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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아나운서의 '리더의 언어로 말하기'(13) 

반말하는 리더, 존댓말 쓰는 리더 


▎리더의 언어는 특별하지 않다. 회사가 세운 원칙에 따라 모든 직원과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면 된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해외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돌아온 한국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그건 바로 높임말과 반말을 구별해서 사용하는 선후배 체계, 즉 존댓말 문화이다. 나이가 많건 적건 편하게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수평적인 호칭에 익숙하던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존댓말을 쓰려다 보니 크고 작은 실수가 생기기도 한다.

존댓말이 익숙하지 않은 건 비단 해외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가족문화에 익숙치 않은 MZ세대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상사와 존댓말을 쓰며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어떤 상황에서 존댓말을 쓰고 어떤 상황에서 반말을 써도 되는지, 가까운 선배에게 하는 말과 임원들에게 하는 말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두고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최근 국내 대기업들에서도 직급과 관계없이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우며 직원 간에 수평적 호칭을 강조하는 추세이다. 사실 사내에서 상호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약 10여 년 전부터 외국계 기업이나 스타트업 회사들이 자연스럽게 시작한 문화다. 반말이 주는 강압적인 느낌과 수직적 질서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직원들이 위축되거나 주눅 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작된 이 문화는, 이제 대한민국 대부분의 기업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회사의 구성원들은 늘 리더의 입에 주목한다. 리더가 회사의 정책을 몸소 지키고 있는지를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보수적인 대기업들까지 이런 문화에 동참하기 시작하자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원 상호 간 반말을 원칙으로 내세우는 기업들까지 생기고 있다. 국내의 한 스타트업 기업에서는 대표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가 서로의 영어 이름을 부르며 반말만을 사용하는 것을 회사의 방침으로 내세우고 있다. 나이 차이가 수십 년 이상씩 나는 직원이 대표에게 반말을 사용하며 대화하는 것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경어와 존댓말이 어색한 해외파 직원들이나 MZ 세대들은 이런 문화가 더 편하고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리더의 언어는 어때야 할까? 리더는 회사를 이끌어가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니 모두에게 반말을 써도 되는 걸까, 아니면 직원들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모두에게 존댓말을 써야 하는 걸까?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리더라고 해서 고민하지 말고, 회사가 세운 원칙에 따라 모든 직원과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면 된다. 회사가 세운 원칙이 존댓말이라면 리더와 직원 간 존댓말을 쓰면 되고, 회사의 방침이 반말 사용이라면 리더든 직원이든 모두가 반말을 쓰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리더 혼자서만 다른 언어를 사용할 때 발생한다. 모든 직원이 서로 존댓말을 쓰고 있는데 리더 혼자 반말을 사용하는 것을 묵인한다면 그건 그 리더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해주는 것과도 같다. 이런 리더는 결국 회사의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다른 계층의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직원과 리더의 사이는 한층 멀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모습은 실제 여러 대기업이 실제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기업의 대표이사는 자신만 빼고 다른 임원들은 상호 존댓말 원칙을 잘 지키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그 아래 고위 임원들은 자기 아래 임원들부터는 원칙을 잘 지키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임원들끼리 미팅에서는 존댓말보다는 반말이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정작 회사 내에 상호 존댓말을 쓰는 계층은 일부 직원들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물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른다. 조직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대표이사가 주재하는 미팅에서부터 모두가 존댓말을 사용하도록 하고, 다시 그 아래 임원들이 주재하는 미팅에서도 존댓말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만 모두가 존댓말을 쓰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반말을 쓰는 회사 정책과는 달리, 직원들이 오직 대표에게 말할 때만 존댓말을 쓰고 있다면, 그 회사는 결국 진정한 반말 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한 것이다.

회사의 구성원들은 늘 리더의 입에 주목한다. 리더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반말인지 존댓말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리더가 회사의 정책을 몸소 지키고 있는지를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리더라고 해서 회사의 정책에 혼자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직원들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리더라면 지금부터라도 내가 그리고 내 주위의 사람들이 어떻게 대화하고 있는지에 주목하자. 아무렇지 않게 꺼낸 말 한마디에, 직원들이 바라보는 리더의 모습은 180도 바뀔 수 있다.


※필자 소개: 리더스피치 대표이자 [리더의 언어로 말하기] 저자. KBS 춘천총국 아나운서로 방송을 시작해 연합뉴스 TV 앵커를 역임했으며, 현재 사이버 한국외국어대 외래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세대에 맞는 스피치를 연구하며 각 기업체 CEO, 임원들의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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