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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화제] 20년 전부터 소수자 삶 주목했던 문지원 작가 

‘우영우’는 우연히 나오지 않았다 

이해람 월간중앙 인턴기자
2003년 [헬멧] 등 여러 단편 영화 만든 감독 출신… 일찍부터 경계인에 관심
가부장제·성차별, 고정관념 깨는 도전정신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집필


▎7월 26일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문지원 작가. [우영우]에 담긴 주제의식과 철학은 한순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 사진: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화제다. ‘우영우 신드롬’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드라마 애청자들은 작중 우영우(박은빈)와 친구 동그라미(주현영)가 나누는 우영우식 인사법, “우 to the 영 to the 우”를 따라 하며 인사를 주고받는다. 경남 창원 동부마을에 위치한 드라마 속 팽나무를 보려고 관광객이 밀려들어 인산인해가 됐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드라마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만큼, 인권과 관련된 칼럼들이 한 달 넘게 신문 지면을 채우고 있다. 이러한 우영우 신드롬은 종영을 앞둔 8월까지 이어졌다.

2022년 최대 인기작으로 떠오른 [우영우]를 창조한 사람은 문지원 작가다. 문 작가는 [우영우]가 신생 채널 ENA에서 최고 시청률 15.8%를 달성하고, 넷플릭스에서 한국을 포함한 20개국에서 1위, 글로벌(비영어·영어 통합) 2위를 기록할 수 있게 한 일등 공신이다. [우영우]로 드라마에 데뷔한 문 작가가 유인식 PD에게 “(드라마가) 어느 정도 잘된 것이냐”고 묻자 유 PD는 “사고(事故) 수준”이라고 답했다. 드라마 작품과 메시지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면서 문 작가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우영우]는 문 작가의 전작인 2019년 영화 [증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증인]에는 자폐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건의 목격자가 자폐인이면 어떨까?’로 시작되는 상상에서 영화 [증인]이 탄생했다. [증인]의 주인공 자폐인 고등학생 임지우(김향기)는 영화에서 “꿈이 변호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드라마 제작사 에이스토리는 문 작가를 찾아와 “지우가 훗날 변호사가 되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겠나?”라고 물었고, 문 작가는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렇게 [우영우]가 탄생했다. 하지만 [우영우]에 담긴 주제의식과 철학은 한순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문 작가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영우]는 이미 20년 전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 작가는 중학생 때부터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품었다. 고교 2학년을 중퇴한 뒤 하자작업장학교 영상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하자작업장학교는 연세대학교가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비인가 대안학교다. 청소년의 주체성과 공존, 창의 교육, 평등 교육을 지향한다. 문 작가는 하자작업장학교에 다니며 인권과 관련한 논의를 작품에 녹여내는 역량을 키웠다. 2002~2003년 서울독립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에서 단편영화 [바다를 간직하며]를 선보였다. 당시 문 작가는 ‘원(M.J. ONE) 감독’으로 이름을 알렸다. [바다를 간직하며]는 가정 밖 여성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영화다.

“솔직한 영화, 관객과 소통하는 영화 만들고 싶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드라마 제작사 에이스토리가 문 작가에게 “[증인] 주인공 지우가 커서 변호사가 되면 어떨까”라고 물으면서 시작됐다. 사진은 영화 [증인]의 한 장면. / 사진:[증인] 스틸컷
문 감독, 곧 M.J. ONE 감독은 2003년, 단편영화 [헬멧]을 발표했다. 이 작품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특별상, 서울여성영화제if 최우수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헬멧]은 “젊은 여성이 동성애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승인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당시 “한국 사회에서 여성 동성애에 대한 우화이자 레즈비언 역사 쓰기에 대한 시도”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후 문 작가는 영화감독으로서 [창문 너머 별], [아홉 개의 이야기], [리튼 온 더 바디(written on the body)], [나쁜 아이], [코코코, 눈!]을 제작했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등에서 상을 받았다. 대부분 여성을 서사의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청소년·청년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고민을 담아냈다.

문 작가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일간스포츠]에 ‘원의 드라마 읽기’ 칼럼을 연재하면서 드라마를 향한 애정을 나타냈다. KBS2 드라마 [백설공주]가 주인공 마영희(김정화)의 인생을 남성과의 사랑으로만 이해하려는 것에 대해 “백설공주도 이미 토한 사과가 21세기 여성의 목에 아직도 걸려 있다”고 비판하는 등 2000년대 초중반 드라마에 녹아 있는 가부장제와 성차별을 비판했다.

2005년에는 25세 나이에 MBC 최연소 시청자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2006년 [PD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공영성을 강조하다 보면 왜곡된 시각으로 소수자를 바라보고 그것이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런 점들을 고쳐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방송 드라마와 영화가 약자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 작가의 고찰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상하기 때문에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것”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2달 동안 ‘우영우 신드롬’이라는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 사진:ENA
문 작가는 2003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며 “솔직하게 만든 영화, 관객과 소통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우영우] 역시 그런 작품이다. 변호사 우영우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강자’면서 ‘배려가 필요한 약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2003년 이전부터 문 작가가 만들고 싶어 했던 작품에 대한 열망, 그리고 기존의 관념을 깨는 도전정신이 지금까지 방송에서 보기 어려웠던 ‘이상한’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문 작가는 [우영우]에 대해 “예민한 소재, 낯선 형식, 업계의 관례를 순순히 따르지 않는 도전들이 숨어 있다”고 자평했다. [우영우]가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문 작가도 스타 반열에 올랐다. 7월 26일 마포구 상암동 스탠퍼드호텔에서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얼핏 봐도 100명이 넘어 보이는 취재진이 모여 있었다. 무대에 올라 자리에 앉은 문 작가와 유 PD 모두 언론과 방송의 지대한 관심에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문 작가와 유 PD는 각각 “문 to the 지 to the 원”, 유 to the 인 to the 식이라며 우영우식 인사법으로 다소 굳어 있던 간담회 분위기를 풀었다.

기자간담회에서 드라마 [우영우]의 궁금증들이 하나둘 해소됐다. 문 작가에 따르면 [우영우]는 영화 [증인]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은 맞지만, [증인]의 주인공 지우가 성장해서 영우가 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지우는 지우대로, 영우는 영우대로 성장하고 있을 거라는 게 문 작가의 설명이었다. 문 작가는 “만일 지우가 성장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면 분명 [우영우]를 ‘본방 사수’할 것 같다는 재미있는 상상을 한다”고 말했다.

문 작가는 최근 성공을 거둔 두 작품에서 연속으로 자폐인의 이야기를 담아냈지만, 사실 자폐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증인]이 처음이라고 했다. ‘사건의 목격자가 자폐인이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증인]이 출발했고, 자폐인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특성에 매료됐다. 문 작가는 “독특한 사고방식, 엉뚱함, 윤리의식, 정의감, 해박한 지식, 엄청난 기억력.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폐로 인해 강화되는 인간의 특성이 있다. 여기에 굉장한 호감과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우영우]에서 ‘이상하다’의 의미에 대해 문 작가는 “우영우를 설명하는 데 가장 적절한 단어”라며 “영우가 ‘이상하다’는 것은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상하기 때문에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 끝나도 ‘인권’에 대한 사회적 고민 이어지길”

문 작가는 우영우라는 자폐인을 수동적인 인물로 가둬놓지 않았다. 지금까지 여러 작품을 통해 쉽게 볼 수 있었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도움이 필요한’, ‘감정이 없는’과 같은 수동적 키워드는 영우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그 반대에 가까운 ‘정의로운’, ‘사랑스러운’, ‘씩씩한’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대중의 편견을 깨뜨렸다. 이는 영화 [증인]에서 한 단계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증인]에서 지우는 변호사 순호(정우성)의 관찰 대상인 반면 [우영우]에서 영우는 단독 주인공이다. 그렇게 해서 시청자와 영우가 매개체 없이 직접 소통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문 작가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문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작품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시청자들이 이상하고 낯선 영우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기적 같은 체험을 주고자 했다.”

[우영우]가 방영된 이후 ‘우영우 신드롬’이 일어나면서 카페, 술집, 학교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영우’ 이야기로 가득 찼다.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권민우라면, 최수연이라면, 정명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 곁에 영우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와 같은 고민을 하게 했다. [우영우]를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사회적 의제로 등장했다. 유명 유튜버가 영우 캐릭터를 따라 한 것과 관련해 “장애 캐릭터를 흉내 내는 것은 희화화인가?”에 대한 논의가 온라인상에서 활발하게 이뤄진 것이 대표적 사례다. “자폐인의 현실과 괴리가 큰 판타지다”, “자폐인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등 드라마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이 장애인 당사자, 가족,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기도 했다. 문 작가는 이러한 비판과 논의 자체를 모두 건강한 과정으로 보고 있다. “모든 자폐인을 대변할 수 없다는 작품의 한계는 인정한다. 각계각층에서 의견을 주시는 것도 영광으로 생각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려 한다.”

문 작가는 드라마가 종영돼도 [우영우]가 던져준 고민이 이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세상을 발전시키는 것은 드라마가 아니라 드라마를 계기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이번을 계기로 인권에 대해 논의하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자체가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드는 것이다.” 문 작가의 말이다. 문 작가는 스스로 [우영우]가 던진 메시지를 ‘떡밥’이라고 표현했다. 앞으로 문화 분야에서 장애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어떻게 상생해나갈 것인가. 이에 대한 고민은 시청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 이해람 월간중앙 인턴기자 haerami0526@naver.com

202209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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