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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파일 | 윤석열의 사람들(1)] 법복과 칼 내려놓은 한동훈 법무부장관 A to Z 

‘조선 제일검(檢)’이라 불린 ‘최초’ 기록 제조기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책과 음악 사랑하는 ‘감성 장인’, 불의 앞에선 타협 않는 강골 검사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 대기업 총수 등 성역 가리지 않고 수사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매력은 다양하다. 감각 있는 옷맵시 외에도 정의감을 지닌 실력파 검사로도 명성을 얻었다.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면서 가시밭길을 걷기도 했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했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이토록 매력 있는 검사가 또 있을까. 명석한 머리에 동안 외모, 군더더기 없는 글솜씨와 발군의 업무 능력까지. 옛사람들이 인물을 고르는 표준으로 삼았다던 신언서판(身言書判) 중 어느 것 하나 빠질 게 없다.

하지만 ‘검사 한동훈’이 걸어온 길은 현기증이 날 만큼 진폭이 크다. ‘재계의 저승사자’로서 재벌 총수들을 잡아들이고,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구속시켜 ‘조선 제일검(檢)’이라 불리며 성공가도가 펼쳐지는 듯했지만, 문재인 정권의 눈 밖에 나며 혹독한 겨울을 나야 했다. 좌우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에 선 그에겐 늘 찬사와 비난이 동시에 따라붙었다. 법복을 벗고 경계인의 숙명을 벗어나 권부의 중심에 발을 디딘 한동훈의 모든 것을 키워드 다섯 개로 정리했다.

#1. 한동훈은 누구인가?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엄친아’


한동훈(49) 법무장관의 고향은 강원도 춘천이다. [한국법조인대관]에는 서울 출신으로 기록돼 있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공개한 국무위원 후보 자료에는 1973년 4월 9일에 춘천시에서 태어난 것으로 명시돼 있다. 본관은 충북 청주다. 한덕수 국무총리,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 한광옥 전 대통령 비서실장, 한명숙 전 총리,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이 종친에 해당한다.

부친 한명수(2004년 작고)씨는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MAT)의 한국법인(AMK) 대표를 지냈다. 부인은 진은정 김앤장법률사무소 미국 변호사다. 서울대 법대를 함께 다닌 한 살 차이 캠퍼스 커플이었다. 장인은 서울대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진형구 전 대전고검 검사장이다. 처남 진동균도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사법연수원을 32기로 수료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다.

부친의 사업장이 있는 충북 청주로 내려가 운호초등학교(1989년 폐교)를 다니다 서울 서초구로 올라와 서울신동초등학교, 경원중학교, 현대고등학교를 다녔다. 중·고등학교 내내 반장을 도맡아 하고 고등학교 성적이 늘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다. 그러면서도 친구를 가리지 않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형이었다고 한다.

현대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 92학번으로 입학했다. 2학년 때 공법학과로 진학해 사법시험을 준비한 끝에 4학년이던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합격 당시 만 22세였다. 재학 중에는 학보사와 오케스트라 동아리(SNUPO)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SNUPO 홈페이지에는 지금도 1992년 제1회 정기연주회 플루트 연주자로 나온다.

사법연수원(27기)을 마친 뒤에는 공군 제18전투 비행단에서 군법무관으로 3년간 복무한 뒤 대위로 전역했다. 2001년에 검사로 임관하고서 일선 수사를 하다가 2004년에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에서 2년간 유학한 뒤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따 한국으로 돌아왔다.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다. 술은 체질상 마시지 못해 술자리에선 주로 콜라를 마신다고 한다. 골프나 당구에도 취미가 없다. 대신 음악을 좋아해서 초등학생 시절 자신의 취미를 ‘오디오 갖고 놀기’라고 소개할 정도였다.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록과 재즈에 조예가 깊다고 알려져 있다.

플루트 외에 기타 연주에도 관심이 많다. 펜더의 일렉트릭 기타인 스트라토캐스터(Stratocaster)와 재즈마스터(Jazzmaster)를 소장했다. 스트라토캐스터는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클랩턴을 비롯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이 애용한 명기다. 다양한 장르에서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기종이어서 장르를 가리지 않는 한 장관의 음악적 취향이 엿보인다. 한 장관이 소장한 것은 미국 기타리스트 코리 웡(Cory Wong)의 시그니처 모델이다. 재즈마스터는 이름과 달리 1960~1970년대의 펑크 뮤직이나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2000년대 인디 록 뮤지션들이 주로 사용한다.

독서광이기도 해 그의 사무실에는 늘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한다.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오에 겐자부로의 [하마에게 물리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을 꼽는다. 오랜 다독(多讀) 습관 덕분에 한 장관은 직설적이면서도 논리 전개가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때로는 나쓰메 소세키나 하루키의 문장을 연상케 하는 다정다감한 구어체를 구사하기도 한다. 그가 검찰을 떠나며 남긴 사직 인사와 법무부 장관 취임사에서 TPO에 맞춘 문장력을 엿볼 수 있다.

#2. 재계 저승사자, ‘조선 제일검’의 탄생 비화


한 장관은 초임 검사로 임관한 직후부터 굵직한 수사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래서 한 장관에게는 ‘독종’, ‘재계 저승사자’, ‘대기업 저격수’, ‘조선 제일검’ 등 여러 별명이 붙었다.

2001년에 첫 임지로 서울지검에 신설된 형사9부(당시 부장 이인규 전 중수부장)에 발령된 그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구속하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분식회계 혐의로 동시에 수사해 재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나이 만 29세였다.

이를 계기로 그해 말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의 눈에 들어 2002년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전달사건 수사팀에 합류했다.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불렸던 이 사건 수사를 통해 불법 정치자금 수백억원이 여야로 흘러간 사실을 밝혀내 ‘검찰발 정계 개편’ 폭풍을 일으켰다.

유학을 다녀와 2006년에 중수부 검찰연구관으로 복귀한 그는 ‘현대차 비자금 수사’와 ‘외환은행 론스타 부실 매각 사건’을 맡았다. 한나라당 대선 자금수사팀에서 인연을 맺은 윤석열 당시 부부장 검사도 수사팀에 합류했다. 당시 수사팀은 박영수 중수부장이 이끌었고, 채동욱 수사기획관, 최재경 중수1과장, 이동열·여환섭·윤대진 검사가 함께했다. 그해 4월 수사팀은 138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회사에 3000억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구속했다.

이듬해(2007년) 부산지검 특수부로 내려가선 지역 재개발 비리 수사를 맡아 다시 한번 이름을 떨친다. 한 장관은 청와대 관계자 등 정·관계 로비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해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전군표 국세청장을 구속기소했다. 현직 국세청장을 구속한 초유의 일이었다. 한 장관은 정상명 당시 검찰총장을 찾아가 직을 걸고 전 청장의 구속 영장 승인을 받아냈다고 한다. 당시 대검 연구관이었던 윤 대통령은 한 장관에게 “넌 늘 수사를 유도리(융통성) 없이 독립운동하듯이 한다”고 애정 어린 핀잔을 주기도 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과 법무부 검찰과장, 대검 정책기획과장 등 비수사 부서 요직을 거친 한 장관은 2015년 2월 서울중앙지검에 신설된 공정거래조세조사부 초대 부장으로 발탁됐다. 한 장관은 폐지된 대검 중수부가 했던 기업 관련 수사를 다시 맡았고, 재계는 ‘저승사자’의 귀환에 바짝 긴장했다.

곧바로 여러 기업의 비리 의혹 수사에 착수한 그는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을 상습도박과 횡령·배임, 해외 재산은닉 등 혐의로 구속한 데 이어 조세포탈 혐의를 받던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을 구속했다.

#3. 적폐청산 ‘어벤저스’에 합류하며 尹과 ‘운명 공동체’로 관계 성장


▎ 사진:한동훈 장관 페이스북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이 터지고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특수부 전성시대’가 열렸다. 특별검사로 임명된 박영수 변호사는 자신이 대검 중수부장으로 있을 때 고락을 함께했던 ‘특수통’들을 불러 모았다. 국정원 댓글 수사로 박근혜 정부의 눈 밖에 나 한직을 떠돌던 윤 대통령이 지휘한 수사 4팀에 한 장관을 비롯해 이복현 현 금융감독원장 등 검사 5명이 뭉쳤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를 입증해야 하는 임무를 맡은 수사 4팀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기업 출연·지원금 관련 수사를 맡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일등공신이 된 ‘윤석열 사단’에 국민과 야권은 거의 ‘어벤저스’급 찬사를 보냈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윤석열 사단을 적폐 청산 수사를 맡은 중앙지검에 불러 모았다. 윤석열 중앙지검장의 지휘 아래 한 장관은 승진해 특수 수사를 담당하는 3차장검사에 보임됐다. 전임자(이동열 차장검사, 22기)보다 다섯 기수 아래고 나이는 일곱 살이나 어렸다. 문재인 정부의 기대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장관의 칼은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전병헌 전 의원을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하려다 기각되며 벽에 부딪혔지만, 결국 기소해 실형을 받아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도 속도를 냈다. 한 장관 지휘 아래 송경호 특수2부장, 신봉수 첨단수사1부장, 이복현 특수2부 부부장 등이 가세했다. 2018년 3월 한 장관은 21시간에 걸친 마라톤 조사 끝에 문무일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아 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고, 한 장관은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구속시킨 칼잡이로 기록됐다.

2019년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연루된 사법농단 의혹 사건을 지휘했다.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한 최초의 검사라는 기록이 추가됐다.

2019년 7월 마침내 한 장관은 ‘검사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에 올랐다. 만 46세로 역대 최연소 검사장이란 기록을 추가했다. 윤석열 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으로 지명되면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국 특수수사를 총지휘하는 자리다. 특수통의 간판이 윤석열에서 한동훈으로 바뀐 순간이다. 그의 승진 소식에 한 기업인은 “포크로도 잘 싸우던 장수에게 삼지창을 쥐여준 격”이라고 했다고 한다.

#4. 꽃길을 버렸다… 갑자기 찾아든 혹독한 겨울


윤석열의 계보를 잇는 특수부 간판스타의 꽃길은 오래가지 않았다. 칼에 묻힌 피만큼 고난을 감내해야 할 특수부 검사의 숙명은 그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족에 대한 수사를 강행한 게 발단이 됐다. 정권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끝내 조 전 장관과 아내 정경심 교수를 사문서위조 등 여러 혐의로 기소했다. 한 장관은 당시 깊었던 고민을 이렇게 표현했다.

“윤 총장이나 저나 눈 한번 질끈 감고 조국 수사 덮었다면 계속 꽃길이었을 거다. 그 사건 하나 덮어버리는 게 개인이나 검찰의 이익에 맞는, 아주 쉬운 계산 아닌가. 그렇지만 그냥 할 일이니까 한 거다. 그분(문재인 정권)들이 환호하던 전직 대통령들과 대기업들 수사 때나, 욕하던 조국 수사 때나, 나는 똑같이 할 일 한 거고 변한 게 없다.”

조 전 장관 후임으로 취임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한동훈을 부산고검 차장,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잇달아 좌천했다. 용인 분원에서 충북 진천 분원으로, 1년 만에 세 차례 좌천성 인사가 났다. 법무부 감찰관실은 그의 근태를 감시했고, 가족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통신조회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채널A 기자와 통화한 내용이 유출되고 검언유착 의혹이 불거지면서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계좌추적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하루아침에 그는 ‘적폐 검사’로 낙인찍혔다. 휴대전화 압수수색 과정에서 후배검사에게 독직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총체적인 난관에서 응원해줄 사람도, 보호해줄 사람도 없었다.

추 장관이 물러나고 박범계 장관이 이어받으면서 그의 수사부서 복귀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이번에는 사법연수원 부원장이라는 네 번째 좌천 인사가 났다. 사법시험 제도 폐지로 검사 연수생이 한 명도 없는 이름뿐인 자리였기에 그에게 칼자루를 쥐여주지 않겠다는 정권의 강한 의지가 함축된 인사였다.

한 장관은 “보복을 견디는 것도 검사의 일”이라며 의지를 꺾지 않았다. 오히려 한파가 거세질수록 그의 기개가 돋보였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선 “사냥개를 원했다면 나를 쓰지 말았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자 고발인인 민주언론시민연합을 향해 “민언련에는 이름과 달리 ‘민주’도 없고, ‘언론’도 없고, ‘시민’도 없다. 권력의 요직을 꿰차는 막강 인재풀로서 권력과의 ‘연합’만 있어 보인다”고 저격했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가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다’라고 한 발언에 빗댄 것이다.

2022년 1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유시민 전 이사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기자들에게 “유시민씨가 말하는 ‘어용 지식인’이라는 말은 마치 ‘삼겹살 좋아하는 채식주의자’라든지 ‘친일파 독립투사’라는 말처럼 대단히 기만적”이라며 “지식인이 어용 노릇 하기 위해 권력의 청부업자 역할을 하는 것이 논란의 여지 없이 세상에 유해하다고 생각한다”고 직격했다. 당시 발언 영상은 유튜브에서 240만 조회수를 넘기며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5. 다시 찾아온 봄, 남은 건 ‘별의 순간’ 뿐

피 묻은 칼로 숱한 기록을 제조하면서 21년간 지켜왔던 법복을 2022년 5월 15일 검찰 내부망에 올린 사직 인사를 끝으로 내려놨다. 윤 대통령이 그를 새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직 인사에서 “검사가 된 첫날, 평생 할 출세는 그날 다 한 걸로 생각하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법복을 벗고 칼 대신 펜을 쥐었어도 검사는 검사다. “세금으로 월급 주는 국민을 보고 일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했지만, 검찰 조직을 의인화해서 사랑하지는 않았다”는 한 장관은, 법복은 벗었지만 ‘정의부(Ministry of Justice)의 지휘자’로서 여전히 정의를 수호하는 임무를 계속하게 됐다.

한 장관은 ‘왜 검사를 선택했느냐’는 국회 인사청문위원의 질문에 “상식과 정의를 사법시스템 안에서 지키는 것이 검사라고 생각해 검사가 되었다”고 답했다. 21년간 마음껏 정의의 칼을 휘두를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어준 사법시스템의 설계자는 이제 한 장관 자신이다. 또 다른 한동훈들이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일이 그에게 주어진 책무다. 그가 소명을 다했을 때 비로소 꿈꿨던 ‘별의순간’(Stęrn·stunde, ‘미래를 결정하는 운명의 순간’을 이르는 독일어)이 찾아오지 않을까.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208호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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