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Home>월간중앙>사람과 사람

[JOA의 핫피플 & 아트(9)]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봉사는 촛불과 같아… 합쳐지면 더 밝아지고 더 뜨거워져” 

데뷔 40여 년 만에 첫 모노드라마 무대, 美 LA서 개인 사진전 준비
배우·사진작가·문화경영인 등 일인다역 소화하는 원동력은 ‘열정’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에게는 40여 년 배우 인생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들만큼이나 다양한 직책과 꼬리표가 붙는다. 때로는 배우로, 때로는 사진작가, 교수, 문화예술경영인 등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사진:조정화
"거울과 유리로, 나를 들여다본다.” 배우이자 사진작가인 박상원(64)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의 말이다. 자신을 냉철하게 보기 위해 거울과 유리창의 개념으로 ‘객관’과 ‘주관’을 동시에 들여다본다. 그는 2021년 10월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했다. 서울문화예술포럼을 만들어 문화예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하고, 다양한 문화예술 경험을 토대로 엔데믹(endemic) 시대에 다시 신명나는 서울이 될 수 있도록 서울시의 문화예술정책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배우로 살아온 세월이 무려 46년째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하고, 1979년 연극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데뷔했다. 1986년에는 MBC 공채 탤런트가 되어, TV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 등으로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예대 공연학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꾸준하게 공연 무대에 서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일인극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다. 세계적인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희곡으로, 오케스트라에서 주목받지 못한 콘트라베이스(contrabass) 연주자를 통해 사회적 구조로 고립되거나 매몰된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담고 있다. 데뷔 40여 년이 지나 처음 도전할 만큼, 내공이 깊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무대가 모노드라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매번 성황리에 마쳤다. 올해는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콘트라바쓰] 미주와 유럽 투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공연뿐 아니라 해외 사진 전시도 한다.

40여 년 내공 쏟은 모노드라마 성황리 마감


▎2022년 3월 15일 서울문화재단 창립 18주년을 맞아 박상원 이사장(오른쪽 두 번째)을 비롯한 문화계 인사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박상원
그는 사진으로 몇 차례 개인전을 가진 바 있고,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을 만큼 사진에 관한 그의 열정은 깊고 진지하다. 미국 LA에 있는 [EK 아트갤러리] 초대를 받아 그동안 해왔던 사진을 선별해 4월 한 달간 개인전을 갖는다. 그의 사진은, 프랑스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가 말한 이른바 푼크툼(punctum)적인 풍경과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인물 사진이 주류를 이룬다. 평생 배우로 살아온 감각 경험이 덧씌워진 흑백의 인물 묘사는 유연하되 단호하며, 지극히 촉각적이다. 특히 정지된 어느 한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갓 잡은 활어처럼 파닥거리는 듯한 ‘생명의 역동성’은 배우 박상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3차원적인 입체감이 압권이다.

배우이자 사진작가, 문화예술경영인으로 일인다역을 맡아 숨 가쁘게 바쁜 일상에서도 그가 멈추지 않는 또 하나의 역할이 있다. 바로 ‘봉사’다. 한번 시작하면 도중에 그만두는 일이 거의 없어 이름을 올린 봉사단체가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는다. 국립암센터 후원회장, 월드비전, 다일공동체, 근육병재단 등 30여 년 넘게 국내외에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불꽃처럼 정열적으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감한다. ‘연극적 상상과 창조적 망상’을 만들어낸다는 강남 작업실에서 만나, 청년 못지않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인 이야기를 들었다.


▎캐나다 레이크 루이스. / 사진: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취임 후 주로 어떤 일들을 해왔나?

“평생 연극, 무용, 사진 외에도 문화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것들을 해왔기 때문에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문화 예술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예술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서울문화예술포럼’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계가 당면한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보고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이제 코로나도 엔데믹에와 있다. 그동안 주춤했던 거리 예술 축제나 시민들이 참여하는 페스티벌 등 볼거리, 놀거리, 즐길 거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잘 활용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4월 LA EK아트갤러리 초대 개인전 예정


▎영종도의 갈매기 그림자. / 사진:박상원
배우로 알려졌지만 사진으로 몇 차례 개인전을 개최하며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해왔다. 올해 예정된 전시가 있나?

“그동안 큰 규모로는 세 번의 개인전을 했다. 일본 도쿄도 미술관과 덴마크 코펜하겐 프레데릭스버그홀 등 10여 차례 이상 전시를 했다. 올해는 4월 한 달 동안 미국 LA에 있는 EK아트갤러리 초대를 받아 개인전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 해온 작품 중에서 랜드스케이프는 빼고, 좀 더 미니멀하거나 파인아트적인 사진으로 구성할 생각이다.”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을 정도로 열정이 대단하다. 박사학위 논문도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푼크툼과 스투디움 연구’였는데, ‘다큐멘터리 사진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다큐멘터리 사진이야말로 사진 장르의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의 힘’은 사실적인 근거를 가감 없이 담아놓을 때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존재한 진실의 순간이 그대로 멈춘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이데올로기를 담고, 둘째는 인류 역사를 담으며, 셋째는 아주 평범한 인간의 일상적인 삶을 담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사진도 40년 또는 50년이 지나면 다음 세대들에게 강력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고, 또 그것을 통해 그 시대적 현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진만 전업으로 하는 사진작가와, 배우이기도 한 박상원의 시선에 담긴 사진을 비교해봤을 때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


▎네팔의 아이들. / 사진:박상원
“당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체계적으로 아카데믹하게 배우면 그 틀 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나는 사진을 전공하기 이전에 배우, 무용가, MC, DJ, 교육자 등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들여다보는 파인더다. ‘배우’이기 때문에 파인더 밖이 아닌, 파인더 안에서 뛰어놀던 사람이다. 일반적인 시선보다는 3D, 4D, 5D로 좀 더 입체적으로 보고 느껴지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사진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작품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 공연하는 1인극 [콘트라바쓰]는 지금까지 했던 공연과 다른 점이 있나?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평원. / 사진:박상원
“앞서 말했던 사진전을 하면서 LA에서 연극 공연도 같이하려고 준비하고 있고, 유럽 공연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달라질 것이다. 3년 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초연했을 때와 작년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했던 공연은 완전히 달랐다. 초연 때는 ‘꽃’이라는 것도 있었고, 실제 아날로그 축음기, 소파, 전화기 등 사실적인 것들이 여러 가지 등장했다. 반면 작년 공연에서는 이전에 사용했던 소품들을 다 없앴다. 6도 기울어진 사각 무대에 오로지 콘트라베이스가 들어 있는 하드 케이스 하나만 가지고 절제된 상태에서 공연을 했다. 이처럼 공연할 때마다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다. 아무튼 올해 가장 큰 이슈는 해외 공연과 함께 사진 전시도 하는데 모두 잘됐으면 좋겠다.”

기억에 남는 사진은 이호재의 '약장수' 공연 포스터


▎탄자니아의 소녀. / 사진:박상원
배우로 살아온 46년, 그리고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서울예대 교수, 사진작가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비결이 궁금하다.

“어떤 것을 상상하고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는 ‘유리’처럼 좀 멀리 보고, 좀 넓게 본다. 반면에 나를 들여다볼 때는 ‘거울’처럼 가둬놓고 나의 장단점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그러다 보면 어떤 일을 할 때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의식해 대입시키면 자기도 모르게 괜히 주눅 들거나 가라앉을 수 있다. 어떤 일을 하고 뭘 선택할 때는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불꽃 같은 ‘나의 정열’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야말로 큰 원동력이 된다.”

누구나 봉사의 삶을 꿈꾸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꾸준하게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데 어렵지 않은가.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수십 년째 봉사 현장을 꿋꿋이 지켜왔다. 2005년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방문한 동티모르에서 아이들과 함께 찍었다. / 사진:박상원
“‘봉사’의 근본적인 맛을 얘기할 때 항상 촛불로 비유한다. 내가 가진 촛불을 하나 나눴을 때 2개의 촛불이 되고, 2개의 촛불이 4개, 4개가 또 8개가 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촛불을 누군가와 나눠도 나의 촛불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촛불은 합쳐지면 더 밝아지고 더 뜨거워진다. 북한도 여러 차례 다녀왔고 르완다, 인도 등 전 세계 긴급 구호 현장을 많이 다녔다. 도움의 손길로 인해 조금이라도 세상이 변할 때 그 자체가 소중하고 거기에서 보람을 느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사진 한 장이 있다면.

“은사 중에 오태석 선생님이 쓴 [약장수]라는 모노드라마 포스터가 있다. 어느 날 그 포스터에 학교 대 선배인 이호재 선배님께서 있는 것을 보고, 만약 내 얼굴이 저 포스터 안에 담겨 길거리에 붙어 있으면 어떤 느낌일까? 배우라는 게 뭘까? 궁금해서 [약장수]라는 모노드라마를 봤다. 연극이라는 것이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2시간 정도를 혼자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공연을 보고 배우를 하게 됐다. 공연을 1978년에 봤는데 40여 년이 흘러 [콘트라바쓰] 1인극을 지금 하고 있고, 공연 포스터에 내 얼굴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사진 한 장을 손꼽으라고 한다면, 이호재 선배님의 [약장수] 공연 포스터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다.”

※ JOA(조정화)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순수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조형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20여 년간 강의하면서 [포토닷], [디지털카메라매거진], [미술세계], [월간중앙] 등에 예술 관련 연재와 기고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서 특별한 사진 읽기](2020년)가 있다.

202302호 (2023.0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