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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초대석] ‘풀꽃시인’ 나태주의 시학(詩學) 

“오줌 마려우면 싸버리듯 시(詩)는 본능으로 써버리는 것” 

정영재 중앙선데이 전문기자
감정을 언어로 옮기는 작업, 60년 해도 어렵고 부끄러워
윤동주 매력은 배려… 시인은 산에서 내려와 독자 손 잡아야


'풀꽃시인’ 나태주 선생을 처음 만난 날은 서울에 눈바람이 몰아쳤다. 충남 공주에서 아침 일찍 고속버스를 탄 시인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 두 번 지하철을 환승한 끝에 약속장소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도착했다. 고생시켜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그는 편안하게 웃으며 오히려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딱 스물 네 자로 이뤄진 시 ‘풀꽃’은 국민 애송시다. 1971년에 등단한 나태주 시인은 거의 반세기 만에 국민시인 반열에 올랐다.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에 ‘풀꽃’이 걸리고, 엄청난 속도로 역주행을 한 덕분이다.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시인은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4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시를 써왔다. 박목월 선생 추천으로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그동안 낸 시집만 50권, 산문집·동화집 등을 포함하면 150권 책을 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시는 왜 필요한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그는 “학교 교육이 이성만 주입하는 배불뚝이가 됐어요. 감성과 영성을 갖춰야 조화로운 인격체가 될 수 있어요. 사랑은 타인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는 마음이고, 그게 부처님의 자비(慈悲)고 예수님의 긍휼(矜恤)이며 공자님이 말씀하신 측은지심(惻隱之心)이죠”라며 “슬픔을 함께하는 마음을 언어로 표현하는 게 시(詩)”라고 말했다.

한 시간 넘게 얘기를 나눴지만 시간이 모자랐다. 그는 다른 약속이 있었다. 주말에 공주에 있는 나태주풀꽃문학관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공주사대부고 옆에 자리 잡은 풀꽃문학관에는 가족, 친구, 동료끼리 나태주 시인이 퍼뜨린 풀꽃내음을 맡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는 내 영혼과 감성의 목마름을 표현하는 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딱 스물 네 자로 이뤄진 시 ‘풀꽃’은 국민 애송시다. / 사진:풀꽃문학관
여기 오면서 시가 주는 효용이라는 게 어떤 건가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지식의 시대, 생각의 시대, 느낌이 시대가 있어요. 지식이나 생각은 물질적 풍요와 편리한 삶과 함께 어느 정도 채워지니까 이젠 느낌을 찾아서 떠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하는 시대가 된다는 겁니다. 인간이 이성과 감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영혼의 목마름은 어떻게 채울까 하는 점이죠. 영혼은 존재하지만 우리가 잘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기하고 까다롭고 어려운 거죠. 시는 인간의 감성과 영혼이 작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찻잔에 차를 따라주면서) 영혼과 감성은 이 그릇에 들어가는 차라고 볼 수 있고, 언어(이성)는 그릇이라고 볼 수 있죠. 영혼과 감성이 이성의 도움을 받아 그릇에 담기는 게 시라고 말할 수 있겠죠.”

사람들이 여기 풀꽃문학관에 오는 것도 목마름 때문이겠지요.

“시는 내 영혼과 감성의 목마름을 표현하는 겁니다. 무엇의 도움을 받아서? 이성, 즉 언어의 도움을 받아서죠. (자신이 소장한 풍경화를 보여주며) 어떤 화가가 풍경을 그린 건데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그림의 대상(소재)은 없어지고 그림 자체가 원본이 되는 겁니다. 시도 마찬가지죠. 내 감성과 영성이 언어를 통해서 시로 바뀌면 그게 원본이 되고 내가 사라진 뒤에도 전해지는 겁니다. 작품을 통해 작가와 상호작용하는 것을 미국의 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는 ‘종교적 경험’이라고 했어요. 나는 이게 굉장히 위대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적 경험이라는 건?

“여기 불경, 성경 그리고 노자 도덕성이 있습니다. 부처님과 예수님, 노자는 이미 사라지고 그 실체는 없어졌는데 그분들의 가르침과 정신세계는 글을 통해서 경전 속에 남아 있거든요. 그게 원본이죠. 우리는 논어를 보지만 공자님을 보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도 그걸 통해서 공자님과 만날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러면 시도 똑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사라진 뒤에도 시인이 가졌던, 시의 소재라고 해도 좋고 영성과 이성·감성이라고 해도 좋은 그런 것이 시속에 들어가서 생명체로서 존재한다는 말이죠. 한국말이 없어지지 않는 한,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이 지상에서 없어지지 않는 한 그건 영원히 살아서 작용하고 소통하고 있어요. 그게 바로 시의 효용이죠.”

시대 흐름이 시의 효용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그렇다고 봅니다. 마음 아픈 얘기인데요, 박목월 선생님 대표작 ‘나그네’를 봅시다.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아주 훌륭한 시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감흥이 안 오는 겁니다. 지금은 강나루도 없고, 밀밭 길도 없고, 나그네도 없어요.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우리 세대가 읽을 때는 가슴에 절절이 닿는 구절이지만 요즘 사람들에겐 교과서에만 나오는 작품이 된 거죠. 반면 윤동주의 ‘서시’를 봅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죽는 날, 하늘, 부끄럼, 잎새, 괴로움…. 모두 현실에 존재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윤동주의 시는 여전히 유용하거든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목월 선생님 작품은 시의 끝까지 가긴 했어요. 이상의 시도 마찬가지죠. 그렇지만 대중한테 오래 남아 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나는 시인들한테 얘기하고 싶어요. 너무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지 마라. 다른 사람들이 못 따라 올라간다. 당신이 너무 높이 올라갔다면 내려오시라. 세상 사람들과 같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가라고. 내가 7000원짜리 해장국을 먹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시인도 같이 먹고 있어. 그런데 그 시인이 밥값을 내줬어.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요. 시인은 독자에게 그런 느낌을 줘야 한다는 거죠.”

한글 늦게 깨친 할머니들 시에 감동


▎나태주 시인은 자신의 시가 가슴이 답답하고 영혼이 목마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사진:풀꽃문학관
그건 시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다른 예술 영역에도 해당되는 얘기 같은데요.

“맞습니다. 추상미술도 접근 방법을 달리해서 미술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나 심지어 어린이한테도 가까이 갈 수 있어요. 지식 중심의 학습 이론을 세운 브루너라는 교육 이론가가 ‘적절한 설명 방법을 사용한다면 물리학자가 실험실에서 하는 수준의 내용을 초·중학생들한테도 전달할 수 있다’고 했거든요. 그러면 시인들도 어려운 얘기를 쉽게 풀어서 독자들한테 줘야 한다 이겁니다. 감정이라는 건 형태도 색깔도 빛깔도 없고 만져지지도 짐작할 수도 없는 건데 그걸 짐작할 수 있는 걸로 바꾸는 게 이미지화, 형상화거든요.”

예를 들자면요?

“슬픔이라고 그러면 형태가 없죠. 보고 싶다는 감정도 그렇죠. 근데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다’고 말하면 짐작이 되잖아요.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고 하면 ‘집에서 제일 높이 불쑥 튀어나와 있는 굴뚝처럼 보고 싶은 마음이 솟아 있다’고 느끼겠죠. 정지용 선생의 ‘호수’를 예로 들어봅시다.

‘얼굴 하나야/손바닥 둘로/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호수만 하니/눈 감을밖에’


단순하지만 사람들한테 가장 와닿는 시입니다. ‘너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아’ 이러면 너무 통속적이잖아요. 그런데 이 시에는 보고 싶은 마음이 호수만 하니 감당이 안 된다는 게 절절하게 표현돼 있잖아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시인들이여, 그것에 대해 쓰지 말고 그것 자체를 써라. 화가들이여, 그것에 대해 그리지 말고 그것 자체를 그리라. 그리고 그것 자체가 되게 하라’고요.”

늦게 글자를 깨치신 한글 문해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쓴 시에 감동받으셨다고 하셨죠.

“저는 시를 쓸 때 좀 무식해야 한다고 말해요. 그 말은 내가 못났다는 뜻이 아니라 너무 이성적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겁니다. 식(識)을 내려놓으라는 얘기죠. 시는 매우 발달되고 세련된 게 아니고 좀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것입니다. 사랑이 어떻게 매끄럽고, 부드럽고, 형식이 있고 멋있고 그렇더냐. 사랑은 떨리고, 힘들고,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고, 그런데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사랑 아니냐 이거죠. 마누라하고 남의 여자하고 어느 쪽이 더 끌립니까? 남의 여자한데 더 끌리는 건 사랑을 떠나서 본능적으로… 마누라는 익숙하기 때문에 안 끌리는 거예요. 시도 그렇다는 얘기인데 어쨌든 무식하게, 마구잡이로, 외마디 비명 지르듯이, 싸우듯이, 유언하듯이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시가 유언장이 되어야 한다고요?

“그래요. 시는 인생의 마지막 말을 뱉어내듯이 써야 합니다. 고흐는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은 영원하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잖아요. 근데 그 할머니들의 시가 그랬어요. 한 문장으로 그냥 설명이 되는 거예요.

‘영감아 땡감아/왜 이렇게 빨리 떨어졌어/지금까지 있었더라면/내가 잘해줄 텐데’

일찍 저세상으로 떠난 영감을 감나무에서 떨어진 땡감에 비유한 거죠. 대단하지 않습니까.“

나태주를 국민시인 반열에 올려준 시 ‘풀꽃’은 광화문 글판을 통해 새 생명을 얻었다.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에는 철마다 짧은 시구를 걸어놓아 오가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10년 동안 70편 정도가 광화문 글판을 장식했는데, 시민이 뽑은 ‘가장 인상적인 작품’ 1위가 풀꽃이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 2위였다. 요즘은 광화문 글판을 따라 해 짧은 시구나 명언을 걸어놓는 빌딩이 늘고 있다.

유명한 시인이 아니라 유용한 시인 돼야


▎나태주 시인은 “유명한 시인이 아니라 유용한 시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이가 직접 만나서 위로받고자 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 사진:풀꽃문학관
시의 효용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점에서 반가운 현상이네요.

“코로나 때 엄청나게 뜬 장르가 ‘트로트’입니다. 사람들이 공간을 빼앗긴 상태에서 안에 있는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 수가 없는 거예요. 여행 다니고 축제하고 사람 만나고 해야 되는데 이게 안 되니까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TV에 나오는 트로트 가수에 열광하는 거죠. 사실 트로트가 저렇게 왕성하게 살아날 문화 영역이 아니거든요. 감성과 영성에 대한 목마름이 강해졌다는 거죠. 제가 등단한 지 52년이 됐고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태주라는 사람의 시가 상품이 안 됐어요. 근데 이제 나태주 작품은 거의 상품화가 됩니다. 팔린다는 건 필요로 한다는 것이고, 그거는 효용이 있다는 것이고, 도움이 된다는 거죠. 그러면 나태주 시집이 어디에 도움이 되겠어요. 집 안 장식하는 데 도움이 될까, 돈 버는 데 도움이 될까, 아니거든요. 읽으면 마음이 좀 좋아진다, 마음에 도움을 받는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유명한 시인이 아니라 유용한 시인이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용한 시인이 돼야 유용한 시도 나오겠네요.

“맞습니다. 더 나아가서 시인은 지워져도 되는데 시는 남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어요. 시는 지워지는데 시인은 지워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잖아요. 시인이 진짜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바라볼 사람은 시인 자신, 출판사, 서점, 그리고 신문 기자나 대학교수 평가가 아니고 독자예요. 어떤 독자? 무식한 독자. 시도 모르고 인생도 잘 모르지만 다만 가슴이 답답하고 영혼이 목마른 사람. 그 사람이 내 독자고 그 사람이 내 책 사주는 거예요. 저기 마루에 쌓인 책들이 다 사인해줄 책입니다. 대형 서점에서 500권씩 보내옵니다. 저는 제 시 한 구절을 쓰고 정성껏 사인합니다.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그게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배려심이 뛰어난 시인, 김소월과 윤동주


▎나태주 시인은 “사랑은 타인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는 마음이고, 그게 부처님의 자비고 예수님의 긍휼이며 공자님의 측은지심”이라고 말했다. / 사진:풀꽃문학관
시를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써보는 것도 정말 중요한데요, 사람들이 막상 시를 쓰려고 하면 겁을 내거든요.

“첫째는 시의 소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합의가 잘 안 돼서 그래요. 시의 소재는 감정입니다. 느낌이죠. 그걸 확실히 알면 오줌 누고 싶을 때 오줌 누는 것처럼 시를 쓰고 싶은 본능 같은 게 올라오면 확 써버려야 해요. 개구리가 준비체조 하고 물에 뛰어드는 것 봤어요?(웃음) 시의 소재가 감정이라는 데 합의를 했다면 표현의 도구인 언어에 대해서도 합의를 해야 해요. 그건 숙달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구사할 수 있는 언어(단어) 수를 늘려야 하고, 감정에 맞는 언어를 매치시킬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해요. 기술은 훈련과 노력을 통해서만 만들어집니다. 일단은 감정에 대해서 합의하고 언어에 대해서 합의하고 감정을 언어로 옮기는 연습을 많이 해야 돼요 나는 60년을 했는데도 자신이 없어요.”

써놓고 나면 부끄러운 느낌이 드는 시가 좋다고 하셨는데요?

“제 신춘문예 등단작인 ‘대숲 아래서’를 예로 들어볼게요.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이 구절이 굉장히 부끄럽고 지우고 싶더라고요. 너무 좋아서 그런지 슬퍼서 그런지, 어쨌든 쓰러져서 울었단 말이지. 우리 목월 선생님께서 보잘것없는 작품을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뽑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부끄러운 부분 때문이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시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서 부끄럽다’고 해석했는데 그게 아니네요.

“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다 보니까 그 자체가 부끄러운 거예요. 시를 세련되게 못 써서 창피한 게 아니라 내 감정을 들켜서, 내가 너무 졸렬해서 부끄러운 건데요, 그건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그러면 거짓이 되니까요.”

배려심이 뛰어난 시인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김소월과 윤동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윤동주는 고리타분한 꼰대 사상에 물들지 않아서 좋아요. 서시의 첫 구절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은 맹자에 나오는 ‘부앙불괴(俯仰不愧·굽어보나 우러러보나 부끄러움이 없다)’에서 따온 거거든요. 그런데 전혀 꼰대스럽게 느껴지지 않잖아요. 그게 중요하죠. 윤동주 선생 시에는 온고지신이 있어요. 오늘날의 시도 온고지신을 해야 해요. 옛것을 지키되 꼰대로 살지 말고 새로운 걸 자꾸 만들어내야죠.”

배려의 여왕을 만난 적 있다면서요?

“아나운서 이금희씨하고 같이 방송을 한 적 있어요. 배려하는 마음이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천사예요. 그래서 우리 금희씨 놓친 사람은 바보라고 했죠. 하하. 내가 공주문화원장 할 때 토크쇼에 모셨는데 강사료를 안 받겠다는 겁니다. ‘원장님이 알아서 써주십시오’ 하기에 내가 여섯 사람을 지목해줄 테니까 똑같이 장학금으로 줘라 하니까 그건 하겠다고 했어요. 요즘 잘나가는 프로그램인 유퀴즈(tvN의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유재석씨도 배려심이 대단하더라고요. 보조 진행자인 조세호씨 몫을 꼭 남겨서 주도권을 넘겨요. 그럼 조세호씨가 그걸 받아서 확실하게 써요. 어떤 행사장에서 유재석씨를 만났는데 ‘당신이 롱런 하는 건 타인에 대한 배려 때문이니 앞으로도 그 마음을 잃지 마세요’라고 말해줬죠.”

삶의 에너지는 결핍에서 나온다


▎나태주 시인. 정겨운 돌하르방을 닮았다. / 사진:정영재
풀꽃문학관을 내려오면 나태주 시인의 집이 나오고, 거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시인의 단골 찻집 ‘눈썹달’이 있다. 제민천이라는 실개천을 끼고 커다란 통유리창이 있는 곳인데, ‘여름에도 첫눈이 올 것 같은’ 느낌이란다. 이곳에서 시를 쓰는 여주인과 나태주 시인은 가끔 ‘창작 배틀’을 한다. 시인이 최근에 쓴 시를 나지막이 읊었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창 밖에서 네가 우는 것이냐/창 안에서 내가 우는 것이냐’

“창 하나를 사이에 둔 건, 감옥에 있는 죄수와 면회자일 수도 있고, 기차를 타고 떠나는 사람과 배웅하는 사람일 수도 있어요. 아, 마음이 아파요.”

시인은 요즘 심정이 좀 안 좋다고 했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이 죽고, 늙어서 귀도 먹고 눈도 멀고, 제대로 못 걷는 사람도 있다. 귀 먹고 못 걷는 친구를 찾아가면 더 있다 가라고 애원을 하는데 자신은 빨리 가고 싶은 거다. 그래서 고기에다 과일까지, 더 많은 물건을 놓고 나온다. 미안하니까. 그런 생각이 저 시를 쓰게 한 배경이라고 했다.

눈썹달 통유리창 너머로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시인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보내듯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삶의 에너지는 결핍에서 나옵니다. 결핍이 있을 때 그걸 소중하게 간직하세요. 결핍으로 인해서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해요.”

※ 나태주 - 시인. 1945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43년간 초등학교 교단에 섰다.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산문집, 동화집 등 150권이 넘는 저서를 출간했다. 한국시인협회장, 공주문화원장을 역임했고, 2014년부터는 나태주풀꽃문학관을 운영하면서 풀꽃문학상·해외풀꽃시인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 글 정영재 중앙선데이 전문기자 jerry@joongang.co.kr / 사진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202303호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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