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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가(家) 딸들의 몫(2) ‘천부적 지위’ 못 살리니 어찌할꼬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이서현(삼성) 멀어지고 서민정(아모레퍼시픽) 걱정되고…
남과 손잡다 퇴출된 조현아(대한항공)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서민정 아모레퍼시픽 럭셔리브랜드 디비전 AP팀 담당,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오너가(家)’라는 천부적 지위, 아버지로부터 얻은 기회를 앞세워 경영 전면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경영 능력을 의심받는 3세 여성경영인도 있다. 또 3~4세 경영으로 넘어오면서 제대로 교통정리가 되지 않아 ‘형제의 난’, ‘남매의 난’ 속에서 입지가 줄어들기도 한다. 때가 되면 경영권을 승계받던 과거와 달리 경영 능력이 승계 여부의 우선순위가 됐기 때문이다.

성과가 나야 자리를 줄 텐데- 이서현·서민정

최근 이서현(49)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삼성글로벌리서치 CSR연구실 고문을 겸직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재계 안팎에선 “기업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건희 회장 타계 전만 해도 이재용(54)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금융, 이부진(52)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레저, 이서현 이사장은 광고·패션 사업을 책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었다.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패션을 전공한 이 이사장은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해 2009년 제일모직·제일기획 전무, 2013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을 거쳐 2015년 말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장기간 이어진 패션업계 불황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삼성’이라는 브랜드에도 불구하고 오빠와 언니에 비해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결국 그는 2018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에서 사임하고, 삼성복지재단과 리움미술관으로 내려왔다.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의 CSR연구실은 기업의 사회적책임 이행 전략과 사업개발, 글로벌 트렌드 연구를 담당하는 부서로, 삼성복지재단을 운영해온 경험이 겸직의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앞서 이 이사장의 남편 김재열 사장도 2018년 말 제일기획에서 삼성글로벌리서치로 자리를 옮긴 바 있다.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지분에서는 남부러울 것이 없다. 이 이사장은 삼성물산 6.19%를 비롯해 삼성전자(0.93%), 삼성생명(1.73%), 삼성SDS(1.95%) 등 삼성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이들 회사에서 860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주요 계열사 임원진을 40대로 교체하며 ‘오너 3세 경영’ 준비에 나섰다. 하지만 당사자인 서민정(31) 아모레퍼시픽 럭셔리브랜드 디비전 AP팀 담당의 사정은 녹록지 않다. ‘서민정 3사’로 불리는 이니스프리·에스쁘아·에뛰드의 실적이 부진한 탓이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코로나19 이전 6조원대 매출을 유지해왔지만 최근 몇 해는 5조원대로 내려왔다.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봉쇄령, 국내외 로드숍 브랜드 경영 악화 영향이 컸다.

서 담당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두 딸 중 장녀로 미국 코넬대 경제학과,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를 거쳐 2017년 아모레 오산공장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6개월가량 근무한 후 중국 장강상학원에서 MBA 과정을 이수한 뒤 장동닷컴을 거쳐 2019년 다시 아모레퍼시픽 뷰티영업전략팀에 과장급으로 복귀했다. 수려한 외모에 국내 최연소 100대 부자, 열애부터 회사 생활까지 이슈가 되면서 ‘셀럽’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서 담당이 승계 1순위로 꼽히는 이유는 높은 지분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아모레퍼시픽 보통주 2.93%, 우선주 1.04%에 불과하지만 계열사인 이니스프리(18.18%)와 에뛰드(19.5%), 에스쁘아(19.52%) 등의 지분은 상당하다. 이 계열사의 가치를 끌어올린 후 모회사와의 합병 등을 통해 서 담당의 지배력을 늘리거나, 지분 증여 시 세금 재원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최근 아모레퍼시픽이 젊은 임원들을 대거 발탁한 것도 서 담당의 영향력 강화를 노린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후계 작업의 밑그림은 그렸으나 갈 길은 멀다. 3개 계열사 모두 최근 몇 해 동안 매출이 줄고, 급기야 지난해엔 나란히 적자를 기록했다. 서 담당의 경영 능력에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룹 차원에서는 서 담당의 승계 작업에 대해 손을 젓는다. 서 회장이 1962년생이니 아직 경영 일선에 설 나이이고, 최근 실적도 좋지 않아 후계 체제를 거론하기엔 무리라는 설명이다.

경영권 다툼 중 경영 일선에서 밀린 대표적 사례가 2014년 ‘땅콩 회항’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현아(48)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다. 2020년 3월 열린 주총에서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과 3자연합을 구성해 동생 조원태(46) 한진그룹 회장을 상대로 경영권 다툼을 벌였지만 표 대결에서 패배했다. 3자연합은 이듬해 4월 해체됐고, 조 전 부사장이 한진칼 지분을 절반 이상 매도하면서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조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그는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추모행사에 3년째 참석하지 않고 있다.

‘남매의 난’에서 밀려 사실상 아웃- 조현아

2년 만에 펼쳐진 올해 주총 표 대결에서도 조 회장 측이 압도적으로 승리하면서 조 전 부사장의 경영일선 복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대신 조 회장은 막내 조현민(39) 한진 미래성장 전략 및 마케팅 총괄사장과 손을 잡았다. 조 전 부사장은 “동생 조원태 회장은 부친의 공동경영 유훈을 지키지 않는다”며 호소하고 있지만 회사 안팎에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분석이다.

3자연합 결별 이후 조 전 부사장은 잇따라 주식을 팔고 있다. 고 조양호 선대회장에게 상속받은 지분은 물론, 기존에 보유하던 지분까지 정리했다. 지난 3월 말 기준 조 전 부사장의 한진칼 지분율은 1.48%(98만8015주)이며, 지난해 말 2.06%보다 낮아졌다. 고정적 수입이 줄어든 데다 선대회장 상속세에 대한 연부연납 시기 만료가 가까워지면서 주식을 팔아 현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202209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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