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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K컬처 톺아보기(3)] 유재석 월드의 성장·진화·위기 진단 

공고했던 ‘유’니버스, 어째서 균열이 생겼을까 

결과보다 ‘과정’ 중시하는 서민 판타지 충족시키며 성장해
‘조정자’ 김태호 PD와 단절, 균형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져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윤석열(가운데) 대통령과 진행자 유재석(왼쪽), 조세호의 모습. / 사진:윤석열 대통령 인스타그램 캡처
공고하게만 보였던 ‘유재석 월드’가 최근 들어 흔들리고 있다. 15년 넘게 한국 예능에서 최고의 위치를 유지해오며 심지어 ‘유느님’이라는 별칭까지 갖게 된 유재석. 그런 그의 세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건 우리에게 무얼 말해주는 걸까.

“무한-도전!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초일류 연예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무한 프로젝트! [무한도전]. 정말 국내에서 보기 힘든, 정말 보기 어려웠던, 볼 수는 있었지만 감히 시도해볼 수 없었던 그런 엄청난 도전들을 저희가 직접….” 2005년 4월 23일 MBC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코너로 시작한 [무(모)한 도전]에서 유재석은 그렇게 오프닝을 열었다. 이후 ‘초일류 연예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무한 프로젝트’는 실제 현실이 됐다. [무한도전]을 시작으로 유재석은 매해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고, 2005년 [해피투게더 프렌즈]로 KBS 연예대상을 거머쥔 이후 방송 3사 총 15회(KBS 2회, MBC 8회, SBS 6회) 최다 연예대상 수상자가 됐다. 백상예술대상에서도 예능인으로서는 최초로 TV 부문 대상(2013, 2021년)을 2번 받았다.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들이 등장하면서 갈수록 경쟁력이 약화된 [무한도전]이 2018년, 13년간의 대장정을 끝으로 막을 내리면서 유재석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무한도전]이 이끌어오던,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 불리는 캐릭터쇼의 시대가 지나고 이제 본격 리얼리티쇼(관찰 카메라로 변용돼 불리는)의 시대가 열리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1년 후 돌아온 김태호 PD는 정확히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놀면 뭐하니?]를 새로 시작해 유재석을 원톱으로 세운 김태호 PD는 그에게 갖가지 미션을 부여하고 그때그때 만들어지는 의외의 모습들에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했다. 이른바 ‘부캐의 시대’를 연 것. ‘최고는 아닙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기치 아래, 2005년 자신을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 부르며 초일류 연예인을 꿈꾸던 예능인은 그렇게 대한민국 최고 연예인의 위치에 올랐다.

유재석이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로 연달아 이어온 성장 서사에는 한국사회의 변화와 그로 인해 달라진 대중의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무한도전]이 내세운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도전과 실제 성장에는, 개발시대를 거쳐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정점으로 거품이 꺼지며 생겨난 서민 판타지가 반영돼 있다. 양극화를 겪으며 이제 더는 노력해도 성장하거나 성공을 거두는 일이 어려워진 시대에 [무한도전]은 서민들의 노력이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로 인정받고픈 갈증과 갈망을 판타지화했다. 또 혼자서는 도저히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함께함으로써 수행해나가는 과정 또한 그 판타지에 더해졌다. 남성들로만 꾸려진 이 팀은 이제는 사라져가는 서민 성장 서사를 그리며 과거에 대한 향수가 더해진 열광적인 팬덤을 낳았다.

대중의 욕망을 도전 미션에 투영하며 캐릭터 성장


▎방송인 유재석은 2005년 4월 MBC [무(모)한 도전] 1회 오프닝을 통해 “초일류 연예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무한 프로젝트”라고 프로그램 취지를 설명했다. / 사진:MBC [무한도전] 캡처
유재석이 유느님이 되는 과정에는 김태호 PD라는 ‘균형자’ 혹은 ‘조정자’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작용했다.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을 찍을 때 캐릭터 한명당 하나의 전담 카메라와 오디오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로써 촬영 분량은 몇 배로 늘어났지만, 디테일한 장면과 자막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캐릭터의 매력은 극대화됐다. 여기에는 점점 경량화된 카메라로 인해 영상 촬영이 일상화되는 시대적 변화가 담겼다. 일반인도 영상을 쉽게 찍고 편집하기 시작하면서 더 리얼한 영상을 요구하게 됐고, 김태호 PD가 도입한 전담 카메라가 그 요구를 채워줬던 것이다.

또 하기 싫은, 혹은 할 수 없어 보이는 미션들을 부여하는 것도 연출자로서 김태호 PD가 하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프로레슬링에 도전하고 봅슬레이를 타게 만드는 건 제아무리 유느님이라 해도 스스로 선택해 실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김태호 PD는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이 서민들의 미디어로 모인 대중이 원하는 욕망들을 찾아냈고, 그것을 [무한도전]의 도전 미션에 투영하면서 캐릭터들을 성장시켰다. 이 성장에는 인터넷 혁명으로 생겨난 인터넷 여론과 거기서 더 나아가 만들어진 팬덤 문화가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팬덤 문화는 연예계는 물론이고 정치계까지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혁명에서 모바일 문화의 보편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지상파 같은 레거시 미디어의 몰락은 예견된 일이었다. 김태호 PD는 일찌감치 이런 변화를 감지했다. 실제로 [무한도전]의 힘은 점점 빠지고 있었고, 10년 넘게 프로그램을 이끌던 유재석을 비롯한 멤버들도 나이가 들었다. 결혼을 했고 부양가족이 생겼으니 도전에도 상한선이 그어졌다. 김태호 PD는 결국 2018년 시즌 종료를 선언했고, 그건 무한히 도전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는 서사의 시대가 이제는 끝났다는 걸 의미했다.

‘부캐’로 워라밸 꿈꾸는 대중 호응 이끌어내


▎김태호PD의 MBC 퇴사는 방송인 유재석을 그나마 견제하면서 균형 있는 흐름을 이어가도록 하는 조력자가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 사진:MBC
1년 후 김태호 PD가 유재석과 함께 돌아와 시도한 [놀면 뭐하니?]는 유튜브 시대가 만든 1인 크리에이터의 형식을 가져왔다. 그런데 여기에서 등장한 유재석의 ‘부캐’는 일 중심 사회에서 이제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인 ‘Work-life balance’의 준말)을 꿈꾸는 새로운 사회의 갈증을 담아냈다. 본캐(일)만이 아닌 부캐(취미)를 즐기고, 그렇게 즐기던 부캐가 때론 본캐가 되는 일들을 유튜브 1인 크리에이터들은 실제로 보여줬다. 그리고 이건 보통의 샐러리맨들도 시도할 수 있는 일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유재석은 마치 분신술을 쓰듯 다양한 부캐들을 선보이며 일종의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그것이 현재의 대중이 꿈꿀 만한 삶이라는 걸 대변했다.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로 이어지는 유재석의 성장을 이야기했지만, 기실 그 과정에는 그가 시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해피투게더] 같은 토크쇼가 있었고, [런닝맨] 같은 게임 예능이 있었으며, [유 퀴즈 온 더 블럭] 같은 서민 토크쇼도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프로그램으로의 파생은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라는 두 프로그램의 동력을 중심으로 한 게 사실이다. 이 두 프로그램을 통해 맺어진 관계나 소재들은 타 프로그램으로도 이어졌는데, 단적으로 [런닝맨]은 [무한도전]에서 해왔던 추격전 같은 게임 예능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모아 진화된 프로그램이었고, [유 퀴즈 온 더블럭] 역시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특집으로 시도한 ‘길거리 토크쇼 잠깐만’이 확장된 프로그램이었다.

이처럼 한 프로그램에서 다른 프로그램으로 새끼를 치고 그것이 또 다른 독보적인 세계를 여는 그런 흐름은 유재석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쥐여줬다. 출연자부터 PD, 작가들까지 점점 유재석 라인으로 구축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공고해 보였던 유재석 월드에 균열이 생긴 원인이 됐다. 무엇보다 MBC를 퇴사함으로써 [놀면 뭐하니?]로 연결돼 있던 김태호 PD와의 단절은 유재석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만들었다. 유재석을 그나마 견제하면서 어떤 균형 있는 흐름을 이어가도록 하는 조력자가 사라진 것이다. 김태호 PD가 빠져나가고 [놀면 뭐하니?]에 생긴 퇴행이 그 약점을 말해준다. 유재석 홀로 세계관을 만들어가던 ‘부캐’를 버리고 정준하, 하하, 신봉선, 이미주를 고정 출연시킨 건 마치 과거 [무한도전] 시절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팬들에게 그런 모습은 그간 김태호 PD와 어떤 긴장 관계를 유지했던 유재석이 이제는 자기중심적으로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게다가 출연자들도 유재석 라인이라고 불러도 될 법한 이들로 채워졌다. 특히 이미주는 유재석과 같은 ‘안테나’ 소속으로 tvN [식스센스]에 이어 [놀면 뭐하니?]의 고정 출연자가 됐다. 이는 시청자에게 유재석 라인이 그저 마음이 잘 맞아 구성되는 차원이 아니라 비즈니스적으로도 연결된 느낌을 줬다. 아마도 김태호 PD라는 사실상 출연자들의 매니지먼트 역할까지 자임했던 연출자가 있었다면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길을 유재석은 걸어갔다.

지나친 권력화는 연예계든 정치계든 독이 된다


▎카카오TV 예능 [플레이유]에서 방송인 유재석은 대중과의 라이브 방송을 통해 매주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미션을 주어진 시간 내에 달성해야 한다. / 사진:유튜브 [플레이유] 캡처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도 유재석 중심의 변화가 느껴진다. 초창기 길거리로 나가 평범한 서민들과 만나 즉석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울고 웃던 유재석은, 코로나19로 인해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겨 카테고리화된 인물들을 초대해 인터뷰하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지만, 되돌아보면 현장으로 다시 나갈 기회가 언제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코로나19 시국에도 마스크를 끼고 전국 곳곳을 찾아갔던 것과 비교해보면 어째서 [유 퀴즈 온 더블럭]이 지금껏 스튜디오에 앉아 있는지가 의아해진다. 스튜디오에 앉아서 카테고리화되는 과정에서 출연자들은 서민 중심에서 전문인 중심으로 바뀌었다. 서민들과의 토크쇼로 대중적 지지와 신뢰를 얻은 이 프로그램은 어느 순간부터 연예인들이 자발적으로 찾는 프로그램을 자랑거리로 삼았다. 하지만 애초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생각해보면 ‘수용’만이 아니라 ‘거부’ 또한 힘 있는 프로그램과 ‘유느님’으로 불리는 MC가 해야 할 일이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출연해 일파만파 후폭풍을 불러오고 그간 없었던 유재석에 대한 비판들까지 쏟아진 건 단지 그 하나의 사안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껏 유재석이 유느님이 돼 걸어온 일련의 행보들이 누적되면서 결국 터져 나온 불만이 아닐 수 없다.

공고했던 유재석 월드에 균열이 생긴 건 그 공고함이 권력화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해서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로 시작해 인터넷·모바일 시대에 생겨난 서민의 힘에 의해 ‘초일류 연예인’이 됐지만, 무소불위의 힘이 통제되지 못함으로써 독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나마 카카오TV에서 ‘유재석을 플레이하라’는 기치로 시도되는 게임 예능 [플레이유] 같은 새로운 시도 정도가 의미 있어 보이는 건 그래서다. 거기에는 대중과의 라이브 방송이라는 콘셉트가 있어 유재석과 대중 사이의 긴장감이 균형점을 만들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지나친 권력화는 연예계든 정치계든 독이 된다는 걸 유재석 월드의 부침은 잘 보여주고 있다.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

202206호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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