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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목민관열전] 3선 고지 오른 이강덕 포항시장의 ‘현장중심주의’ 

“열린 눈과 귀로 현장에서 소통해야 시민 마음 얻는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풍부한 R&D 인프라로 철강도시에서 ‘신산업 거점’으로 변신 추구
‘행정의 최고 동력’ 되는 시민 참여 넓혀 민생과 행정의 간극 해소


▎8월 2일 포항시청 신북방정책 전시관의 포토존에 이강덕 포항시장이 서 있다. 포항 최초 3선 연임에 성공한 이 시장은 이날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포항의 비전과 정책 방향, 지향하는 리더십 등을 밝혔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민선 이후 처음으로 3선에 성공했다. 경상북도 지역 기초단체장 중에서도 유일하다. 하지만 선거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후보 경선에서 컷오프됐다가 재심을 청구해 경선 기회를 얻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본선에서는 역대 포항시장 선거 최고 득표율(77.2%)을 올리며 무난히 연임 고지를 올랐다.

8월 2일 시청에서 만난 이 시장은 선거가 끝난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너무 진을 빼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직원들에게 업무 보고를 받고 시민을 만나는 일정은 분 단위로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마치 포부 가득한 초선으로 돌아간 듯했다. 연임제한 규정상 그가 시장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4년이다. 이 시장이 얻은 행정가의 철학과 비전을 물었다.

선거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나?

“시민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단련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성경 로마서에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는 구절이 있다. (이 시장은 불교 신자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시민들을 보며 고난이 생각지 못한 선물을 준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 선물은 바로 함께 키워가는 희망이었다. 시민들께 빚을 많이 졌다.”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뒤에 이전과 어떤 점이 달라졌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시민들 삶의 현장으로 더 깊이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행정은 참모들에게 맡기고 나는 현장으로 가려 한다. 선거 과정에서 민생과 행정 사이에 다소 거리감이 있다는 걸 느꼈다. 소통의 끈이 제대로 닿지 못해 오해가 생겼기 때문이다. 오해를 풀고 소통하려면 직접 현장에서 시민을 두루 만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배터리·바이오·수소·철강 미래 먹거리로 집중 육성

이 시장은 지방행정가의 길에 들어서기 전 30년 가까이 경찰에 몸담았다. 누구보다 현장의 중요성을 깊이 체득하고 강조해온 지휘관이었다. 2012년 5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해양경찰청장(치안총감)을 지내며 현장 중심 조직으로 바꾸고자 했던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해경청장으로 부임해서 처음 한 일은 지휘선을 타고 바다 전체를 순시한 것이었다. 본청이 있는 인천에서 출발해 남해를 거쳐 동해까지 몇 날 며칠을 배에서 숙식했다. 역대 청장 중에 그런 예가 없었다. 또 집무실 캐비닛에 구명조끼를 두고 언제든 현장에 나갈 수 있게끔 했다. (이 시장이 청장 임기를 마치고 1년 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만약 내가 있었다면 주저 없이 곧바로 현장에 달려가 직접 지휘했을 거다. 현장중심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준 가슴 아픈 교훈이다.”

현장에서의 소통을 위해 계획하고 있는 게 있나?

“우선 시민들에게 시의 정책과 이슈를 정확하게 알리고 시민의 목소리와 역량을 한데 모으기 위한 시스템 정비를 시작했다. 새 임기의 모토로 삼은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민선 8기 시정’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시민 소통과 지역 통합 플랫폼인 ‘시민 대통합 상생위원회’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상생위원회는 청년, 소상공인, 사회단체, 환경·문화·예술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시민 대표로 구성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행정에 녹이는 거버넌스다.”

이전 슬로건의 키워드는 ‘변화’, ‘도약’이었다. 어떤 성과가 있었나?

“지난 8년간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도시로 전환하기 위해 양질의 일자리를 갖춘 산업 생태계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뒀다. 여러 성과가 있었다. 3·4세대 방사광가속기, 이차전지종합관리센터, 바이오오픈이노베이션센터 등 20여 개 혁신 R&D 인프라를 확충했다. 또 3대 국가전략특구(배터리규제자유특구·강소연구개발특구·영일만관광특구) 지정을 끌어냈다. 앞으로 5년간 배터리·바이오헬스·수소 등 신성장산업에 약 7조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 규모의 기업 투자도 유치했다. 철강산업에 치우쳤던 포항의 산업 체질과 도시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지속가능한 도시의 전제조건인 자족 기능을 확보할 계획은?

“우리는 ‘3+1(배터리·바이오헬스·수소+철강 고도화) 신경제지도’ 전략을 추진해왔다. 3년 전 전국 최초로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에코프로, 포스코케미컬 등 앵커기업을 필두로 3조2000억원에 이르는 기업 투자를 유치했다. 포스텍 생명공학연구센터의 우수한 R&D 인프라를 활용해 바이오 산업 전초기지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또 수소연료전지 발전 클러스터 조성 공모사업에 선정돼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 사업이 계획대로 이뤄지면 생산유발 3189억원에 1700명 가까운 일자리 창출을 기대한다. 여기에 포항 철강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포항이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활용한 관광산업 육성을 통해 ‘환동해 중심 관광도시’의 입지를 다지려 한다.”

‘연구중심 의대 설립’ 새 정부 국정과제로 채택 성과


▎포항 시내 곳곳에 포스코홀딩스 본사의 서울 설립에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다.
여러 현안 중 어떤 것들이 앞으로 4년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나?

“남은 4년은 앞서 말한 것들을 고루 발전시켜 신산업-친환경 미래도시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시기다. 포스텍 연구중심 의대 설립과 영일만대교 건설, 포스코 지주사 본사 포항 이전 등 굵직한 현안들이 있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이런 현안들이 탄력받을 절호의 기회다.”

포항시청 앞에는 ‘포스코 본사 서울 이전’을 반대하는 여러 현수막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지난해 포스코가 지주사 전환계획에 대해 이사회 의결을 통해 공식화하면서 시민 반발을 불렀다. 포스코가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 중 시민들은 본사 서울 이전에 특히 반대하고 있다.

포스코 본사 이전에 대한 시민의 반감이 상당한 것 같다. 어떻게 진행 중인가?

“우리 시나 시민과 일체 협의 없이 본사 서울 이전 등 지배구조 개편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포스코가 세계적인 철강 기업으로 성장한 데에는 지난 수십 년간 시민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동안 지역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한목소리로 포스코의 탈지방화를 저지하려 했다. 그 결과 미래기술연구원 포항 이전과 상생협력사업 추진 등 어느 정도 합의를 끌어냈다. 합의가 잘 이행되도록 시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민선 8기 청사진 중에 ‘연구중심 의대 설립 추진’도 눈에 띈다.

“우리 시의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헬스 산업 인프라는 현재 국내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고 자부한다. 미국의 보스턴과 같은 글로벌 바이오 메카가 되려면 신약 시제품의 임상시험을 담당할 의과대학과 임상병원이 필요하다. 또 바이오 산업 발전을 이끌 의사과학자 양성도 필요하다. 따라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 대학인 포스텍에 ‘연구중심의대+스마트병원’ 설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연구중심 의대 설립이 새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 채택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하는 바이오·헬스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현안이다.”

시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취임 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아동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3대 무상 정책(급식·보육·교육)을 확대하고 24시간 소아응급환자 진료체계도 구축했다. 앞으로는 공공보육 인프라를 확충해 육아부담은 덜고 더 많은 보살핌을 제공하는 안심보육서비스를 강화할 계획이다. 직장맘의 경력 이음을 위해 시작한 여성시간선택제(일자리 엄마참손단)는 다른 시·군으로 퍼지며 호평을 얻고 있다. 또 청소년재단과 진로진학지원센터, 청년창업플랫폼, 청소년 문화의 집을 통해 청소년과 청년의 꿈을 지원하려 한다. 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치매안심센터를 열고 노인 일자리를 발굴해 어르신들의 안정적인 노후를 뒷받침하고 있다.”

포항시는 2017년 11월 큰 지진을 겪었다. 이 때문에 흥해읍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 1200여 채가 무너지거나 파손돼 수많은 이재민이 임시 거처를 전전해야 했다. 이 지진으로 인해 포항시의 도시재생은 무엇보다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포항지진 이후 도시재생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시를 4개 권역으로 나눠 1조4000여 억원을 투입하는 ‘포항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수립했다. 특히 지진 피해가 컸던 흥해읍(특별재생사업) 권역은 행복도시, 복합 커뮤니티센터, 종합 정보 스마트라운지 등을 설치해 재난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안전도시 건설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4대 권역 구분해 색깔 있는 도시재생 추진


▎2017년 포항지진 피해를 본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옛 대성아파트 부지에 들어서는 흥해어울림플랫폼 조감도. 이곳에는 공공도서관과 공중보건소, 지진트라우마센터, 아이누리플라자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 사진:포항시
다른 권역은 어떤 목표를 갖고 개발을 추진하나?

“구도심인 중앙동(중심시가지형) 권역은 행정·문화 융복합 서비스와 청년의 취·창업 중심으로 활력을 불어넣는 혁신적인 도시재생을 추진 중이다. 포항항 구항(경제기반형) 권역은 해양 신산업 생태계 조성의 일환으로 복합 문화예술체험 거점과 항만재개발을 연계한 신경제 거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흥동(우리동네살리기형) 권역은 마을기업을 통해 주민 스스로 공동체를 운영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전략을 세웠다.”

8년간 지방행정가의 길을 걸어온 경험은 흔치 않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목민관이 갖춰야 할 덕목을 꼽는다면.

“‘헌신’과 ‘봉사’를 늘 마음에 새겨야 한다. 이 마음이 흐트러지면 자만에 빠지게 된다. 특히 쟁취와 독식에 대한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이것을 욕심부리면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정치는 현실이니 세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세력화한 결사체의 이익만 추구하면 시민들에게 외면당하고 만다. 자기 생각을 시민의 뜻으로 포장하려고만 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헌신’, ‘봉사’를 늘 마음에 새기고 열린 눈과 귀로 언제나 현장에 있어야 비로소 시민이 부여한 책무를 다하고 시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정준희 기자 jeong.junhee@joongang.co.kr

202209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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