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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 칼럼] ‘바람직한 사회’의 새 판 짜기 

서로 부축하며 삶의 기쁨 공유하는 사회를 꿈꾼다 

코로나19 타격의 격차에 회복의 격차 더해져 사회 양극화 심화
사회적 약자 포용 통해 소외 없는 지속가능 사회 구축 노력해야


▎1993년 9월 ‘21세기 문명과 대승불교’라는 제목으로 기념 강연을 하고자 미국 하버드대학교를 방문한 이케다 SGI 회장은 강평자 중 한명인 경제학자 갤브레이스 박사(오른쪽)와 재회했다. 강연 이튿날에도 박사의 자택을 방문해 불법에서 설하는 ‘중생소유락’의 세계관 등에 관해 대화했다. / 사진:SGI
신종 코로나19 감염증이라는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유행)을 선언한 지 2년을 맞이하지만, 변이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는 여전히 감염 확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 영향은 일시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코로나19 이전’과 ‘코로나19 이후’로 역사가 나뉠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분명 이번 팬데믹이 미증유의 위협을 가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장차 역사가 무엇으로 나뉘었는지를 돌이켜볼 때 ‘막대한 피해의 기록’만을 논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역사의 행방을 근저에서 결정짓는 존재가 바이러스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사태의 연속으로 갈피를 잡지 못해 부정적인 사건에만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지만 위기를 타개하려는 긍정적인 움직임에서 희망의 광명을 찾아내 그 범위를 다 함께 넓히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번 팬데믹은 정치나 경제뿐 아니라 문화나 교육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 타격을 주었지만,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 타격의 크기는 달랐습니다. 이전부터 약자인 사람들이 더 심각한 상태에 빠진 데다가 평온하게 생활하던 사람들도 개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짊어지게 된 경우가 결코 적지 않습니다. 병에 걸렸을 때 도와줄 사람이 주위에 있는지,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엄격히 제한해도 일을 계속할 길을 확보할 수 있는지, 생활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자신의 힘으로 대응할 여유가 있는지 등의 차이로 타격의 크기에 격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급히 사회를 재건해야 하지만 감염자 수와 경제지표라는 통계 수치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어려움을 떠안은 수많은 사람이 소외되는 윤리의 사각지대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그 사각지대를 방치한 채로는 이미 존재하는 ‘타격의 격차’에다가 ‘회복의 격차’를 재차 더하는 사태를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타격의 격차’와 ‘회복의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을 찾는 데 참고할 점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팬데믹의 영향에 관해 연설한 말입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세계를 둘러싼 상황에 관해 코로나19라는 ‘위협’이 아닌 ‘타격을 입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신종 코로나19는 빈곤층, 고령자, 장애인, 지병이 있는 사람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장 큰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라고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 위에 코로나19 위기는 ‘우리가 구축한 사회의 취약한 골격에 생긴 균열을 보여주는 엑스레이(X-ray)와 같은 존재’라고 지적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구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사회적 약자 포용하는 전환적 사고 필요


▎2019년 3월 아르헨티나SGI 청년부의 제1회 ‘청년평화서밋’ 개최에 맞춰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행사장에서 열린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에 관한 전시. 청년평화서밋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 박사 등 많은 내빈이 참석했다. / 사진:SGI
근대 이후 정치사상의 저류를 이룬 사회계약설의 한계에 관해 미국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박사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로크나 홉스가 주장한 사회계약설은 ‘능력이 거의 평등하고 생산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남성’ 만을 대상으로 가정하여 구상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결과 상호 존재가 이익을 낳는 ‘상호유리성(相互有利性)’에 중심을 두어 여성이나 어린이, 고령자는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포용도 지지부진했다고 합니다.

안타깝지만 이번 코로나19 위기도 이러한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영향이 여전히 짙게 남아 있습니다. 팬데믹에 대응하고자 각국이 마련한 의사결정에 여성의 참여 비율은 낮고 대책도 대부분 성별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어린이도 소외받기 쉬운 대상으로 교육의 기회를 잃은 것 외에도 부모를 잃거나 가족이 실직되어 양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또 고령자는 긴급 상황에서 대응이 우선순위에 밀려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장기간 고립된 채로 살아야만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평상시에도 의료나 정보 접근이 쉽지 않은데, 더욱이 다방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상황을 개선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이러한 실태와 정면으로 맞서 ‘상호유리성’을 제일로 꼽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를 맞이한 것이 아닐까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비전을 생각해 볼 때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박사가 일찍이 저와 나눈 대담에서 한 말씀이 뇌리에 되살아납니다. 박사는 대공황이나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동서 냉전 등 많은 위기의 현장을 찾아가서 사람들이 입은 상흔을 직접 목격한 경험을 가슴에 새기고 경제뿐 아니라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을 계속 탐구한 석학이었습니다. 그런 박사에게 21세기를 어떠한 시대로 만들어야 하는지에 관해 물으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그것은 극히 짧은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이 세계에서 사는 것이 즐겁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당시(2003년)로부터 세월이 흘러 갤브레이스 박사의 말씀을 되새겨보니 새삼 공감이 갑니다. 어떠한 시련도 함께 이겨내고 ‘삶의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는 일이 실로 요구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삶의 기쁨’ 나누는 사회 구축해야

2030년을 목표로 유엔이 추진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채택된 지 올해로 7년째를 맞습니다. 코로나19 위기로 정체된 SDGs의 노력을 다시 힘차게 가속하려면 SDGs의 일관된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이념을 보충하는 형태로 ‘다 함께 삶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자는 비전을 거듭 맞춰가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이념은 재해 직후와 같은 상황에서는 자연히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지만, 재건을 진행하다 보면 어느새 사라지기 쉽다는 점이 염려됩니다. 또 팬데믹이나 기후변화처럼 문제의 규모가 너무 큰 경우에 위협에만 눈을 돌려버리면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것의 중요함까지는 인식할 수 있어도 지속적으로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점으로 삼아야 할 것은 위협에 맞닥뜨려 누군가가 쓰러질 것 같을 때 ‘부축해줄 사람’이 주위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요.

여러 위협을 극복하는 ‘만능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 만큼 중요한 것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해 스스로 ‘조력자’가 되고, 서로 도움이 되었다고 기뻐할 수 있는 관계를 심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련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 더는 무리라고 포기할 뻔한 순간, 도움을 받아 배를 타고 안전한 곳에 다다랐을 때 솟구치는 뭉클함이 있습니다. 그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안도나 기쁨과도 닮은 ‘살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실감을 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사회의 건설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 이케다 다이사쿠 - 1928년 1월 2일 도쿄 출생. 창가학회인터내셔널 회장. 소카대학교·소카학원·민주음악협회·도쿄후지미술관·동양철학연구소 등 설립. 유엔평화상·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 등 24개국 훈장, 세계계관시인 등 수상 다수.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401개의 명예박사·명예교수 칭호 수여. 토인비 박사와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비롯한 저서 다수.

202210호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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