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일가의 비공식적 지휘기구로 삼성을 움직여온 ‘실(室)’58년 세월을 끝으로 해체됐지만 구심점 역할 필요성 제기돼
▎12월 삼성 사장단 인사를 앞두고 재계 안팎에서는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부활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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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취임을 계기로 과거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 기능이 부활할지에 관심이 몰린다. 과거 삼성의 ‘실(室)’은 회장의 마음을 파악하고 뜻을 전달하는 그룹 내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삼성을 움직여온 핵심 포스트였다. 2017년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58년 영욕의 세월을 끝으로 삼성 스스로 해체했지만 ‘공(功)이 7, 과(過)가 3’이라던 재계의 평가처럼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 재계 안팎에서는 12월 사장단 인사를 앞두고 삼성전자가 옛 미래전략실 소속 직원들의 복귀 의사를 타진하며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는 말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0년 12월 사장단 인사 당시에도 이전에 해체했던 전략기획실을 부활시킨 사례가 있다.
재계의 청와대로 불렸던 삼성 비서실 역사
▎삼성 오너 일가의 비공식적 지휘기구인 ‘비서실’은 삼성의 총본산 역할을 해왔다. 글로벌 삼성을 이룩해낸 주역으로 평가받는 동시에 경영권 승계 작업을 주도하는 등 명암이 교차한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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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전략실의 뿌리는 1959년 이병철 창업회장의 비서실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서실→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업무추진실→미래전략실 등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삼성 내에서는 항상 ‘실(室)’로 불렸다. 회장의 지근거리에서 그룹의 돈과 사람을 움켜쥐며 삼성의 총본산 역할을 했다. 소병해, 현명관, 이학수, 김순택 등 역대 실장들의 그림자 권력도 막강했다. 이들은 기업 성장을 이끄는 동시에 경영권 승계의 교통정리 등 막후 활동에도 손을 뻗쳤다.권력형 조직으로 격상된 시기는 1978년 소병해 실장에 이르면서다. 15개 팀, 250여 명으로 진용을 갖춘 비서실은 각 계열사에서 우수한 인사고과를 받은 ‘에이스’들로만 충원됐다. 인사·감사·기획·재무·경영관리·국제금융·홍보 등 그룹의 전방위 업무를 관장했다. ‘재계의 청와대’로 불린 것도 이때부터다. 그래서 비서실과 직접 소통하는 각 계열사의 관리본부장들은 윗 직급인 계열사 사장보다도 힘이 더 셌다고 알려진다. 계열사의 돈과 사람 관리가 관리본부장의 손에 달려 있었고 사장의 평가까지 다뤘다고 한다.이건희 선대회장 체제에서 비서실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 비서실은 구조조정본부로 개편, 이학수 실장 주도하에 대대적인 분사와 매각을 단행해 4만7000여 명 인력을 3만8000여 명으로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총지휘했다. 이는 휴대폰·반도체 호황과 어우러져 엄청난 이익을 내는 토대가 됐다. 삼성자동차 매각 등을 주도한 곳도 구조조정본부였다. 전사적 위기 상황에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만큼 구조조정본부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다.2006년 안기부 X파일 사건 이후 전략기획실로 축소 개편됐으나 2010년 ‘애플발(發) 폭풍’ 속에서 이건희 선대회장은 이를 미래전략실로 강화, 전열을 재정비해 삼성을 스마트폰 세계 1위로 끌어올렸다. 미래전략실은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미래전략실 해체는 2014년 당시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검토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것이 드러나면서 “미래전략실에 대해 많은 의혹과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해체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선언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현재 삼성은 59개 계열사로 구성돼 있지만 그룹 전체를 관장하는 ‘머리’ 조직은 따로 없다. 미래전략실 해체 후 5년 넘게 각 계열사의 자율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업부문별 컨트롤타워의 일부 기능을 갖춘 삼성전자 사업지원팀, 삼성생명 금융경쟁력 제고팀, 삼성물산 EPC 경쟁력강화팀 등 3개의 태스크포스(TF)가 작동하고 있지만 임시 조직 성격이 강하다.이 가운데 ‘사업지원팀’이 미래전략실의 후신으로 지목되고 있다. 각 계열사의 경영지원실장과 재경팀·지원팀장의 인사권을 쥔 만큼 관리 측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룹 내 계열사 간 역할을 조정하는 컨트롤타워로서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룹 전체 차원의 결정이 필요한 중·장기 전략 수립에 한계가 보인다는 지적도 재계 안팎에서 끊이지 않았다.사실 한 해 예상 매출액 400조원을 바라보는 글로벌 기업에 경영 전반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사령탑’ 역할을 하는 조직이 없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에 가깝다는 시선도 있었다. 삼성을 제외한 국내 주요 그룹들은 글로벌환경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컨트롤타워를 운영하고 있다. 계열사 53곳을 갖춘 현대자동차그룹은 그룹 내 핵심 업무를 담당하는 기획조정실이 존재한다. 계열사 70곳을 보유한 LG그룹은 지주회사인 ㈜LG가, 계열사 85곳을 보유한 롯데그룹도 지주회사인 롯데지주가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계열사 176곳으로 4대 그룹 중 최다를 기록한 SK그룹은 계열사 선임 경영진들이 모여 자율경영을 지원하는 SK수펙스추구협의회를 그룹내 최고 의사결정협의체로 운영 중이다.
“미래전략실 재건, 분위기 무르익었다”
▎이재용 회장은 취임 후 현장 경영 행선지로 광주와 부산의 협력사를 잇달아 방문하는 등 중소기업과의 상생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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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삼성의 미래전략실은 그룹 전체의 재무와 인사 관련 모든 권한을 행사하고, 실장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가 되는 권력형 조직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남아 있다. 여기에 더해 지주회사의 이사회도 아닌데 회장의 비공식적·개인적 지휘 기구로 보이는 점도 있다. “주식회사의 의사전달 체계 구조는 이사회를 정점으로 해서 이뤄져야 한다. 미래전략실과 같은 별도의 컨트롤타워를 통해 기업의 의사결정을 하겠다는 것은 주식회사의 구조 내지는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고 위법한 요소도 있다.”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인 김경율 회계사의 지적이다.반면 한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삼성은 계열사별로 지나치게 분리된 상태로 의사결정이 이뤄져 그룹사 간의 시너지 제고 등이 제한적이었다. 지금처럼 기업경영 환경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그룹 전체를 바라보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구심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재계에서는 삼성의 미래전략실 재건 작업이 이미 물꼬를 텄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10월 12일 이재용 회장이 준법감시위원회 위원들과 1년 9개월 만에 만난 자리에서 컨트롤타워 부활을 위한 논의가 일부 이뤄졌다는 것이다. 당시 회의를 마치고 나온 이찬희 삼성 준법위원장이 “개인적인 신념으로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남기면서 이 같은 해석에 힘이 실렸다.최근 삼성전자가 미래전략실 출신 직원들의 복귀 의사를 확인하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이들은 인사, 재무, 사업지원, 대관, 전략기획 등 핵심 업무를 담당하던 실무진급 직원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복귀 부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과거 미래전략실에서 맡은 업무를 이어갈 수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일부 직원들은 각 TF팀으로 배치돼 과거 미래전략실에서 했던 일을 그대로 수행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그룹 핵심 계열사에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컨설팅을 의뢰했고, 이에 BCG가 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 복원’을 주문했다는 구체적인 이야기도 나온다.이에 따라 12월 사장단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미래전략실 재건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법 리스크를 일부 해소한 이재용 회장 체제가 본격적인 한 해를 맞이하려면 늦어도 연말에는 장차 회사를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에 대한 구상이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홍보실 관계자는 “인사 결과가 내부에 공지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면서 말을 아꼈다.
과거 미래전략실 출신 중용할 가능성재계 안팎에서는 현재의 삼성전자 사업지원팀의 조직명을 바꾸고 인력을 충원하는 방식으로 미래전략실이 개편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과거의 역할과 형태를 답습하기보다는 슬림한 조직으로 출범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아울러 이사회 중심 경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현시점에서는 각 계열사의 이사회에서 컨트롤타워의 판단을 자율적으로 검토하고 승인하는 구조가 가능하다는 얘기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성 미래전략실 임원 출신인 한 인사는 월간중앙에 “과거와 같은 권한을 행사하기보다는 계열사 간의 교통정리를 하는 역할에 비중을 둘 것”이라며 “뉴삼성을 이룩하는 관건은 이재용 회장의 복심으로 꾸려진 브레인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참모역을 해내는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이번 기회에 오히려 더 강한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의 공백 기간 동안 흐트러진 조직 기강을 다잡고 효율적으로 신성장동력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오너 경영의 최대 장점인 순발력과 빠르고 과감한 투자 결정 등이 발휘되려면 단순 개편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반도체와 모바일 등 주력 사업 부문에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수합병(M&A)은 물론 사업 부문 간 시너지 창출 전략이 강조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재용 회장 체제에서 삼성의 계열사 업무를 조정하고 신산업 발굴 등 그룹의 청사진을 제시하려면 컨트롤타워는 반드시 필요하다.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하고 정도경영을 선언한 만큼 준법 관리에 신경 쓴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새 컨트롤타워가 마련될 경우 과거 미래전략실 출신의 중용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 사업지원팀의 수장인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정 부회장은 1988~1993년 미래전략실의 전신인 비서실 재무팀에, 2003~2007년에는 전략기획실 전략지원팀에 몸담은 만큼 삼성 컨트롤타워의 기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는 1990년대 이재용 회장이 미 하버드대에서 함께 공부할 때부터 인연을 맺은 ‘이재용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뉴삼성 개막과 동시에 명실상부한 그룹의 2인자로 보는 시선도 있다. 여기에 더해 삼성생명 금융경쟁력제고팀장, 삼성물산 EPC 경쟁력강화팀장을 각각 맡고 있는 박종문 삼성생명 부사장과 김명수 삼성물산 사장 역시 미래전략실 출신으로 뉴삼성을 이끌어갈 핵심 키맨 후보로 꼽힌다. 이들 외에 미래전략실 출신 최윤호 삼성SDI 사장과 박학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등도 언급되고 있다.-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