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수성기 거쳐 회장 취임… 기술력으로 초격차 달성 꿈지배구조 안정·RE100 등 친환경 경영도 외면할 수 없는 과제
▎삼성전자 회장 취임 다음 날인 2022년 10월 28일, 이재용(가운데) 회장은 광주광역시의 협력회사부터 찾았다. 이 회장은 초일류 회사를 넘어 국민에게 사랑받는 삼성을 지향한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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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이재용(54) 삼성전자 회장은 ‘셀럽’처럼 비치고 있다. ‘이재용이 입었다’는 이유로 언더아머 티셔츠, 아크테릭스 패딩은 ‘머스트 해브 아이템’처럼 떴다. 동갑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처럼 적극적 SNS 행보를 보인 적이 거의 없었음에도 대중의 호감을 얻고 있다.2022년 10월 27일 삼성전자 이사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는 발표를 내놓았을 때도 여론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불과 6년 전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렸을 때의 시선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일 만한 변화다.이 회장은 이건희 선대회장의 2주기였던 10월 25일, 사내 게시판에 사실상의 취임사를 밝혔다. ‘미래에 대한 도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며 “오늘의 삼성을 넘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들자. 제가 그 앞에 서겠다”고 다짐했다.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 회장은 2012년 부회장 승진 뒤 10년 만에 삼성이란 시스템의 최정점에 입성했다.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실질적 그룹 수장직을 수행한 10년은 ‘수성(守成)’의 시간이었다. 196조6446억원이었던 삼성전자 시총은 8년여가 흐른 2022년, 371조3205억원(11월 14일 기준)까지 성장했다. 3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연결 기준 매출은 76조7800억원, 영업이익은 10조8500억원에 달한다.하지만 5년 후, 10년 후에도 삼성의 위상이 지속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누구도 낙관적 전망을 섣불리 내놓지 못한다. “삼성전자가 어닝 서프라이즈를 거듭하지만, 이는 각 사업부가 원가절감 등 단기 성과에 집착한 결과”라는 혹평도 들린다. 결국 이재용 회장이 추구하는 ‘뉴삼성’의 본질은 “최고 수준의 기술로 고객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준다”는 믿음을 되돌리겠다는 원점으로 회귀한다.
삼성 지배구조의 ‘급소’, 보험업법 개정
▎삼성전자가 17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삼성의 미래를 품고 있는 장소다. / 사진:삼성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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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이 회장은 “자녀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당위이자 현실에 가깝다. 이 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사이의 순환출자 구조로 지탱된다. 경영권을 공고히 다지는 것이야말로 삼성과 이 회장의 사활적 목표다. 장기적 리더십도 여기에서 나올 수 있다.삼성전자의 지분율을 보면 삼성생명이 8.51%로 가장 많다. 그다음이 삼성물산 5%다. 이재용 회장이나 이 회장의 어머니 홍라희 여사의 지분은 1.96%, 1.63%에 불과하다.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지분은 각각 0.93%다. 다시 말해 삼성전자에 대한 이 회장의 장악력은 본인과 가족 등의 우호지분만으로는 성립될 수 없다.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이 실질적으로 삼성의 지주회사 같은 기능을 맡고 있다.사슬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이 회장인 것으로 연결된다. 이재용 17.97%, 이부진과 이서현 6.19%, 홍라희 0.96%를 보유 중이다. 그리고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다. 19.33%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이어 이 회장이 10.44%를 소유하고 있다.공교롭게도 회장 취임과 맞물린 시기에, 삼성의 지배구조는 ‘위협’과 마주하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 추진하는 보험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그것이다. 현행 보험업법에서는 ‘총자산의 3%까지 계열사 주식 취득이 가능’하다. 하지만 민주당 박용진·이용우 의원 등은 ‘그 기준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박용진 의원실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현재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51%(약 5억815만 주)는 유배당 보험만 존재했던 1970년대 매입한 것들이다. 유배당 보험은 계약자가 낸 보험료 일부를 보험사가 주식이나 채권으로 투자한 뒤 수익이 나면 배당을 주는 상품이다. 고금리 시대였던 1990년대까지 흥행했고, 현재는 팔지 않는다.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을 취득원가로 반영하면 약 5444억으로 평가된다. ‘3%’에 한참 못 미치는 액수다. 하지만 시가 기준으로 계산하면 가치는 약 30조원으로 치솟는다. 2020년 말 기준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310조원이다. 만약 보험업법이 민주당 안대로 변경되면 삼성생명은 3%, 즉 9조3000억원을 초과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야만 한다. 이는 이재용 회장의 그룹 지배력에 치명적 손상을 가하는 악재가 된다.만약 보험업법이 개정돼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강제 매각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유배당보험 계약자들에게 5조~6조원에 달하는 수익이 발생한다. 박 의원이 “삼성생명은 이재용 부회장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일하나? 아니면 삼성생명 계약자와 소비자, 주주를 위해 일하나?”라고 공격하는 근거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주식 보유액을) 시가로 평가하는 게 타당하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이에 대해 삼성생명 관계자는 “현행 보험업법에서는 원가로 계산하게 돼 있다. 불법이 아니다”라며 “현재 최적의 상품으로 생각하고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이 자의적으로 룰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항변이다.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이 강제로 시장에 쏟아지면 시장 혼란이 초래돼 소액주주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보험업법 개정안에 따라 최대 7년의 매각 유예 기간을 주더라도 충격이 없을 수 없다. 기업가치 훼손을 우려한 삼성생명 주주의 반발도 예상할 수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법은 강제하는 것이니까 (만약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돼) 매각하라면 그때 매각 계획을 반영할 것이다. 다만 현시점에서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없다”고 말했다.
미래전략실 부활의 필연성
▎2022년 10월 11일 이재용(왼쪽 둘째) 삼성전자 회장은 인천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캠퍼스를 방문했다. 바이오는 삼성이 제2의 반도체로 키우는 사업이다. / 사진:삼성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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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법과 별개의 트랙에서,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을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삼성생명은 “이슈가 될 게 아닌데 이슈처럼 돼버렸다”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쟁점은 ▷삼성생명이 의도를 가지고 회계 기준을 변경했는지 ▷배당을 주지 않으려는 목적이 있는지 ▷삼성전자 주식은 비매각 대상으로 바뀌는지 여부로 압축된다.첫 번째 의문에 대해 삼성생명 측은 가장 억울하게 반응한다. “보험회사의 계약자 지분조항 항목(이 중 대표적인 것이 삼성전자 주식)을 부채에서 자본으로 올리는 것은 삼성생명의 자의적 해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측은 “IFRS17(2023년 1월 1일 시행될 예정인 국제보험회계기준)에 따른 것이자 금융감독원에서 입법 예고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런데 삼성생명이 금감원에 (삼성전자 주식을 부채에서 자본 항목으로 옮기는 적법성에 관한) 유권해석을 구한다는 루머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쟁점인 배당 회피 여부에 대해서도 “유배당 계약자는 (회계가) 부채, 자본 중 무엇으로 판단하든 배당을 받는다”고 일축했다. 세 번째 논란에 대해서는 “삼성전자 주식은 매도가능 증권”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매각 입장을 밝힌 바 없다”고 덧붙였다.사안이 첨예할수록 삼성으로선 국회의 움직임이나 여론의 흐름을 두루 살펴야 할 상황이다. 최근 삼성에서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부활에 관한 그룹 내 필연성이 비등해지는 근원적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미전실의 힘은 정보 수집과 인적 네트워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사회라는 공식적 의사결정 기관이 있음에도 삼성 내에서 미전실 부활이 수순처럼 여겨지는 배경이다.이재용 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가르는 또 하나의 기준은 ‘경영 능력 입증’이다. [삼성 웨이]를 집필한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결국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적으로 증명할수록 여론을 우호세력으로 돌릴 수 있다. 삼성 직원들 사이에서 이 회장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후하다. “숱한 재판을 치르는 와중에 이렇게 큰 회사를 별 탈 없이 끌고 온 것만 해도 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리스마적 경영인이었던 할아버지(이병철 창업회장), 아버지(이건희 선대회장)와 달리 이 회장은 ‘고위험 고수익 추구’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스타일에 가깝다. 삼성전자는 카메라·프린트·하드디스크 사업 등을 접었고, 방산 부문은 한화에 매각했다. 스포츠단에 대한 투자도 축소했다.
미래 가치에 집중하는 이재용의 ‘선택’
▎2022년 9월 15일 삼성전자는 그룹 경영의 패러다임을 친환경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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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이 회장은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바이오 ▷금융 등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선택했다. 2019년 4월 이 회장은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시스템 반도체에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5000명을 채용하겠다는 구상을 담았다. 2022년 5월에는 ‘2026년까지 450조원 투자·8만 명 신규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이 중 80%인 360조원은 국내투자로 돌아간다. ‘미래 먹거리 육성을 위한 투자’의 항목에는 반도체와 바이오·인공지능(AI)·차세대 통신 등이 포함됐다.‘반도체 비전 2030’ 발표 6일 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극자외선 건설현장을 찾았다. ‘역동적 혁신 성장을 위한 삼성의 미래 준비’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 후 나왔다. 기대와 긍정의 기운이 차오르는 타이밍에서 삼성이 선두에 나선 셈이다.이경묵 교수는 “당장은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확고히 하면서)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고, 더 크게 보면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것으로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봤다. 2022년 2분기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53.4%, 삼성전자가 16.5%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 무소속 의원인 양향자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은 “TSMC와 삼성전자의 점유율 격차를 6:4 정도로 좁히는 것”을 현실적으로 삼성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보고 있다. 9만6000원에서 6만2000원까지 떨어진 삼성전자 주가가 고점을 탈환할지 여부도 결국 파운드리 사업의 성과에 달렸다.이재용 회장이 이미 강력한 지배력을 구축한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1등 지위를 앞세워 올해 3분기까지 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인천 송도에 거대한 생산 설비(1~4공장)를 갖추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모더나를 비롯해 12개 글로벌 제약회사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10월 11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이 회장은 2032년까지 향후 10년간 7조5000억원을 바이오에 투입할 계획이다. 향후 CDMO 외에도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신약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3대 축을 이룰 전망이다.
따라잡아야 할 친환경 경영이 회장의 절박함은 “숫자는 모르겠고, 그냥 목숨 걸고 한다”는 한마디에 응축돼 있다. 삼성전자가 호실적을 발표해도 주가가 움직이지 않는 이면에는 ‘지금까지는 잘했지만 미래가 잘 안 보인다’는 시장의 회의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126조원(현금 및 현금성 자산 보유액)에 달하는 삼성전자의 실탄을 가지고 이 회장이 무엇을 할 것인지 기대와 의구심이 교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미국의 자동차 전장·오디오 회사 하만을 80억 달러에 인수한 이래 M&A(인수합병)를 하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일본 소프트뱅크가 대주주인 영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ARM 지분 인수설이 흘러나왔지만 가시적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2022년 9월 15일 삼성전자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신환경 경영전략’을 공개했다. 핵심은 삼성전자의 ‘RE100(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로 사용 전력 전환)’ 가입 발표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채 10년도 남지 않은 시간 안에 삼성전자가 RE100을 현실화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며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친환경 경영의 방향과 속도를 두고 내부 논의가 치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21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력(25.8TWh)을 사용하는 ICT 제조기업이다.삼성전자는 탄소배출 감축 등 친환경 경영에서 애플 등 경쟁사보다 뒤처져왔다. 2021년 삼성은 1700만t 이상의 탄소를 배출했다. 유럽·미국에서 강화되는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수출 길 자체가 막힐 수 있기에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다.그동안 삼성의 성공 공식은 ‘2등을 유지하다가 어떤 산업에서 가능성이 포착되면 스케일이 다른 투자를 감행해 1등으로 올라선 뒤 초격차를 벌리는’ 것이었다. 친환경 경영에서도 이 회장은 후발주자의 위치에서 역량을 집중시켜 단기간에 추월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2030년까지 삼성전자는 환경을 위한 비용에만 7조원 이상을 투자할 방침이다. 이는 “삼성은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해야 한다”는 이 회장의 경영 철학과도 맥이 닿는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