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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짜릿함에 시원함 더한 하남 미사리 경정장의 수상 모터스포츠 

물 위에서 펼치는 선수와 보트의 거친 몸싸움! 

사진·글 정준희 기자
체감 시속 150km/h의 날쌘 보트 조종, 야생마 길들이기처럼 박진감 넘쳐
곡예하듯 회전 때 솟구치는 물보라 장관… 미사리 경정장서 매주 수·목 경기


▎경정의 상징과도 같은 기술 ‘몽키턴’. 선수가 보트에서 일어나 몸을 기울인 모습이 원숭이와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야말로 ‘수중전’이었다. 관중은 세찬 비바람을 피해 실내 관람동으로 숨었다. 콜로세움에 들어서는 검투사처럼 비를 맞으며 경기장에 들어선 선수들은 풀페이스 헬멧과 케블라 소재 상·하의, 장갑·장화로 무장하고 보트에 올랐다. 출주 신호가 울리자 6척의 보트가 비바람을 맞으며 내달린다. 다른 보트가 만들어내는 억센 물결에 배가 뒤집힐 듯 크게 흔들린다. 15년 차 베테랑 손제민(40) 선수마저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다. “15년 동안 보트를 몰았지만 출발 전 가슴이 두근두근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스로틀 레버를 언제 당길지, 운전대는 얼마나 꺾을지 항상 고민하죠.”

스로틀 레버를 끝까지 당겼을 때 경정 보트의 최대 속도는 40노트, 약 시속 80㎞다. 생각보다 빠르지 않은 것 같지만, 선수가 체감하는 속도는 150㎞/h 이상이다. 김경일(33) 선수는 “수면은 풍향과 풍속, 수위 등에 큰 영향을 받아 지면보다 훨씬 불안정하다”며 “특히 비가 오는 날은 시야가 좁아져 많은 것을 ‘감’에 의존해야 한다”고 했다.

경정은 분명 빨리 달리기 위한 싸움이다. 하지만 빠르게 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경정의 독특한 출발법인 ‘플라잉 스타트’ 때문이다. 선수들은 정지한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출주 신호 후 0~1.0초 사이에 전속력으로 달려 출발선을 통과해야 한다. 너무 빨리 출발하면 사전출발로 실격 처리되고 늦게 출발하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 손제민 선수는 “경주 성적의 90%가 스타트에서 결정된다”며 “경정의 스릴은 골인 지점이 아니라 출발 지점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스타트만큼 중요한 게 또 있다. ‘몽키턴’이란 기술이다. 직선 구간에서 붙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커브 구간을 빠져나가는 경정의 상징과 같은 기술이다. 선수들은 원심력에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도록 고속으로 달리는 보트에서 일어나 한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이때 선수들이 온몸으로 받는 부하는 엄청나다. 선수들을 뒤덮을 정도로 물보라가 흩날리고 긴장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경정을 즐기기 위해 모터와 선수에 대한 세세한 정보, 플라잉 스타트 등 모든 경기 규칙을 알 필요는 없다.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모터보트의 속도와 아름답게 솟구치는 물보라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경정은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경정장에서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오전 11시부터 6시까지 약 20분 간격으로 하루 17경기씩 진행된다.


▎수면 위에서 선수가 체감하는 보트의 속도는 150km/h 이상이다. 수면은 풍향과 풍속, 수위 등에 큰 영향을 받아 지면보다 훨씬 불안정하다.



▎선수들이 장대비를 뚫고 달리고 있다. 어떤 악천후에도 경정은 멈추지 않는다. 최근 4년 동안 단 한 번도 경기를 쉰 적이 없다.



▎경정은 남녀가 완전히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스포츠다. 전체 선수의 약 15%가 여자 선수다.



▎출주 전 선수들이 엔진 시동줄을 당기며 보트를 점검하고 있다.



▎선수 대기실에서 한 선수가 방탄 소재로 알려진 케블라 섬유로 만들어진 경주용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다.



▎정비동에서 한 선수가 보트를 옮기고 있다. 정비동에는 수십 대의 보트가 빼곡히 놓여있다.
- 사진·글 정준희 기자 jeong.junhee@joongang.co.kr

202210호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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