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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9) 울릉도 성인봉에서 

 

우주의 신비, 울릉도·독도 여행

내 인생 최고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멋진 친구 모임이 하나 있다. 깨복쟁이 친구들로 함께 자라 고등학교 무렵에 모임을 결성했다. 한창때는 대한민국을 함께 맛보고 뒹굴다가 이제는 막걸리에 소주를 비벼, 세상 사는 참 맛을 맛보는 멋진 모임이다. 정말 오랜만에, 코로나 봉쇄가 풀려 그 친구들과 울릉도·독도로 가는 쾌속선을 함께 탔다.

태평양 넓은 바다의 시작점, 동해 바다는 역시 달랐다. 백령도로 가는 4시간의 쾌속선이 수많은 작고 아름다운 섬들을 감상하는 여행선이라면, 울릉도 쾌속선(묵호항에서 울릉도까지 편도 약 170㎞)은 시속 60㎞의 속도로 마치 망망대해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선 같았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오직 운무만이 저쪽 어느 메가 하늘 우주임을 짐작하게 하고,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말처럼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사방팔방 지평선 끝까지 모두 꺼져 있었다. 그 끝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출렁이는 파도를 보면서, 왜 바닷물이 고여 썩지 않고, 나비효과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에 파도가 더욱 힘이 가해져, 마침내 임계점에 다다른 작은 수증기 입자들의 날개에 불을 붙여, 용광로처럼 떼로 모이고 합쳐진 거대 에너지 덩어리, 태풍 허리케인이 탄생하고…. 갇히고 고여 냄새나고 고장 난 에너지를 순환시켜, 날마다 경이롭고 와일드하고 신비롭고 신선하게 우리 지구를 유지·보수해 준다.

그 비결이 태평양은 넓고도 넓고, 그래서 무한한 에너지의 원천이 거기에 있고, 끊임없이 휘날리는 파도가 스모킹건을 할 수 있기에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아, 저 파도가 얼마나 위대한가! 그런데 그 파도에 의해 내 친구도 뱃멀미에 몸서리를 저렇게 치는데, 정말 나뭇잎 같은 배로, 우주의 미아나 다름없는 게 아닌가..... 두려움과 무서움을 뚫고 세계를 일주하고 정복한 마젤란과 콜럼버스 등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바다, 곧 물은 H2O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의 결합으로 원시 지구, 생명의 탄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다는 엄청난 육지의 물을 가두고 소독 정화한 후 태양에 증발시켜, 삭막한 대지에 비를 뿌린다. 저 넓은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그 가슴이 얼마나 크고 넉넉하기에 77억 수많은 사람과 짐승. 나무와 생명체들이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무서운 바다가 참으로 감사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드디어, 사진으로만 그렇게 많이 보고 들은, 전설의 외삼촌 같은, 울릉도 도동항이 묵호항에서 출발한 지 2시간 40분 만에 눈앞에 우뚝 솟아났다.

왠지 모르게 사진으로 본 것 보다도 도동항은 작아 보였고, 코로나19 방역 완화로 3년 만에 ‘자유’를 찾은 수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인산인해, 또 다른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지금의 도동항 근처 땅 한 평은 5000만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그 금싸라기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울릉도는 250만 년 전 두 번의 강력한 화산 폭발로 탄생한 2중 화산섬이다. 수많은 파도와 바람에 찢어지고 갈라지고 닳아져. 어쩌면 너무나도 처참한 몰골 아픈 몸이었지만…. 내 눈에는 생전 보지 못한 경이롭고 아름다운, 한마디로, 자연이 빚은 최고의 걸작이자 거대하고 신비로운 조각 작품으로만 보였다. 감히 피에타. 모나리자를 조각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생각도 할 수 없는 한 폭의 멋진 예술 작품 같았다.

울릉도는 경치도 아름답지만, 도둑·뱀·공해가 없는 3무(無)에, 향나무·바람·미인·물·돌이 많은 5다(多) 섬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땅이 좁은 홍콩과 비슷했고, 호텔방은 옛날 시골 다락방처럼 작고 초라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더욱 정감이 가고, 음식도 맛있었다.

왜구의 약탈이 심해져 1417년 5월, 쇄한정책으로 465년간 사람이 살지 않다가 고종 20년 1883년 5월에 고종의 명령으로 18가구가 이주해 살았고, 남회귀선과 북회귀선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오징어 등 고기가 많이 잡혀 한때는 3만 명 정도가 부유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출생률이 줄어 8000명 정도가 살고 있고, 교통의 발달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날마다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다음날, 대한민국의 10대 명산이라는 성인봉을 혼자 올랐다. 혼자라서 조금 무섭고 겁이 났지만, 250만 년 동안의 오랜 세월과 나뭇잎은 시꺼먼 화산석을 폭신폭신한 흙길, 울창한 숲으로 변화시켜, 정말로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한 등산길로 만들어 놓았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성인봉 정상이 나무들로 둘러싸여 더 넓은 태평양을 조망할 수 없다는 것....


성인봉 높이가 무려 986.7m인데 물 한 병도 챙기지 않고 정상에 오른 무모한, 젊은 커플에게 김밥과 막걸리, 초콜릿을 아낌없이 내어 주어서 그런지, 기분도 상쾌해져 콧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나래 분지로 종주하여 내려왔다. 초행길에 조금 헤맸지만, 힘이 전혀 들지 않은, 정말 잊지 못할 등산이었다.

오전에는 나라를 구하는 정도의 3덕을 쌓아야만 입안할 수 있다는 독도도 정말 바람 한 점 없이 안전하게 무혈입성했다. 460만 년 전에 화산 폭발로 생긴 독도는 원래는 지금의 울릉도 크기였는데, 오랜 세월 풍랑과 파도 바람에 흩어지고 떨어져 나가, 단지 원본의 2%만 남은 작은 섬이 되었지만, 무척이나 신비롭고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영토와 안보를 확장해 준 보배, 보석 같은 섬으로, 왠지 살갑고 사랑스러운 연인처럼 다가왔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약 84㎞ 거리로, 배로는 1시간 30분…. 실제로 보니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작게 느껴졌다. 아마도, 우리가 독도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독도를 실물보다 훨씬 크게 사진 찍고, 가슴에 간직한 게 아닐까! 그리운 독도를 품에만 담기 아까워 사진으로 남겼다.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0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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