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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의 핫피플 & 아트(3)] ‘아티스트 패밀리’,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아버지와 딸이 들려주는 행복의 하모니 

피아니스트·바이올리니스트 부녀의 ‘듀오 리사이틀’ 전국 순회공연
‘클래식 영재 강국’ 이끈 살아 있는 전설, 총장으로 한국 예술 총지휘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실에서 만난 김대진 총장은 수많은 세계적 피아니스트를 길러내 ‘영재 제조기’란 별명이 붙은 대한민국 음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 사진:조정화
아버지와 딸이 함께 연주하는 모습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올여름 가장 기대되는 공연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코 ‘김대진×파비올라 김 듀오 리사이틀’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총장이자 한국 피아노 음악계의 대부로 알려진 피아니스트 김대진(60)과 바이올리니스트인 맏딸, 파비올라 김(31)의 ‘듀오 리사이틀’이 8월 9일 성남 티엘아이 아트센터를 시작으로 평소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천안, 강릉, 김포 지역에서 개최된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아버지와 딸’의 특별한 앙상블 무대라 이목이 집중된 것도 있겠지만, 2001년에 시작한 공연이 지금까지 팬층이 두터운 것으로도 유명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파비올라 김은 [뉴욕타임스]가 ‘화려함과 정확성을 동시에 갖춘 솔로이스트’라고 극찬할 정도로 정평이 나 있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다. 현재 미시간 음대 최연소 교수로 후학 양성과 함께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파비올라 김은 어느 인터뷰에서 “음악인 이전에 아버지로서 사랑한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며 아버지에 대한 각별한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이번 ‘듀오 리사이틀’에서 슈베르트, 프랑크, 타르티니, 비에니아프스키의 곡을 연주한다.

온 가족 참여한 ‘김대진의 음악이야기’로 국민적 사랑


▎피아니스트인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과 딸인 바이올리니스트 파비올라 김의 듀오 리사이틀이 8월 9일 성남 티엘아이 아트센터를 시작으로 천안, 강릉, 김포에서 개최된다. / 사진:김대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 총장 가족은 모두 음악을 전공한 수재들이다. 맏딸 파비올라 김뿐 아니라 아내 조성은(57)도 바이올리니스트다. 파비올라 김은 “엄마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걸 다섯 살 때 보고, 작은 나무 박스에서 나는 수많은 색깔의 소리가 신기해 바이올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조성은 바이올리니스트는 공연 예술 분야의 미국 명문 줄리아드를 나온 뒤 뉴저지 주립대에서 음악 박사 학위를 마쳤다. 귀국 후 연주와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다가 두 딸의 미국 유학생활을 뒷바라지하면서 연주 활동을 중단했다. 현재는 식품제조 회사 ‘에스앤푸드’ 대표이사로 있다. 김 총장에 따르면, 연주나 가르치는 일은 소통이 중요한데 사업도 별반 다르지 않아 아내가 이런 점들이 바탕이 되어선지 의욕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했다. 2000년대 초 ‘김대진의 음악이야기’ 시리즈 무대에 가족 모두 참여한 것처럼 또 다른 공연에서도 바이올리니스트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막내딸 아델라 김(29)은 클라리넷 전공으로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다녔다. 이후 하버드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예일대에서 같은 전공으로 박사 과정 중이다. 김 총장은 졸업하면 딸이 좋아하는 역사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하며 국제 활동을 할 것 같다고 했다.

김 총장은 남편과 아버지 역할에도 최선을 다해 왔지만, 특히 교육자로서 사명감이 남다르다. 한예종 개교 직후 음악원 교수로 부임(1994년)해 직접 어려서부터 가르친 피아니스트 손열음, 김선욱, 이진상, 문지영, 박재홍 등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길러내 ‘영재 제조기’란 별명이 붙었다. 대한민국의 음악적 위상을 높이고 ‘클래식 영재 강국’을 이끈 명교사이기에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한예종 최초의 직선제 선거 방식을 통해 총장에 선출되고,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노동조합이 무기명으로 실시해 뽑은 ‘본받고 싶은 간부’에 선정된 것은 참으로 그 의미가 깊다. 늘 ‘본받을 만한 리더’의 모습을 추구하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넉넉하게 포용하는 인자한 호랑이상이 되고자 한 소신의 결과가 아닐까. 딸 바보에 아내 사랑도 각별한 그는 “아내가 농담으로 노년을 잘 보내고 싶으면 나더러 잘하라고 한다. 자신도 인정하는 부분이라 좀 더 신경 써서 잘해야겠다”며 활짝 웃는다. 비가 적당하게 촉촉이 내린 날, 그를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한예종 총장실에서 만났다.

‘아버지와 딸’의 듀오 리사이틀은 해외에서도 보기 드문 공연이다. 이번 ‘김대진 & 파비올라 김 듀오 리사이틀’은 어떤 곡들로 채워지나?

“부부가 함께 연주하는 경우는 많지만, 부자와 부녀는 많이 없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반주해주는 것으로 시작했고, 아이가 큰 다음에는 듀오 리사이틀을 하게 되었다. 이번 연주는 아티스트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보다 평소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지역을 찾아가자는 뜻으로 준비해 천안·강릉·김포·성남 티엘아이 아트센터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다. 연주곡은 슈베르트 ‘소나티나 D장조’, 프랑크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A장조’, 타르티니의 ‘바이올린 소나타 G단조 악마의 트릴’, 비에니아프스키의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환상곡들’로 준비했다. 작년 공연은 클래식의 본질에 대한 깊고 무거운 곡이었다면 올해는 다가가기 쉬운 곡으로 선정했다.”

“선입견을 버리고 들리는 대로 느껴라”


▎2008년에 찍은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가족사진. 김 총장의 가족은 피아노, 바이올린,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음악가 가족’이다. / 사진:김대진
평소 딸 바보로 통한다. 맏딸, 바이올리니스트 파비올라 김과 함께 연주할 때 특히 좋은 점은?

“딸이 어렸을 때는 싫어할 때도 있었는데 지난번 연주 끝났을 때는 참 많이 좋아했다. 실내악을 하기 위해서는 음악 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게 있다. 그런데 피를 나눈 사이다 보니 유전적으로 느끼고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 그런 과정은 확실히 편하다. 연주하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대해 상대를 설득하거나 설명할 필요가 없고, 눈빛만 봐도 본능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듀오 리사이틀의 감상 포인트를 살짝 짚어준다면?

“음악은 본능적으로 자기한테 다가오는 느낌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좋다. 흔히 저 곡은 뭘 의미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듣는 경우가 많다. 굳이 곡에 대한 정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비발디 사계 중 봄을 아무리 들어도 어떤 봄을 묘사했는지 상상이 잘 안 된다고 해서 곡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어떤 것을 표현하기 위해 작곡을 하는 게 아니다. 음악을 들을 때는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자기에게 들리는 대로 느끼고, 자신의 감정을 믿는 것이 가장 좋은 감상법이다. 그림을 볼 때도 작품 제목이 없을 때 오히려 본인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과 같다.”

어려서부터 직접 가르쳤던 피아니스트 손열음, 김선욱, 이진상, 문지영, 박재홍 등 세계 콩쿠르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제자가 많다. 피아노 교육의 명교사이자 대부로 불리는 데 지도방법이 궁금하다.

“수상했을 때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지만, 어떤 선생님께 배웠어도 두각을 나타냈을 것이다. 애초에 상상력을 다 갖추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내가 했던 것은 잘 달리고 있는 열차가 탈선하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봐주는 역할 정도였다. 학생 연주를 들으면 예전에는 어느 스승을 사사했는지 맞힐 정도로 획일적인 교육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입식 교육이 아닌 조금 다른 교육방법을 도입하고 싶었는데 내 경험을 돌아보니 그 안에 해답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불안정하고 급하게 연주하는 학생은 평소 일상생활도 유사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학생을 유심히 관찰해 개인의 특성을 잘 파악한 후 개개인 맞춤형 교육을 하자 연주가 조금씩 달라졌고 결과도 좋았다.”

“지나친 관심은 영재성 사라지게 할 수도”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 직원들의 설문조사에서 ‘본받고 싶은 간부’에 선정됐다. / 사진:김대진
지난 6월 권위 있는 국제 피아노 경연대회인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18살 임윤찬이 대회 60년 역사상 최연소로 우승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 오디션에 합격했고, 2017년부터 한예종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최근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영재교육 프로그램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처럼 영재 학교가 많은 곳도 없을 것이다. 예술 영재란 과연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 흔히 음악 영재는 어느 콩쿠르에서 수상했나로 평가한다. 전체적으로는 고무적이지만 앞날이 밝다고만 볼 수는 없다. 너무 과열된 점이 없지 않아 부작용도 우려되고, 과정이 목표가 되어버릴까 걱정된다. 특히 콩쿠르에서 수상하지 못한 사람들이 상실감과 박탈감으로 인해 음악을 하는데 악영향을 끼칠까 염려된다. 사실 콩쿠르가 생겨난 이유가 연주자를 찾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없어 생겨났다. 그러니 예술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사실 어떤 의미도 없다. 특히 영재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과잉 관심으로 인해 오히려 영재성이나 상상력이 사라질 수도 있다. 혼자 묵묵히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연주자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하다.”

한예종은 음악원뿐 아니라 영상원, 미술원 등 말 그대로 한국의 예술종합학교다. 한예종 총장으로 사진, 영상, 그림 등 또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작가들을 배출하게 될지 기대가 클 것 같다. 어떤 구상들을 갖고 있나?

“전반적으로 다양한 구상을 하고 있다. 2000년대까지는 사회가 원하는 방식에서 누가 더 모범적인 연주와 작품을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제 더는 모범적인 것 말고, 너만의 것을 보여달라는 요구가 시작되면서 개성과 창의력이 더 중요해졌다. 그런데 이것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결국 개성 있는 작품과 연주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피아노 치는 학생이 오로지 피아노만 치는 것보다 그림이나 연극도 보고 다양한 경험을 함으로써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장르 간 경험은 한예종만 한 곳도 없다. 긴 안목으로 장르 간 협업을 통해 앞으로 소통과 공유를 할 생각이다. 사실 궁극적으로 나의 예술적 목표이기도 하고, 우리 학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예종 가족을 위한 콘서트(K-Arts Dear My Family Concert)가 석관캠퍼스 예술소극장에서 있었다. 대학에서 보기 드문 이례적인 콘서트였다.

“‘예술 활동’을 통해 학생, 교직원 등 모든 구성원이 하나로 소통할 수 있다고 확신해왔다. 한예종 가족을 위한 콘서트는 학생과 교원이 함께 만든 음악을 보여드리는 동시에, 음악을 통해 직원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아름다운 음악으로 구성원 간의 소통을 위한 연결 고리를 만들고, ‘제대로 예술 하는 예술학교’를 만드는 것을 소망하기에 모두 하나가 되는 가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노동조합이 서기관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기명 설문조사에서 ‘본받고 싶은 간부’로 선정됐다. 한예종 직선제 결과도 그렇고, 특별히 어떤 비결이 있나?

“그 어떤 상보다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본받고 싶은 간부’로 선정됐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전산 착오인가 싶었다(웃음). 한예종 총장직 역시 직선제를 통해 총장직을 맡아 영광스럽기도 하고, 한편 큰 무게감이 더욱 느껴진다. 평소 학교에 있으면서 대화하기를 좋아하는데 그런 점들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문체부 직원들이 뽑은 ‘본받고 싶은 간부’


▎지난 6월 23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캠퍼스 소극장에서 열린 ‘한예종 가족을 위한 디어마이패밀리 콘서트’에서 김대진 총장이 협연하고 있다. / 사진:김대진
흔히 자식 농사는 마음대로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부모가 음악인이라고 해서 자녀가 모두 음악을 전공하거나 예술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예술을 전공하길 바라는 학부모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내에게 미안할 정도로 나는 별로 한 게 없다. 아내도 배울 만큼 배웠고 능력 있는 사람인데, 미국으로 들어가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많은 것을 희생했다. 아이들이 이만큼 잘 성장해준 것에는 엄마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예술 분야는 유전적 요소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 부모가 말린다고 그만두지 않고, 억지로 떠민다고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나 역시 부친께서 그 시절에 전공은 못 하셨지만, 음악을 많이 사랑하는 LP판 수집광이셨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방송국에서 필요한 LP가 없으면 우리 집으로 빌리러 올 정도였다. 내가 그랬듯이 우리 아이들도 유전적·환경적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것이다. 만약 아이들이 예술을 전공하길 원한다면 자연스럽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음악회를 자주 간다든지, 사진이나 그림을 자주 보러 갈 필요가 있다.”

가족 모두가 연주 가능한 음악인이라 여느 가정과는 다른 점이 있을 것 같다. 좋은 점 하나를 꼽는다면?

“2000년대 초, ‘김대진의 음악이야기’ 시리즈를 공연할 때 가족들과 연주했다. 실내악은 교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의견을 맞추려는 노력들을 해야 하는 데 가족이라 따로 맞출 필요가 없었다. 반면에 가족이라 서로 양보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 공통적으로 소유하는 내용이 있어서 소통이 잘되는 면이 있고,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도 4명이 다 같이 참여 가능한 점이 무엇보다 좋은 점이다.”

끝으로 예술가 집안이 아니어도 가족이 함께 소소하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요즘은 예술을 향유할 기회나 공간, 그리고 시간적인 여건이 20~30년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음악 감상도 그렇지만, 뮤지컬이나 연극을 관람한다든지 어느 장르든지 현장을 직접 가는 것이 중요하다. 관람한 후에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가 생겨 소소한 즐거움을 온 가족이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 JOA(조정화)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순수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조형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20여 년간 강의하면서 [포토닷], [디지털카메라매거진], [미술세계], [월간중앙] 등에 예술 관련 연재와 기고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서 특별한 사진 읽기](2020년)가 있다.

202208호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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