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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식당 너마저, 차라리 ‘굶주리는’ 대학생들 

 

월간중앙 이해람 인턴기자
■ 2년 6개월 기다린 전면 대면 수업…다가온 학생식당 가격 인상
■ 식당 대신 편의점 찾는 청춘…채소 없는 밥상, 부실한 끼니 감수


▎학생식당은 저렴한 가격에 학생들의 식사를 책임졌지만 물가 상승을 피해갈 수 없었다. 연합뉴스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서울 시내 대학교에 재학 중인 정윤태(25)씨는 9월 개강 이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치솟은 물가에 지갑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점심시간에 식당을 찾는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편의점을 찾거나 끼니를 거르는 횟수가 늘어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3월, 대학 캠퍼스는 전면적으로 문을 닫았다. 2년 6개월이 지난 현재 대부분의 대학은 전면 대면 수업을 원칙으로 세웠다. 대학생들은 실내에서 마스크만 착용할 뿐, 2019년으로 돌아갔다. 기다렸던 ‘캠퍼스 라이프’가 돌아왔지만, 대학생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이 지갑을 여는데 과거보다 훨씬 머뭇거리게 됐다. 최근 5~6%대 소비자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대학생들 역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물가 상승은 캠퍼스 안까지 침투했다. 대학생들은 소득이 없거나 적은 경우가 대다수다. 따라서 이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생식당을 애용한다. 하지만 최근 학생식당의 가격까지 오르는 추세다. 고려대학교는 9월 19일부터 학생회관 학생식당 가격을 5000원에서 6000원으로 1000원 인상한다. 다른 대학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국외국어대학교는 9월 1일부터 식대를 500원 올렸다.

코로나19 이전 최소 2700원이었던 명지대학교 학식 가격은 곧 최소 5500원에서 9000원으로 책정될 예정이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이하 전대넷)에 따르면 최근 13개 대학이 학식 가격을 인상했거나 인상할 예정이다. 대학 당국과 학생식당 위탁업체는 급등한 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식자잿값 인상으로 인해 학생식당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경제 사정을 고려해 학식 가격을 동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8월 10일부터 학식 가격 인상과 관련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875명 중 534명(61%)이 ‘가격을 동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대학가 식당들의 가격 인상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권 대학에 재학 중인 윤모(22)씨는 “외부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려면 저렴한 곳을 찾아가지 않는 이상 기본 8000원은 써야 한다”며 “주변 학생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라면·과자 가격까지 올라, 머나 먼 대학생 ‘식사권 보장’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는 9월 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학식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개강 시즌은 대학생들의 지갑이 얇아지는 시기다. 자취생들은 월세 부담이 커지고, 통학하는 학생들이라면 교통비가 더해진다. 각종 학회와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회비를 지불해야 한다. 인간관계를 위해 여러 모임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회식비 부담도 크다. 대학생 정윤태씨는 “권당 3~4만원이 넘는 교재를 3권 사야 했다”며 “지출을 줄이기 위해 끼니를 거르거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는다”고 전했다. 새내기 김연우(19)씨는 “1학년이기 때문에 각종 모임에 빠지면 친구를 사귀지 못할까 두려워 꼭 참석하지만 술값, 식비 등으로 부담을 느낀다”며 “2학기에는 알바를 하지 않으려 했지만 알아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취를 하고 있는 대학생 황현석(25)씨는 식비에서 지출을 줄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스스로 요리를 즐겨 했다고 밝힌 그의 식단은 확연하게 바뀌었다. 점심은 삼각김밥, 핫바와 우유 등으로, 저녁은 인터넷이나 편의점에서 구매한 컵밥으로 해결한다.

가끔 마트에 들러 장을 보지만 채소 코너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채소류 가격은 전년 대비 27.9% 올랐다. 영양을 채우기 위해 반찬 가게에도 들르지만, 이곳의 가격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에 있는 한 프랜차이즈 반찬 가게는 깍두기 300g당 4000원, 진미채 한 팩에 5000원, 멸치볶음 한 팩에 4500원으로 판매하고 있다. 결국 황씨의 밥상에는 컵밥이나 라면 한 그릇만 놓이게 되고, 황씨는 불균형한 영양을 섭취할 수밖에 없다.

식비를 아끼려 부실한 밥상을 차리는 대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비보가 들려왔다. 9월 15일부터 ‘국민 간식’ 초코파이를 비롯한 오리온 제품 16개 가격이 평균 15.8% 오른다. 오리온 과자 가격이 인상된 것은 2013년 이후 9년 만이다. 농심도 9월 15일부터 라면 26종, 과자 23종 출고가를 평균 11.3%, 5.7% 인상한다. 신라면은 10.9%, 너구리는 9.9%, 짜파게티는 13.8% 오른다. 그나마 돈을 아끼기 위해 먹어야 했던 라면에 지출해야 하는 비용마저도 오르게 된 것이다.

전대넷은 9월 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식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전대넷은 “학식 가격 인상은 대학생의 식사권을 위협한다”며 “대학과 정부는 학식 가격 인하를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대넷은 ‘천원의 아침밥’ 사업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천원의 아침밥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진행하는 사업으로, 3500원가량의 한 끼 식사 비용 중 농림축산식품부가 1000원, 대학이 1500원을 부담하고 나머지 1000원을 학생이 부담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전대넷은 “현재 330개 대학 중 28개 대학에서만 사업이 진행되는 만큼, 수혜 대학을 확대해야 하며, 아침뿐만 아니라 점심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월간중앙 이해람 인턴기자 haerami05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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