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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K컬처 톺아보기(7)] 승승장구하던 넷플릭스 ‘K콘텐트’ 부진한 이유 

기시감 들거나 과하거나… 창의·상업성 사이 패러독스 직면 

흥행은 되지만…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이후 완성도 떨어져
서구 장르물 답습 [서울대작전], 막장드라마 틀에 갇힌 [블랙의 신부] 고전


▎올해 8월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서울대작전](왼쪽)은 2017년 9월에 개봉한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사진:넷플릭스, 소니픽처스코리아
작년 9월 서비스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K콘텐트 전반의 위상을 높이는 결과를 만들었다. 넷플릭스 사상 가장 많은 구독자의 시청 시간을 점유한 시리즈가 된 것. 그 후 [마이 네임], [지옥]을 거쳐 올해 초 [지금 우리 학교는]이 또다시 ‘K좀비’를 끌어와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다. 그래서 넷플릭스와 K콘텐트의 밀월 관계는 이 일련의 시너지를 내면서 더욱 확고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후로 어찌 된 일인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K콘텐트는 좀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소년심판]처럼 흥행에서는 다소 부진해도 평단과 대중의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야 그래도 괜찮지만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블랙의 신부], [카터], [모범가족], [서울대작전]까지 넷플릭스가 내놓은 일련의 오리지널 K콘텐트는 흥행도 평가도 좋게 받지 못했다. 도대체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먼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을 보면 원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이 리메이크를 굳이 왜 기획·제작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성공작으로 자리한 [종이의 집]은 이미 파트5까지 제작된 작품이다. 당연히 넷플릭스에 고정 팬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리메이크작은 비교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큰 성과를 내는 것은 차치하고 기본을 하는 것도 버거울 수밖에 없다.

과감한 도전보다 흥행 노린 실리적 선택 많아져


▎넷플릭스 인기 오리지널 시리즈 [종이의 집] 속 살바도르 달리의 얼굴을 본뜬 가면(왼쪽)과 한국판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 등장하는 하회탈 형태의 가면. / 사진:넷플릭스
그런데도 굳이 넷플릭스가 리메이크를 한 명분은 부제로 달린 ‘공동경제구역’이라는 단 하나의 차별점으로 보인다. 무대가 다른 국가도 아니고 굳이 한국인 이유는 바로 분단국가로서의 그 지정학적 특징 때문이라는 것이다. 통일을 앞둔 한반도 상황이 전제되고 그래서 일종의 공동경제구역이 만들어지며 거기서 새로 돈을 찍어내는 조폐공사라는 배경이 이 리메이크작의 차별적 포인트다. 하지만 이 정도의 리메이크가 성공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희박했다. 그래서 넷플릭스가 굳이 K콘텐트로 이 성공한 오리지널 시리즈를 리메이크하려 한 또 다른 이유를 의심해보게 된다. 그건 [오징어 게임]이 만들어낸 K콘텐트에 대한 글로벌 관심이 작용한 건 아니었을까.

흥미로운 장르물을 만들어내는 K콘텐트가 [종이의 집]을 리메이크한다면 어떤 게 나올까 하는 궁금증과 호기심, 그것만으로도 대박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구독층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이 비운의 리메이크작 기획에서 느껴진다. 일종의 성공작 되새김질에 가까운 리메이크를 K콘텐트가 맡았다는 사실은, 그래서 어딘가 당장의 과실이 급급한 넷플릭스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19가 엔데믹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그간 급증했던 구독자 그래프가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그래서 생겨난 넷플릭스의 위기감 말이다. 달리는 자전거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에 대한 투자의 페달을 밟아야 넘어지지 않는 넷플릭스는 구독자가 빠져나가도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 이중고를 마주하게 됐다. 성장세에 이뤄지던 과감하고 실험적인 투자와는 다른 다소 보수적이고 실리적인 선택들이 최근 넷플릭스가 투자한 K콘텐트에서 보이는 건 그래서 우연 같지 않다.

7월에 서비스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의 신부]는 그래서 한국의 대중에게 다소 충격적인 작품으로 다가온다. 그건 넷플릭스가 그간 K콘텐트와 그려왔던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면면들과는 정반대 색깔을 가진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200억원에 가까운 제작비가 투입됐다고 하지만 그 돈으로 채워진 반짝거리는 포장을 벗겨내면 [블랙의 신부]는 우리에게 막장드라마라고 불리는 그런 자극적인 드라마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작품이다. 남편의 극단적 선택으로 가족의 위기를 온전히 떠안게 된 혜승(김희선)이 이런 일을 만들어낸 이들과 대결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 드라마에는 우리가 막장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불륜·복수·출생의 비밀 같은 코드가 빠짐없이 담겨 있다. 렉스라는 상류층 결혼정보회사를 둘러싸고 블랙에서 골드까지 자산조건으로 계급화된 회원들이 더 높은 계급의 회원을 배필로 차지하려는 경쟁은 마치 [오징어 게임]의 결혼 서바이벌 버전처럼 보이지만, 그런 사회 풍자적인 시선은 그저 자극적인 설정 그 이상을 담아내지 않음으로써 막장드라마의 틀에 머물러버렸다.

[킹덤]부터 [인간수업], [오징어 게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일련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K콘텐트가 한국의 대중을 열광하게 했던 건, 막장드라마로 대변되는 다소 뻔한 클리셰를 반복하며 실험과 도전정신이 사라져버린 한국드라마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블랙의 신부]를 본 시청자들은 넷플릭스에서도 막장드라마를 오리지널로 제작했다는 사실에 실망감을 느꼈다. 물론 넷플릭스도 자극적인 드라마들을 추구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 다음으로 많이 본 작품으로 꼽히는 시리즈 [브리저튼]의 경우나 선정적인 ‘텔레 노벨라’(라틴 아메리카권에서 제작되는 일일연속극)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365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넷플릭스에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와 표현을 담은 작품이 많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데도 완성도가 높거나 실험적인 도전을 그 안에 담아낸다는 점이다. [킹덤]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도 선정성이나 폭력성은 높지만, 그 작품이 가진 완성도와 성취 또한 높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블랙의 신부]는 다르다. 완성도는 떨어지면서 자극과 수위만 높은 막장드라마의 색깔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자극·수위만 높고 완성도 떨어지는 작품들


▎7월에 서비스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의 신부]는 자극성을 앞세운 한국의 막장드라마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사진:넷플릭스
한편 [우린 액션배우다], [악녀] 같은 영화로 액션 연출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정병길 감독의 [카터]는 제작비를 무려 300억원 들인 대작으로 서비스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됐다. 실제로 [카터]는 적어도 액션 연출에 있어서만큼은 다양한 실험을 담아낸 작품이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논스톱 액션은 그냥 보고만 있어도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하다. 맨몸으로 수백 명을 상대하는 액션부터 자동차·오토바이, 심지어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상공에서 벌이는 액션까지 모든 걸 망라한 듯한 이 작품은 그러나 바로 그런 지점 때문에 ‘과유불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너무 현란해 영화라기보다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보이는 착시효과를 만들어 뒤로 갈수록 액션의 긴장감이 사라지는 결과를 만들었다. 서사도 단조로워서 기억이 사라진 카터(주원)가 정체 모를 여성의 목소리로 지시를 받으며 자신을 위협하는 자들을 뚫고 소녀를 구해 북한에 있는 박사를 찾아가는 여정이 스토리의 전부다. 물론 마치 한풀이하듯 갖가지 액션을 쏟아낸 정병길 감독의 에너지는 이해하지만, 대중과의 접점을 찾지 못한 액션은 멀미가 날 정도의 자극을 벗어나지 못했다.

[블랙의 신부]가 때깔은 좋지만 내용물이 별로인 막장드라마의 한계를 드러냈다면, [카터]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액션으로 가득 채워졌지만 절제 없는 스토리의 빈약함을 보여주는 괴작의 한계를 드러냈다. 물론 흥행 관점으로 보면 [블랙의 신부]나 [카터]가 넷플릭스에서 실패한 작품은 아니다. 방영된 후 적어도 몇 주간은 글로벌 차트 10위권에 들어간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즉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이나 [블랙의 신부], [카터] 같은 K콘텐트가 넷플릭스로서는 [오징어 게임]처럼 대박 성공작은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글로벌 관심을 끌어내는 작품들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작품성이나 완성도가 [오징어 게임]에서 [지금 우리 학교는]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K콘텐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낮은 성취도를 갖고 있다는 게 한계로 지목된다.

넷플릭스가 역설적으로 한계… 현실 직시해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카터]는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속 쉼 없이 이어지는 현란한 액션으로 ‘과유불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 사진:넷플릭스
이러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K콘텐트의 한계는 어딘가 서구의 장르물을 한국식으로 포장해놓은 듯한 [모범가족], [서울대작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어느 날 발견한 사체와 돈다발 때문에 조폭·경찰과 연루되면서 벌어지는 한 가족의 모험을 다룬 [모범가족]은 서비스된 이후 넷플릭스의 성공 시리즈인 [브레이킹 배드]와 [오자크]를 연상시킨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하루아침에 조폭의 마약 배달원으로 전락한 교수의 이야기나, 그들의 마약 대금을 훔친 돈을 세탁하려는 이야기의 유사성이 그런 반응들이 나오게 된 이유였다.

1988년을 배경으로 대머리 독재자의 비자금을 강탈하는 상계동 슈프림팀 ‘빵꾸팸’의 이야기를 다룬 [서울대작전]은 뉴트로를 자극하는 복고적 영상과 소재로 채워진 자동차 액션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영화 [분노의 질주]나 [베이비 드라이버]를 연상시킨다는 반응이 나왔다. 액션 자체보다는 복고에 더 초점이 맞춰진 이 오락물은 할리우드 영화를 B급으로 짜깁기한 듯한 연출로 1980년대 할리우드를 흉내 내던 홍콩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느 정도 의도된 연출이라고 하더라도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모범가족]과 [서울대작전]이 어딘가 서구의 장르물을 떠올리게 한다는 건 이제 넷플릭스에서 새로운 시도와 도전의 물꼬를 열어왔던 K콘텐트가 이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을 경험하며 아이러니하게도 ‘K’라는 지칭에 걸맞은 차별점을 점점 잃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은 여전히 K콘텐트에는 매력적인 무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작품 자체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면이 아니라 상업적인 기획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애초의 K콘텐트가 보여줬던 매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적당한 리메이크나([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자극적인 막장드라마([블랙의 신부]), 과유불급의 절제 없는 도전([카터]), 어디선가 본 듯한 서구 장르의 한국화([모범가족], [서울대작전])로는 [오징어 게임]이 만든 위상과 견줄 수 있는 K콘텐트를 내놓을 수 없다는 걸 이제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일이야말로 에미상에 빛나는 [오징어 게임]의 뒤를 잇는 K콘텐트의 글로벌 시대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이다. 이제 넷플릭스로 인해 오히려 한계가 그려질 수도 있다는 이른바 ‘넷플릭스 패러독스’를 생각해야 할 때다.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

202210호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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