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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기업] 유럽 수출길 뚫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폴란드와 4조원 규모 FA-50 경공격기 계약 ‘쾌거’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안현호 사장 “항공기 1000대 수출 향한 첫걸음”
500대 규모 미국 훈련기 수주 경쟁에도 출사표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은 7월 27일 폴란드와 FA- 50 경공격기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은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T-50B 공중곡예기가 8월 3일 이집트 피라미드 상공을 날고 있는 모습. 피라미드 상공을 외국 공군이 비행한 것은 처음으로, FA- 50 경공격기의 이집트 수출 청신호로 여겨진다. / 사진:대한민국 공군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이 인도네시아·이라크·필리핀·태국 등에 이어 유럽 수출길을 뚫었다. KAI는 지난 7월 27일 폴란드와 FA-50 경공격기 48대를 수출하는 내용의 기본 계약을 체결했다. 기본 계약은 폴란드 획득 절차상 실행 계약 전에 체결하는 사실상의 수주 계약이다. 계약 규모는 30억 달러(약 4조원)다.

한국산 항공기 완제품의 유럽 시장 진출은 사상 처음으로, 이번 수출 계약은 물량과 가격 기준으로도 역대 최대 규모라는 게 KAI 측의 설명이다. KAI는 폴란드 정부를 비롯해 현지 업체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FA-50 후속군수지원(MRO)센터 설립 등도 추진한다. 계약을 체결한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은 “FA-50은 우리가 보유한 장비를 상호 운용할 수 있고 최신 무장 장착이 가능한 폴란드 공군에 최적의 기종”이라고 말했다. 안현호 KAI 사장은 “폴란드는 국산 항공기 1000대 수출 목표의 시작점”이라며 “FA-50 고객은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의 잠재고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계약 당사자들이 모두 만족한 쾌거다.

FA-50은 KAI가 만든 한국산 초음속 경공격기다. FA-50의 ‘F’는 전투기(Fighter), ‘A’는 공격기(Attack)란 의미를 지녔다. 파이팅 이글(Fighting Eagle), 즉 ‘싸우는 독수리’라는 별칭을 가진 FA-50은 이름 그대로 전투기는 물론 공격기로도 활용할 수 있다.

KAI는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기반으로 FA-50 경공격기를 제작했다. ‘FA-50 개조개발사업’은 대한민국 공군이 운용하고 있는 F-5E/F 전투기의 노후화에 따라 대체 전력 확보 차원에서 이뤄졌다. KAI가 T-50을 개조·개발해 탄생시킨 FA-50은 2010년 5월 4일 첫 비행에 성공했다. KAI는 T-50 고등훈련기 개발 이후 전술입문기인 TA-50을 만들었고, 최종적으로 경공격기인 FA-50으로 진화시켰다.

고등훈련기 T-50 기반의 초음속 경공격기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왼쪽)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장관과 안현호 한국항공우주산업 (KAI) 사장이 FA-50 기본 계약 서명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 사진:한국항공우주산업(KAI)
FA-50 경공격기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산 군용기 중 최상의 디지털화를 실현했다는 점이다. FA-50 경공격기는 F-15K에 이어 대한민국 공군이 보유한 전투기 가운데 둘째로 ‘링크 16’을 장착했다. 링크16은 디지털 전술 데이터 링크로 정의된 양식의 전술 자료와 음성 데이터의 송수신이 가능한 장비다. 링크 16을 장착한 전투기는 전장의 다양한 정보를 입수해 작전을 펼치는 만큼 항공기의 생존성과 공격력이 향상된다.

FA-50 경공격기는 링크 16과 함께 공중·지상 목표물을 정밀 추적할 수 있는 ‘EL/M2032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다. 적 대공 미사일에 대한 자체 보호 능력은 물론 야간 임무 수행 능력도 갖췄다.

정밀 유도 무기를 바탕으로 한 우수한 공격력도 FA-50 경공격기의 장점으로 꼽힌다. FA-50 경공격기는 ‘AIM-9L/M 공대공 미사일’과 ‘AGM-65 공대지 미사일’을 운용한다. 스마트 폭탄인 ‘제이담’도 사용한다. 2015년 열린 대한민국 공군의 정밀유도 무장 실사격 당시, FA-50에서 투하된 제이담이 모의 장사정포 진지를 단 한 발로 정확히 파괴해 눈길을 끈 바 있다.

KAI는 FA-50 경공격기의 우수한 상품성을 바탕으로 국내외 도입 계약을 늘려가고 있다. 그 첫 단추로 2011년 12월 28일 방위사업청과 60여 대의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금액은 7100억원이었다. 2013년부터 대한민국 공군에 실전 배치된 FA-50 경공격기는 2016년 10월 21일 최종호기가 출하됐다. 대한민국 공군의 FA-50 경공격기는 국지 방공과 근접 항공 지원에 사용되고 있다.

FA-50 경공격기는 필리핀 마라위 전투에서 실제로 그 위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마라위 전투는 2017년 필리핀의 이슬람 극단주의 분파가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 마라위 시를 점령해 필리핀군과 반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였다. 필리핀은 2014년 한국과 정부 간 계약 방식으로 12대의 FA-50 경공격기를 구매했다.

필리핀 마라위 전투에서 ‘게임 체인저’ 등극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이 만든 T-50B 공중곡예기가 8월 3일 이집트 피라미드 상공에서 특수 비행을 선보이고 있다. / 사진:한국항공우주산업(KAI)
마라위 전투가 일어난 2017년 5월 무렵은 필리핀 공군 제7전술전투기 ‘불독’ 비행대대에 FA-50PH 12대가 모두 배치된 상황이었다. 필리핀 공군은 앞서 같은 해 1월 26일 FA-50PH 2대를 앞세워 민다나오 섬에 위치한 테러리스트의 근거지에 야간 공습을 실시해 성과를 거준 바 있었다. FA-50 경공격기의 첫 실전 투입이었다.

FA-50PH는 마라위 전투가 격화한 그해 6월부터 지상군을 본격 지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Mk82’ 500파운드(227㎏) 폭탄을 장착한 FA-50PH는 도심 속에 요새화한 테러리스트의 거점을 정확하게 폭격했다. 그 결과 마라위 전투에서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이 위축됐고, 필리핀군은 지상전에서 우위를 점하며 전장을 주도할 수 있었다. 당시 마라위 전투를 지휘하던 필리핀 지상군 사령관은 FA-50PH를 ‘전장의 게임 체인저’라고 치켜세웠다고 한다. 반군 진압 주력 공격기로 활용되고 있는 FA-50PH는 그동안 약 300회의 출격을 달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FA-50 경공격기를 포함한 T-50 고등훈련기 계열 항공기는 한국과 필리핀을 비롯해 다른 국가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T-50 고등훈련기 계열 항공기는 2011년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이라크, 필리핀, 태국 순으로 2021년까지 총 72대가 수출됐다. KAI가 진입장벽이 높은 항공 산업 시장에서 후발 업체의 약점을 극복하고 T-50 계열 항공기를 수출한 것에 대해 국가 차원의 쾌거라는 평가도 나온다.

T-50 고등훈련기 계열 항공기를 도입한 국가들은 자체 성능 개량 사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공군과 태국 공군은 각각 수입한 T-50i 고등훈련기와 T-50TH 고등훈련기를 FA-50 경공격기로 진화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자체 보호 장비와 레이더를 추가해 항공기의 성능을 향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항속 거리 늘리고 무장 확대 위한 성능 개량

KAI도 대한민국 공군과 도입국들의 요구에 발맞춰 FA-50 경공격기의 항속 거리를 늘리고 무장을 확대하기 위한 성능 개량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선 FA-50 경공격기에 주·야간 표적 식별 장비인 ‘스나이퍼 ATP(Advanced Targeting Pod)’와 ‘GBU-12 레이저 유도 폭탄’을 장착하는 적합성 시험을 2019년 자체 투자를 통해 완료했다.

대한민국 공군의 KF-16과 F-15K에서도 운용되는 스나이퍼 ATP는 기존 야간 표적 식별 장비와 비교해 2배 이상의 거리에서 3~5배의 해상도로 표적 획득과 식별이 가능한 장점을 지녔다. 레이저와 GPS 정밀 유도 무기의 정확성도 높인다.

KAI는 더 나아가 FA-50 경공격기의 단점으로 지적되던 항속 거리를 늘리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기체 외부에 위치한 기존 150갤런(568ℓ) 연료 탱크 용량을 300갤런(1136ℓ)으로 증가시키는 적합성 시험을 통해서다. 공중 급유 기능을 추가하고 기존 후방석과 후방동체에 연료 탱크를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KAI는 또한 기술 발전 추세를 반영한 항공 전자 장비, 레이더 등의 성능 개량을 통해 부품 단종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FA-50 경공격기의 운용 유지 비용도 절감시킬 계획이다.

KAI는 전투기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임무컴퓨터 중심으로의 성능 개선도 추진한다. FA-50 경공격기의 조종실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기존 계기판과 패널을 대화면 시현기와 보조 계기로 대체하면 조종사의 조종 효율성이 제고되는 동시에 정비성향상과 예산 절감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KAI의 설명이다. KAI는 유럽 나토(NATO) 회원국을 타깃 삼아 최신형 적외선 단거리 미사일과 헬멧 시현 장치 등을 장착하는 등 FA-50 경공격기의 근접 공중전 능력을 향상시키는 작업도 계획하고 있다.

KAI는 기존 수출국 항공기 운영 지원과 자체 성능 개량 사업을 바탕으로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 미국, 남미, 호주 등 세계 권역별 중점 국가를 설정해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KAI는 특히 미군 전술훈련기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6월 9일 미국 록히드마틴(이하 LM)과 협력 합의서에 최종 서명했다.

KAI와 LM의 전략적 제휴로 미국 공군·해군 전술훈련기 수주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약 280대 규모인 미국 공군 전술훈련기 사업과 220대를 도입할 예정인 미 해군 고등훈련기·전술훈련기 사업은 2024~2025년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가 미국 사업 수주 경쟁에서 승리할 경우 KAI는 세계 훈련기·경공격기 시장의 최대 공급사로 떠오르게 된다. 최소 20년치 일감을 확보하고 최소 56조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는 게 KAI의 설명이다. 두 회사는 이날 미국은 물론 500여 대 이상으로 추산되는 글로벌 훈련기·경공격기 시장도 공동 공략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KAI는 유럽 수출 확대를 위해 7월 18일부터 5일간 영국 런던 인근 햄프셔카운티에서 열린 ‘판버러에어쇼 2022’에 참가하기도 했다. KAI는 판버러에어쇼에서 FA-50 경공격기와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소형 무장 헬기 LAH를 전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나토 회원국들의 재군비가 본격화하면서 경공격기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는 게 KAI 측 참가자의 전언이다.

콜롬비아·말레이시아·이집트와도 수출 논의

KAI의 항공기는 최근 이집트 피라미드 상공을 비행하며 현지 수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공군 ‘블랙이글스’는 8월 3일 공중곡예팀으로는 세계 최초로 이집트 피라미드 상공을 날았다. 피라미드 상공을 외국 공군이 비행한 첫 사례로, 한국과 이집트 간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된 결과로 평가된다.

대한민국 공군 특수 비행팀 블랙이글스는 이날 KAI의 T-50B 공중곡예기를 타고 수직으로 떨어져 폭포수를 연상케 하는 ‘레인폴’ 기동 등의 특수 비행을 선보였다. KAI는 블랙이글스의 에어쇼에 발맞춰 현지 마케팅 활동을 진행했다. 이집트 공군은 내년 기종 선정을 목표로 고등훈련기 사업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집트 고등훈련기의 잠재적 소요는 100여 대에 달하는, 미국 다음으로 큰 사업이다.

홍진욱 주이집트 대사는 “방위산업은 국가 간 최고의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한 협력 분야”라며 “정부와 기업, 대사관이 참여하는 ‘K-방산 팀코리아’를 통해 수출 활동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도 KAI의 사업 전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홍균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KAI는 콜롬비아와 말레이시아에 이어 이집트와도 FA-50 경공격기 수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한국산 완제기 수출국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209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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