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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특집] 인류의 ‘두통 제로’ 꿈꾸는 신경과 원장 이태규의 인생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하려 달려온 60년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미국 신경과학회 ‘외국인학술상’, ‘젊은 두통연구자상’ 수상
지역 학생에게 장학금·컴퓨터·에어컨 지원, 이웃 도우며 사회공헌 힘써


▎6월 29일 서울 강남구 이태규신경과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태규 대표원장은 “내가 은퇴한 후에도 이 의원이 존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섬마을 초등학생에서 국내 최고의 신경과 전문의가 되기까지, 이태규 이태규신경과 대표원장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다. 서울대병원에서 신경과 전문의 과정을 마친 그는 선진 의술(醫術)을 배우고자 미국으로 향했다. 2002년에는 뇌신경계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의원급으로 국내 최초로 두통 클리닉과 뇌졸중 검진센터를 갖춘 이태규신경과를 개원했다. 이 원장은 경희의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기 국내에서 처음으로 편두통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다수의 관련 논문을 내기도 했다. 6월 29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병원을 찾아 배움과 나눔의 삶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의사의 길을 선택한 계기는?

“초등학생 시절 경남 통영에 있는 연화도에서 살았는데, 당시 부친이 요로결석으로 고통스러워했다. 함께 여객선을 타고 육지에 있는 병원에 갔던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섬은 고립돼 있고, 변변한 의료시설이 없어 섬마을 주민의 불편이 컸다. 그래서 연화도 연화초등학교(현 연화분교)에서 장래희망을 조사하면 의사·교사·군인같이 섬사람들에게 필요한 직업이 많이 나오곤 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마산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선택해 서울대 의대로 진학했다.”

많은 전공 가운데 신경과를 선택한 이유는?

“솔직히 성형외과로 갈지, 내가 하고 싶은 신경과로 갈지 고민이 많았다. 경제적인 이유만을 따지면 신경과보다 성형외과로 가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그때 성형외과로 갔으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겠지만,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는 뇌신경계 질환을 연구하고자 신경과를 택했다. 지금은 신경과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원장은 ‘전문가로서 실수는 절대 하지 말자’, ‘나날이 발전하는 의학에 대비해 꾸준히 배우는 자세를 유지하자’가 의사로서 좌우명이라고 말했다.

의사로서 느껴왔던 고충은 무엇인가?

“의사는 ‘사람을 구한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좋은 직업이면서 ‘사람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무거운 직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의사로서 오래 살아남는다는 건 굉장히 힘들다. 2002년 이태규신경과와 함께 강남구에 많은 개인 병원이 문을 열었지만, 지금까지 운영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저수가(低酬價) 문제 등 재정적·경영적으로 개인 병원을 힘들게 하는 낡은 제도들이 병원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5년전 3.0 테슬라 자기공명영상(MRI)을 설치할 때 정부에서 결정한 불합리한 제도적 규제로 심한 마음고생과 금전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런 낡은 제도를 바꿔야만 환자들이 느낄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도 따라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가는 정부가 책정한, 건강보험공단에서 병의원에 지불하는 건강보험 진료비나 검사비, 치료비를 뜻한다.

2016년 대한신경과의사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자는 차원이었다. 의료 제도가 어떻게 논의되고 만들어지는지 경험해보고자 맡게 됐다. 한번 잘못 만들어진 제도를 다시 고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적어도 내가 회장으로 있는 2년 동안에는 신경과 의사를 힘들게 하는 제도를 막아야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임기 동안 나름의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이 원장은 미국에서 돌아온 1999년, 정진상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와 함께 대한두통학회의 전신인 대한두통연구회를 창립했다. 두통 환자가 적지 않은데도 국내에 관련 연구단체가 전무했었는데, 이 원장이 선구자 역할을 한 셈이다.

많은 뇌신경계 질환 가운데 두통학회를 선택한 이유는?

“환자가 가장 자주 호소하는 게 두통과 어지럼증이다. 그런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당시 두통을 연구하는 단체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두통에 관심이 많은 정 교수와 함께 학회를 만들었다.”

귀국 직후 ‘대한두통학회’ 창설해


▎이태규 대표원장의 신경학계 발전 기여도는 국내외 유수의 학술단체에서 받은 수상 이력이 입증한다.
이 원장은 사회공헌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고향인 경남 통영 지역 학생을 위해 장학금은 물론 자전거·컴퓨터·복사기·에어컨 등을 지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회공헌에 힘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조그만 응원이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 기부를 시작했다. 기부하다 보니 한 학교가 두 학교, 세 학교로 늘어났다. 통영의 학교는 물론 내가 나온 마산고와 서울대에도 기부했다. 진료 활동 외에 제일 기억에 남고 잘한 일이 기부라고 생각한다.”

2022년은 이 원장에게 기억에 남는 한 해가 될 공산이 크다. 이태규신경과 개원 20주년이자 이 원장이 환갑(還甲)이 된 해이기 때문이다(1962년생). 태어난 간지의 해가 다시 돌아왔다는 환갑의 뜻처럼 이 원장은 ‘인생 2막’을 찬찬히 준비하고 있다.

의사로서 꿈꾸는 바는 무엇인가?

“그저 내가 은퇴한 후에도 이태규신경과가 존속했으면 한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메이요클리닉(Mayo Clinic)에서 메이요는 사람의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은퇴한 후에도 이태규신경과가 신경과 전문 대표기관으로서 계속 남았으면 좋겠다.”

인터뷰 말미에 이 원장은 “실현될지는 미지수지만, 이른 시일 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두통 질환’에 대한 영어 책자 발간을 구상 중”이라고 귀띔했다. 인류의 ‘두통 제로’를 향한 그의 연구는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 글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202208호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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