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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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지방 소멸… 고향사랑기부제가 답이다] 고향사랑기부제에서 기회 찾은 강원도 양구군 

쓰일 곳 알렸더니 고향사랑 기부에 관심 쑥쑥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주민과 머리 맞대 ‘꿀벌 살리기’, ‘못난이 농산물 활용’ 지정 기부 선보여
법령에 가로막혀 지정 기부 중단했지만 제도 취지 살린 시도로 주목받아


▎강원도 양구군은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되자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기부금 사용처를 특정하는 지정 기부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양구군은 지정 기부 프로그램과 공정관광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주목받고 있다. / 사진:양구군 페이스북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고향사랑기부제는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자치단체의 자립을 도울 대안으로 꼽힌다. 국민이 내는 기부금은 지자체의 주민 복리 증진 사업의 귀한 밑천이 되고, 지자체가 내놓는 답례품은 지역 경제를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지자체마다 제도 활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시행 초기여서 대개 준비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중에서도 고향사랑기부제를 도약의 발판으로 이용하려 발 빠르게 움직이는 지자체가 있다. 강원도 양구군이 대표적이다.

'기후변화로 사라져가는 꿀벌을 지켜주세요.’


▎양구군이 민간 플랫폼을 통해 소개한 지정 기부 프로젝트인 ‘못난이 농산물 살리기’는 상품 가치가 떨어져 버려지던 농산물을 활용해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는 취지로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3일 만에 40여 명이 참여해 1000만원 가까운 기부금이 모였다. / 사진:고향사랑기부 민간 플랫폼 ‘위기브(wegive)’ 캡처
지난 1월 초 강원도 양구군이 고향사랑기부 민간플랫폼에 올린 기부 프로젝트 제목이다. 양구군은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되자마자 지정 기부 프로젝트 두 가지를 선보였다. 꿀벌 살리기 관련 사업을 위한 모금 프로젝트와 ‘못난이 농산물’이라고 불리는 상품성 떨어지는 농산물을 활용한 지역경제 활성화 프로젝트다.

꿀벌 살리기 프로젝트는 양구만의 현안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사이 전국에서 약 100억 마리에 이르는 꿀벌이 집단 폐사하기도 했다. 기후 변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꿀벌이 사라지면 생태계에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인류에게 필요한 식량의 90%를 충당하는 100대 농작물 중 70% 이상이 꿀벌의 수분으로 생산된다. 지구적 위기를 맞이한 셈이다.

양구군이 꿀벌에 주목한 건 지역 상황이 꽤 심각해서다. 지난해 강원도의 양봉 벌통 18만 개 중 10만 개에서 꿀벌이 집단 폐사했다. 이상기후가 계속되면 해마다 반복될 일이다. 양구군은 ‘북위 38도 꽃꿀 복원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꿀벌 집단 폐사로 큰 피해를 본 양봉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위기의식을 공유하자는 뜻도 담겼다. 양구군 관계자는 “비무장지대(DMZ) 지역인 양구군의 경우 꿀벌 집단 폐사는 농산물 생산과 직결되는 현실적 위기”라며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꿀벌 살리기에 공감하고 지역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프로젝트를 계획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준비 과정에는 주민들도 참여했다. 그동안 사비를 들여 꿀벌 살리기를 연구해온 지역의 꿀벌 전문가가 참여해 프로젝트 방향을 함께 고민했다. 고향사랑기부제로 돈을 벌자는 목표는 후순위였다. 인류 공동의 문제를 고향사랑기부제와 연계하면 관심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그렇게 꽃꿀 복원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못난이 농산물’ 지정 기부 3일 만에 목표액 10% 채워

꿀벌 프로젝트와 동시에 시작한 ‘못난이 농산물 多가치 프로젝트’도 지역 현안과 범공익성이 결합된 지정 기부 프로젝트다. 못난이 농산물은 흠집이 나거나 상품성이 떨어지는 농산물을 말한다. 수확하자마자 대부분 버려지기 일쑤다. 특히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할 경우 버려지는 양은 더 늘어난다. 농가 입장에선 농약 쳐서 보기 좋게 만드는 게 더 손쉽고 돈 벌 수 있는 길이다.

사과 재배가 가능한 양구군 농가에서도 못난이 사과 처리는 늘 고민거리였다. 당도와 산미가 높은 양구 사과는 상품성도 높아 농가의 새 소득원으로 주목받는 작물 중 하나다. 하지만 버려지는 게 많아 골칫거리였다.

양구에 정착해 사과 농사를 하는 사회적기업이 군청과 머리를 맞댔다. 버려진 농산물을 가공해 다양한 친환경 먹거리 상품을 개발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려면 우선 못난이 농산물 실태부터 파악해야 했다. 또 상품과 브랜드, 가공식품을 개발하고 유통망을 구축해야 했다. 규모가 작은 양구군 공무원 조직이 담당하기엔 한계가 뚜렷했다. 민간이 참여하더라도 예산 외 비용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고향사랑 지정 기부 프로젝트였다.

못난이 농산물 프로젝트로 모인 기부금은 ▷못난이 농산물 실태 파악 연구 ▷유통, 지역 농가 참여 및 프리마켓 추진 ▷상품 및 브랜드 개발 ▷지역 대표 농산물별 가공식품 개발 ▷못난이 농산물 연계 공정관광 프로그램 등에 사용하기로 했다.

프로젝트를 알리는 데는 고향사랑기부 사회적 기업이 운영하는 민간 플랫폼을 이용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고향사랑e음’ 플랫폼이 있지만, 이곳은 프로젝트별로 지정 기부를 분리할 시스템이 아직 갖춰지지 않아서다. 또 각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운영하려면 소수의 공무원 조직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보다 10여 년 앞서 ‘고향세’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사례도 참고했다. 고향사랑기부제에 관한 전반적인 관리와 운영을 사회적기업에 위탁하는 방식이 최선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두 개의 프로젝트를 민간 기부 플랫폼을 통해 선보이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1억원을 목표로 시작한 못난이 농산물 프로젝트에는 42명이 기부에 참여했다. 단 3일 만에 기부금 목표 금액의 10% 가까운 990여만원이 모였다. 꿀벌 프로젝트에는 10명이 호응해 기부금 126만5000원이 모였다. 기부자들은 “환경의 지표종이라 할 수 있는 꿀벌이 사라지는 건 심각한 상황인데 이런 문제를 양구군이 나서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호평했다.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아 생소한 상황에서 이 같은 반응은 꽤 이례적이었다.

그런데 모금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문제가 생겼다. 행정안전부가 모금을 중단하라고 통보한 것이다. 현행 법령상 민간 플랫폼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행안부가 운영하는 ‘고향사랑e음’ 플랫폼은 기부자가 기부 대상 지자체와 금액, 답례품을 선택할 수 있고, 기부금 내역은 국세청 연말정산 정보와 연동된다. 다만 고향사랑e음 플랫폼에선 프로젝트별 지정 기부가 불가능하다. 거의 모든 지자체가 기부금 용도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주민 복리 증진’과 같은 두루뭉술한 표현을 쓸 뿐이고, 답례품 목록만 나열하는 정도다. 고향사랑기부에 관심이 많은 40대 직장인은 “내가 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밝히지 않아 사실상 ‘답례품 쇼핑몰’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결국 양구군이 지난해부터 야심 차게 준비했던 지정 기부 프로젝트는 아쉽게도 3일 만에 모금이 중단됐다. 프로젝트가 아예 취소된 건 아니다. 프로젝트를 이어가려는 주민들 의지도 여전하다. 양구군은 법령의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고향사랑기부제를 지역이 가진 자원과 연계하려는 양구군의 아이디어는 다양하다. 다른 지자체들이 인구를 늘리기 위해 현금성 유인책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동안 양구군은 ‘관계인구’ 유입을 활로라고 봤다. 관계인구는 지역에 이주·정착하진 않지만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지역을 방문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말한다. 군인일 수도 있고, 지역 기업의 근로자일 수도 있다. 취미 등의 목적을 가진 관광객도 관계인구가 될 수 있다.

고향사랑기부제에 공정관광 접목해 활로 모색

양구군이 이 같은 고민에 천착하는 이유는 지방 소멸 위기를 직접 겪고 있어서다. 양구군은 인구 2만1000여 명(2022년 6월 기준)인 작은 지자체다. 규모가 작아 인구 감소율은 높지 않지만, 행정구역별 인구 증감률을 보면 지역 공동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군의 중심지인 양구읍을 제외한 4개 면의 인구는 11년 새 최소 12%에서 많게는 23%까지 감소했다. 접경지여서 지역 경제는 군인 의존도가 높은데, 얼마 전 1개 사단이 빠져나가면서 지역 경제가 급속히 악화했다.

양구군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활로를 공정관광과 고향사랑기부제에서 찾고 있다. 공정관광 조례를 만들어 로컬 관광을 도입했다.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되면서 공정관광을 기부제와 접목하는 방법도 모색 중이다. 양구군 관계자는 “전에는 대부분 자연 명소 위주로 관광을 진행했는데 이것이 지역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측정하기가 어려웠다. 지역민들이 지역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과 공유한다면 관광객이 우리 지역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되고 관계 인구 유입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 과정에는 항상 주민들도 참여했다. 고향사랑기부제를 전담할 TF팀을 만들고, 주민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머리를 맞댔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주민들을 공정관광과 고향사랑기부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에는 [양구피플로드]라는 책도 펴냈다. 양구에서 여러 의미 있는 일을 시도하는 주민들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양구군 관계자는 “공정관광이라는 틀 속에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303호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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