공짜 의식이 만연하면 전 국민이 피폐해진다.”

국가채무비율이 급격히 늘어 관리가 필요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연한 우려다. 지난해 한국의 국가부채는 2196조4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명목 기준) 2057조4000억원보다 많았다. 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말 1433조1000억원과 비교하면 763조3000억원(53.3%)이나 늘었다. 그야말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셈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7.0%로 50% 수준을 향해가고 있다. 한국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는 재정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지면 대외 신인도가 하락할 수 있다. 나랏 빚은 관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불기 마련이다. 새 정부가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등을 위해 50조원 추경 편성을 약속했는데, 제로베이스에서 재정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

“노동·연금·의료 개혁은 반드시 추진해야”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0년 11월 1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만찬 리셉션장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왼쪽은 홍상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비서관.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장관 재직 당시 위기 극복을 위해 추경을 편성하지 않았나?

“원칙이 중요하다. 나름의 세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정부 예산은 자활 의지를 북돋우는 데 투입해야 한다. 단순히 놀고먹고 쓰는 데 지원해선 안 된다. 둘째, 나랏돈은 한번 투입하면 거둬들이지 못하는 만큼 지속가능한 곳에 지원해야 한다. 셋째, 반드시 필요한 곳에 선별적으로 투입해 국가부채 증가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새 정부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 초대 경제사령탑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과거 재정경제원 등에서 같이 일한 적이 있다. 동료평가(피어리뷰)를 해보면 능력과 품성 등 모든 면에서 선후배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의정 활동 경험도 갖췄다. 정책을 펼쳐나가는 데 있어 국회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려운 상황을 잘 이끌어나갈 적임자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팀은 전문성을 위주로 비교적 잘 짜여진 것으로 보고 있다.”

새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개혁 과제는 뭔가?

“노동 개혁이다. 대한민국 전체 노동자의 10% 남짓밖에 안 되는 민노총과 한노총이 중심이 돼 무법천지의 불법파업을 자행하고 있다. 기업들이 투자하기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다. 노동 개혁 없이는 기업의 경쟁력이 확보될 수 없다. 연금 개혁도 추진해야 한다. 적자투성이인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전부 뜯어고쳐야 한다. 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데도 문 정부는 골치 아프다는 이유로 나 몰라라 했다. 의료 개혁도 중요하다. 의료 민영화와 산업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는 분야가 의약업계다. 의료 분야에 대한 민간 투자 등을 자유롭게 허용해줘야 한다.”

한국 경제를 위해 반드시 폐기해야 할 정책은 무엇인가?

“소득주도성장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건 좋다. 다만 일자리 공급자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급격히 상승시켜버리면 고용은 감소하기 마련이다. ‘소주성’은 그야말로 족보도 없는 경제 정책이다. 당장 폐기해야 한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근무 시간은 사측과 노조가 협의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국가가 근무 시간을 규정하는 게 시장경제적으로 옳은 것인가. 기업 규제 완화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반기업법,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하는 사람들 다 도망가게 만드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잘못된 법이면 수정하고 폐기도 고려해야 한다. 새 정부는 이런 사안을 전부 제자리로 돌려놓는 역사적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

“세계 최고 원전 기술 경쟁력 재건 필요”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 29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에서 월간중앙과 인터뷰하고 있다.
새 정부의 ‘친원전’ 정책 기조는 어떻게 보나?

“말할 것도 없다. 에너지 백년대계 차원에서 하루빨리 돌려세워야 한다. 문 정부의 가장 큰 실책 중 하나가 탈원전이다. 지난 40~50년 동안 피와 땀과 눈물로 이뤄놓은 한국의 세계적 원전 기술 경쟁력을 짓밟아놓았다. 한국처럼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원자력 발전은 필수적이다.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도 친원전으로 돌아섰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가장 효율적 에너지는 원전뿐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새 정부의 공약 중에서 철회하거나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없나?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어느 나라나 예외 없이 공약을 리뷰한다. 실행에 옮길 공약과 유보할 약속, 폐기할 것 등으로 분류한다. 표를 얻기 위해 무분별하게 남발한 공약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과의 약속이라도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설득하고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현금 지원 공약은 재정건전성을 감안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병사 월급 200만원’ 현실화도 철회해야 한다. 노동이사제 도입에 찬성 입장을 보인 것에도 실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TV 토론회에서 ‘공기업을 중심으로 도입해보자’고 했다. 어불성설이다. 노동이사제는 각 분야 외부 전문가를 앉히는 기존 노조추천 이사제와 달리 사실상 노조원이 이사회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다. 공기업에 이 제도가 도입되면 몇 년 뒤 민간으로도 확대될 것이다. 지금도 노사 대립이 극심한 마당에 정말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고 만다.”

집값 상승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시장 중심으로 가면 된다. 서울 위주의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가 답이다. 출퇴근 등이 불편한 수도권 외곽에 공급을 확대하면 뭐 하나. 수요가 많은 곳 위주로 공급을 늘려야 한다. 한국처럼 땅이 좁고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는 초고층 공동주택이 가장 효율적이다. 서울 도심 내 자투리땅에도 고층 새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끔 규제를 풀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 잠재성장률이 8년 뒤 0%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집값은 물론 전월세까지 모두 오를 만큼 올라 도심에 살 집이 없는데 젊은이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겠나. 희망이 없으니 암호화폐에 투자해 일확천금을 노린다.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 본다. 일자리도 부족하다. 기업이 왕성히 활동할 수 있는 활력이 넘치는 한국을 만들었어야 했다. 정부가 기업을 적대시하고 때려잡을 궁리만 했으니 투자와 일자리가 늘겠나. 지난 5년간 한국 기업들의 투자 내역만 살펴봐도 그렇다. 해외 투자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권유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전과 다른 인구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민 정책이 해법일 수 있다. 국가가 앞장서 해외의 젊은 전문 지식인을 받아들여야 한다. 일할 수 있는 유능한 젊은 인재들을 한국으로 그러모아야 한다. 백의민족이니 ‘순수혈통’은 구시대적 생각이다. 다문화를 넘어 다민족 국가로 바뀌어야 한다.”

“파탄 수준 한·일 관계 개선 시급”

미·중 패권 경쟁이 갈수록 심화하는 것도 한국 경제에 부담이다. 외교적 포지션은 어떻게 가져가야 한다고 보나?

“이른바 ‘안미경중’, 즉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의 협력에 중점을 둔다는 건 당치도 않은 발상이다. 한국 경제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미국·일본 등 해양 세력과의 연대 덕분이었다. 중국·러시아·북한 등 대륙 세력과 연대했다면 지금 같은 풍요를 누릴 수 없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새 정부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작지만 강한 나라, 강소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나름의 원칙과 가치가 분명한 국가가 돼야 한다. 그런데 문 정부는 어땠나. 대륙 세력과 연대하고 미·일과는 척을 지지 않았나. 완전히 잘못됐다. 특히 파탄 수준인 한·일 관계 개선이 시급하다. 그런 면에서 새정부가 지난 4월 24일 일본에 정책협의대표단을 파견한 것은 잘한 일이다. 정부 간 우호적 관계가 형성되면 경제단체 등을 중심으로 한 민간 협력도 활발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 정부에 특별히 당부하고픈 부분이 있다면?

“한국 경제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다. 새 정부는 그 무엇보다도 한국 경제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또 정부가 아닌 민간을 중심으로 경제를 운영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힘써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6세대이동통신(6G)·2차전지·차세대 원전·인공지능(AI)·문화 콘텐트 등으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한발 앞서 한국 기업들이 치고 나갈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먹거리를 제시하고 적극 지원하길 바란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 사진 정준희 기자 jeong.junhee@joongang.co.kr

202206호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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