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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K컬처 톺아보기(4)] 송강호가 연기로 담아낸 한국인의 초상 

복잡하지만 친근한 ‘서민의 얼굴’… 그의 연기에는 특별한 게 있다 

영화 [브로커]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받아
‘티켓파워’ 지닌 국민배우로, ‘한국인의 얼굴’로 거듭나


▎5월 28일(현지시각) 배우 송강호가 제75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린 프랑스 남부 칸 ‘팔레 데 페스티벌(Palais des Festivals)’ 폐막식에 참석해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배우 송강호가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내로라하는 감독들로부터 일반 관객들에 이르기까지 이미 연기로는 정평이 나 있었던 배우, 도대체 그의 연기에는 어떤 특별한 것들이 들어 있는 걸까.

사실 송강호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그리 놀랍진 않았다. 이미 받았어도 벌써 받았어야 하는 배우라는 게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의 중론이었기 때문이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도 이미 그 작품을 전면에서 이끈 송강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바 있었다. 한 작품으로 중복해서 상을 주지 않는 칸 국제영화제였기 때문에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지 않았다면 당연히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사실 [기생충] 이전에도 송강호의 존재감이 남달랐던 작품은 또 있었다. 2007년 칸 국제영화제가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줬던 [밀양]에서의 송강호다. 작품 자체가 온전히 전도연이 연기한 ‘신애’라는 인물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전도연이 상을 받았지만, ‘숨겨진 빛’ 역할을 했던 송강호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밀양]은 아들이 유괴되고 살해당하는 끔찍한 시련을 겪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종교의 힘에도 기대보지만, 절대 치유되지 않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그 누구도 상처를 아물게 해줄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조건을 이야기하면서 이 작품은 그런데도 묵묵히 그 주변을 서성대며 삶의 빛을 잃지 않게 해주는 ‘종찬(송강호)’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으로 희망과 위로를 줬다. 그래서 ‘밀양’, 즉 ‘비밀의 햇볕(Secret Sunshine)’이라는 주제의식을 온전히 표현해낸 건 종찬 역할을 한 송강호였다. 그는 특유의 유쾌하고 인간적인 면모로 신애 주변을 맴돌며 극한의 상황에 몰린 그를 응시하고 챙겨주는 종찬이라는 인물을 탄생시켰다. 특히 종찬은 [밀양]의 원작인 이청준의 [벌레이야기]에 들어있지 않은 인물로 사실상 [밀양]을 감독한 이창동 감독과 송강호가 탄생시킨 캐릭터라는데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송강호는 주인공이라고 해도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작품의 한 부분으로 서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그 인물이 관객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연기를 한다. 그건 다른 배우들과의 앙상블이 특히 중요한 연기 영역에 있어서 송강호가 취하고 있는 연기에 대한 자세다. 이런 부분들은 함께 연기한 배우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JTBC [ 방구석 1열]에 출연해 [밀양]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전도연은 당시 촬영에서 송강호가 보인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저는 [넘버3]라는 작품을 통해서 (송강호씨를) 너무 좋아했었어요. 송강호씨의 연기에는 유쾌함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너무 좋아했었던 거예요. 그래서 [밀양]을 할 때 너무 좋았죠. 송강호씨랑 같이 연기할 수 있다는 게. 근데 그 때 당시는 즐기지는 못했었던 거 같아요. 제가 신애처럼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현장이 아니었었고, 근데 너무 고마웠던 거는 저 영화 속의 종찬처럼 현장에서도 한 발짝 떨어져서 계속 지켜줬어요. 유연하게 현장을 잘 지켜줬던 것 같아요. 송강호씨가.”

‘비밀의 햇볕’ 같은 송강호의 존재감


▎2019년 5월 25일 (현지시각)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포토콜에서 상패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브로커]를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송강호와 함께 이 작품을 하고 싶게 된 계기가 된 작품으로 [밀양]을 거론했다. 한발 물러서서 없는 듯 존재하지만, 극이 진행되면 차츰 저절로 그 존재감이 스르륵 느껴지는 연기. 흔히 송강호 연기를 이야기할 때 ‘스며드는 연기’라는 표현이 나오는 건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앞서 송강호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 작품이 [브로커]를 통해서였다는 건 조금 놀라운 일이었다. 생각보다 [브로커]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해온 일련의 작품들과 비교해 그다지 뛰어난 성취를 가진 작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 2018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과 비교하면, 유사한 가족 서사를 담은 [브로커]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특히 후반부로 가면 짙어지는 감정 과잉과 작위적인 결말의 아쉬움이 컸고, 무엇보다 일본 감독으로서 한국 배우들과 함께 한국에서 촬영한 작품에서 오는 ‘문화적 이질감’이 작품 전편에서 느껴졌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런 혹평은 이 예사롭지 않은 국적을 넘어선 협업이 거쳐야 했던 통과 제의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차이의 간극을 채워주기 위해 송강호가 남다른 노력을 했다는 게 작품 전체에서 느껴진다. 이미 후일담으로 나온 이야기지만, 송강호는 [브로커]를 찍으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함께 전날 찍은 분량을 보면서 충분한 예우를 갖춰 어떤 게 좋고 어떤 게 별로라는 의견을 나누곤 했다고 한다. 감독은 그런 송강호가 있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했다고 밝혔다.

이런 외적인 노력은 작품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브로커]는 비 오는 어느 날 밤 베이비 박스 앞에 아기를 몰래 내려놓고 떠난 소영(이지은)과, 그 아기를 시설에 넘기지 않고 몰래 의뢰인을 찾아 팔려는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가 얽히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는 작품이다. 다시 아기를 되찾으러 갔다가 상현과 동수를 만나게 된 소영은 “보육원에서 자라기보다는 아기를 잘 키워줄 적임자를 찾아주는 것이 낫다”는 이들의 말을 듣고는 그들과 함께 아기의 새 부모를 찾는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 작품을 통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하려는 이야기는 아기가 버려지기도 하고 거래되기도 하는 아픈 현실과 더불어, 그런데도 한 생명을 통해 갖게 되는 보편적인 인간애에 대한 희망이다. 아기의 새 부모를 찾아주는 여정이지만, 그 여정을 통해 그런 일을 하게 된 이들이 마음 깊숙이 갖고 있던 상처를 서로 보듬어주는 대목은 먹먹한 감동의 반전을 준다.

이 작품에서 특히 중요한 건 상현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 인물의 표현이다. 상현은 말 그대로 ‘브로커’에 ‘인신매매범’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인물들과는 결이 다르다. 빚에 쪼들려 어쩌다 그런 일을 하게 됐고, 그래서 아기에게 얼마를 주겠다는 의뢰인들이 나타날 때마다 반색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 아기의 행복을 기리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 즉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인물이지만, 인간적인 매력이나 연민이 느껴져야 한다는 것. 송강호는 특유의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연기로 이를 소화해냈다. 처음에는 이상했다가, 때론 웃기기도 하지만 때론 그것이 범죄라는 걸 인지하게 하는 현실적 발언들을 꺼내기도 하던 이 인물은 두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남다른 ‘정(情)’을 느끼게 한다.

[브로커]에서 송강호의 공기가 유독 느껴지는 건, 이 작품 속 상현이 그러한 것처럼 그가 지금껏 여러 작품을 통해 연기해온 역할들이 관객들에게 반전의 연민을 끌어냈던 그 효과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어찌 보면 무능력하거나 혹은 속물적이거나 심지어 조폭 같은 부정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인물을 연기로 조형해내는 데 있어 송강호는 탁월하다.

문화적 간극 채우기 위해 남다른 노력


▎배우 송강호는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구시대적 강압수사의 전형을 보이는 형사를 연기하면서도, 살인자를 잡고픈 간절한 욕망을 인간적으로 그려냈다. / 사진:싸이더스
[넘버3]에서 조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대중들에게 송강호라는 이름 석 자를 제대로 알려줄 수 있었던 건, 부정적인 넘버3 조폭의 어눌함을 통해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송강호는 경계 지점에 걸쳐 서 있는 인물을 연기할 때 특히 빛을 발한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그가 연기한 조선인민군 소속 오경필 중사는 남북으로 갈라져 대치하고 있지만 남측 이수혁 병장(이병헌)을 동생처럼 여기게 되는 인물이었고, [살인의 추억]의 지역 토박이 형사 박두만도 그저 육감으로 동네 양아치들을 족쳐 자백을 강요하던 구시대적 강압수사의 전형을 보이는 형사지만 살인자를 잡고픈 간절한 욕망이 인간적으로 그려진 인물이기도 했다. [괴물]의 박강두에게는 어딘가 모자라고 덜떨어졌지만, 괴물에게 끌려간 딸을 찾기 위해 뛰고 또 뛰는 가장의 무게가 담겼고,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는 세금전문변호사로 돈벌이에 나선 속물이었지만 억울한 운동권 학생의 소송을 맡으며 인권변호사로 변화하는 인물이다.

경계에 걸쳐 있는 인물 연기 탁월해


▎2017년 흥행 1위를 차지한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는 평범한 소시민이 광주 민주화 운동을 마주한 후 서민 영웅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연기했다. / 사진:쇼박스
이 밖에도 평범한 택시운전사였지만 광주 민주화 운동을 마주하고 서민 영웅으로 변화하는 인물 ([택시운전사])이나, 반지하에 사는 백수 가족의 가장으로 무계획이 계획이라 말하며 박사장 집에 거짓으로 취업했다가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인물([기생충])에서도 느껴지는 건 이중적인 얼굴이다. 한 발이 현실에 묶여 있어 어딘가 엇나가고 있지만, 그 현실의 ‘페이소스(허전하고 슬픈 마음)’가 강렬하게 전달되면서 보는 이들의 연민과 동정을 자아내게 하는 그런 얼굴.

어찌 보면 주변부에 머무는 듯한 인물들을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표현을 통해 연기해왔지만, 그런데도 송강호는 ‘티켓파워’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배우이기도 하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해는 2013년이다. 그 해에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935만)], 한재림 감독의 [관상(913만)], 그리고 [변호인(1137만)]으로 한 해에만 약 3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그 밖에도 [괴물(1091만)], [밀정(750만)], [택시운전사(1218만)], [기생충(1031만)] 등등 누적 관객 수로 보면 독보적인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다. 사실 남다른 연기력으로 봉준호·박찬욱·이창동·김지운 감독 같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쟁쟁한 감독들의 섭외 1순위에 올라있는 배우가 대중성까지 갖췄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건 송강호라는 배우가 가진 ‘서민의 얼굴’과 그런 얼굴이 제대로 묻어나는 작품에 대한 선구안, 그리고 일단 캐스팅이 확정되면 그 누구보다 배역에 빠져드는 열정과 노력이 더해져 가능해진 일이다. 그가 가진 서민의 얼굴은 어느 한 캐릭터에 매몰되지 않게 배우로서의 더 넓은 가능성을 열어줬고, 악역이든 속물이든 심지어 범죄자를 연기해도 그 디테일한 서민 정서를 담음으로써 관객들이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줬다.

이번 칸 국제영화제에서의 남우주연상 수상은 이제 송강호라는 배우가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게 될 거라는 걸 예감케 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느껴지는 건 송강호가 지금껏 해왔던 ‘서민의 얼굴’이 국제적으로 보면 ‘한국인의 얼굴’ 같은 이미지로 다가갈 거라는 점이다. 굉장한 카리스마가 아니라도 보면 볼수록 정이 느껴지고, 한 마디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얼굴. 중심에 서 있지 않아도 주변에서 자기만의 빛을 내고, 무엇보다 전 세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약자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서민의 얼굴. 송강호가 연기를 통해 그려나가는 한국인의 초상이다.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

202207호 (20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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