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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21세기 명의(名醫) 이야기(2)] 조맹제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명예교수 

“정신병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 장애에 대한 전문가들의 ‘합의’만 있을 뿐” 

“진보 정부가 정신건강에 상대적으로 더 큰 관심”
“윤석열 정부는 국민 위한 정신건강 예산 늘려야”


▎조맹제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치매 연구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꼽히는 전문가다. / 사진 최영재 기자
글로벌 랭킹이나 스탠더드가 있는 모든 곳에서 우리나라는 맹위를 떨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아카데미상·그래미상·에미상, 빌보드차트, 유튜브 클릭 수, 세계 GDP 랭킹, 세계 방위산업 수출 순위, 인간개발지수(HDI) 등등. 우리나라의 1976년 올림픽 첫 금메달이나 1986년 두 번째 축구 월드컵 본선 진출은 곡절이 있었다. 레슬링에서 양정모 선수가 첫 금메달을 딴 다음에는 올림픽에서 톱5, 톱10이다. 피파 월드컵에서는 10회 연속 단골 출전국이다. 과학 분야 노벨상에서도 누군가 물꼬를 트는 쾌거를 이룩한 다음에는, 점차 수상 소식이 그저 그런 뉴스가 될 것이다. 수치화나 표준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한국인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우리에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상상력의 보고(寶庫)다. OECD 국가 중에서 우리가 꼴찌이거나 평균 이하면 야당이나 언론, 시민단체가 정부여당에 맹공을 퍼붓는다. 독재국가나 ‘일당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런 공격에 대해 ‘나 몰라라’ 마이동풍(馬耳東風)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민주국가이기에 좌파건 우파건 정부는 상대편의 공격에 최대한 성실하게 응한다. 그 결과 조금씩 우리나라는 발전한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1993~1998년) 시절인 1996년 OECD에 가입했다. 가입을 위해 OECD가 요구하는 필요 요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총대를 멜 적임자로 조맹제 당시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가 있었다. 그가 진두지휘해 과학적으로 맑고 투명한 데이터를 준비했다. 조맹제 원장이 책임연구원으로서 2001년, 2006년, 2011년 ‘정신질환실태 조사’를 탄생시켰다. ‘정신보호법’에 따라 5년마다 나오는 보고서다. 전 세계 국제기구들, 국가들과 공유하는 데이터다. 우리나라에 정신과 환자가 얼마나 많은가, 어떤 사람들이 정신병에 잘 걸리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분투했다. 조 원장은 예산 책정이 박하다며 아쉬워했다. 대통령표창(근정포장)을 받은 조 원장은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인 치매환자의 행동 및 심리 증상의 횡문화적 특성](2006), [아름다운 노후를 위한 정신건강](2007) 등 실버사회 정신건강에 대비하는 저서를 집필했다. 서울 영등포구청역 부근에 있는 ‘조맹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조 원장을 만났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더 줄어야… 정신과 완치 많아


▎조맹제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명예교수가 쓴 [한국인 치매환자의 행동 및 심리 증상의 횡문화적 특성]. / 사진:교보문고 홈페이지 캡처
잊어버리기 전에, 월간중앙 독자님들과 반드시 공유하고픈 당부 말씀이나 정보가 있다면?

“정신과에 가는 것에 대한 편견이 사회에 팽배하다. 정신질환도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그저 ‘질환’이다. 편견을 타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 중에 누가 정신과에 다니면 막 야단친다. ‘네가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라’라고. 정신이 약한 사람, 의지가 약한 사람이 걸리는 병이라는 인식은 잘못된 편견이다. 편하게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는 실손보험에 넣어주지도 않는다. 안 넣어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정신과 치료비는 얼마 안 된다. 일 년 해봐야 10만원, 20만원이다. ‘정신과 가면 나도 약에 의존해 평생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도 잘못된 생각이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취업이나 승진 등에도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정신질환은 사실 여러 질환 중에서도 제일 치료가 잘되는 질환이다. 정신과는 의외로 완치가 많다. 예컨대 우울증 평균 치료 기간은 약 1년이다. 정신과에서 주는 약을 무슨 마약처럼 취급한다. 아니다. 사실 정신과 약물학이 지난 몇십 년간 엄청나게 발전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신건강 선진국’인 미국도 정신질환·건강에 대한 태도 면에서 한국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렇다. 정신질환이라고 하면 ‘마녀사냥’도 하고 사회에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있다.”

한국은 10년 전이나 20년, 30년 전보다 좋아졌는가?

“좋아졌다. 예전에는 정신과 병원도 별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입원시켜야 하는 조현병 환자들을 주로 치료했다. 조현병의 옛 표현은 정신분열병이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에 대해서는 ‘뭐 그런 것 가지고 병원에 가느냐’는 식이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불안장애 환자나 자살과 밀접한 우울증 환자도 정신건강 서비스를 많이 찾고 있다.”

학문 분과 이름도 바뀌었다.

“신경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바뀌었다. 편견을 줄이기 위해 공모한 결과 정신건강의학과가 선정됐다.”

요즘은 ‘정신병’이라는 말도 잘 안 쓰는 것 같다.

“정신질환이나 정신병 같은 말은 국내외에서 잘 쓰지 않는다. 대신 정신장애를 많이 쓴다. 장애(disability)는 말하자면 가정생활·사회생활·직장생활에 불편이나 지장이 있음을 의미한다. 정신병이라는 것은 원래 없다. 병이라는 것은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엑스레이 사진, 영상 자료, 피검사나 검체(檢體) 결과에서 이상이 나와야 한다. 아니면 생체검사(生體檢査, biopsy)를 해서 암이면 암이다라고 할 수 있는 확증에 따른 병리학적 소견이 있어야 한다. 정신질환은 아직까지도 진단 소견을 확실히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단하는 기준은?

“전 세계 유명 학자들이 모여서 여러 자료를 이용해 ‘이러저러한 증상이 있는 경우에 이것을 뭐뭐라고 부르자’고 한다. 그러한 일종의 합의를 담은 문헌으로 미국정신의학협회가 발행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행하는 [국제질병분류(ICD)]가 있다.”

두 문헌은 개정판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정신의학의 대상이나 분류 자체가 아직은 불안정하다는 뜻인가?

“큰 틀은 그렇게 바뀌지 않는다. 몇몇 진단이 빠지기도 하고 분류가 바뀌기도 한다. 그런 차이는 있다.”

CEO나 연예인의 우울증은 있을 수 있는 보편적 문제


▎조맹제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명예교수가 쓴 [아름다운 노후를 위한 정신건강]. / 사진:교보문고 홈페이지 캡처
근대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 깊은 영향을 미친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에 대해 최근에는 거의 사기꾼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주장도 나왔다.

“프로이트의 역할은 코페르니쿠스나 다윈처럼 대단하다. 프로이트 이전에는 인간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인식했다. 인간의 행동에서 무의식이나 본능이 차지하는 비중을 드러냈다. 어쩌면 그 비중이 90% 이상일 수도 있다. 프로이트는 커다란 시대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의 이론은 지금도 중요하고 인간 행동의 상당 부분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신체적으로 몸이 어딘가 안 좋은 곳이 없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마음이나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정신건강에 전혀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대다수는 건강한 사람으로서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최고경영자(CEO)들이 특히 힘들어하는 정신장애 같은 것이 있는가?

“CEO마다 다르다. CEO나 재벌이라고 특별히 생기는 병은 없다. 힘들지 않은 CEO가 있겠는가. 특별한 것은 없어도 일반인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많을 수 있다. CEO는 항상 많은 사람의 리더가 돼야 하고, 노사 관계를 처리해야 하고, 언론에 노출된다. 행동 하나하나가 문제시된다. 그에 따른 스트레스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좀 생길 수 있다. 꼭 CEO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있을 수 있는 문제다. 그 외에 조현병이나 조울병이 있을 수 있다. 만약 어떤 CEO에게 조울병 증세가 있다면, 사업을 잘할 때는 굉장히 창의적으로 잘한다. 다운되면 잘 안 나타나고 다 맡겨버리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예컨대 100대 기업이나 500대 기업의 수장들은 얼굴이 알려진 공인이다. 대중의 시야를 회피하기 힘들 것이다.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연예인도 우울증이 참 많다. 당연하다. 어디 가서 자기 마음대로 바라는 것을 즐길 수 없다. ‘엔조이(enjoy)’가 어렵다. 사람들은 누구나 뭔가를 자유롭게 하고 싶지 않은가. 그렇게 못하니까 조그마한 문제가 생겨도 댓글에 시달리는 등 문제가 증폭된다.”

요즘 ‘셀럽’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 영국 대처 총리 등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고, 피카소나 다윈 등 창의적인 일에 종사한 사람들도 정신건강 문제가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특별한 이유는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정신건강 문제가 생길 확률이 낮다. 특히 치매 같은 경우, 정신활동을 계속하는 사람일수록 걸릴 가능성이 작다. 치매 예방에 가장 중요 조건은 지속적인 정신활동이다. 치매는 유전성도 상당히 크다. 치매에 걸린 저명인사들은 대중의 큰 관심 대상이다. 영화 [벤허]에 나온 찰턴 헤스턴, 재클린 케네디 등 말이다.”

정신장애의 경우, 종속변수-독립변수 관계가 워낙 복잡하지 않은가. y가 정신장애라면 x는 유전, 환경, 체험 등 여러 변수가 꼬여 있을 것 같다.

“프로이트가 바로 그런 인과론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아이가 한두 살 때 어머니가 배변훈련(toilet training)을 너무 엄격하게 하면 강박 장애 환자가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생물·심리·사회 모델(biopsychosocial model)’은 생물학적·심리학적 사회환경 요인이 다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어떤 장애를 유발한다고 판단한다.”

진보 정권 들어오면서 정신질환자 입원 까다로워져


▎조맹제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명예교수는 인터뷰에서 “누구나 정신건강에 전혀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 사진 최영재 기자
사람이 살다 보면 남이 잘못한 일을 용서하고 내가 잘못한 일을 사과할 일도 있다. 용서와 사과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가?

“남에게 밀려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용서하고 사과하면 마음이 훨씬 편해진다.”

더 많은 사람이 정신과를 더 많이 찾게 하려면 정부 차원에서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잘하고 있는가, 아쉬운 점도 있는가?

“정신건강과 입장에서는 항상 아쉽다.(웃음) 우여곡절이나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정부와 학계의 협업으로 많은 것이 달라지고 발전했다. 우리나라는 1996년 OECD에 가입했다. 회원 가입에 필요한 선결 과제 중 하나가 정신건강을 포함해 각 분야의 정확한 통계 자료를 내놓는 것이다. 그 전에는 사실 정신과 환자들에 대해 국가의 관심이 부족했다. 정신질환자의 인권 문제가 제기됐다. 또 정신질환 실태에 대해 정확한 통계를 내놓으라고 정부가 요구했다. 마침 그런 문제들이 내 전공이었다. 그래서 내가 정책 수립과 실천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88올림픽을 치르기 위해서 거리에 있는 노숙자들을 다 정신병원에 집어넣었다. 정신병원이 엄청나게 커졌다. 노숙자들의 경우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많다. 예전에는 정신병원에 들어가면 몇 년씩 있는 경우도 많았다. 정신병원이 요즘은 다 문을 닫고 있다. 진보 정권이 들어오면서 정신질환자의 입원이 굉장히 까다롭게 됐다. 치료도 까다로워지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환자들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끔찍한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가족을 살해한다든지, 아파트를 방화한다든지. 망상이나 환청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환자를 입원시켜야 하는데 지금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환자를 입원시키려면 직계 가족 2명의 동의서를 가져와야 하고 의사 2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입원이 쉽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

“아직도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한 예산이 많이 부족하다. 정신질환자를 위한 치료는 물론이고 거주시설도 만들어줘야 하고 직업 훈련도 시켜줘야 한다.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려면 많은 인력과 돈이 필요하다. 사실 정신건강 문제에 상대적으로 진보 정부에서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지금까지 이뤄진 것들은 진보 정권 때 많이 이뤄졌다. 노무현 정권 때나 문재인 정권 때나.”

종교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가?

“당연히 그렇다. 종교가 개인 자신의 정체성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항상 종교적인 본성, 본능이 내재한다. 뭔가 섬기고 싶은 그런 본능이 있다. 본능을 충족시켜주고 섬기면서 정체성을 갖게 되고. 우리나라 주요 종교는 인간 정신을 정화시킨다. 종교와 관련된 부작용도 있다. 정신분열병이나 조현병 환자들이 발병 초기에 뭔가 자신의 에고(ego)가 와해된 느낌을 갖는다. 그럴 때 종교에 빠지는 수가 있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종교 체험으로 경험하는 환각도 정신장애일까?

“환각에는 환시(幻視), 환청(幻聽), 환취(幻臭) 등이 있다. 환청은 조현병에서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종교인이 어떤 간절함 속에서 일시적으로 경험하는 환상은 병적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환각이 지속돼 삶에 악영향을 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신건강 지키는 중요 조건은 지속적인 두뇌활동

지능지수(IQ)가 높을수록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꼭 IQ 문제는 아닐 것 같다. IQ 자체가 아니라 IQ가 높으면 머리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되고, 그 결과 치매에 덜 걸리는 것 아닌가? 또 IQ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얼마나 머리를 많이 쓰느냐가 문제 아닌가?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사실 뭐가 IQ인지 잘 모른다.”

치매 예방이나 증세 완화에 도움이 되는 것은?

“제일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건전한 정신활동을 하는 것이다. 일을 하고,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고, 정서적인 교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서적인 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아니겠는가! 가족 간의 화목, 부부가 화목한 것, 우정이 제일 중요하다. 취미 활동도 중요하다. 자기 나름대로 해온 작업을 계속할 수 있으면 좋다. 아쉽게도 그런 직업이 사실 많지도 않다. 할 수 있으면 그게 좋다. 글쓰기 같은 활동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신문 읽기가 도움이 된다는데?

“중요하다. 정보도 많이 얻고 관심도 많이 갖게 되고, 사회에 대해 의식하고 생각도 하게 된다. 신문을 아무런 생각 없이 막 읽는 사람은 없다. 일기도 도움이 된다. 오늘 있었던 일을 단순히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 어떤 정서적인 합류가 필요하다. 단순히 ‘오늘 뭐 했다, 뭐 했다’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오늘 누구를 만났다고 적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누구를 만났는데 기분이 어땠다. 반가웠다. 뭐 이런 감정, 생각, 대상에 대한 인상 등 여러 가지가 들어가면 좋다.”

어떤 기자가 아인슈타인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니까, 아인슈타인은 전화번호부에서 자신의 전화번호를 찾아 알려줬다고 한다. 기자는 세계에서 머리가 가장 좋다고 알려진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전화번호조차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불필요한 것으로 머리를 채우면 안 된다’는 게 아인슈타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뭔가를 의식적으로 암기하는 것이 치매에 좋지 않을까?

“억지로 그럴 필요는 없다. 물론 기억할 것은 기억해야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치매다. ‘아, 이거는 기억해놔야겠는데’, ‘친구와 약속이 있는데 기억해놔야겠는데’ 하는 그런 기억은 좋다. 하지만 모든 것을 외우려고 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피곤해서 못 산다.”

영어 단어 공부는 어떤가?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어떤가?

“좋다고 한다. 내가 영어나 다른 외국어에 관심이 있고 호기심이 있으면 좋다. 억지로 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이렇게 안 외워지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중국 여행을 가야겠다. 필요한 중국어를 좀 공부해봐야겠다’는 식의 바람에서 나오는 외국어 공부는 좋다.”

정신장애와 폭력성의 관계에 대한 일반인의 오해가 있다고 한다. 매체의 선정주의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사실은 정신장애가 있는 분들이 일반인보다 더 폭력적이지는 않다고 한다. 오히려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진실은 무엇인가?

“병에 따라 다르다. 조현병 환자들이 ‘사고’를 치면 상상할 수 없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아파트에 기름으로 불 지른다든지, 가족들을 어떻게 한다든지. ‘누가 귀찮게 해서 죽였다’고도 한다. 하지만 실제 통계적으로 조현병 환자를 비롯한 정신병 환자들의 폭력성이 더 많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더 적다고 돼 있다.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든지 상대적으로 가벼운 문제는 더 많다. 살인은 대개 가족 내에서 발생한다. 모르는 사람을 정신분열 환자가 폭력적으로 죽이는 것은 없다. 소시오패스들이 주로 그렇다. 소시오패스들은 오히려 가정에 충실한 경우가 많다. 분노심은 우울증 환자들이 어쩌지 못하는 특징 중 하나다. 하지만 길거리를 가면서 사람들을 막 어떻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실제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불면증엔 수면제 도움… 삶의 질 높이려면 잠부터 자야

정신건강에 좋은 운동은?

“모든 운동이 정신건강에 좋다. 과격한 운동보다는 유산소 운동, 걷기, 스트레칭, 요가, 명상, 등산 등 자신이 즐길 수 있으면 다 좋다. 그중에서도 걷기, 산책이 제일 좋다고 한다. 우리가 걷다 보면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사물도 보고, 꽃 피는 것도 보고, 단풍드는 것도 보고 느낀다.”

정신건강에 좋은 음식은?

“이런 음식 저런 음식이 좋다고 한다. 오메가3가 대표적이다. 등푸른생선, 카레, 채소, 붉은 포도주가 좋다. 한두 잔 정도로 말이다. 많이 먹으면 안 되겠고. 소위 지중해식 음식이다. 지중해 국가들이 이상하게 치매가 적다. 가족끼리 모이는 것을 좋아하는 지중해 사람들의 생활·문화 양식과도 밀접한 것 같다.”

불면증은 어떻게 치료하는가?

“약을 주면 다 잘 잔다. 잠을 잘 자게 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불면증 환자는 약 먹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문제다. 수면제 먹으면 치매 된다는 이런 잘못된 편견 때문에 잠을 못 자고 힘들어한다. 삶의 질이 말이 아니다. 약만 먹으면 편히 잔다. 2~3년 먹으면 약을 끊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끊었다가 다시 먹기도 하고. 어쨌든 삶의 질을 위해서는 잠을 잘 자야 한다.”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 김환영 중앙 글로벌머니 지식칼럼니스트 -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중앙일보에 지식전문기자로 입사, 심의실장과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서강대·한경대·단국대 등에서 강단에 섰다. 지은 책으로 [뭐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너에게] [곁에 두고 읽는 인생 문장]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등이 있다. whanyung@joongang.co.kr

202210호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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