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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와 목민관 대화] 최석원 전 공주대 총장과 김태흠 충남도지사의 ‘농업혁신론’ 

“농민 정년제 도입해 청년들 농촌 오게 하겠다”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농업의 스마트 산업화로 중앙정부 정책 변화 견인할 것”
■“한국판 실리콘밸리인 ‘베이밸리’는 수도권과의 합작품”
■“지역 여론, 육군사관학교 이전 등 대선 공약 이행 주시”


▎12월 12일 충남도서관에서 만난 김태흠(왼쪽) 충남도지사와 최석원 전 공주대 총장. 두 사람은 농업이 ‘복지’가 아닌 ‘산업’의 관점에서 육성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 아버님은 93세에 돌아가셨는데 고추밭 매고 고추 따다가 돌아가셨어요. 왜 농업인들은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는가요. 제 고민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2022년 7월 취임한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스스로를 농민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그는 농촌에서 자라고, 국회의원(3선) 시절에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과 위원장을 역임했기에 농민의 삶이 눈에 선히 보이는 축에 속한다. 그의 의정(議政)과 도정(道政) 활동의 중심엔 늘 농업, 농민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김 지사는 농촌과 농업이 구조적 혁신을 통해 부가가치를 낳는 산업의 반열에 편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 농민에게 주어지는 각종 지원금, 보조금이 소득 보전의 효과는 낳지만, 젊은 영농인에게는 중대한 진입장벽 요소로 굴절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김 지사는 “다른 직업인처럼 농민에게도 정년(停年)이 필요하다”며 농촌, 농업의 구조와 시스템의 근본적인 전환을 추구한다.

월간중앙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구루와 목민관 대화’ 코너에서 ‘광역자치단체장’과 ‘지역의 지성인’ 간 릴레이 대담을 진행해왔다. 지금까지 대담에 참여한 17곳의 광역자치단체장 중 농업에 독립된 가치를 매기고, 독자적 산업의 장르로 고민하는 경우는 김 지사 외에는 드물었다.

김 지사가 이끄는 민선 8기 충남도는 ▷충남·경기 공동 발전 사업인 ‘베이밸리 프로젝트’ ▷내포 혁신 신도시 ▷국제 해양레저 관광벨트 ▷문화명품 관광도시 등 신(新)경제산업지도를 그려가고 있다. 이에 더해 산업의 바깥 영역으로 치부돼온 농업이 산업의 한 축으로 우뚝 설 때 충남도 내부의 진정한 균형발전이 가능하다는 게 김 지사의 지론이다.

최석원 전 공주대 총장은 1980년 공주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를 시작으로 2014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35년 동안 인재 양성과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해왔다. 최 전 총장은 백제문화제추진위원장, 충남 향토사 연구 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지금은 공주대 명예교수, 명학장학회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는 지역 사정에 해박한 원로 인사다. 최 전 총장과 김태흠 충남지사의 대담은 12월 12일 홍성군 충남도청 인근에 자리한 충남도서관에서 개최됐다.

농촌에 현금성 보조금 줄여야 하는 이유


▎최석원(왼쪽) 전 공주대 총장과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충청권 지방정부가 지역 발전 정책을 주도할 때 시민의 참여를 확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러 가지 도정 현안 중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농업 분야 같다. 충남도는 ‘농업인 은퇴’, ‘농업 정년’을 얘기하는데 어떤 구상인가?

김태흠 충남도지사_ 농업과 농촌의 변화는 제 마음속의 첫 번째 과제다. 저는 농촌 출신이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과 위원장을 지냈다. 우리나라 농업정책에 대해 고민과 걱정을 많이 한 정치인 중 한 사람이다. 농업과 농촌이 선진화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는 게 확고한 신념이다. 농업 정책에 절실하다. 우리 농업의 현주소를 보자. 농촌은 어르신만 사는 고령화사회가 된 지 오래다. 젊은이들이 살지 않기에 생산성도 바닥이다. 농촌은 각종 보조금과 지원금으로 연명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지금의 농업은 복지 개념도 아니고 산업 개념도 아닌, 정체성을 상실한 상태다. 이래서는 농촌, 농업이 제대로 버틸 수가 없다. 저는 현금성 보조금 지원을 줄여 그 돈을 농업 시스템을 개선하는 쪽에 쓰고자 한다.

최석원 전 공주대 총장_ 저도 눈여겨보고 있다. 농업, 어업은 여전히 중요한 국가의 기간산업이고 지역 주민의 삶에 가장 밀접한 생활 산업이기도 하다. 농·어업을 시대에 부응하는 미래산업으로 발전시킨다는 취지에는 적극 공감한다. 다만 예산과 시간이 낭비되지 않도록 사전에 정밀한 분석과 준비를 거쳐 실행에 옮겼으면 하는 시선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달라.

김 지사_ 타당한 지적이다. 제가 보는 농촌의 현실과 미래를 말씀드리겠다. 지금 농촌에서는 많은 어르신이 논 대여섯 마지기, 밭 몇백 평 정도 부치는 소규모 영농이 대세를 이룬다. 이래서는 생산성도, 소득도 기약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보조금이나 지원금이 많이 나오니까 끝까지 경작지를 손에서 놓지 않으신다. 농업직불금, 농민수당을 받으려면 농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반면 젊은 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하고 싶어도 적정 규모 농토를 확보할 수 없어 주춤하는 실정이다. 이런 여건을 한꺼번에 다 바꿀 수는 없지만, 농촌에 젊은이들이 유입되도록 시도하고자 한다. 이 문제는 중앙정부가 중장기 계획을 세워 무거운 마음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과제인데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충남도는 힘이 미약하나마 우리 농촌, 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 전 총장_ 우리나라 농업인구는 250만 정도인데 매년 10% 정도씩 감소하고 있다. 귀농인들도 5년 이상 농업을 유지하는 비율이 아주 낮다. 충남도도 청년 농업인의 비중이 현재 6.6%까지 감소하고, 65세 이상 고령농가 비율이 52.5%로 상승한 실정이다. 당연히 농업인 은퇴, 정년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농민도 왜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는가. 적어도 농민들도 건강할 때 10년 정도는 시간을 갖고 텃밭 정도만 가꾸고 여유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이와 동시에 청년 농업인의 비중을 높이려는 적극적 정책 모색이 필요하다. 청년 농업인의 비중이 높아질 때 농업이 성장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농고·농대 학생 체계적 관리·지원 나설 때”


▎12월 5일 김태흠 충남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충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청년 농업인 육성 업무 협약식.
김 지사_ 보통 직장인들도 60~63세면 은퇴한다. 농업인도 농기계를 다루는 데 좀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면 은퇴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냥 은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농업인 은퇴제, 정년제 도입과 함께 연금제도가 뒷받침해줘야 한다. 저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평가해서 은퇴하면 연금이 주어지도록 연금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본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경작지 경영 이양을 쉽게 하는 데 충남도가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다. 72~73세에 이르러 경영 이양을 하는 어르신들에게는 인센티브를 두텁게 제공하고 그런 경작지를 모아 젊은 농업인에게 농토로 제공하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농사를 짓자면 수익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벼농사의 경우 적정 수익을 올리자면 적어도 100마지기(2만 평)는 지어야 하는데 밭농사나 스마트팜은 1000평(약 3300㎡)만 가지고도 가능하다. 서산 간척지 AB지구에 조성되는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는 청년들에게 농업, 농촌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토지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그런데 스마트팜 1000평에 평균 5억원 시설비가 든다. 이를 젊은이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시설비의 70% 정도를 충남도, 해당 기초지자체, 중앙정부, 농협, 설비 제공 회사 등이 분담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도시에서는 청년들에게 정부나 지자체가 아파트를 지어 저리로 빌려주지 않나. 농사를 짓는 청년들에게 충남도가 만든 스마트팜, 스마트 축산단지를 빌려주는 것도 그와 같은 이치다.

최 전 총장_ 모두 사양 산업으로만 치부하는 농업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다. 특히 농민 연금제 같은 경우 의욕적인 도전이고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런데 추진해나가는 과정은 굉장히 어려워 보인다. 젊은 사람들이 농업을 안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들을 어떻게 끌어들이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젊은이들이 이 사업에 의욕을 갖고 참여케 하는 방법론이 정교하게 뒷받침됐으면 한다. 미국은 기후변화와 관련해 식량 대책을 안보 전략의 일환으로 간주하더라.

대한민국의 비수도권은 인구 감소라는 존립 위기에 직면했다.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충남, 청년 농민이 꿈을 펼치는 충남을 위한 생활 기반 조성도 중요하겠다.

김 지사_ 그 목적으로 주거 개선 사업을 병행하려고 한다. 이동 수단이 변변치 않았던 시절에는 농토 가까이 주거지를 두는 게 합리적이었지만 지금과 같은 기계화 영농 시대에는 밭 한가운데 농가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을 이유가 없다. 40~50가구 단위로 주거 단지를 조성해 경제적이고도 편리한 생활 인프라를 충분히 공급하는 정책 변화가 요구된다. 저는 임기 내 농업 예산을 전체 예산의 16%인 약 1조3000억원까지 늘려 은퇴 농업인 연금 지원, 스마트 축산단지 조성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생각이다. 이런 게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 아닌가? 지금 같은 농촌 정책으로는 기계화도 요원하다. 충남도가 시범 사례를 성공적으로 론칭해 중앙정부를 압박하는 게 제 복안이다.

최 전 총장_ 젊은이들의 농촌 유입을 더 쉽게 만드는 방안을 하나 제안하고 싶다. 예전의 농업고가 지금은 주로 생명과학고로 개칭했다. 충남도 차원에서 생명과학고에 다니는 학생들이나 농대를 다니는 학생들이 졸업하면 진짜 농업인이 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지원했으면 한다. 이들 졸업생이 다른 분야로 빠져나가지만 않아도 상당한 청년 농업인들을 배출하게 된다. 요즘 교육 추세가 과학기술 쪽으로는 지원이 다양하고 규모도 상당한데 농업학교 쪽으로는 인색한 편이다. 이 분야에도 관심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또 오래된 지적부를 보면 농사를 짓는데도 도로와 접하지 않는 맹지(盲地)가 적지 않다. 이런 맹지를 해소하는 작업을 하면 농사 효율도 끌어올릴 것이다.

인적·물적 인프라 갖춘 아산만 미래 변화상


▎지난 10월 충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베이밸리 민·관 합동 추진단 발족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 지사_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저도 그게 고민이다. 지금은 생명과학대학으로 이름이 바뀐 농과대학 졸업생 중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분이 적지 않다. 이러면 본인도, 부모도 경제적으로나 시간상으로 4년을 허비한 셈이 된다. 국가적으로 볼 때 이는 비효율과 낭비를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총장께서는 농과대학 학생들이 입학하면서부터 농촌에 머무를 수 있게 장학금이라든가 메리트를 주라는 그런 말씀인데 100% 동의한다. 다만 농촌이라고 해서 도덕적 해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아낌없이 지원하더라도 조건에 따라 원금을 상환할 수 있는 제도적 설계를 해보겠다.

충남도는 지난 9월 경기도와 ‘베이밸리 메가시티’ 관련 협약을 맺었다. 어떤 내용인가?

김 지사_ ‘베이밸리(Bay Valley)’에서 베이는 한국어로는 만(灣)이다. 경기 남부권과 충남 북부권 해안지대를 묶는 초광역 생활경제권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천안·아산·당진 등 충남 북부권과 평택·안성·화성 등 경기 남부권을 아우르는 아산만 일대를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만드는 사업이다.

최 전 총장_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협업하는 사례로 주목받을 듯하다. 지금까지 지역균형발전 사업은 대부분 수도권과 대비되는 비수도권 활성화, 경쟁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베이밸리는 양쪽이 윈-윈(win-win)하는 모델 아니겠나. 이 사업의 모티브가 궁금해진다.

김 지사_ 미국에 가보니 실리콘밸리가 샌프란시스코만 일대에 조성돼 있더라. 우리의 아산만하고 형태가 유사하다는 느낌을 줬다. 거기에 착안해서 베이밸리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하게 됐다. 그래서 충남의 아산·천안·당진·서산 일부와 경기도의 평택·화성·안성 일부를 아울러 미래의 먹거리 산업을 창출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아산만권은 미국 실리콘밸리 못지않게 인적·물적 인프라를 잘 갖춘 지역이다. 디스플레이·반도체·수소 등 첨단 산업과 철강, 화학 등 기존 제조업이 포진해 있다. 또 이와 관련한 대학과 연구기관도 몰려 있다. 이들을 거미줄처럼 잘 연결해 시너지를 일으키고 세계와 경쟁하는 큰 무대를 만들어주는 프로젝트다.

최 전 총장_ 메가시티 개념의 베이밸리 같은 프로젝트는 다른 지자체와의 협업이 성공의 결정적 요소인데 그걸 잘해내고 있더라. 대전이나 세종이나 다 뿌리는 충청남도에서 나왔다. 어떻게 보면 충남도는 매번 떼어주기만 하는 지자체였다. 충남도가 이렇게 확장적 사업 구상을 하는 건 바람직한 변화다. 인근 광역지자체들과의 협력에 탄력이 붙기를 바란다.

“김동연 경기지사도 베이밸리 조성 신념 확고”


▎충남도가 청년들에게 공급할 스마트팜이 들어설 후보지인 서산간척지 일대 전경.
베이밸리 프로젝트에 임하는 김동연 경기지사의 열의와 의지가 변수 아닐까?

최 전 총장_ 베이밸리 프로젝트는 충남도의 전통 산업 구조에 신성장동력을 불어넣는 핵심 사업이기도 하지만 경기도 입장에서도 경기 남부 지역을 개발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로 보인다.

김 지사_ 제가 한 제안을 김동연 경기지사가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 사업은 누가 주도권을 행사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경기도와 충남이 상생의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특히 평택·화성·안성 등 경기 남부권이 아우르는 대학과 인구가 더해져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김동연 지사도 충남이 제안해서 함께 가는 차원이 아니라 본인이 당사자 입장에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최 전 총장_ 베이밸리와 함께 충남권 내 다른 권역의 산업도 적극 활성화하는 도정을 펼쳐달라. 천안·아산을 중심으로 하는 북부권은 한국의 4차 산업을 선도하는 충남 발전의 동력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서부 내포권은 해양이 갖은 특성을 활용한 생산성 극대화가 요구되고 있다. 동부의 백제역사문화권은 금강을 중심으로 한 권역인데 자연자원과 역사, 문화를 지역 발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여건을 갖췄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이곳에 와서 공주·부여 등 백제문화권 개발을 약속했다. 충남을 이렇게 첨단미래도시, 스마트 농·어업, 관광·문화 등 3대 권역으로 개발하는 방안은 어떨까? 분야별 특성을 살리는 정책 지원이 강화된다면 효율성, 과학성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방향을 설정하고 충남도청의 우수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면 좋은 성과를 내리라 예상한다.

김 지사_ 좋은 말씀이다. 저는 충남의 미래를 설계하면서 3가지 요소를 고려한다. 충남의 역사성은 기본이고,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충남의 지정학적 여건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글로벌 시대로 가는 충남의 방향성을 더해 미래 청사진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도 역동적인 서북부권은 산업화 미래도시로 개발하면 좋겠다. 서해안 일대는 섬과 아름다운 풍광 천연자원을 활용해 국제휴양관광벨트로 육성하고자 한다. 부여·공주 등 백제의 고도(古都)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명품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특히 공주·부여의 경우 한옥 복원 작업을 진행 중인데 지난 13년간 충남도 지원액이 총 90억원 선에 그쳤더라. 저는 1년에 100억 이상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을 문화재청과 협의해 실행하고자 한다. 전주의 한옥마을이 800여 채 규모라면 공주·부여의 한옥마을은 10년 안에 1500여 채 규모로 복원될 것이다. 지역별 특장을 살리는 방향으로 선택과 집중의 지원 정책을 펴나간다는 게 제 구상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15년간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144조원을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지역 불균형은 심화했다. 뭐가 문제라고 보나?

최 전 총장_ 지역 불균형 해소는 인구 문제와 더불어 우리나라가 풀어나가야 할 국가적 과제인데 그게 말대로 쉽지 않다. 목표를 더 작고 구체적으로 설정해, 예산을 실질적인 문제를 푸는 방향으로 투입하려는 노력과 검토가 필요한 시점 아닐까 한다. 충청권의 발전은 충청이 주도하는 게 맞다. 그게 책임의식이고 시민 참여를 확산하는 지름길이다.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든 그림을 지역에 떠넘기는 식의 접근법은 지양돼야 한다.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수도권 인구 집중은 계속될 것이다. 어렵고 돈 안 되는 정책과 사업만 지방 몫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해당 지자체에 실질적인 권한과 재정을 부여하는 게 진정한 지역균형발전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대기업들, 사업장 소재지에 본사 이전해야”


▎대담을 마친 뒤 충남도서관 옥상에 올라 홍성군 일대를 둘러보는 최석원(왼쪽) 전 공주대 총장과 김태흠 충남도지사.
김 지사_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 분권, 균형발전에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을 하자면 현실 진단의 주체가 지방정부여야 한다. 예컨대 왜 수도권에 인구가 몰릴까? 제가 보기에 소위 우수하다는 대학이 다 서울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장소가 따로 정해진 건 아니지 않나. 그런데도 공부하는 학생들이 서울의 대학에 가려는 것은 그곳에 대기업과 같은 좋은 직장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대학과 대기업의 본사들이 지방으로 와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대기업들이 사업장이 있는 지역으로 본사를 옮겼으면 한다. 그래야 지역의 대학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고 태어난 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풍토가 갖춰진다. 미국 서부의 시애틀에 아마존·MS 등 글로벌 기업 본사가 여럿이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나라도 대기업의 사업장이 있는 곳에 본사를 옮겨야 한다. 여기에 지역의 대학과 대기업이 상생하는 시스템이 더해지면 지역균형발전의 새 이정표를 세우게 될 것이다.

‘호락논쟁’의 산실인 충청도의 힘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12월 둘째 주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과 관련해 충청권에서는 긍정 평가가 30%, 부정 평가가 60%로 나왔다. 윤석열 정부를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속마음을 진단한다면?

김 지사_ 여론조사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곳이 충청도라고 전문가들도 얘기한다. 충청도민들은 내면의 의사 표현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설령 지엽적인 잘못이나 먼지털기식 비판 때문에 그런 여론조사가 있더라도 국정의 기본 방향과 큰 틀에서는 과오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에 대한 충청권의 기대는 아주 희망적이라고 저는 판단한다. 다만 충청인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사업의 진척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이전, 국립경찰병원 분원 건립 등 핵심 공약 이행이 가시권에 들어오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은 존재하리라 판단된다.

최 전 총장_ 윤석열 대통령이 24만 표밖에 못 이겼다고 하는데 저는 의미를 달리 본다. 19대 대선에서 뒤진 표에다 24만 표를 보태면 실로 엄청난 차이로 승리한 결과다. 다만 현 정부는 집권 초기 이른바 6개월 정도의 밀월 기간도 갖지 못한 데다 여소야대 국회로 인해 제대로 일할 여건도 누리지 못했다. 김 지사 얘기대로 충청인들은 의사 표현을 덜 하는 편이다. 게다가 이제 막 6개월 지난 정부에게 공약 사업을 채근하면 일이 제대로 되겠는가. 정부가 하는 일을 좀 기다리며 지켜보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성공하고 지사가 성공해야 국민도, 도민도 잘살게 된다는 게 보통 사람의 심정일 것이다.

충남 도정 비전이 ‘힘쎈 충남, 대한민국의 힘’이다. 도정 슬로건으로는 좀 낯설기는 해도 본질을 건드리는 색다름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김 지사_ 충청인들은 포용력이 있고 타인을 존중하기에 섣불리 한쪽을 편들거나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저는 여기에다 충청의 ‘뚝심’을 더하고자 한다. 또 속도감을 느끼게 하는 ‘역동성’도 가졌으면 한다. 도정 비전으로 ‘힘쎈 충남’을 제시한 건 이러한 충남의 정신을 한층 더 파워풀하게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목표를 향해 우직하면서도 역동적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고장이 충남이었으면 좋겠다.

최 전 총장_ 충청은 조선시대부터 서울과 가까워 사대부들이 많이 살았고, 선비정신이 충만한 고장이었다. 그래서인지 충청은 조선시대 ‘호락논쟁’의 산실이기도 했다. 충청의 호론(湖論)과 서울의 낙론(洛論)이 벌인 성리학의 방향성, 정체성 논쟁 말이다. 지금 필요한 건 자랑스러운 충청의 정신을 시대에 걸맞은 미래 비전과 결합하는 모색이다. 국가 정책에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필요할 때는 행동으로 그 의지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김성태 객원기자

202301호 (20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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