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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추락하는 러시아의 행로 

푸틴을 권좌에 올린 제왕의 검, 그의 목을 향한다 

집권 후 침략전쟁으로 내부 불안 잠재우고 국제사회 영향력 확대 노려
두 나라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이 국민 피해와 국가 위상 하락 불러와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에서 전투 중 파손된 러시아 탱크 위에 현지 주민들이 올라가 둘러보고 있다.
1999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보리스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았을 때 러시아는 이미 곪아 있었다. 중국 역시 1978년 덩샤오핑이 최고 지도자가 됐을 때 인구로만 대국이었을 뿐 가장 가난한 농업국가 중 하나였다. 두 나라 모두 커다란 국가적 위기 상황에 봉착했는데 국가권력을 인수한 두 지도자가 선택한 길은 전혀 달랐다. 덩샤오핑은 15년간 통치하면서 국민의 열악한 생활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로 교육과 기술을 최우선으로 두어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했다. 이 정책의 성공으로 중국은 미국과 겨루는 G2 국가가 됐다.

반면 푸틴은 집권 후 소련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목표로 국방비를 50% 증액하고 선제공격이 가능한 군사 독트린을 채택하는 등 군사력 확충에 중점을 두었다. 푸틴의 22년 집권기에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세계 2위의 강대국을 유지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에너지에 의존하는 취약한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막강한 군사력을 활용해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푸틴은 속전속결로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고자 했으나 벌써 100일을 넘기면서 전쟁의 늪에 빠진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국전쟁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역사의 기시감마저 일으킨다. 1950년 김일성은 남한의 극심한 좌우 대립과 허약한 국방력, 미국의 방어선에서 한반도가 제외된 틈을 노려 중국·소련의 지원 아래 남한을 공격할 경우 단기간에 장악할 것으로 확신하고 침략했다. 그러나 남한의 강한 저항과 미국을 포함한 우방의 지원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3년 여간 전쟁을 지속하다가 분단으로 마무리됐다.

푸틴도 우크라이나 내부의 불안이 오래 지속됐고, 미국과 유럽의 협력이 약화됐으며, 미국이 시리아·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등 대외 분쟁에 관여하기를 꺼리는 상황을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더라도 별 문제 없이 이른 시일 내에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을 것이다. 더구나 푸틴은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가 단일민족이라는 개인적 신념하에 친러시아 성향의 동우크라이나에 한정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악하고자 했는데, 러시아의 강력한 군사력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민의 강한 저항과 서구국가의 강력한 지원으로 푸틴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푸틴으로서는 전쟁 명분을 정당화하고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대로 물러서기 어렵게 돼 동우크라이나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리더십에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고 있으며 러시아는 유럽 국가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상실해 앞으로 헤쳐가야 할 길은 더욱 어렵게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렁에 빠진 러시아


▎1999년 말 옐친의 다섯 번째 총리로 임명된 푸틴은 이듬해 옐친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올랐다. 그는 ‘소련의 영광’ 재현을 내걸고 군비 증강을 본격화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구의 동진과 국제 문제에 대한 푸틴의 시각, 러시아의 국내 정치적 상황, 유가의 변동 등과 복합적으로 연관돼 있다. 먼저 푸틴은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의 특별한 이해가 있는 지역(Sphere of Privileged Interests), 즉 구소련 연방시절의 영역을 인정하고, 서구 국가들이 이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지속해서 제기해왔다.

그는 러시아 인접국의 NATO 가입을 서구 국가들이 자제시키기를 원했지만, 미국이 오히려 조지아·우크라이나·키르기스스탄의 색깔 혁명(민주화 흐름)을 지원하고, 동유럽국가 및 볼틱 3국도 NATO에 가입해 러시아의 안보에 위협을 주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조지아의 NATO 가입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푸틴은 서구의 동진으로부터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고자 하는 강한 입장을 수시로 표명해왔다.

푸틴의 전쟁은 국제 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과도 연관돼 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의 변화에 대한 서구 지도자와 푸틴의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서구 국가들은 1990년대를 평가하면서 러시아가 다원주의와 시장체제로 변환해 새로운 전기를 맞았으며 냉전 와해 후 형성된 서구 주도의 국제 질서에 따라 러시아를 재건하게 되면 러시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반면 푸틴은 이것을 서구 제국에 의한 러시아 지배라고 인식하면서 서구 체제를 수용함으로써 불평등이 심화되고 가난·혼란·무질서가 횡행하게 됐다고 본다. 그는 국민에게 러시아의 위상을 부활할 필요성과 함께 서구 제국의 러시아 이해 침탈을 수시로 비판해왔다.

서구의 동진과 푸틴의 오판이 불러온 전쟁


▎1998년 러시아 경제위기 시절 모스크바 시민들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
푸틴은 1999년 12월 30일 총리로서 행한 새천년 연설에서 국민에게 강력한 국가로의 복원을 약속하고 애국심을 요청한 바 있다. 그는 러시아의 오랜 전통을 지켜나가고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대우받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의 영향권이라고 생각하는 구소련 연방이나 러시아 인접 국가들(near abroad)에 대해 서방 국가들이 영향을 행사하는 상황, 특히 NATO의 동진을 푸틴은 수용하기 어려웠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이를 저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둘째,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국내 상황과도 관련 있다. 푸틴이 집권 22년 동안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것은 경제성장을 통해 국가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국민 생활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전쟁을 통해 러시아의 위력을 떨치고 테러를 강력하게 제압하던 시기였다. 제2차 체첸전쟁(1999~2000년), 조지아 북부 지역 점령(2008년), 크림반도 점령(2014년), 시리아 내전 참전(2015년) 때마다 국민 지지가 높았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후 국내경제의 침체로 국민적 지지가 하락하자 전쟁을 통해 반전시키고자 한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러시아 국민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행위이며 비록 우크라이나 국민의 희생이 있더라도 러시아의 이해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보면서 전쟁의 늪에 빠진 현재도 푸틴에게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셋째, 유가 상황을 무시하기 어렵다. 푸틴이 국민적 지지를 얻기 시작한 것은 1999~2000년 테러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었지만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유가 상승과 관련이 있다. 옐친 집권기인 1990년대는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를 밑도는 추세였다가 푸틴이 집권한 2000년 이후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세계금융위기 시기였던 2008~2009년을 제외하고 2014년까지 계속 상승세를 유지했다. 이후 2015~2020년까지 하락 추세였다가 2021년 이후 유가가 다시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2015년 푸틴이 시리아 내전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시점을 제외하고는 체첸·조지아·크림반도·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전쟁한 시점에 대체로 유가가 상승했으며 높은 유가가 푸틴의 전쟁을 뒷받침했다.

푸틴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를 분석해보면 전쟁 이후에 특히 증가해 80%를 상회하는데 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 국민에게는 1980~1990년 대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파탄을 직접 경험하면서 트라우마가 생겼다. 국민들은 고르바초프와 옐친 대통령 시절 소련이 와해되고 러시아가 무너져 내리는 국가 위기 상황을 겪고 푸틴이 들어서서야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1990년대 말 러시아는 말기 암 환자와 같았으며 러시아 전체가 병동이었다. 대통령의 권위는 곤두박질치고 국민은 하루하루의 생존을 고민해야 했다. 기업인은 국유자산을 헐값에 매입해 잇속 챙기기에 바빴고 지방은 중앙의 지원이 끊어지면서 각자도생하고 있었다. 북캅카스의 체첸에서는 또다시 독립전쟁이 일어나고 모스크바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테러가 빈발했다. 당시 주 러시아 대사관에 근무했던 필자는 언제 어디서 폭발물이 터질지 모르는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 없는 얼굴들이 모스크바 거리를 오가는 상황을 목도하기도 했다.

사회 불안과 경제 파탄 경험이 푸틴 지지의 원동력


▎러시아 첼랴빈스크에 있는 ‘노르트 스트림- 2’ 가스관. 러시아는 에너지 자원을 무기로 삼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유럽의 개입을 차단하려 했다. / 사진:연합뉴스
1998년에 시작된 금융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옐친은 1년여 동안 총리 4명을 갈아치우다가 1999년 8월, 푸틴을 새로운 총리로 임명했다. 행정 경험이 일천하고 정치적 경험이 전혀 없는 정보요원 출신이 갑자기 임명되자 언론의 관심거리는 그가 얼마나 버틸지에 모였다. 그러나 푸틴은 총리로서 체첸의 독립 움직임에 대해 군사력으로 저지시키고, 테러에 대해 다수 민간인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관용 없이 강력히 대응했다. 사회적 혼란과 국가의 붕괴를 지켜보던 국민은 푸틴의 등장을 반겼다. 임명 당시 국민적 지지가 1~2%에 불과할 정도로 무명이었던 그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실시된 2000년 3월 대선에서 53% 지지를 얻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했다. 이후 세 차례 대선에서 푸틴은 71%, 64%, 78% 지지를 얻어 당선했다.

또 경제적인 성과도 이루었다. 매우 취약한 경제상황에서 권력을 인수한 푸틴은 유가 상승에 힘입어 연간 7% 성장을 달성했다. 러시아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도 무난히 극복해 2014년까지 경제가 순항했고, 2000년 국민의 3분의 1이 빈곤 상태였으나 2015년에는 11%로 하락했으며 국민의 수명도 증가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유가가 급락하면서 경제지표가 나빠지기 시작하고 이와 동시에 그에 대한 지지도 점차 하락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했다.

러시아는 서구 국가의 연합이 와해되거나 이완되는 것과 비례해 러시아의 이해는 증가한다고 보고 있는데 이러한 러시아의 이해충돌적 입장을 비판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영토 규모와 전략적 중요성, 핵무기 보유, 유엔 안보리 거부권, 풍부한 자원 등을 고려할 때 서구 국가들도 러시아의 위상을 인정하고 협력해나가야 할 존재임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갈등이 확산하고 전쟁으로까지 이른 것은 단지 러시아만의 책임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드러난 러시아의 대외 정책과 한계, 러시아의 향배 그리고 주요국의 입장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첫째, 푸틴의 대외 정책은 가치와 이념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국 이해 중심으로 시행돼왔다. 푸틴은 상대국의 장점과 허점을 간파하는 예리한 정치적 감각을 가지고 이해를 달리하거나 적대적인 관계의 국가 또는 단체와도 노련하게 협상을 해왔다. 2014년 크림반도를 점령했을 때 서구 국가들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하고 G8에서 축출했지만, 푸틴은 시리아 내전과 국제 테러를 계기로 러시아와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과 유럽 국가들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상황을 간파하고 있었다. 또 트럼프 대통령 시절 NATO 동맹 간에 균열이 일어나고, 미국과 유럽 간의 무역전쟁, 영국의 EU 탈퇴 등 서구 국가들의 갈등을 직시하면서 이를 놓칠 수 없는 기회로 보았다. 푸틴은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충분히 복원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으며, 에너지 공급을 통해 독일 및 유럽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서구 국가 간 이견과 갈등을 활용했다.

러시아는 중동에서도 이란·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터키 등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면서 자국의 이해를 극대화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 관여하면서 국가 간의 적대적 행위를 약화하는 데 기여한 면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중동 문제의 해결보다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 간 이해 충돌, 유럽 국가 간의 다양한 이해관계, 러시아와 유럽의 에너지 연계성, 중동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등을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서구 및 중견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물론 이것은 러시아의 오판이었음이 드러났다.

러시아-서구의 대립과 손상된 푸틴의 리더십


▎5월 15일 (현지시간)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외무장관 회의장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도착해 자리에 앉고 있다.
둘째,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지 않는 가운데 러시아는 동우크라이나를 점령하고 이 지역의 자치를 인정하는 선에서 전쟁을 마무리하고자 할 것이다. 설령 러시아가 동우크라이나를 자국의 영향권에 편입한다고 해도 현재의 취약한 경제 상황에서 조지아 북부·크림반도 등에 이어 동우크라이나까지 지원하게 될 경우 이는 러시아의 경제 여력을 초과해 러시아 경제에 커다란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한편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줄이는 방향으로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게 될 것이고 이는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에 중장기적으로 부담을 줄 여지가 크다. 비슷한 사례가 1973년과 1979년 석유위기 상황이었다. 당시 급등하는 유가에 대응해 전 세계 국가는 중동산 석유에 의존하던 구조에서 미국·영국은 신규 유정 개발, 프랑스는 원전, 일본은 에너지 효율화 방안을 추진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석유·가스 의존도를 탈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에너지 이외에 경쟁력 있는 상품이 거의 없는 러시아는 중국에 더욱 의존하게 되면서 국가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게 되고 궁극적으로 푸틴의 지도력은 손상될 것이다.

셋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인도적 고려 및 국제 보편적 가치보다 자국의 이해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재현되고 있다. 인권·민주주의 등을 외치던 유럽 국가들은 10여 년간 지속한 시리아 내전 시 아사드 정부의 비인도적인 처사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제외하고는 관여하기를 꺼렸고 심지어 대규모 난민 유입을 극도로 경계하기까지 했다. 그랬던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가 바로 인근 국가이고 러시아의 침략을 더 방치할 경우 러시아의 야욕이 유럽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자국의 국방력을 강화하는 한편 러시아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또한 미국과 안보협력을 재설정하고 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등 친서방 중견 국가들은 오바마·트럼프 행정부의 갈팡질팡한 중동 외교에 실망하고 중동 문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러시아와의 대척적인 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 서구의 제재요청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우리는 러시아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중동·유럽에서의 행태에 비추어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은 북한의 비핵화에 기여하거나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지원하기보다 자국의 이해 측면에서 남북한과의 협력을 저울질할 것이다. 또 남북한·러시아 에너지 수송로를 연결하는 방안이 우리 국익에 부합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곤 했는데 러시아의 에너지와 연계될 경우 협력으로 나가기보다 압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도 한반도의 인접국이고 경제·과학·문화 등 협력 여지가 많으며 다수의 우리 기업과 교민이 진출하고 있음을 고려해 현실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는 교훈도 되새겨야 한다. 러시아가 전쟁의 늪에 빠진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국가를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점증하는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동맹을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 군사적 자강역량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믿고 군사훈련을 등 한시한다거나 북한·중국의 선의에만 기대어 국가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

지도자의 판단과 선택은 국가의 존망과 직결

국방력 강화 및 한·미 동맹과 함께 우리의 외교력도 보다 유연화하고 다변화시켜야 한다. 일본·중국·러시아와 이해를 달리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병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안에 따라 입장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강력한 한·미 동맹이 한·중 간 협력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러시아와의 협력을 차단하는 것은 아니다.

주요국과 현안에 대한 입장과 정책의 차이는 외교를 통해 조율해나가야 한다. 우리에게 북한 문제가 중요하다고 해서 이에 경도되면 대외협상력을 상실하게 된다. 남북 협력 및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해나가되 세계 10위 경제국가로서 국제 분쟁의 해결 및 인도적 지원에도 참여해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입지를 강화해야 유사시 협조를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도자의 판단과 결정이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현실을 되새겨야 한다. 유가 상승에 따른 국가의 부를 국민의 삶과 국가 경쟁력의 증강을 위해 투자하지 않고 소련의 영광 재현이라는 목표를 전쟁으로 달성하고자 한 푸틴 대통령은 이번 전쟁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자국 내의 심각한 분열을 방치하고 무능한 측근을 등용한 점, 서구의 동진을 신뢰하고 러시아의 불만을 등한시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두 나라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으며 국가의 위상이 하락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지도자가 선택하는 길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고 있음을 우크라이나 전쟁은 말해 주고 있다.

- 조윤수 전 주터키 대사

202207호 (20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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